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데마르 지브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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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前 축구선수


파일:Waldemar de Brito.jpg

이름
바우데마르 지브리투
Waldemar de Brito

출생
1913년 5월 17일
브라질 상파울루
사망
1979년 2월 21일 (향년 65세)
국적
[[브라질|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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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176cm | 체중 64kg
포지션
인사이드 포워드, 센터 포워드
소속팀
시리우 (1927)
인디펜덴시아 (1928)
시리우 (1929~1932)
상파울루 FC (1933~1934)
보타포구 FR (1934)
CA 산 로렌소 (1935~1936)
CR 플라멩구 (1937~1939)
CA 산 로렌소 (1939~1940)
상파울루 FC (1941~1942)
플루미넨시 FC (1943)
포르투게사 (1944)
SE 파우메이라스 (1945~1946)
포르투게사 산치스타 (1946)
국가대표
2경기 1골 (브라질 /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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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
-[1]



1. 개요
2. 생애
2.1. 클럽
2.3. 은퇴 이후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4. 여담
5. 수상
5.1. 클럽
5.2. 개인



1. 개요[편집]


브라질의 前 축구선수로 축구 황제의 스승이다.

2. 생애[편집]



2.1. 클럽[편집]


상파울루 출신인 지브리투는 시리우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상파울루 FC 소속이던 지브리투는 20살의 젊은 나이에 대선배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와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그 성과로 토르네이우 히우-상파울루 대회와 상파울루 주 리그에서 득점왕을 휩쓸었지만 우승은 파울리스트라 이탈리아에게 내주었다. 그 이후엔 보타포구아르헨티나CA 산 로렌소등에서 활약하였다.

1937년에 돌아온 히우지자네이루 주 리그. 새로운 소속팀은 CR 플라멩구였고 이 곳에는 레오니다스 다시우바, 파우스투 두스 산투스 등 흑인 동료들이 많았다. 지브리투는 플라멩구에서 보낸 3년 간 우승과 준우승 2차례를 맛보았고, 산 로렌소를 다시 거쳐 1941년부터는 상파울루 FC에서 활약하면서 26경기 26골로 커리어 최다 득점을 차지하는 전성기도 누렸다. 막상 신체 능력으로는 전성기에 도달했지만 이때는 팀이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이후로는 또 여러 팀을 떠돌았고 포르투게사 산치스타에서 1946년에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였다.


2.2. 국가대표팀[편집]


1933년의 더블 득점왕으로 지브리투는 1934년 월드컵에도 참가하였다. 스페인을 상대로 한 첫 경기에 출전했지만 1대3으로 패배하였고, 득점을 기록하지는 못하였다. 제노바에서 짐을 싼 브라질 대표팀은 베오그라드로 장소를 옮겨 6월 3일, 유고슬라비아와 친선 경기를 치렀다. 지브리투는 이 경기에서 1골을 기록하였지만 팀은 4대8로 패배하였다.[1] 지브리투의 국가대표 출전 기록에서 FIFA에 등록된 A매치는 이 2경기가 전부이고 비공식 A매치까지 합산하면 통산 18경기 18골의 기록을 남겼다.


2.3. 은퇴 이후[편집]


은퇴 이후에는 여러 지방들을 돌아다니며 재능 있는 소년들을 스카우트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그러다 1954년 무렵, 바우루 AC라는 군소 클럽의 코치로 취임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그는 한 흑인 소년을 만났다. 동네 축구만 하던 소년의 눈에 월드컵까지 다녀왔던 지브리투 코치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소년에게 코치의 말은 곧 법이었다. 지브리투는 탄력이 좋았던 그 소년을 위해 같은 높이의 공을 향해 오른발, 왼발, 양발로 모두 점프하는 훈련을 시켰다. 이 훈련의 결과로 소년은 신장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어떤 발로든, 어떤 상황에서든 비슷한 높이로 남들보다 높이 점프할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공중 볼에 강점을 갖게 되었다. 그 외에도 자신의 장기였던 양발 사용을 강조하면서 소년을 포함한 자신의 제자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주었고 바우루의 유소년팀은 33경기에서 148골을 넣는 유소년계 초강팀으로 군림하였다. 그리고 2년 후, 그 중에서도 특출 났던 흑인 제자산투스 FC에 추천해주었다. 그 제자가 바로 축구 황제 펠레였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편집]


양발 사용과 헤딩에 능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제자는 스승의 장점을 이어받아 더 업그레이드시켰다 선수 시절에는 우승복은 나름 있었지만 한 팀에서 오래 머무르지는 못했다.


4. 여담[편집]


  • 그는 바이시클 킥의 창시자 또는 30년대의 스타플레이어 중 한 사람인 페트로닐류 지브리투의 동생이다.


5. 수상[편집]



5.1. 클럽[편집]




5.2. 개인[편집]



[1] 이 경기가 브라질 대표팀 역사상 최다 실점을 기록한 경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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