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타카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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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타카
वाकाटक

Vākāṭ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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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타카 왕조의 영역[1]
존속기간
250년 ~ 500년
수도
바뜨사굴마
국가원수
섬라타
주요 군주
프라바세나 1세(270년경~330년경)
언어
산스크리트어, 프라크리트어
종교
힌두교, 불교
성립 이전
사타바하나 왕조
멸망 이후
찰루키아 왕조, 비슈누쿤디나 왕조

1. 개요
2. 역사



1. 개요[편집]


사타바하나 왕조가 멸망한 후 250년경 데칸 지역을 지배하게 되는 왕조이다. 6세기경 하리쉬나 왕 이후 멸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2. 역사[편집]


바카타카 왕조는 빈디야샤티가 250년에 건국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정보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그저 바카타카 왕조의 시조란 것만 알 수가 있다. 프라바라세나 1세때의 바카타카 왕조의 힘은 데칸 지역에서 강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스스로 '섬라타(삼라트)'(सम्राट, samrāṭa)라 칭했는데 이는 산스크리트어로 '우주의 지배자', 즉 '황제'라는 뜻이었다. 그만큼 그의 강력한 힘으로 바카타카 왕조는 전성기에 돌입했고 데칸을 비롯한 중•북부 인도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루드라세나 2세때는 마가다 지역을 중심으로 한 굽타 왕조의 힘이 매우 강력해지는 시기였는데, 이에 루드라세나 2세는 굽타 왕조의 국왕이었던 찬드라굽타 2세의 딸 프라바바티 공주와 결혼했다. 이를 통해 바카타카 왕조가 주로 활약했었던 데칸 지역에 굽타 왕조의 문화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루드라세나 2세가 승하한 뒤에 그의 어린 아들들인 디바카라세나데모다라세나 등이 즉위했다. 그러나 나이가 어려 그들의 모후였던 프라바바티 굽타가 수렴청정을 했다. 이로 인하여 바카타카 왕조는 굽타 왕조의 지대한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5세기까지만 해도 여전히 강력한 국가였지만, 6세기 이후 급격히 약화되며 하리쉬나 왕을 끝으로 정확한 역사적 기록은 현재로서 알 수가 없다. 이후 데칸 지역의 패권은 비슈누쿤디나 왕조찰루키아 왕조로 넘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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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란색 선으로 둘러싸인 부분. 보라색은 굽타 왕조의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