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정당 탈당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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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차 탈당: 대선 이전
2. 2차 탈당: 보수 대통합론
3. 3차 탈당: 6.13 지방선거 이전
4. 여담
5. 관련 문서


1. 1차 탈당: 대선 이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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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정당 1차 탈당 의원들

파일:바른정당탈당.jpg
2017년 5월 2일 오전 실시간 검색어 1~10위

역대 보수 정당의 역사를 살펴보면 민주자유당으로 출발한 단일 보수 정당에서 떨어져 나온 군소 보수 정당들은 자민련을 제외하면 다들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단일 보수 정당 쪽으로 다시 흡수되곤 했다. 그래서 바른정당을 바라보는 다른 정당의 지지자들은 바른정당도 다를 거라고 보지 않았다.

바른정당의 구상대로라면 창당과 함께 새누리당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후폭풍을 고스란히 받아 몰락하고 바른정당이 보수의 대안으로 강력히 떠올랐어야 했다. 그러나 이것은 실패했고 새누리당이 이름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꾸자 오히려 태세가 변했다.

일단 새누리당의 비박 모두가 바른정당에 참여한 것도 아니었고 기존 보수 지지자들은 박근혜를 싫어하더라도 새누리당의 직접적 후신인 자유한국당을 지지하고 있었기에 때문에 지지를 많이 받기는 어려웠다.

대선 정국,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지지율은 5% 내외에서 더 치고 나가지 못한 반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은 썩어도 준치라고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서 이탈한 보수의 표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상승세로 돌아섰다.[1] 이는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의 보수 적통 경쟁에서 바른정당이 수세(守勢)에 접어들었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여러 바른정당 의원들은 보수 후보 단일화를 명분으로 유승민 후보의 사퇴를 종용했으나 유 후보는 끝내 거부했고 바른정당 의원들이 대거 탈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2017년 5월 2일까지 총 13명의 바른정당 의원들이 탈당했다. 바른정당에 남았던 국회의원은 20명으로, 바른정당은 겨우 원내교섭단체 자격을 턱걸이로 유지하는 꼴이 되었다. 탈당한 이들이 자유한국당 복당을 선언하자 한국당내 친박계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무엇보다도 바른정당의 복당파친박계새누리당 시절부터 친박계비박계라는 이름으로 대립해 왔고 바른정당의 복당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에 찬성표를 던졌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친박계 입장에서 복당파는 역적들인 셈.[2]

그리고 이들이 과거에 당을 떠나면서 공백이 생긴 당협위원장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이미 채워 넣은 상황인 만큼 이들에 대한 거취 문제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미 20대 총선에서 비박계친박계공천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참패한 경험이 있는데 두 계파 간의 갈등을 봉합하지 못하면 나중에 찾아올 큰 선거들에서 줄줄이 이런 상황을 또 재현할 지도 모르게 되었다. 이렇게 된다면 자유한국당의 지지 기반인 TK와 서부경남 그리고 전국 각지의 전통적 보수층도 동요하게 될 게 뻔했다.

결국 홍준표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탈당한 12명의 바른정당 의원들은 친박계의 반발에 부딪혀 자유한국당으로의 복당이 늦어졌다가 홍준표가 강력히 추진한 결과 입당이 전격 허용되었다고 한다. 당초엔 14명이 홍준표와의 심야회동에서 마음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탈당계만 내면 탈당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유턴한 황영철과 탈당을 보류했다가 잔류로 마음을 고쳐잡은 정운천이 빠져 12명이 되었다. 덕분에 바른정당의 의석수가 20석이 되어 가까스로 바른정당은 원내교섭단체의 위치를 지킬 수 있었다.

32명 중 한국당으로 복당한 12명을 뺀 나머지 20명[3]은 잔류했다. 이혜훈 의원이 비꼰 것처럼 김무성계[4]는 사실상 다 탈당하였는데 정작 김무성이 남았던 모습은 다소 아이러니하다. 김무성의 속내는 유승민계 및 바른정당 잔류파들을 설득해서 함께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보수를 다시 살린다는 프로파간다로, 본인의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려던 것으로 보인다.[5][6]

일단 PK 지역구 의원들의 동요가 심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는 부산광역시 사상구에 지역구를 둔 장제원 의원이 지역의 표는 지방 의원들이 가져다주던 것임을 김어준의 파파 이스에 출연해서 대놓고 인정한 바 있다. 사실 PK 지역 중 특히 부산더불어민주당의 지지세가 올라가면서 보수가 분열한 상태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각각 후보를 내 내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치를 경우 민주당에게 광역 및 기초단체장 상당수를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이 당시의 판세였다. 사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TKPK의 광역자치단체장 5개[7] 중 바른정당이 한 곳도 얻지를 못한다면 바른정당은 보수 정당으로서 지역 기반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8]

이로써 바른정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당직을 바꾼 13인은 다음과 같다. 이은재 (재선, 서울 강남구 병), 김성태 (3선, 서울 강서구 을), 박성중 (초선, 서울 서초구 을), 홍일표 (3선, 인천 남구 갑), 김학용 (3선, 경기도 안성시), 박순자 (3선,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을), 권성동 (3선, 강원도 강릉시), 홍문표 (3선, 충남 홍성군 - 예산군), 이진복 (3선, 부산 동래구), 장제원 (재선, 부산 사상구), 이군현 (4선, 경남 통영시 - 고성군), 여상규 (3선, 경남 사천시 - 남해군 - 하동군), 김재경 (4선, 경남 진주시 을)

이 일을 통해 오히려 유승민바른정당에 대한 동정 여론이 더 높아지면서 대통령 선거에서 유승민의 지지율이 약간 상승했고 탈당한 13인은 철새라는 낙인이 찍혔다.[9] 바른정당은 당원 가입자가 평소에 비해 10배 이상 급증했는가 하면 유승민 후보에게 들어오던 후원금도 폭증했다. 2017년 5월 28일 '신입 당원과의 만남'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4월 말 이후로 2만 명의 당원 가입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바른정당의 존속 여부는 큰 선거인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결과로 결정될 것으로 보였으며 자유한국당과의 보수 대표 주자 자리를 놓고 적자 경쟁에 집중할 것으로 보였다.


2. 2차 탈당: 보수 대통합론[편집]


파일:바른정당2차탈당.jpg
바른정당 2차 탈당 의원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적폐청산을 내세우면서 이명박 前 대통령 수사를 압박해오던 상황에 이명박 및 친이계와 친분이 있었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자유한국당에 정치보복특별위원회를 만들며 이명박, 친이계와 물밑 교류를 지속해 왔고 그 결과 정병국정운천을 제외한 바른정당을 같이 창당했던 친이계 인물들이 바른정당을 대거 탈당했다.[10][11]

이혜훈 대표가 금품 수수 의혹으로 자진 사퇴한 뒤 2017년 10월 정기국회 무렵의 바른정당김무성 및 친이계 상당수가 중심이 된 통합파와 유승민계와 보수통합에 반대하는 구성원들의 자강파로 분열되었다.

통합파는 보수 대통합이라는 명분 아래 자유한국당으로의 복당을 주장했는데 주로 김무성PK영남권 의원들과 친무계 혹은 친이계 중심으로 10여 명 정도였다. 반면 자강파는 수구 보수 이미지의 자유한국당에 복귀하는 것을 거부하고 개혁 보수 세력으로 남겠다며 11월 13일에 치러질 새 전당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유승민, 하태경 등과 이혜훈, 지상욱 등 주로 수도권 의원들과 친유계 중심으로 10명 정도였다. 특이한 점은 1차 탈당 당시 탈당을 고심했던 정운천 의원은 자강파로 돌아섰다.[12] 당시에는 한 명이라도 빠지면 바른정당원내교섭단체의 지위를 잃을 판이었다. 통합파 의원들은 자유한국당이 박근혜를 출당 조치하면 이를 명분으로 복귀를 준비하고 있었다다. 15명 이상이 자유한국당에 복귀하면 자유한국당은 더불어민주당을 제치고 원내 제1당이 된다. 8명 정도 탈당하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화되었고 나머지도 설득 중이었기 때문에 바른정당이 12석 정도의 미니 정당이 되는 것은 거의 확정적이었다. 적어도 11월 13일 전당대회 전에는 모두 정리될 것으로 전망되었다.

교섭단체는 일단 나라로부터 받는 정당 보조금이 대폭 삭감이 되고 국회 내에서 발언력이 상당히 약하다. 당장 국회 운영에 관한 주요 의사 결정은 각 교섭단체 간 합의를 원칙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非교섭단체는 그냥 있으나 마나한 정당 정도로 여긴다는 것이다. 당장 언론에서 정의당민중당, 대한애국당이 모습을 얼마나 비췄는가 생각하면 된다.[13] 당시 정의당의 지역구 국회의원은 노회찬과 심상정 단 둘 뿐이었으며 그마저도 민주당 내 신흥 좌파 세력에게 압도적인 수로 밀리는 상황이었다. 마찬가지로 바른정당도 보수는 자유한국당에게, 중도는 국민의당에게 묻히며 유승민, 하태경을 제외하면 화제가 될 만한 의원도 적었다.

이 때문에 자강파만 남은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이 연대하는 것도 유력한 방안으로 떠올랐다. 아무리 자강파가 자강을 외친다고 한들 현실적으로 12석 정도의 미니 정당으로 전락한다면 생존 자체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그나마 현실적으로 자신들과 이해관계가 가장 맞는 국민의당과 힘을 합쳐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 양당 간의 세력 균형을 맞추는 세력으로서 남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자유한국당 대표인 홍준표 측에서 바른정당 자강파의 복당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명시했다. 그러면 둘 간의 통합 교섭단체를 차림으로써 현직 의원이 지방선거에 나가는 것도 가능해진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당에 비해서다. 영남 보수계열 정당[14]과 호남 민주계열 정당은 뿌리부터 상극이라 현실적으로 호남 계열 정치인을 배제하지 않는 이상 합당은 불가능한 것으로 평가받았고 DJP연합처럼 선거 연합, 야당 간 연정을 이루는 정도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2017년 11월 3일에 자유한국당 대표 홍준표박근혜 출당을 승인하면서 바른정당 통합론자들의 탈당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측되었다.

11월 6일 결국 통합론자들이 탈당을 결정하면서 바른정당은 교섭단체 자격을 상실할 전망이었다. 밝혀진 탈당 명단은 김무성·김용태·김영우·강길부·정양석·주호영·이종구·홍철호·황영철이다. 주호영 대표 권한대행을 제외한 8인의 의원들은 11월 8일에 탈당계를 제출해 같은 달 9일 자유한국당에 복당하였다. 주호영 의원은 11월 13일 탈당계를 제출하고 다음날 자유한국당에 복당하였다.

바른정당의 앞날은 갈수록 어두워졌으며 두 차례의 탈당 사태로 인하여 당세도 악화되었다. 이 상황이 이어진다면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18년 재보궐선거에서 참패가 불가피하며 참패할 경우에는 바른정당은 당 자체가 해체될 정도의 최악의 위기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3. 3차 탈당: 6.13 지방선거 이전[편집]


파일:바른정당3차탈당.jpg
김세연 당시 의원과 남경필 당시 경기도지사

유승민, 이혜훈, 지상욱, 하태경 의원을 비롯한 일부 강경 자강파 의원들이 11월 7일 추가 탈당 가능성을 막기 위해 긴급 의원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당 수습에 나섰지만 당내 불안감과 갈등은 오히려 증폭되며 이 과정에서 자강파 의원들 간에도 감정의 골이 생겼고 전대 연기를 주장했던 일부 의원들이 '2차 탈당'을 결행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를 포함해서 추가로 최대 6명 정도가 탈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해졌다. #

다만 바른정당 잔류파 11인이 의원간담회에서 11월 13일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를 구성한 후 국민의당과 자유한국당을 아우르는 중도보수 대통합을 추진하기로 했는데 그것도 한 달이라는 시간을 가지고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것은 당의 추가탈당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언론과 네티즌들의 해석이었다. 일단 자유한국당의 지역 기반인 대구-경북과 국민의당의 지역기반인 호남을 묶을 만한 거물급 정치인들이 없으며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와 국민의당 내 일부 호남계 의원은 바른정당과의 당 대 당 통합전대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도 큰 걸림돌이었다. 그리고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세 정당의 통합을 이루어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비슷한 사례가 있다면 DJP연합을 꼽을 수 있는데 그나마 이것도 각각 호남과 충청이라는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1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그것도 언론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안을 철저히 하면서 진행하였다.

결국 어찌되었든 이 안으로 바른정당 온건 자강파들을 달래기는 했지만 사실상 갈등을 임시봉합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며 이것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바른정당의 미래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암흑 속에 빠질 것으로 보였다.

다만 11월 8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바른정당 내 잔류파 의원들 설득을 그만하고 문을 닫겠다고 선언했다. 즉, 바른정당에서 추가 탈당사태가 일어난다고 해도 자유한국당에서 복당을 순탄하게 받아줄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홍 대표는 말을 바꿔 샛문은 열려 있다고 하였다, 유승민 대표도 썰전에서 홍 대표가 물 밑 작업을 하고 있으며 실제로 나가려는 의사를 보인 이가 한두 명 있다고 했다.

만약에 3차 탈당이 이루어진다면 바른정당의 몰락은 훨씬 앞당겨질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었고 김세연, 이학재, 원희룡, 남경필 등의 인사들의 탈당설이 제기되었다.

2018년 1월 3일 남경필 지사는 복당 결심을 굳혔다고 알려졌으며 이에 따라 김세연, 이학재 의원의 탈당도 임박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었다. #

결국 김세연은 2018년 1월 9일 입장문을 통해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그간 지역에서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저와 정치적 행보를 함께 해 온 당원동지들의 뜻을 받들어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하겠다"고 밝힌 후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하였다.

남경필 지사도 1월 9일에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에 불참하겠다는 입장을 밝힐 예정이었다. 탈당과 잔류를 두고 고심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이학재 의원은 잔류를 선언했다.[15] #

남경필 경기지사는 결국 2018년 1월 9일에 탈당하였고# 1월 15일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하였다.

2018년 1월 16일(화요일) 통합 찬성파였던 박인숙 의원(서울 송파구 갑)이 바른정당을 탈당하고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 이로써 바른정당의 의원수는 10명에서 한자리수인 9명으로 떨어졌다.

2018년 2월 6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탈당했다. 자유한국당 복당이 유력해 보였으나 복당하지 않고 당분간은 무소속을 유지한 채 정치와의 거리를 두겠다고 밝혔다.[16]

한편 2018년 2월 9일, 친이계와 친이계 좌장 이재오가 창당했던 늘푸른한국당은 이날 당을 해산하고 2018년 2월 12일에 자유한국당에 복당했다.

바른미래당 체제로 출범한 후인 2018년 4월 10일 원희룡 제주지사가 탈당했다.[17] 이로써 바른미래당의 광역자치단체장 의석은 0석이 되었다.


4. 여담[편집]


당초에는 탈당파 의원들이 다시 바른정당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여론도 일부 있었으나 이후에는 일명 "위장축복(blessing in disguise)"이 되었다는 평이 많이 나왔다. 예를 들면 여상규의 추악한 과거사와 그에 대한 본인의 입장 및 김성태장제원이 어떻게 됐는지만 봐도...

바른정당 창당 멤버들은 훗날 미래통합당에서 모두 재회했다.[18]

5. 관련 문서[편집]


[1] 보수 표심은 처음에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막기 위해 일단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밀어주는 쪽으로 갔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 개인의 역량 한계와 연속된 말실수, 국민의당 주류 호남계 세력에 대한 거부감으로 지지율과 당선 확률이 점점 떨어지자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밀어 주었다.[2] 역적이라기보단 정적들에 가깝다. 예전부터 친박계와 비박계(특히 친이계)가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같은 당 소속일 뿐이지 사실상 적 수준으로 미친 듯이 대립하고 싸워 온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러다가 올 것이 왔고 새누리당의 비박계 의원들은 보수당의 지지율을 깎아먹는 주범이 된 친박계를 아예 날려 버리기 위해 민주당과 일시적으로 손잡고 탄핵안을 가결시켜 결국 박근혜를 끌어내린 것. 즉, 친박계 입장에서는 비박계 핵심 멤버들을 다시 복당시키면 자기들이 기득권을 잡고 있는 당내에 정적들을 들이는 꼴이 되는 것이었다.[3] 강길부, 김무성, 김세연, 김영우, 김용태, 박인숙, 오신환, 유승민, 유의동, 이종구, 이학재, 이혜훈, 정병국, 정양석, 정운천, 주호영, 지상욱, 하태경, 홍철호, 황영철 의원.[4] 황영철, 정운천 의원 제외.[5] 원래 이런 정치적인 이벤트에서 밑에 계파 보스급 정치인들은 늦게 움직인다. 비슷한 예로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당으로 뒤늦게 입당한 박지원을 들 수 있다.[6] 게다가 김무성은 마지막까지 탈당을 고민하던 유승민을 끝까지 설득한 뒤 바른정당을 창당한 장본인인데 이제 와서 유승민의 지지율이 안 나온다고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간다면 명분을 중요시하는 대한민국 정계에서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었다.[7]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경상남도.[8] 자민련이 다른 군소 보수 정당에 비해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충청권에 지역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9] 이와 비슷한 사건으로 과거 민주당의 후보 단일화 협의회 사태를 들 수 있는데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은 끝내 당선된 것과 달리 당과 당의 대선 후보를 흔들었던 의원들 대다수가 철새로 낙인 찍혀 정치 인생을 마감했다.[10] 실제로 바른정당 1차 탈당 사태 때는 김무성 본인과 황영철을 제외한 친무계만 대거 탈당하고 자유한국당으로 입당했으나 바른정당 2차 탈당 사태 때는 친이계로 분류되는 인물들이 정병국과 정운천을 제외하고 대거 탈당했다.[11] 단적으로 20대 국회에서 이명박의 측근으로 분류되던 주호영은 자강-국민의당 연대파 및 통합파의 사이에 있는 중재파였는데 점점 통합파로 기울다가 탈당했다. 이는 더불어민주당 및 정의당에서 이명박 수사를 압박해오자 이명박과 친이계에서 자유한국당에 입당해 정치적인 방패막이로 대응하는 쪽에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12] 사실 100% 자강파라고 하기는 애매한 게,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연합체인 국민통합포럼에서 바른정당 측 간사를 맡는 등 국민의당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바른정당 의원 중에서는 흔치 않은 국민의당 통합파로 추정되었다.[13] 그나마 정의당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다음으로 모습을 꽤 비추는 편이었다.[14] 그중에서도 특히 15대 대선에서 김대중에 맞서 싸운 이회창계 위주이다.[15] 결국 이학재도 그해 말에 바른미래당에 탈당하여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하였다.[16] 이후 오세훈은 2018년 11월 29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복당하였다.[17] 다만 남경필과는 다르게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하지 않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제주지사 재선에 성공했다. 이후에도 당적을 갖지 않고 무소속 신분을 유지해 오다가 보수정당 합당 및 개편 과정에서 미래통합당에 합류하였다.[18] 하지만 바른미래당을 거쳐서 민생당까지 잔류한 정치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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