바다(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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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
BADA


파일:bada1234.jpg

본명
최성희 (崔成希, Choi Seong Hee[1])
출생
1980년 2월 28일[빠른생일] (44세)
파일:전라남도 휘장.svg 전라남도 파일:완도군 CI.svg 완도군 완도읍[2][3]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64cm, 47kg, AB형[4]
가족
아버지 최세월, 어머니 조복순[5]
1남 2녀 중 막내
남편(1991년생)(2017년 결혼 ~ 현재)[6][7]
딸 김루아(2020년 9월 7일생)[8]
학력
도창초등학교 (졸업)
소래중학교 (졸업)
파일:안양예술고등학교 교표.jpg 안양영화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 / 졸업)
파일:단국대학교 엠블럼.svg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 / 학사)
종교
가톨릭 (세례명: 비비안나)
소속사
파일:wave nine logo.png
소속 그룹
파일:S.E.S. 로고.svg
포지션
리더, 메인보컬
데뷔
1997년 11월 28일 S.E.S. {{{-4
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29E1B; font-size: 0.8em"
('Cause)I'm Your Girl

(데뷔일로부터 9622일, 26주년)
팬덤
Calliope(칼리오페)
취미
글쓰기, 시쓰기
특기
남도민요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9]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10] 파일:트위터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별명
바다[11], 최바다, 요정 디바[12]

1. 개요
2. 데뷔 전 생애
2.1. 1980 출생
2.2. 1986~1991 초등학생
2.3. 1992~1994 중학생
2.4. 1995~1997 고등학생
2.5. 1997 가수 데뷔
2.6. 1998 대학생
4. 솔로 활동
4.1. 가수
4.2. 뮤지컬 배우
6. 출연 작품
6.1. 뮤지컬
6.2. 영화
6.3. 드라마
7. 그 외 활동
8. 팬클럽
9. 수상 경력
9.1. 시상식
9.2. 기타 수상
10. 여담




1. 개요[편집]



카리스마 최성희
네가 우리나라 첫 번째 걸그룹의 첫 번째 리드보컬이다.

- 이수만

대한민국가수뮤지컬 배우. 1997년 11월 28일, SM엔터테인먼트가 음악 시장에 최초로 선보인 3인조 걸그룹 S.E.S. 멤버로 화려하게 연예계에 데뷔하였으며, 팀 내에서 리더와 메인보컬을 담당하였다.

2. 데뷔 전 생애[편집]



2.1. 1980 출생[편집]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소리꾼이었던 바다의 아버지는 낮에는 창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생계를 위해 경기도 부천시 근교에서 오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어려운 형편 때문에 바다를 낳을지 말지 고민이 많았지만 태몽을 꾸고 낳을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한다. 꿈속에서 열린 세계 구렁이 잡기 대회에서 바다 부모님이 한국 대표로 출전해 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제치고 제일 큰 구렁이를 잡았는데, 상으로 받은 검은 종마에 부상으로 받은 황금안장을 얹자 말이 백마로 변하더니 어깨에서 하얀 날개가 돋아나와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무슨 탄생 설화 보는 줄 태몽을 꾼 바다 어머니는 뱃 속에 있는 아이가 정치를 하거나 나랏일을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던 바다의 어머니는 갑자기 산통을 느껴 오리를 키우던 근처 비닐하우스에서 급작스럽게 바다를 출산하게 된다. 주변에 마땅히 도움을 청할 곳이 없던 데다 병원에 갈 시간도 없어서, 동네 할머니가 달려와 산파를 해줬다고 한다. 바다의 아버지는 갓 태어난 딸을 따뜻한 곳에 눕혀야겠다고 생각하고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오리들의 목을 쥐어뜯어 이불처럼 덮어줬는데[13], 그래서인지 몰라도 바다의 양쪽 귀에는 조그마한 구멍[14][15]이 있다고 한다.

2.2. 1986~1991 초등학생[편집]


도창초등학교에 다녔다. 바다가 태어난 뒤, 바다 아버지는 절친한 친구들과 함께 부산에서 큰 나이트 클럽을 운영했다고 한다. 창으로는 돈벌이가 안 되고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니 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기사가 딸린 차를 타고 다닐 정도로 부유하게 살았지만, 클럽을 운영하면서 술과 담배 등을 하면서 건강이 안 좋아졌고, 결국 사업 실패와 건강 악화로 가세가 기울었다고 한다.

바다가 초등학교 1학년 되던 해 경기도 시흥시 도두머리로 이사를 가게 됐다고 한다. 바다의 기억에 따르면, 웃풍이 심하고 비가 새는 허름한 집에서 살게 됐지만 집 밖에 나가면 마음껏 뛰어놀 대자연이 펼쳐져 있어서 매일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정서적으로는 풍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바다의 풍부한 감수성과 넉넉한 마음가짐은 자연과 함께한 어린 시절이 영향을 준 것으로도 보인다.

비가 엄청 오는 날에도 산을 넘어서 학교에 다녔는데, 동창들의 증언에 따르면 바다는 산을 넘어서 학교를 다니는데 하나도 힘들어하지 않고 오히려 산 타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고 한다. 또, 겨울이 되면 산에 가서 직접 나무를 해와서 난로를 피웠는데, 다른 여자아이들은 힘들다며 나무를 조금밖에 못해왔지만 바다는 웬만한 남자아이들보다 더 많은 나무를 해왔다고 한다.

옆집에 꿩 5,000마리를 키우는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매일 30마리씩 죽어서 12마리를 묻어준 적이 있다고 한다. 가수 신해철이 리드보컬로 있었던 N.EX.T의 노래 <날아라 병아리>를 틀어 놓고 꿩들을 묻으며 꿩들이 날아가는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특히 예수님의 12사도를 생각하며 '꼭 가수가 되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며 꿩들을 묻어줬다고 한다.

초등학교 2학년, '성희처럼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은 나와 보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처음으로 자신이 노래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MBC 《무한도전》 논두렁 디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다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넘치는 끼를 주체를 못할 만큼 흥이 넘치는 아이였다고 한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지루해 할 때마다 교실 앞으로 나가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부터 시작해서 옷걸이 춤, 개그맨 흉내 등 원맨쇼를 했다고 한다. 당시 최고 인기였던 〈회장님 회장님〉의 딸랑딸랑과 〈네로 25시〉의 최양락 흉내, 순악질 여사 흉내도 똑같이 냈는데, 늘 까만 테이프를 가지고 다니면서 일자 눈썹을 붙이고 남자애들을 바꿔가며 앉혀 놓고 '음매 기 죽어~, 음매 기 살어~'를 연발했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바다가 가요계의 요정 S.E.S.로 데뷔하자 동창들 모두 놀랐다고 한다.

당시 전교에 반이 2개밖에 없어서[16] 체육대회를 하면 경쟁이 치열했는데, 이긴 반이 진 반 애들한테 약을 올려서 큰 사건으로 번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중 바다가 사건의 발단이 된 일이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 말싸움으로 놀리다가 바다가 욱한 마음에 먹고 있던 떡을 옆반 애한테 던지면서 순식간에 헬게이트가 열렸고, 과자랑 음료수, 실내화, 가방, 빗자루 등등 던질 수 있는 온갖 물건들이 날아다녔다고 한다. 또 한 번은 놀이터에서 뺑뺑이 경쟁[17]이 붙은 적이 있었는데, 바다는 '절대 지면 안 된다'면서 뺑뺑이를 돌려댄 바람에 상대편 여자애 1명이 기절해서 나가 떨어진 뒤에야 게임이 끝났다고 한다.

바다가 9살 때부터 바다 아버지의 건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아예 일을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에, 가족끼리 묏자리까지 보러 다니게 된다. 죽음을 앞둔 바다 아버지는 물려줄 재산도 없고, 그저 자식들이 알아서 살아갈 수 있도록 뭐라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식들 중에 재능을 가장 많이 물려받은 막내딸에게 뱃심을 길러주기 위해 매일 아침 바다의 배를 밟고(…) 서있었다고 한다. 이른 아침부터 잠도 안 깬 바다의 배 위에 올라가 벽을 짚고 서 있었는데 바다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편찮으시니까 화를 낼 수도 없고 그저 내장이 터지지 않게 있는 힘껏 배에 힘을 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2~3년이 지나고 배에 힘이 생기면서 나중에는 아버지가 벽을 안 짚고 서 있어도 견딜 만해졌는데, 초등학교 때는 견디는 것만 했고 중학교 때는 그 상태에서 소리내는 연습을, 고등학교 때부터는 그 상태로 창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S.E.S. 활동 당시에는 같은 멤버인 유진가 배를 밟아줬다고 한다.

다행히 아버지의 병세는 양약을 끊고 청정한 산과 들에서 나는 풀뿌리와 나물 위주로 식단을 바꾸면서 자연스럽게 완치되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기적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치료비 때문에 집도 없어지고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오히려 아버지가 죽음을 눈앞에 둘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자 가족 간의 사랑이 더 깊어졌고, 바다 어머니가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식당에 다니면서 돈을 벌었지만 누구도 힘든 티를 내지 않고 식구들끼리 더 아끼고 챙겨주게 됐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바다네 가족은 성당에 딸려있는 조립식 건물에서 살았다고 한다. 치료비를 대느라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집을 얻을 상황이 아니었던 바다네 가족에게, 아버지의 병이 나을 때까지 공소 앞 정원을 관리하며 지내라고 마을 측에서 배려해 건물을 내어준 것이라고 한다. 죽음을 앞두고 모든 것을 포기했던 바다 아버지는 병이 조금씩 호전되면서 성당 관리 일을 맡게 됐고, 바다네 가족은 문을 열면 바로 성당을 바라보는 공간에 살면서 새벽에 미사 참례하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성당 문을 열어주고, 성모 마리아 상을 닦고, 성당 청소를 하면서 지내게 된다. 이 같은 성당에서의 삶은 훗날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에스메랄다 역을 연기할 때 큰 영감을 주게 된다.

바다는 성당에서 사는 7년 동안 매일 3시간씩 한겨울에도 속옷을 짜면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춤을 추고 노래 연습을 했다. 창, 가스펠, 가요 등 아는 장르는 전부 불렀는데, 특히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와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부르며 비브라토 연습을 했고, 춤은 거울이 없으니 근처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성당 벽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면서 췄다고 한다. 당시 성당 안에 약수터가 있어서 항상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어떤 여자애가 매일 춤추고 노래를 하니까 이상한 사람이 산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잘 안 된다면 하느님이 없다고 오해할 수 있으니까 제발 믿음을 저버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신만의 무대를 가졌다고 한다.

집에 불쌍한 유기견들이 많았는데, 아버지가 워낙 정이 많아서 버려지고 병든 강아지를 거둬 길러줬다고 한다. 나중에는 어떻게 알았는지 사람들이 성당에 개를 버리고 갈 정도였는데, 고등학교 때는 개를 팔아 학비를 마련했다는 슬픈 사연이 있다.

2.3. 1992~1994 중학생[편집]


소래중학교에 다녔다. 중학교 시절, 경기도 48개시의 학교 학생들이 출전한 웅변대회에 나가 1등을 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웅변은 돈 있는 사람들만 자식에게 시킬 수 있는 전유물로 여겨졌었는데, 바다는 학원 한 번 다니지 않고 매일 같이 연습을 해서 1등을 차지했다고 한다. 바다 아버지의 회고에 따르면, 각 시에서 리무진을 타고 온 아이들을 제치고 우승 깃발을 받은 건 지금 생각해도 기적 같은 일이라고 회상하였다.

중학교 시절 바다의 꿈은 '레크레이션을 지도하는 수녀'였다. 바다 아버지가 가톨릭 신앙으로 귀의하면서 온 가족이 신앙 생활을 하게 되었고, 특히 바다 아버지는 바다를 '복덩이'라고 부르면서 수녀원에 보내고 싶어했다고 한다. 실제로 바다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3년 동안 수녀회 성소자(聖召者) 모임[18]에 다녔고 한다. 여름 방학 때마다 꽃동네, 천사의 집, 평화의 집 등을 찾아다니며 아기들을 돌봤고, 환자들의 임종을 지켜봤고, 할머니 할아버지 대소변도 다 받아냈다고 한다. 하지만 추후 안양예술고등학교 재학 당시 연극과 뮤지컬을 통해 재능을 발견하게 되면서, 수도자 말고 자신의 길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 한마음문화예술단 정식회원이 됐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1달에 1번씩 정기적으로 공연을 가졌는데, S.E.S. 5집 활동 당시에는 아버지를 따라 탑골공원에 가서 노래한 적도 있다.

중학교 3학년, 안양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에 지원하였다. 당시 안양예고는 연예인 지망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어 경쟁률이 무척 높았었는데, 특히 바다가 지원한 해의 경쟁률은 무려 19:1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만 해도 돈이 없으면 예술고등학교를 다니기가 어렵다는 인식이 강했었고, 촌동네에서 예고에 진학한다는 것은 연예인 기획사에 들어가는 것 만큼이나 어렵게 여겨졌었기 때문에, 바다가 안양예고를 지원했을 때 다들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이었음에도 뜻을 굽히고 싶지 않은 나머지 밤낮으로 연습해 결국 입학시험을 보게 됐다고 한다.

입학시험에서 바다는 트로트, 가요,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On My Own〉, 창 각각 1곡씩을 불렀고, 연극 《백세개의 모놀로그》의 대사에 맞춰 자유롭게 연기를 펼쳤다고 한다. 당시 바다를 면접 현장에 있었던 안양예고 임경완 교감은 바다에게 아버지는 뭐 하시는 분이시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보통 집안에 대해 묻는 이유는 실력이 아주 없거나 아주 뛰어나거나 둘 중 하나로, 실력이 없으면 돈으로 여기까지 온 건지, 왜 하려고 하는지를 묻는 거고, 실력이 뛰어나면 집안에 내력이 있는지 궁금해 하는 의도로 질문하는 것이다. 이에 바다는 아버지가 지금은 편찮으시지만 예전에 창을 좀 하셨다고 답하였고, 이에 교감은 들어오면 잘 할 거지? 열심히 다녀!라며 그 자리에서 미리 대놓고 합격에 대한 확신을 줬다고 한다.

2.4. 1995~1997 고등학생[편집]


합격생 68명 중 실기 1등으로 안양예고에 입학하게 된다. 동네에 플랜카드가 걸리고 이장님이 돼지까지 잡아줄 정도로 경사스런 분위기였지만, 유독 바다 아버지만 반대했다고 한다. 바다 아버지는 목소리가 낭랑하고 노래를 잘 불렀던 바다를 유독 예뻐했고, 바다가 예능 쪽으로 재능이 타고난 걸 알고 있었지만 가수가 되는 걸 100% 찬성한 건 아니었다고 한다. 재능을 타고났다고 해서 모두 가수가 되는 게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재능만으로는 안 될 뿐더러 죽도록 노력도 해야 하고 운도 따라줘야 한다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욱이 바다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여건도 안 됐기 때문에, 바다도 바다의 언니처럼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길 바랬다고 한다. 바다한테 대놓고 '먹고 살기 힘드니까 하지 말라'고 할 정도였는데, 훗날 바다가 밝히길 '예고 등록금이 그렇게 비싼지 몰랐다'고 한다.

바다가 예술고등학교에 가겠다고 한 그 다음날부터, 바다 아버지는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삿갓을 쓰고 밤무대를 다니며 민요를 불렀다고 한다. 당시 바다 아버지는 위와 폐에 구멍이 뚫린 상태였지만 3남매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야간 업소와 지방 행사장을 다닐 수밖에 없었고, 무대 위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오직 자식들만 생각하며 힘든 희생을 감내한 것이었다. 당시 바다 어머니는 약 달이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남편 몸도 성치 않은 상황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다른 사람의 약을 달여야만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바다는 부모님의 걱정을 덜기 위해 학교 생활에 더욱 충실했다고 한다. 바다가 가수로 데뷔하고 난 뒤, 바다 아버지는 혹시나 가족사가 드러나게 되어 마음 고생을 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하지만 오히려 바다는 '환경이 힘들었을 뿐이지 마음은 가난한 적이 없었는데, 가난이 뭐가 창피하냐'고 당차게 되물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저녁을 못 먹어서 집에 딱 하나 남아있던 라면을 끓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라면을 끓이는 걸로 착각하는 바람에 아버지께 라면을 양보했다고 한다. 라면을 못 먹은 마음에 괜히 울쩍해서 집밖에 잠깐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려는데 마침 일터에 나가는 아버지가 '오늘은 진짜 나가기 싫다'고 혼잣말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되었고, 폭우가 쏟아지는 저녁에 일하러 나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아버지도 한 남자고,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폭풍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본인 때문에 밤업소를 다니는 아버지를 생각하니 상업고등학교로 전학을 가서 돈벌이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돈으론 가정 형편이 나아질 리 만무했고, 성인이 되면 아버지에게 힘이 될 수 있으니 그때까지 마음이 약해져선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그렇게 힘들게 돈을 번다는 사실이 자신을 일찍 철들게 한 것 같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늘 학비를 늦게 냈는데 지역 단체의 도움을 받아 학비를 마련한 적도 있었고, 어떤 독지가로부터 후원을 받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학비를 끝까지 못 냈으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어두워졌을지도 모르지만, 성당에 다니는 어떤 분이 무기명으로 두 학기 등록금을 내주면서 그때 세상이 참 따뜻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바다는 학창 시절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항상 사회에 보답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두산 연강재단을 통해 결손가정 아이들을 돕는 등 후원활동과 봉사활동에 꾸준히 참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안양예술고등학교 시절, 공부로는 1등을 못했지만 실기는 항상 1등이었다고 한다. 몸으로 연기하고 노래하는 것 만큼은 자신 있었기 때문에 재능으로 할 수 있는 건 모두 A+를 받았다고 한다. 안양예고 학내 연극에 많이 출연했는데 주로 서사극이 많았다고 한다. 한 학기에 한 번씩 작품을 올렸는데, 세익스피어 4대 비극부터 한국 고전은 물론이고 《산불》 같은 근대의 작품까지 올렸다고 한다. 3학년 마지막 작품은 브레히트의 《코카서스의 백묵원》이었다고 한다. 매 작품마다 캐릭터 분석을 전투적으로 많이 했었는데, 본인만의 방식으로 명작을 분석해보면 이야기가 선명하면서도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예 나중에는 단편 희곡까지 썼다고 한다. 또한, 연출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바다가 연출한 작품으로는 악극 《울고 넘는 박달재》가 있다고 한다. 바다의 회고에 따르면, 연출은 단조로운 이야기 속의 무대 언어를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고 한다. 뮤지컬을 하면서 연기에 있어서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었던 이유는, 고교 시절 연극에 집중했던 많은 것을 흡수하던 시기를 거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발로 중심을 잘 못 잡는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깊은 바다에 들어갔다가 모래가 들어가 한 쪽 귀가 안 좋은데, 그때 평형 감각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하려면 평형 감각이 필요한데 조금만 열정적으로 하다 보면 몸이 자꾸 한쪽으로 치우쳐져서 중심을 잡기 위해 뱃심을 키웠다고 한다.

2.5. 1997 가수 데뷔[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S.E.S.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고등학교 시절에는 연극배우가 꿈이었다. 많은 스승들이 바다의 재능을 인정해줬고, 연기에 소질이 있다고 말해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배우로 데뷔하면 학비를 바로 마련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선생님들의 조언에 따라 가수로 먼저 데뷔하게 된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김건모, 신승훈 등을 배출한 덕윤산업에서 오디션을 봤다고 한다. 오디션에는 홍경민도 있었다고 하는데, 홍경민과 함께 계약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관리 대상으로 낙점 받았다고 한다.

1996년 안양예고 연암제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머라이어 캐리의 〈Hero〉를 부르다가 SM엔터테인먼트 캐스팅 디렉터 눈에 띄어 캐스팅 된다. 학교 측이 무대에 바다가 선다는 것을 SM 엔터테인먼트에 사전 귀띔해준 덕분이었다. 당시 SM엔터테인먼트에서는 걸그룹 리드 보컬을 찾으며 예고 쪽을 알아봤는데, 안양예고 학생들이 끼가 많다는 얘길 듣고 '노래 잘하는 친구를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원래는 SM엔터테인먼트가 아닌 다른 기획사에서 솔로 제의가 들어왔지만, 담임 뿐 아니라 교감과 교장 선생님 모두 '너는 뭐가 되어도 될 수 있다'며 발 벗고 나서 여러 기획사를 소개시켜줬다고 한다. 그러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제의가 들어왔고 이수만이 '대학교 전액 장학금과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다 도와준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고, 이를 수락한 바다는 SM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게 된다.

SM엔터테인먼트 오디션에서 장혜진의 〈내게로〉를 불러 합격했다고 한다.[19] 당시 바다는 박자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자기도 모르고 발로 박자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노래가 끝나자 이수만이 말하길 '발라드를 부르면서 박자를 친 소녀는 바다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바다는 S.E.S. 활동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수만 선생님이야말로 나를 진심으로 존중해준 훌륭한 아티스트인 거 같다고 밝혔다. S.E.S. 시절, 이수만에게 샤데이 앨범을 들고 가서 '이런 노래 부르고 싶다'고 했더니 이수만은 바다를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고, 2집 앨범부터는 수록곡을 직접 고를 수 있게 해줬다고 한다. 아이돌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가수로서 또 다른 교육을 해준 셈이었다. 뉴욕에서 S.E.S. 정규 3집 앨범 타이틀곡 <Love>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당시, 해가 질 무렵 석양을 받으면서 촬영하고 있는 S.E.S.를 보며 '내가 다시 S.E.S. 같은 그룹은 못 만들 것 같다'는 말을 했다는 일화도 있다. 데뷔 15주년 팬미팅에서 바다가 말하길, '당시에는 그냥 한 얘기로 받아들였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시대적 배경이 주는 이미지와 신비로움 등 모든 것이 S.E.S.와 잘 어울린 것 같다'면서 '이후 수많은 걸그룹들이 나왔지만 정말 S.E.S. 같은 그룹은 없었던 거 같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수만은 바다 콘서트 때마다 화환을 보내거나 결혼식에 참석하는 등 아직도 제작자와 가수로서 훈훈한 사이를 이어가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한 후 1년 정도 트레이닝 기간을 가졌다. 6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이수만이 '잠정적으로 너를 리드보컬로 정했으니, 함께 할 서브보컬을 찾아보자'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바다는 연습생 중 마음으로 점 찍어줬던 유진도 있었고, 당시 한창 미국의 3인조 걸그룹 TLC]에 심취해있을 때라 3인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8개월이 되었을 무렵, 데뷔 짝짓기를 앞두고 '4인조로 가자'는 사장의 주장에 맞서 '3인조를 하고 싶다'고 강력하게 어필했다고 한다. TLC도 3인조고, 3인조여야 팀워크가 좋은 데다가 피라미드도 삼각구도가 좋기 때문에 삼각형으로 지어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며 어필했다고 한다. 사장은 이수만이 미리 바다에게 얘기한 사실을 모르고 '자꾸 이딴 식으로 굴 거면 빠지라'고 말했고, 이에 화가 난 바다는 'S.E.S.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한 뒤 연락을 다 끊고 잠수를 탔다고 한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수만이 노발대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나중에는 사장이 바다를 거의 모시고 갔다고 한다. 그만큼 당시 SM엔터테인먼트 내에서 완전한 공주 취급을 받았었고, 같은 소속사 출신 보이그룹 H.O.T. 문희준의 증언의 따르면 바다는 유일하게 이수만과 독대할 수 있었던 자사 가수였다고 한다.

2.6. 1998 대학생[편집]


평소 뮤지컬에 재능과 관심이 많았던 바다는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지원한다. S.E.S. 데뷔 준비와 입시 준비를 함께 했기 때문에, 밤 10시가 넘는 시간까지 연습을 하다 숙소로 돌아와서 수능 공부를 했다고 한다. 책상 앞에만 앉으면 늘 졸기 일쑤였지만 유진가 엄마처럼 챙겨주던 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한다. 자기들도 피곤할텐데 곧바로 쉬지 않고 마치 수험생 엄마들이 늦은 밤까지 간식을 챙겨주는 것처럼 돌아가면서 과일을 깎아주고 응원을 해주던 게 그렇게 고마웠다고 한다.

대학교 실기 시험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넘버인 〈Think of me〉를 불렀다. 2009년, MBC 《놀러와》에 출연해 밝히길, 당시 필기 성적이 안 좋아서 실기 시험이 절박한 상황이었는데 영어에 대한 지식이 없고 마음만 급하던 상황에서 유진이 곡의 발음과 해석을 직접 적어주는 등 도움을 줘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도 실기 점수 1등으로 입학하게 된다. 이로써 바다는 데뷔와 동시에 S.E.S.로 데뷔 전 간절히 바랐던 꿈 3가지(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 가수로 데뷔해 학비를 버는 것, 가수로 성공해서 그 대학의 축제 무대에 서는 것)을 모두 이루게 된다.

훗날 S.E.S. 활동을 중단하고 솔로로 활동하면서 계약금을 6억 원 정도 받았다 한다. 아버지에게 좋은 집을 사라고 드렸다는데 작은 집을 전세로 계약하고 나머지는 좋은 일에 쓰셨다고 한다. 어차피 드리기로 마음먹었던 돈임에도 딸의 마음을 외면한 것 같아 섭섭했지만, 이내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한다. 가수 바다와 트로트 가수인 아빠 최세월씨의 아름다운 동행 인터뷰


3. S.E.S. 활동[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S.E.S./활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솔로 활동[편집]



4.1. 가수[편집]


S.E.S. 멤버 중에서는 유일하게 음악적으로 꾸준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인 솔로 히트곡으로는 <Mad>가 있으며, 이 외의 다른 솔로 곡들도 중박 정도의 성적을 기록하였다. MBC 《무한도전》에 출연해 선보인 <나만 부를 수 있는 노래>도 대중적인 히트를 기록하였는데, 이 노래는 훗날 결혼식 축가에 단골로 등장하는 스테디 송으로 자리잡았다.

4.2. 뮤지컬 배우[편집]


2003년, 창작 뮤지컬 《페퍼민트》에 출연하며 뮤지컬 배우로서의 행보를 보였다. 이후 2007년 《텔미 온 어 선데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상업 뮤지컬 시장에 뛰어들었다. 《노트르담 드 파리》, 《미녀는 괴로워》, 《금발이 너무해》, 《모차르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의 히트작을 남기며 뮤지컬 배우로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각종 시상식에서는 신인상, 인기상, 여우 주연상, 대상 등을 차례대로 수상하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2008년 동명의 영화를 각색한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의 주인공 강한나 겸 제니 역으로 캐스팅 되며 엄청난 흥행 기록을 썼으며, 2009년 더뮤지컬어워드에서 이 작품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녀가 부른 뮤지컬 타이틀곡 <Maria> 는 시원시원한 가창력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덕분에 2011년 2기 공연시에 여주인공으로 다시 캐스팅 되는 행운을 안게 되었다.

다만 2018년에 출연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재연 작품 이후 뮤지컬 활동이 전면 멈춰 뮤지컬 배우로서의 바다를 좋아했던 많은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5. 음반 목록[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바다(가수)/음반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출연 작품[편집]



6.1. 뮤지컬[편집]


연도
제목
배역
비고
2003년
페퍼민트
바다
첫 뮤지컬 주연작
2007년
텔미 온 어 선데이
데니스

2008년
노트르담 드 파리
에스메랄다

미녀는 괴로워
강한별

2010년
브로드웨이 42번가
페기 소여

금발이 너무해
엘 우즈

2011년
미녀는 괴로워
강한별
재연 작품
2012년
모차르트!
콘스탄체

2013년
스칼렛 핌퍼넬
마그리트

노트르담 드 파리
에스메랄다
재연 작품
미녀는 괴로워
카르멘

2015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칼렛 오하라

2018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칼렛 오하라
재연 작품


6.2. 영화[편집]


연도
제목
배역
비고
2022년
최악의 상상
(My Worst Nightmare)

첫 영화 출연작
초 단편 영화


6.3. 드라마[편집]


연도
방송사
제목
배역
비고
2021년
파일:SBS 로고.svg
펜트하우스 2
박영란
특별 출연


7. 그 외 활동[편집]



7.1. 예능 활동[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바다(가수)/예능 활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팬클럽[편집]


개인 공식 팬클럽 이름은 Calliope(칼리오페)다. 아무래도 가수 및 뮤지컬 활동 등의 무대 위에서 활동을 꾸준히 펼치다 보니 S.E.S. 활동 당시부터 팬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고정팬 비율도 다른 멤버들보다 더 뿌리가 깊다. 가수와 뮤지컬 배우 등의 솔로 활동으로 개인 팬도 알맞은 비율로 유입됐다.

S.E.S. 활동 당시 팬덤 내 공식 응원 구호는 카리스마 최성희였다.

9. 수상 경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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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1997년에서 2002년까지 5년 동안 걸그룹 S.E.S. 멤버로 활동했던 당시의 수상 경력에 대한 내용은 S.E.S./수상 경력 문서
S.E.S./수상 경력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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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9.1. 시상식[편집]


날짜
시상식명
수상 부문
작품
2004년

제9회 바다의 날
대통령 표창


제21회 Korea Best Dresser 시상식
가수 부문 베스트 드레서상

2005년

KKC 월드 도그쇼 2005 리브져 킹
우수상

2006년

고뉴스 네티즌 연예대상
여자 가수상


제13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여자 댄스 부문 가수상


제4회 Korea Fashion World Awards
여자 가수상

2007년

한국 모델상 시상식
인기 가수상


중국 10대 공익 스타 시상식
한국 대표 공익 스타상


제5회 LOREAL COLOUR TROPHY
로레알 디바상

2008년

제2회 더 뮤지컬 어워즈
여자 인기상
노트르담 드 파리

제14회 한국 뮤지컬 대상
여우 신인상
인기 스타상
2009년

제3회 더 뮤지컬 어워즈
여우 주연상
미녀는 괴로워

제15회 한국 뮤지컬 대상
인기 스타상
2011년

제6회 맨즈헬스 쿨가이 선발대회
최고 가수상

2014년

제6회 Seoul Success Awards
뮤지컬 대상
영상


9.2. 기타 수상[편집]


날짜
시상식명
수상 부문
작품
2004년
11월 21일
SBS 도전 1000곡
MVP

2006년
6월 18일
SBS 도전 1000곡
MVP

12월 2일
MBC 창사 45주년 특집쇼
'가요 45주년 라이벌 쇼'
MVP

2013년
6월 1일
KBS2 불후의 명곡
우승 트로피
소녀시대
6월 16일
우승 트로피
나의 옛날 이야기
7월 27일
우승 트로피
카츄사의 노래
8월 31일
우승 트로피
불티
2014년
8월 23일
KBS2 불후의 명곡
우승 트로피
커피 한 잔
2015년
9월 19일
KBS2 불후의 명곡
우승 트로피
배반의 장미


10. 여담[편집]


  • 2022년 11월 2일, 제9회 《이데일리 문화대상》 시상식에 시상자 자격으로서 일정을 마친 후 개최 장소에 모여있는 보이그룹 세븐틴 팬들에게 해준 말이 많은 화제가 되었다. 해당 시상식에서 세븐틴은 콘서트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는데, 바다는 이러한 결과에 대해 팬들의 응원과 진심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는 따뜻한 말로 팬들의 노고를 치하하였다. 바다의 말에 감동한 세븐틴 팬덤이 자진적으로 SNS에 당시 촬영한 영상을 올리며 퍼져나가기 시작해 여러 언론사에 기사화 되기도 하였고, 대형 연예 커뮤니티에 게시글로 올라와 377개의 댓글이 달리는 등 큰 화제를 모았다. 해당 일화는 바다가 팬들을 어떠한 존재로 인식하는지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로 바다는 각종 일정에 찾아와주는 팬들을 향해 항상 고마움과 따뜻한 마음을 표현하기로 유명하다. 2018년, JTBC 《히든싱어5》에 출연해 말하길 곧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신을 보기 위해 찾아와주는 팬들이 있다고 언급하며 해당 팬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많은 눈물을 보이기도 하였다. 바다가 세븐틴 팬들에게 건넨 말은 비단 해당 팬들에게만 국한되는 말이 아니라, 비록 팬 활동의 상대가 다르더라도 누군가의 팬이라면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이 모습을 지켜본 S.E.S. 팬들과 바다 팬들도 세븐틴 팬들이 현장에서 느꼈던 따뜻함을 느꼈을 것이다. 사실상 이 말은 동시에 S.E.S.와 바다의 팬들에게도 해준 말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 예명이 예명이니만큼 바다와 연을 맺는 일이 잦다. 2008년에는 국토해양부 홍보대사로 활동하였다.

  • 동방신기의 유노윤호, 샤이니의 민호, 엑소의 수호 등으로 이어지는 SM엔터테인먼트 '열정라인'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평소에 흥과 에너지가 넘친다.

  • S.E.S.와 동시대에 함께 활동한 god의 김태우는 바다의 모습을 보며 '무대에 서고 싶어서 미칠 거 같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2009년 10월 26일, MBC 《놀러와》 S.E.S. 특집 편에 함께 게스트로 출연해서 말한 내용.) 무대에 대한 열망, 갈망, 열정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좋아하는 나라는 브라질이라고 한다. (2002년 3월 22일, 채널V 코리아 《Hi Five Star》에 출연해서 말한 내용.)

  • 방송 및 각종 음악회 행사 등에서 '세상에는 제 팬과 앞으로 제 팬이 될 사람' 두 분류로 나뉜다는 멋진 말을 뽐냈다.

  • NRG의 김환성과 생전 절친했는데, NRG 멤버들을 제외하고 김환성이 사망하기 전까지 중환자실에서 그의 곁을 지킨 유일한 연예인이다. 김환성이 사망하고 몇 개월 후 PC통신에 '곧 따라가겠다'라는 내용을 남기며 괴로운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 또한 배우 이은주의 절친이기도 했다. 단국대 연극영화과 선후배였던 둘은 평소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로서 바쁜 와중에도 이틀에 한 번 꼴로 전화 통화를 주고 받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2005년 2월, 이은주가 생을 달리 하였을 때 충격으로 잠깐 쓰러지기도 했었고, 제일 먼저 빈소를 찾아 오열하며 자리를 지켰다. 고인이 세상을 등지기 전 날까지 전화 통화를 했던 것으로 드러나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하였다. 발인 때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부르며 통곡하였다. 또한 생전에 고인과 찍었던 사진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아 고인의 어머니께 전달하기도 하였다. 고인의 사망 1개월 후 KBS2 《연예가중계》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심경을 물어보자 눈물을 감추질 못했는데 그만큼 바다에게 이은주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다. 이후에도 이은주의 추모 공연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추모일이 돌아오면 SNS에 고인을 언급하는 등 안타깝게 생을 저버린 이은주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SM엔터테인먼트 직속 후배 걸그룹인 소녀시대서현과 함께 더블 캐스팅 되어 출연하였다. 이때의 친분을 계기로 임신 중이라 MBC 《무한도전 특집 토토가》에 참여하지 못한 유진을 대신해 서현이 함께 무대에 섰다. 1세대 원톱 걸그룹 S.E.S.와 2세대 원톱 걸그룹 소녀시대의 역사적인 콜라보 무대가 이렇게 완성되었다.

  • 2011년, 선배 가수 김태욱이 대표로 있는 SNS 기업 '굿바이셀리' 의 마케팅 기획 팀에 창립 멤버로 입사한 사실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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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6일,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않은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KBS1 《열린음악회》에 출연해 을 열창했다. 모친이 2월 19일 선종하셨으니, 일반적인 3일장을 치를 경우 발인 직후인 22일에 녹화를 한 것이다. 해당 방송에서 열창 후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는데, 많은 이들이 이 무대를 보고 감동해서 검색을 많이 한 결과 당시 네이버 자동 검색어에 뜰 정도였다. 또한 의 아버지가 바다 어머니의 빈소를 찾던 중 심장마비로 돌아가셔서 팬들과 대중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 솔로 데뷔 당시 10억짜리 목소리 보험에 가입한 적이 있었다.기사. 하지만 매달 납부해야 되는 보험료가 너무 비싸서 지금은 환급 받았다고 한다.기사

  • 2013년 6월 11일, 케이블 채널 QTV 《20세기 미소년》에 출연해 S.E.S. 활동 당시 이상형은 젝스키스의 은지원이었다고 밝혔다.#

  • 2015년 말에는 중국 광동판 《나는 가수다(麥王爭霸)》에 한국을 대표하는 여자 가수로 출연하여 준우승을 거머쥐었다.

  • 2016년 5월 28일과 6월 5일, MBC 《복면가왕》에 나의 사랑 나의 신부라는 가명으로 출연하였다. 1라운드에서 깜찍한 토끼소녀 바니바니와 함께 듀엣 무대를 할 때부터 이미 정체를 알아챈 시청자들이 많았다. 1라운드에서 걸그룹 후배와 대결을 펼쳤고, 2라운드에선 SM엔터테인먼트 직속 후배 보이 그룹인 EXO의 으르렁을 불렀다. 우승도 노려 볼만한 실력이었지만 상대가 너무 강적이라, 최종적으로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 2016년 9월 24일 오전 8시경, 언론 보도를 통해 9살 연하남과 열애하고 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전에 있었던 열애설 상대가 모두 연예인이었던 것과는 달리 상대는 일반인 사업가이며, 지인의 소개로 만남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2017년 1월 12일, 해당 남자 친구와 동년 3월 23일에 결혼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프로포즈는 스카이다이빙을 하면서 받았다고 한다.# 이로써 S.E.S. 멤버들 전원이 품절녀가 되었으며, 이는 역대 여자 아이돌 그룹 사상 최초였다.

  • S.E.S. 멤버들 중에서는 최연장자임에도 제일 늦게 결혼하였다.

  • 2017년 3월 23일, 마침내 결혼하였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약현성당 에서 혼인성사로 결혼식을 치뤘다. S.E.S. 멤버 유진의 가족들[20], S.E.S.를 제작한 SM엔터테인먼트의 수장 이수만, 그외 안성기 등 수많은 유명 연예인들이 하객으로 참석해 인산인해를 이뤘다.

  • 2018년 3월 28일,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남편 나이에 대한 잘못된 사실을 정정하였다. 언론 보도 상으로는 9살 연하로 알려졌는데, 실제론 이보다 1살 더 어린 10살 연하라고 한다.

  • 남편은 모델 급의 키와 비율, 작은 얼굴을 가진 훈남형인데 게다가 연하이기까지 해서 여초 사이트 내에서 바다는 일명 '바다성님'으로 통하고 있다.

  • 2018년 8월 12일, JTBC 《히든싱어5》 9회에 원조 가수로 출연해 최종 3위를 기록하였다. 또한 자신의 모창 능력자들의 노고를 인정하여 감동을 주었다.

  • 2020년 8월 31일,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통해 첫 아이를 임신 중이고 9월 중에 출산 예정이라고 밝혔다. 9월 7일 오전 서울 모처의 한 병원에서 딸을 출산하였다. 출산 당시 나이가 40세였는데, 아무래도 늦은 나이에 하는 노산이라 출산 과정에서 위험한 상태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 2021년 2월 20일, 같은 멤버 유진의 주연 작품인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2》에 특별 출연하는 우정을 보여줬다. 해당 드라마에는 S.E.S. 활동 당시부터 절친인 김소연도 주연으로 출연 중이었기에, 여러모로 두 배우와의 우정을 계기로 출연하게 된 셈이었다. 이로써 특별 출연 카메오이긴 하지만, 연예계 데뷔 후 처음으로 드라마에 단독 출연하게 되었다.[21]

  • 독실한 천주교 신자다. SBS 《골때리는 그녀2》 평가전 경기 때 성호경을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였다. 2014년 8월 18일,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당시 명동성당에서 진행된 미사에도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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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빠른생일] 1979년생과 같이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79년생들에게 언니, 오빠라 부르고 80년생들과 친구로 지내는 듯하다.[2] #[3] 본인이 직접 언급.[4] #[5] 2011년 2월 19일에 폐암으로 선종.[6] 언론에 9살 연하 사업가로 소개되었으나 불후의 명곡에서 11살 차이라고 밝혔다. 해피투게더 출연 당시 전현무 왈, 강민혁과 닮았다고. 2021년 편스토랑에서 게스트 출연했을 때 모습이 공개되었고 하고 있는 사업은 빵집이라고 밝혀졌다. 한지혜가 말하길 박보검과 닮았다고.[7] 키가 무려 189cm라고 한다.[8] 편스토랑에서 이름이 밝혀졌다. 성씨는 불명.[9] 웨이브나인 공식 홈페이지[10] 공식 팬클럽 Calliope 홈페이지[11] 별명이 예명이 된 케이스다.[12] 본인이 강력하게 밀고 있는 별명이며, 대부분 이에 수긍한다.[13] 오리의 몸에서 가장 깨끗한 부위가 턱 바로 아래 털이기 때문이다[14] 바다 아버지는 이 구멍을 가리켜 오리 콧구멍이라고 부른다고 한다.[15] 그런데 사실 이건 태아 때 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피부가 덜 아물어서 남는 구멍이다. 인종적으로 발생 빈도 차이가 있으며, 작은 건 지장이 없지만 크면 고름이 차거나 할 수 있어 간단한 수술로 밖으로 열린 부분을 없애야 한다.[16] 80년대 말은 서울을 비롯한 주요 대도시에서 한 학교에 10여개의 학급이 기본이요 교실당 60명이 넘는 학생이 우글거려 오전반-오후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하는 등, 콩나물시루 과밀학급이 문제가 되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에 반이 둘 뿐이었을 정도의 시골이었던 것이다. 참고로 이 때는 시흥시가 아니라 시흥군이었다.[17] 뺑뺑이를 돌려서 안에 타고 있는 상대방 애들을 떨어뜨리는 놀이를 말한다.[18] 수도자가 되고 싶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위해,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모임이다. 대개 1달에 1번 모임이 있고, 이 모임에 꾸준히 참석해 보면서 수도회 입회 여부를 결정한다.[19] 이후 솔로 3집에서 이 곡을 리메이크하여 수록하게 된다. 본인으로서는 가수 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도 같은 곡이라 특별하게 생각하는 듯하다.[20] 다만 라둥이들은 유치원에 가는 바람에 참석을 못했다고 한다.[21] S.E.S. 활동 시절에도 출연한 적은 두 번 있으나, 같은 멤버인 유진와 함께 공동으로 출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