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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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이다. 호는 정암(廷岩)이다. 종교는 불교이다.
해군 예하 해병참모부의 마지막 사령관이자 대한민국 해병대 재창설 첫 사령관.
1934년 경상북도 안동군(현 안동시)에서 태어났다. 안동고등학교(2회)를 거쳐[1] 1958년 해군사관학교(12기) 졸업과 함께 해병대 소위로 임관하였다.
1979년 부마민주항쟁 당시 해군[2] 해병대 제7연대장[3] 으로 시위 진압을 위해 투입된다. 그러나 훗날 광주에 투입된 31사단장과 같이 온건파였기에 "해병대는 국민의 군대다. 시민들이 때리면 그냥 맞아라. 절대 시민들에게 손대지 마라. 다만 총은 뺏기지 마라"라고 지시했고, 실제로 신동아에서는 해병대 7연대의 신사적 계엄임무 수행에 대해 항쟁 당시의 해병들과 시민들을 취재하여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4]
1987년 11월, 제17대 해병대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이는 1973년 사령부의 해체 이후 14년만에 재창설된 해병대 사령부의 첫 사령관 임명이었고, 대한민국 해병대 역사에서 매우 의미있는 순간으로 기록되고 있다.
(1987년 11월 1일. 재창설된 해병대 사령부의 사령관으로 임명되는 박구일. 김종호[5] 당시 해군참모총장으로부터 부대기를 전달받는 모습)
이듬해인 1988년 해병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이후 한국화재보험협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민정당계였던 박구일 의원은 민주자유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민주당계인 김영삼이 선출되자 이에 반발하였고, 제14대 대통령 선거 직전 김복동과 민주자유당을 탈당하여 통일국민당에 입당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대구광역시 수성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한국당 윤영탁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97년부터 1998년까지 강창희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국회 통신과학기술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자유민주연합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윤영탁 후보에 밀려 패하였다.
2020년 3월 1일 일요일 오전 6시 30분 향년 86세 나이로 별세했으며, 7개월 뒤인 10월 12일 유가족은 해병대사령부에 고인의 뜻이라며 장학금을 기탁하였다.故 박구일 해병대사령관 유지 받들어…‘장학기금 1억 원’ 여담으로 8개월 뒤에는 15대 16대 총선에서 같이 대결을 했던 윤영탁도 세상을 떠났다.
2. 선거이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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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권정달(육군 준장, 4회), 박세환(육군 대장, 8회) 등 많은 장성을 배출했다.[2] 당시엔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되고 해병부대들은 모두 해군 제2참모처(처장은 보병중장) 예하에 있었다.[3] 당시 계급은 대령.[4]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의거하여 진실화해위원회가 부마항쟁에서의 시민 피해 사례들을 공식적으로 조사하여 2010년에 발표한 "부마항쟁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사건" 보고서에 따르면 계엄군으로 참가한 해병대원들의 구타에 대한 주장이 있으나, 유의할 것이 당시 투입된 해병대 제7연대원들이나 시민들이 아닌 제2연대 소속 이○○(이등병)이 전해들은 소문에 대한 내용이라 해병대가 시민을 구타했다는 낭설은 신빙성이 떨어진다.[5] 제16대 참모총장이다. 재밌게도 후임인 제17대 해군참모총장 역시 동명이인(한자가 다름)인 '김종호' 제독이었다. 헷갈리지 않도록 주의![6] 1992. 12. 17 탈당 및 통일국민당 입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