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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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제18, 20대 국회의원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청와대 대변인을 역임했다.
2. 생애[편집]
1960년 12월 1일 경기도 포천군(현 포천시)에서 태어났다. 운암국민학교와 창문여자고등학교, 수도여자사범대학 역사학과(78학번)을 졸업하고 2009년 2월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과 함께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에서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다. 이후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으로 정치에 입문해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선거를 도우며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하게 된다.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 겸 대변인을, 노무현 정부 때 환경부 차관을 역임하였다.
4회 지선 당시엔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의 선대본부장을 맡았고, 17대 대선에서 대통합민주신당 전략 기획본부장을 맡았다.
제18대 총선에서 총선대책위원회 전략기획본부장을 맡았으며,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13번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당 홍보미디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 협상 대표로 나섰으며, 본인은 불출마하고# 민주통합당 사무총장 겸 선거대책본부장으로 선거운동을 지원했다.#[2]
2012년 9월 민주통합당을 탈당하고 안철수 캠프에 합류하였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이후로는 잠시 정계를 떠나 있다가, 국민의당에 사무총장으로 합류하여# 제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비례대표 5번으로 당선되었다. 총선 과정에서 김수민과 함께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기소되었으나,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되었다. #
대표적인 친안철수계 정치인으로 손꼽혔으나, 2017년 안철수 대표가 국민의당 전당대회에 출마할때 출마를 만류하였고 바른정당과의 통합에도 반대하면서 사이가 벌어졌다고 한다. 비례대표 신분이라 일단 바른미래당으로 합류는 했으나, 당과 자신의 생각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무위원회 간사직을 사임하였고# 그 뒤로도 의원총회에 불참하는 등 사실상 무소속 의원으로 활동했다.# #
한때 환경부장관 입각설이 돌기도 했으나, 야당의 반발로 청와대에서 공식 부인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2020년 3월 민주통합의원모임에 합류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불출마했다.
3. 평가[편집]
당직 실무자 형의 정치인. 당의 실무를 담당하는 사무총장, 선거를 총괄하는 선거본부장, 전략기획본부장으로 여러차례 재직하였다. 그러나 민주당 계 정당의 암흑기(2006~2012)에 재직한 터라 승률은 마지막 사무총장이었던 국민의당을 제외하고는 높지 않은 편이었다. 선거 전략 역시 파스텔톤의 이미지와 연성 전략으로 선명성과 거리가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변인으로서는 안정적인 홍보로 평가가 높았으나 전략기획가로서는 약한 편이었다.
4. 소속 정당[편집]
5. 사건사고[편집]
5.1. 국민의당 리베이트 사건[편집]
피고인 7명의 모든 혐의가 모두 무죄라고 나와서 처음부터 무리한 기소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
2019년 7월 10일 대법원에서도 무죄 판결이 확정되었다.
6. 선거 이력[편집]
7. 둘러보기[편집]
[1] 석사 학위 논문 : 고립된 국가들의 핵 무기 개발과 미국의 대외전략 : 이란, 리비아, 북한의 사례를 비교하여(2009. 2).[2] 이는 2012년 3월 중순 기존의 임종석 사무총장이 '비리연류자' 공천을 이유로 사퇴하면서 이뤄진 것이다. 즉 선거 직전에야 사무총장을 맡았다.[3]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4] 중도개혁통합신당과 신설 합당.[5] 대통합민주신당과 신설 합당.[6]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7]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8]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9] 바른정당과 신설 합당.[10] 대안신당, 민주평화당과 신설 합당.[11] 2018.02.13 바른미래당 창당(신설합당)
2020.02.24 민생당 합당
2020.02.24 민생당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