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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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미안 (아프가니스탄)




파일:바미안.jpg

1. 개요
2. 역사



1. 개요[편집]


아프가니스탄 중부에 위치한 주이다. 주민의 대부분이 하자라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탈레반에 의해 파괴된 바미안 석불이 있기도 했다. 바미안 석불 외에도 동굴에 고대 불화가 적잖이 남아있었으나 탈레반이 화염방사기로 모조리 파괴하였다 한다.

2. 역사[편집]


하자라족이 이 지역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중세 말이나 근세 무렵부터로 보이며[1] 그 이전 이 지역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아프가니스탄 다른 지역 사람들과 외양과 문화가 비슷하였다 한다.

범연나국(梵衍那國)은 동서로 2천여 리이고 남북으로 3백여 리에 달하며 설산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은 산의 계곡에 의지하고 산의 형세를 따라서 마을을 이루고 있다. 나라의 큰 도성은 벼랑에 의지하고 계곡에 걸쳐있다. 길이는 6∼7리에 달하며 북쪽은 높은 절벽을 등지고 있다. 보리가 자라며 꽃과 과일은 거의 나지 않는다. 목축하기에 적합하여서 양과 말이 많다. 기후는 매우 추우며 풍속도 강건하고 난폭하다. 많은 사람들이 가죽옷을 입는데 이 또한 적합하다. 문자와 교화와 화폐의 사용은 토하리스탄과 같지만 언어는 조금 다르며 겉모습은 아주 똑같다. 부처님에 대한 두터운 믿음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돈독하다. 위로는 3보에서 아래로는 백신(百神)에 이르기까지 정성과 마음을 온통 기울여서 공경하지 않는 것이 없다. 장사꾼은 자신들이 오갈 때면 천신(天神)이 길조를 나타내어 좋은 신통변화를 보여주도록 기원하며 복덕을 구한다. 사찰의 수는 열 곳이고 승도는 수천 명에 이르며 소승의 설일체유부를 배우고 있다.왕성 동북쪽 산의 후미진 곳에 돌로 만들어진 부처님의 입상이 있다. 높이는 140∼150척이며 금색이 찬란하게 빛나고 온갖 보배로 장식되어 눈을 어지럽힌다. 동쪽에 사찰이 있는데 여기에는 또 유석(鍮石)으로 만들어진 석가모니부처님의 입상이 있고 이 또한 높이가 백여 척에 달한다. 몸을 가누어 각기 따로 주조한 뒤에 그것을 모두 합하여 완성한 것이다. 성의 동쪽으로 2∼3리 떨어진 가람에는 부처님의 입열반와상(入涅槃臥像)이 있는데 길이는 천여 척에 달한다. 왕이 매번 이곳에서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여는데 위로는 자신의 처자로부터 아래로는 나라의 귀중한 보물에 이르기까지 창고를 완전히 열어 베풀며 다시금 자기 몸을 다하여 베풀기도 한다. 군신과 관료들도 승려들에게 죄를 사해주기를 빌면서 베푼다. 이와 같은 일이 자신들이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한다.

대당서역기[2]

/ 현장


현장이 바미안을 방문한지 한 세기 이후 신라의 승려 혜초도 바미안을 방문한 후 왕오천축국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자불리스탄에서 이레를 가면 범안국(바미안)에 이른다. 이 나라 왕은 토착인과 같으며 다른 나라에 귀속되어 있지 않다. 강한 군사가 많아서 다른 나라들이 감히 내침하지 못한다. 의상은 모직 옷과 가죽 외투, 펠트 웃옷을 입는다. 이 땅에서는 양과 말, 모직물 등이 나며 포도가 대단히 많다. 이 땅은 눈이 오고 매우 추우며 사람들은 다분히 산에 의지해 살아간다. 왕과 수령, 백성들은 삼보를 매우 공경하고 절도 많고 승려도 많으며 대승법과 소승법이 행해진다. 이곳의 말은 다른 나라와 같지 않다.


11세기 무렵 가즈니 왕조에 의해 아프가니스탄 중부 산악지대가 이슬람화된 이후 이 지역은 고르 왕조의 수도가 되었다.

몽골군의 침공 이전 인구가 밀집하고 번성하던 바미안과 그 일대는 몽골 제국의 침략 이후 황폐한 건조지대로 전락하였다. 이후 바미안을 지나는 무역로도 사라지고 근세동안 바미안은 역사 사료에 단편적으로 언급되는 가난한 촌락으로 전락하였다.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바미안 현지의 하자라족들을 중심으로 바미안 석불 복원 운동이 벌어졌으나...

2021년 8월에 탈레반이 바미안주를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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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자라족이 이 지역에 몽골 제국에 침략 이후부터 꾸준히 눌러살았는지 아니면 사파비 제국을 따라 다시 들어왔는지 학설이 갈린다.[2] 번역 출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