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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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보처장 (1948~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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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성
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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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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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이철원
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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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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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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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53대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보균
朴普均 | Park Bo-gyoon


파일:문화체육관광부 박보균 장관 프로필.jpg

출생
1954년 1월 24일 (70세)
서울특별시
본적
서울특별시 성동구
재임기간
제53대 문화체육관광부장관
2022년 5월 13일 ~ 2023년 10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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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경동고등학교 (졸업 / 28회)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 / 학사)
약력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 차장/부장
중앙일보 논설위원
중앙일보 정치국제담당 부국장
중앙일보 편집국장
중앙일보 정치분야 대기자
중앙일보 편집인 겸 제작총괄 상무
중앙일보 전무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장
중앙일보 부사장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특별고문


1. 개요
2. 약력
3. 생애
5. 여담
5.1.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재매입 기여
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기자. 제53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다.


2. 약력[편집]


  • 1972.2. 경동고등학교 졸업 (28회)
  • 1980.2.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 졸업, 정치학 학사 (72학번)
  • 1981. 중앙일보 편집국 사회부 기자
  • 1990. 한국기자상 수상
  • 1990.12. 관훈언론상 수상
  • 1995. 중앙일보 편집국 정치부 차장
  • 1995. 한국기자상 수상
  • 1999.6. 중앙일보 편집국 정치부 부장
  • 2001.7. 중앙일보 논설위원
  • 2004.1. 중앙일보 편집국 부국장 (정치·국제 담당)
  • 2005.7. 중앙일보 편집국 부국장 (정치·기획 담당)
  • 2006.1. 제22대 중앙일보 편집국장
  • 2007.12. 중앙일보 대기자 (정치 분야)
  • 2008.1. 중앙일보 이사 대우
  • 2009.8. 제16대 중앙일보 편집인, 제작 총괄 상무
  • 2011.2. 제18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
  • 2011.3.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이사
  • 2011.8. 중앙일보 대기자
  • 2013.8.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
  • 2013.12. 중앙일보 전무
  • 2014.12. 중앙일보 부사장대우
  • 2022.3. ~ 2022.5.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특별고문
  • 2022.5. ~ 2023.10. 제53대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윤석열 정부)


3. 생애[편집]


1954년 서울 출신으로 1980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사회부와 정치부에서 기자 경력을 쌓았으며, 정치부장과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이후 직책 없이 대기자로 활동하였으며, 2014년 중앙일보 부사장 대우까지 승진하였다. 2022년 3월에는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특별고문을 맡았다.

2022년 5월 13일 월요일, 제53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취임했다.

2023년 10월 7일, 유인촌 장관이 임명되며 문체부를 떠나게 되었다.


4. 비판 및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박보균/비판 및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여담[편집]



5.1.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재매입 기여[편집]


박보균은 미국 워싱턴 D.C. 소재, 19세기 말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지금으로 치면 대한민국 대사관) 건물을 우리 정부가 재매입하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여론을 형성하고 성사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대한제국 공사관 환수는 주권회복의 완성” (기자협회보 2013.9.4.)
망해버린 한국의 잃어버린 공관, 102년만에… (중앙일보 2012.8.25.)
주미대한제국공사관 홈페이지

미국 워싱턴 D.C.의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은 1889년 2월,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우리 역사상 최초로 서양 국가에 설치한 외교 공관이다. 격랑의 한반도 정세 속에서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한 외교 승부수였다. 그 2년 뒤인 1891년 워싱턴 중심가인 로건 서클(백악관에서 자동차로 10분거리)에 위치한 미려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3층 단독건물을 가난한 조선으로선 거금인 2만 5,000달러을 들여 매입했다. 이 외교공관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기능을 상실했고 1910년 망국(경술국치)직후, 일제가 단돈 5달러에 강제 매입한 당일에 미국인에게 10달러에 매각해 버렸다. 그 후 36년의 일제 강점기, 해방, 6·25 한국전쟁, 그리고 격동기를 거치면서 우리 현대사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박보균은 1990년대 말,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건물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이후 10여년 간 저서 <살아 숨쉬는 미국 역사> (2005), 기사와 칼럼, 강연, 뜻있는 사람들과 연대, 정부 관계자 설득 등을 통해 우리 자주외교의 독보적인 상징성, 역사 교훈의 살아있는 공간으로서 공사관 건물의 재매입 필요성을 역설, 전파해 왔다.

결국 2012년 10월, 일제에 빼앗긴 지 102년 만에 대한민국 정부가 공사관을 되찾게 되었다. 이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주도로 복원 공사를 거쳐 2018년부터 한-미 교류 역사를 알리는 공간으로서 다시 개관하여 운영되고 있다. 공사관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근대 외교공관 중 원형을 간직한 유일한 단독건물이자, 미국 워싱턴D.C.에 남아있는 19세기 외교공관 중 내외부의 원형이 남아 있는 유일한 건물로 평가되고 있다.

2018년 5월 22일 개관 당일에는 1905년 을사조약 이후 113년 만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행사가 있었다. 행사에는 초대 주미 공사 박정양의 손녀, 초대 공관원이었던 월남 이상재 선생의 종손등이 참석했으며, 박보균 당시 중앙일보 대기자 또한 그 현장에 참석하였다. 또한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 D.C.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개관 당일 방문하였다. 문 대통령은 "오늘은 기분좋은 날이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우리나라로서는 서양 최초로 개설된 공관이며, 19세기 워싱턴에 개설된 여러 공관 중 원형이 보존된 유일한 곳"이라며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136년 만인 오늘, 재개관일에 한미정상회담이 있어 더욱 뜻깊다"고 말했다.

대한제국공사관 찾은 문 대통령 “한미회담 잘된날 재개관 큰의미” (연합뉴스 2018.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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