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준(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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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스타크래프트 1, 2 프로게이머
現 아프리카 TV BJ, 유튜버

이름
박성준(朴聖俊, Park Sung-Jun)
본관
밀양 박씨
출생
1986년 12월 18일 (37세)
경기도 옹진군 덕적면
(現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거주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소속
POS / Egosys POS / MBC GAME HERO
SKT T1
STX SouL
StarTale
Longzhu Gaming
가족관계
아버지, 어머니[1]
병역
육군 제20기계화보병사단 병장 만기전역
(2013.10.23~2015.7.22)
종족
저그
부종족
테란
ID
July
July[z-zone]
스타테일안심이(GSL 출전 아이디는 July)
경력 상금
$230,735.90 USD (₩259,532,000)[2]
데뷔
2002년 9월 POS(舊 MBC GAME HERO) 입단
별명
투신(鬪神), 투돈(鬪豚), 안심
신체
신장 180cm | 체중 108kg | 혈액형 AB형
종교
불교
관련 링크
홈페이지
파일:아프리카TV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트위치 아이콘.svg[3]
1. 개요
2. 상세
3. 스타크래프트 1 활동
3.1. 투신의 탄생
3.2. 괴물을 막은 투신
3.3. 스타리그를 2회 우승한 최초의 저그 플레이어
3.4. 2005년, e스포츠 올해의 선수
3.5. 2006년, 프로리그 우승
3.6. 2007년, 웨이버 공시 사태와 슬럼프
3.7. 2008년, STX SouL로의 이적과 골든마우스 달성
3.8. 2009년 이후
4. 플레이 스타일
4.1. 트레이드마크
4.2. 테란전
4.3. 프로토스전
4.4. 저그전
4.5. 명경기
5.1. 개인 리그
5.2. 팀 단위 리그
5.3. 전적
6. 스타크래프트 2 활동과 StarTale의 창단
7. 콩두컴퍼니 크루 및 BJ로서의 활동
8. League of Legends Longzhu Gaming 코치로서 활동
9. 다시 BJ로서의 활동
10. 이후 근황
11. 특이사항
11.2. 온게임넷 측의 찬밥 대우
11.3. 그 외의 고난과 푸대접
12. 둘러보기
1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선수 시절 종족은 저그.

엄청난 컨트롤과 전투능력으로 투신(鬪神), 프로토스의 재앙이라고 불렸던 레전드 프로게이머.

이름도 같은데 주 종족도 같은 '삼성 팀 박성준'[4]과 구분짓는 'P성준(엠성준)'으로 불렸다.[5] 삼성준 은퇴 뒤에는 박성준 하면 대개 이 선수를 일컫는다.

2. 상세[편집]


방송에서 최초[6] 뮤짤을 선보이기도 했다. 물론 뮤짤을 뮤탈 부대와 다른유닛과 묶는 현재의 형태로 '대중화' 시킨 건 서경종이다. 박성준이 쓴 뮤탈뭉치기는 미네랄에 뮤탈을 찍으면 뭉치는 방식을 이용한 건데, 원하는 형태로 컨트롤하기가 훨씬 어렵고 까다롭다.

2010년부터 2011년에 이르기까지, 스타크래프트 방송과 스타크래프트2 방송에 동시에 참여하고 있는 유일한 프로게이머이기도 했다. 신애와 밤샐기세.scx이긴 하지만, 이윤열 기록 말살 등 KeSPA와 스타2 판의 대립 형세를 보면 특이한 경우는 맞다.

밑에 있는 내용은 박성준이 갖고 있는 브루드 워 케스파 기록이다.

  • 온게임넷 스타리그 저그 최초 골든마우스 수상자 - 2번째는 이제동.
  • 온게임넷 스타리그 저그 최초 우승자 - 스타리그 기준 저그 최초로 테란을 꺾고 우승한 저그이기도 하다.
  • 온게임넷 스타리그 역대 최고 커리어 보유자 - 3회 우승/2회 준우승, 박성준의 뒤에 3회 우승/1회 준우승을 한 이윤열, 이제동, 이영호가 있다.
  • 역대 최연소 로얄로더 기록 보유자 - 질레트 스타리그 우승 당시 박성준은 만 17세 7개월.
  • 역대 저그 다승 3위 - 역대 저그 다승 1위 이제동 574승, 2위 홍진호 520승, 3위 박성준 389승.
  • 역대 저프전 승률 1위 - 공식전 77승 36패 68.1%, 100전 이상 프로게이머 기준. 2위 이제동 108승 53패 67.1%. [7]
  • 3종족 포함 케스파 대 프로토스전 승률 2위 - 100경기 이상 플레이한 프로게이머 기준. 1위는 119승 53패로 승률 69.2%인 테프전 역대 1위 이영호. [8]


3. 스타크래프트 1 활동[편집]



3.1. 투신의 탄생[편집]


처음에는 테란이 주 종족이었다고 한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단축키도 안 썼다'고 하니 그렇게 잘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학생이던 박성준은 POS팀의 숙소에 놀러오다 하태기의 권유로 프로게이머가 되었고, 이후 서형석 코치의 조언에 따라 주종족을 저그로 전향하였다. 당시 박성준은 저그 유저 중에서는 가장 손이 빨랐던, 신의 왼손으로 불리던 조용호보다도 손이 빨랐다.[9] POS는 리그 최하위권 팀이었는데, 하태기와 서형석 코치는 팀의 생존을 위해 박성준의 육성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기 시작한다. 박성준도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프로게이머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다.

이들의 노력은 성공했다. 박성준은 2003 3차 듀얼토너먼트에서[10] 임요환을 챌린지 리그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11] 질레트 스타리그에 진출하는 대파란을 일으켰다.

본선 B조에 속한 박성준은 16강 첫 경기에서 저프전 승률 70%를 바라보던 전대회 준우승자 전태규노스탤지아에서 캐관광, 최수범에게는 뮤짤을 선보이며 역시 캐관광보냈다. 마지막 3번째 경기에서는 한동욱[12]4드론으로 날려버리며[13], 3전 전승으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는 퍼펙트 테란 서지훈을 상대로 1경기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발렸지만, 2,3경기 승리를 거두며 4강에 올랐다. 당시 저그는 매우 암울한 시기였는데, Gillette 스타리그 2004는 박성준, 박태민, 변은종 3명의 저그 플레이어만 진출해 역대 스타리그 중에서 가장 저그가 적었던 대회 중 하나였고,[14] 그나마 박태민, 변은종은 16강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여 박성준은 8강의 유일한 저그였다. MSL에서도 전 시즌인 하나포스 센게임 MSL에 이어 Spris MSL까지 두 대회 연속으로 저그가 단 한 명도 4위 이내에 입상하지 못했다. 4강에 오른 박성준은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이자 저그 팬덤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박성준의 결승 진출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4강 상대는 최연성. 모두가 MSL을 2연패하고 스타리그에 진출한 최연성이 로열로더가 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망의 질레트 스타리그 4강전, 박성준이 이겼다. 5경기 연속 저글링 러커로 최연성을 몰아붙인 끝에 3:2 승리. 박성준은 5경기 내내 화끈한 공세를 퍼부었는데, 뚫으면 이겼고, 못 뚫으면 쿨GG를 쳐버렸다. 최연성은 5경기 내내 방어만 해야했는데, 특히 2:0으로 밀린 3경기부터는 안전제일 우주방어모드로 일관했다. 박성준의 본진을 공격한 것이 5경기 중 3분도 안될 정도. 최연성이 이긴 경기도 이긴 것 같지 않다 하여 속칭 "5:0" 관광으로 회자된다. 이 경기가 가지는 또 다른 충격은 박성준이 보여준 기존과는 다른 스타일의 공격성도 한몫을 했다. 박성준은 이 날 다섯 경기를 기본유닛인 저글링 럴커 위주로 운영했는데, 그전 경기들에서 보여준 뮤탈리스크의 사용과도 다른 차원의 기동성을 보여주었다.[15]

대망의 결승전, 박성준은 박정석을 상대로 저그 역사상 최초의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 우승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임요환 없는 온게임넷 스타리그도 흥행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조진락의 뒤를 이을 새로운 저그의 선두주자가 등장했다는 점이었다. 엄재경은 박성준을 완성형 저그로 밀며 폭풍+목동폭동저그를 밀었으나 반응이 안좋아 묻혔다. 이후 커뮤니티에서는 박성준에게 전투의 신, 투신(鬪神)이라는 별명을 선물한다.투신이라는 별명을 제안한 게시글 [16]

다만, 박성준의 놀라운 기량, 역사상 최연소 스타리그 우승 및 로열 로더 등극에도 불구하고 박성준의 질레트 우승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저그 첫 우승은 홍진호였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커뮤니티는 박성준이 잘했다기보다는 결승전에서 박정석의 전략 미스를 아쉬워했다. 어찌보면 리그 브레이커인 셈이다.

박성준 질레트 스타리그 하이라이트 영상. 듀얼부터 결승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3.2. 괴물을 막은 투신[편집]


앞서 언급했듯 이 시절 최연성은 이미 MSL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괴물이었고, 최연성이 질레트배 로얄로더를 달성하는 것은 당연해보였다. 4강전 전까지 최연성은 비공식전 포함 도합 저그전 25연승[17], 45승 2패[18]로 저그를 씹고 뜯고 맛보고 있었다. 최연성은 특유의 거만한 태도[19]저그는 내 라이벌이 될 수 없다!고 공언하고 있었다.

당시 저그 최강자였던 홍진호[20]마저도 TG삼보배 MSL 최종결승에서 최연성에게 3:0으로 셧아웃당했고[21], 박성준 본인도 4강이 열리기 3주 전 Spris MSL 승자 8강에서 최연성에게 깔끔하게 털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상대전적 0:6의 열세 속에 박성준은 iTV 랭킹전 1차 결승과 질레트 스타리그 4강, 두 중요한 무대에서 최연성을 만나게 되었다.

마지막 iTV 랭킹전이었던 7차 iTV 랭킹전의 진행방식은 그 전까지의 방식과도 다르고 기존 양대리그와도 차이가 있었다. 16명 선수가 4개 조로 듀얼 토너먼트 방식으로 경기하고, 각 조의 1~4위를 정한다음 그 순위대로 다시 조를 편성하여 토너먼트를 진행해 여기서 1~16위의 순위를 매긴다. 그 다음 16위 - 15위, 그 승자가 14위와 경기... 하는 방식의 연승전 방식의 경기를 진행해 1 - 2위가 3전 2선승제의 결승을 치르는 1라운드를 진행하고, 2라운드에서는 이 연승전을 한번 더 돌려 5판 3선승제의 최종 결승을 할 예정이었다.

첫 본선 진출자 박성준은 조별 토너먼트에서 무려 1위[22]에 올랐고, 최연성은 9위로 시작해 7명을 올킬하고 1차 결승까지 올랐다.[23][24]

6월 30일 열린 iTV 7차 랭킹전 1라운드 결승은 녹화 방송이었는데[25], 박성준은 1세트에서는 7드론 저글링 이후 빠른 럴커로 한번 털고, 2세트는 중앙 교전 압승 후 뮤탈컨과 럴커 조이기로 디텍터가 스캔 하나뿐이던 최연성을 완전히 보내버렸다.

녹방 경기의 결과가 떴지만, 대다수 팬들은 반신반의했다. 최연성이 스타리그에 집중한거다!와 같은 반응이 대부분일 정도. 그러나 7월 2일, 5:0 관광이 나오면서 정말로 박성준이 최연성을 잡았다는 걸 모두가 믿게 되었다.

질레트 스타리그 우승으로 투신이 된 박성준은 2004년 8월 중순 최연성과의 iTV 최종결승전에서 소떼를 몰고다닌 끝에 마지막 경기에서는 입구를 제대로 안 막고[26] 테크를 올리던 테란 본진을 노업 저글링으로 털며 승리한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최연성은 "더 이상 할말이 없습니다."하며 눈물을 보였다고 하는데 VOD가 없어서 확인할 길이 없다.

마지막 4차전 경기 영상.

종합하면 당시 신인이었던 박성준은 2004년 한 해 최연성을 12번 만나 총 9번을 이겼다.[27] 그것도 부상과 노쇠화로 인한 최연성의 기량이 떨어지기 시작한 시기가 아닌, 최정상의 자리에서 괴물포스를 뿜어내고 있을 때. 이후 최연성은 So1 스타리그 8강전과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결승전에서 박성준을 완파하는 등 두 번의 우승을 더 차지하기는 했지만[28], 5:0 참패 이전의 포스를 다시는 회복하지 못했다. 박성준은 최전성기 최연성의 괴물 포스에 흠집을 낸 유일한 프로게이머인 셈이다. [29]

3.3. 스타리그를 2회 우승한 최초의 저그 플레이어[편집]


이후 박성준은 삼신전의 한 축으로 박태민, 이윤열과 함께 스타판을 갈라먹었다. 에버 2004에서는 홍진호에게 8강에서 무너졌지만[30], KT-KTF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이윤열을 상대로 4강에서 드론링을 선보이며 승리하고 결승전에서는 박태민을 꺾으며 우승했다. 에버 2004에 이은 아이옵스 스타리그에서는 4강에서 이병민을 3:2로 꺾고 결승에 올랐지만, 박태민을 3:2로 역스윕하고 결승에 올랐던 이윤열에게 0 : 3으로 패배했다.

EVER 스타리그 2005에서는 스타리그 최초로 테란을 잡고 우승한 저그, 최초의 2회 우승 저그 플레이어가 되었다. 16강에서 전상욱, 8강에서 변형태, 4강에서 서지훈을 만나는 등, 테란을 피해 우승한 저그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서인지 주야장천 테란만 만났는데 결승전에서는 그 당시 강력한 기세를 보였던, 테란 이병민을 만났다. 박성준은 결승전 5경기에서 이병민의 선팩 조이기에 제대로 당했는데, 시대를 4, 5단계정도 뛰어넘은 미칠듯한 뮤탈리스크 컨트롤[31]로 위기를 극복하며 온게임넷 기준 저그 최초로 테란 상대 우승을 해낸다. 4개의 대회가 열리는 동안 3회 결승 진출, 2회 우승의 어마어마한 기록을 쌓은 것이다. 다만, 당골왕 MSL에서 박태민이 이윤열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바 있어 전 대회 결승에서 이윤열에게는 3:0으로 지고, 한 티어 낮은 이병민을 3:2로 꺾은 박성준의 우승은 그 가치만큼 높게 평가받지는 못했다. 더구나 우주닷컴 MSL에서는 이재훈에게 0:2로 허무하게 패하면서 같은 날 박용욱에게 패한 박태민과 함께 서바이버 리그로 강등당해버렸다.

그의 팬들은 박성준을 박본좌라고 불렀으나 이후 테막화 증세가 심각해졌다.[32] 테막이었어도 박성준은 여전히 최고의 저그 게이머였다. 최연성에게 2:0으로 패했지만, So1 스타리그의 유일한 8강 저그였고, 그 다음 시즌인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에서도 유일한 8강 저그였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에서는 다시 한번 결승에 올랐는데 8강에서 영원한 한끼 식사 안기효, 4강에서 박지호를 만나 프로토스만 만나는 대진운이 좀 따랐다고 보인다.[33], 결국 결승전에서는 맵 순서가 바뀌는 불운까지 겹치며 마찬가지로 토스전이 망가졌지만 테란전만 주구장창하고 올라온[34] 최연성에게 0 : 3으로 참패했다.

이때까지의 스타리그 성적을 종합하면, 박성준은 데뷔무대인 질레트 스타리그부터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까지 6번의 스타리그에서 6번 모두 8강에 올랐고, 무려 4번 결승에 올라 2번의 우승을 차지했다.[35]


3.4. 2005년, e스포츠 올해의 선수[편집]


박성준은 프로리그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데, 당시 POS 팀의 몇 안 되는 믿을맨으로 개인전뿐만 아니라 마이크로 컨트롤을 기반으로 한 팀플 실력도 독보적이었기 때문에, 하루 4경기 출장(2005 전기리그 vs SKT T1)을 하거나[36], 박지호와 둘이 나와 하루 경기를 끝내는 등[37] 2005년에서만 50경기 이상을 출전시킨 혹사 논란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될만큼 뜨거운 주제였다[38]. 2007년 이후에는 주5일제에 경기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한 시즌에만 20, 30경기 나오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누가봐도 혹사였다. 단기혹사로 치면 단연 넘사벽. 이후 프로게임단들의 사정이 나아지면서 프로리그 2006년 시즌부터는 팀플이 한 경기로 줄었고 개인전과 팀플레이의 겹치기 출장이 금지되어(에이스 결정전에만 중복출장 가능), 박성준의 2005년 같은 혹사 사례는 프로리그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당시는 대기업 스폰 체제가 확실하게 자리잡은 상황도 아니었고 팀 사정이 어려운 영세한 팀들이 많았기 때문에 소수의 에이스 위주로 돌아가는 팀이 많았다. POS, KOR, Plus, GO 등이 있었다. 이때 고생했던 선수 중 유명한 선수가 전태규, 박성준, 오영종, 서지훈 등이다. 거의 팀을 먹여살렸다고 볼 수 있을 정도. 소수의 에이스 육성에 모든 역량을 기울여 우승자를 탄생시키고, 네임드를 앞세워 기업 스폰서를 유치하는 식이었다. 동양 시절 임요환이 밟은 길을 많은 팀들이 따라간 셈이었고, 박성준이 이끌던 POS도 그 중 하나였다.

최고의 활약을 선보인 덕분에 박성준은 이윤열, 박태민, 최연성 등 강력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2005년 '대한민국 게임대상 e스포츠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EVER 스타리그 2005를 우승한 이후 당시 저그 전력 강화를 꿈꾸던 SKT T1으로 이적설이 그 해 하반기부터 흘러나왔다. 박성준 본인은 가고 싶지만 감독이 잡고 있다거나, 이적료로 몇억을 요구한다고 하는 근거없는 소문만이 떠돌았다. 때마침 2005년 초 POS시절 박성준을 투신으로 만들었던 서형석 코치가 T1 코치로 스카웃되면서 유독 T1 선수들에게 많이 지는 등, T1에 관련된 우울한 소문이 많았다.

3.5. 2006년, 프로리그 우승[편집]


POS가 MBC GAME에 인수되며 MBC GAME HERO가 창단되었고, 그토록 고대하던 스폰서를 잡았음에도 정작 박성준의 개인성적은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39] 서바이버에서 이학주에게 졸전끝에 패배, MSL에서 탈락하고 2006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1에서도 처참한 경기력으로 24강 탈락을 하면서 데뷔후 처음 양대리그 8강을 못밟고 광탈하는 신세가 된다. 그래도 프로리그 전기리그에서 그럭저럭 제역할을 해주면서(준 PO, PO에서는 모두 이겼다. 하지만 광안리에서...) 당시 MBC GAME HERO의 돌풍으로 불리웠던 박성준 - 박지호 - 염보성박지성 트리오로 부르기도 했다.

후반기에 들어서도 MSL은 아예 못 뚫고 스타리그도 빌빌대면서 16강이나 오락가락하는, 그저 손만 빠른잉여선수가 될 뻔했으나 2006년 SKY 프로리그 후기리그 결승에서 서지훈 상대로 압승을 거두면서 결승전 MVP를 수상했고[40] 이후 벌어진 SKT T1과의 그랜드 파일날(G.P) 통합 챔피언전에서 최연성을 저글링만으로 끝내버리면서 팀의 우승에 기여하게 된다.

2005년 e스포츠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고 신드롬으로 불렸던 시기보다는 투신의 포스는 하락한 상태였지만 중요한 순간에 꼭 필요로 하는 승리를 거두면서 2006년 MBC GAME HERO 돌풍에 일조했던 해였으며 박성준 개인으로서는 WCG 2006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투신의 투혼이 살아있음을 증명한 해였다.

3.6. 2007년, 웨이버 공시 사태와 슬럼프[편집]


프로리그와 개인리그 시즌이 끝나고, 당시 스폰서가 없던 여러 팀들(SouL, GO, KOR, POS)이 스폰서십을 체결하고 선수들과 계약을 맺으면서 슬슬 연봉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다.[41]

때마침 2006년 4월 POS를 인수한 MBC GAME HERO는 주전 선수들과 2007년 3월까지 계약이 된 상태였었다. 하지만 마케팅 및 홍보 목적이었던 다른 통신사나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팀과는 달리 MBC GAME이 POS를 인수해 재창단한 목적은 온게임넷이 KOR을 인수해 온게임넷 스파키즈를 창단한 것과 같이 협회 내에서의 입지와 발언권 강화를 노린 것이었다는 한계가 있었고, 어차피 게임 방송에서 직접 운영하는 게임단이니 마케팅, 홍보 효과가 딱히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기대 수익 자체가 낮았던 데다 MBC와는 별개의 법인인 MBC PLUS에서 내려오는 지원금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중소기업에서 운영을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문제는 이렇게 부실한 스폰서를 가진 팀이 2006년 프로리그 전기리그 준우승, 2006년 프로리그 후기리그 우승, 2006년 그랜드 파이널 우승을 해버렸으며 김택용곰TV MSL 시즌1에서 3.3 혁명을 완성하며 박성준에 이은 개인리그 우승자를 배출하게 되면서 팀 우승의 주역이자 주축 선수로 성장한 박성준, 박지호, 염보성, 김택용, 서경종, 이재호 등 주축 선수들의 연봉 인상이 기대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선수들의 연봉인상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MBC GAME 프런트는 시즌 종료 후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최소 중박 이상의 연봉 인상을 기대하고 있던 선수들 대부분에게 연봉동결을 선언하고, 프로리그 후기 리그 결승전 MVP 수상자이자 과거 POS 시절부터 팀을 이끌어 온 박성준의 연봉마저 반토막을 내버리게 된다.[42] 프런트 측의 이와 같은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한 박성준은 결국 MBC게임 히어로 측에 웨이버 공시를 신청하게 된다.

웨이버 공시[43]는 말이 쉬워서 그렇지 공시를 한 기간동안 계약 의사를 밝히는 팀이 없을 경우 박성준은 1년간 프로게이머 자격정지를 당하는,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PGR21, 스갤 등지에서는 이런 좋은 떡밥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선수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글이 빗발치듯 쏟아졌으나, 십수년이 지나 스타 1이 저문지 한참 되었어도 그리핀 사건[44] 등이 터지는 것을 보면 그대로다. KeSPA가 괜히 까이는 것이 아니다.

후에 김정민의 스팀팩에 출연한 박성준은 웨이버 공시 당시 상황에 대해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놓여졌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자신은 하태기 감독이나 그 외 관계자들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웨이버 공시 사태가 한창 진행 중이던 당시 하태기 감독을 만났었던 아버지가 특히나 많이 속상해하셨었다고 언급하였다. POS 시절 박성준이 문자 그대로 다른 팀원들을 먹여살렸던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상황이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개인리그에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어려웠던 시절에 GO팀을 홀로 이끌었었던 서지훈의 억대 연봉을 팀 감독이 자신의 연봉을 희생하면서까지 지켜줬던 점과 비교되며 MBC GAME HERO의 결정은 많은 게임팬들에게 실망을 주었다.

그 여파 때문인지, 당시 있었던 듀얼 토너먼트에서 박성준은 광탈하면서 온게임넷 스타리그 연속 진출 기록을 9번으로 끝내게 된다[45]. 이 기록은 당시 임요환이 보유 중이던 연속 진출 기록과 타이가 되는 상황이었으며 단 한번만 더 연속으로 진출하는데 성공했다면 박성준이 단독으로 최장 연속 진출 기록을 보유하게 될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라 박성준 본인도 매우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웨이버 공시 기간 만료를 이틀 앞두고 벌어진 곰TV MSL 시즌2 32강에서, 박성준은 그 절륜한 컨트롤과 프로토스전 공격력으로 최연성이승훈, 이윤열이 있는 조를 뚫고 16강에 가게 된다. 좋지 않은 환경에 처한 박성준에게 많은 팬들이 환호를 보낸 시기였다.

그 후 SKT T1으로 이적했던 서형석 코치의 도움으로 SKT T1으로 2007년 5월 21일 이적했고, 그 이후엔 MSL 8강에 올랐으나 2007 신한은행 전기 프로리그에서는 그다지 나오지 않았으며 성적이 이래저래 저조해지면서 슬럼프 상태에 들어갔다. 참고로 이때 박성준+최연성이라는 명품 팀플조합이 나온 바가 있다.

후반기에는 다시 스타리그MSL에 모두 진출, 양대리거가 되었으나 모두 저조한 경기력으로 16강에서 탈락하고, 프로리그 부진과 더불어 침체기에 들어간다. 또한 자신의 SKT T1 이적을 추진했었던 서형석 코치가 팀을 떠나게 되어 팀내 입지가 더욱 줄어들었다.

3.7. 2008년, STX SouL로의 이적과 골든마우스 달성[편집]


"완전히 헛다리 짚고 나왔습니다, 도재욱."

전용준


"전투력이 강한 박성준 이미 알고있습니다. 공격 밖에 모르는 박성준 이미 알아요. 하지만 이렇게 무서울 수가 있습니까?"

김캐리

2008년 4월, STX SouL로 이적했다. 1년전 SKT T1으로 이적했었던 시기와 달리 STX Soul로 이적할 때 평가는 먹튀가 이적해봐야 어디 가겠냐였으며 스타팬들의 기대치는 매우 낮았다. 그러나 김은동 감독은 박성준이 스타리그에서 우승할 수 있다고 했으며, 일부 팬들도 스타리그에 진출한 테란들의 수준을 볼 때[46] 박성준이 우승할 수 있다고 점치고 있었다. 박성준 영입 전 STX SouL의 저그 전력이 과거 무스폰팀 시절 저그 명가라는 별명을 얻은 시기와는 다르게 유난히 취약했다. 김은동 감독은 박성준 영입을 통해 프로리그에서 다른 팀들에게 노출되어 있는 약점을 커버하고 팀내 신예 저그 프로게이머들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박성준이 해냈다. EVER 스타리그 2008 16강에서 4저그조를 2승 1패로 뚫고, 8강에서 영원한 한끼 식사 안기효를, 4강에서 손찬웅을 꺾으며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 상대는 도재욱[47]. 참고로 이때 모든 프로게임단 감독은 박성준의 우승을 점쳤고, 모든 해설진들은 도재욱의 우승을 점쳤다. 결승전 현장에는 프로게이머 출신인 방송인 장진수도 참관했었는데 장진수 또한 박성준의 3:0 압승을 예상하였다. 하지만 다른 온게임넷 해설위원들은 과거의 저프전과는 달라졌다고 오히려 이런 예상을 한 장진수에게 핀잔을 주었다.[48]

2008년 7월 12일 현 V-리그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의 홈 경기장인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EVER 스타리그 2008 결승전에서 기나긴 슬럼프를 극복하고 도재욱을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바탕으로 3 : 0으로 침몰시키면서 3회 우승, 골든마우스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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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의 골든 마우스 수상은 저그 최초이자, 전체 게이머 중에서는 이윤열에 이어 두 번째였다. 또한 이 우승은 STX Soul 프랜차이즈 최초의 개인 리그 우승 기록이기도 하다.[50]

특히 결승전 2경기에서 나온 '드론 밀치기' 플레이의 경우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전 역사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강하게 남는 플레이 중 하나로써 회자되고 있다.

재기와 함께 3번째 우승을 차지한 박성준이지만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까들이 가장 자주 쓰는 떡밥은 테란전이 약하다는 것. 최연성과의 다전제는 Itv 최종 결승 이후 줄곧 패했다.[51] 다만 이후 세트경기에서는 박성준이 이기기도 하였다.[52] 3번째 우승의 경우는 실제로 16강전부터 테란을 만난 일이 없기도 했고.

그러나 이제동의 5해처리 히드라의 등장 이후에서 김명운3해처리 히드라의 등장 이전인 2008년은 저그:프로토스가 비교적 가장 차이가 좁았던 시절이며, 송병구, 김구현, 윤용태 등의 프로토스는 저그전 승률이 70%가 넘을 정도로 프로토스가 할만했던 시절이다. 물론 앞마당 노가스로 저프전에서 저그가 좋은 화랑도 등이 포함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박성준의 우승을 무시할 것은 못된다. 바로 다음 대회만 해도 육룡 모두가 개인리그 4강에 안착했고, 프로토스 양대 우승이라는 사태가 발생한 것만 보아도[53] 2008년은 프로토스의 위상이 가장 드높은 시기였다.

심지어 포모스의 예상 기사에서는 저프전임에도 토스가 이긴다는 예상이 만장일치로 나왔다. 다만 이는 온게임넷 해설진들의 예상이며, 스팀팩의 저주김캐리의 저주, 그리고 골든마우스를 주기를 싫어하는 온게임넷의 의중이 반영되었다는 논란까지 있어 이 예상이 진정성이 있었는지는 의문. 하지만 테란:프로토스의 균형이 토스 쪽으로 기울었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넘사벽인 그의 토스전 실력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어쨌거나 이전의 두 번의 스타리그 우승때는, 당대의 내로라하는 테란들을 잡고 우승했다.

이 점이 비판 받아 마땅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란이 있었지만 일단 본인은 상당히 신경쓰고 있었는지 인크루트 스타리그 조 지명식에서 2008년 최강의 테란이라 불리는 이영호를 자신의 조로 불러들여 한 판 승부를 벌였다. 결과는 패배.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시즌 4라운드 기준으로 대 프로토스전 전승(9승 무패)으로 프로토스의 악몽으로 떠오르고 있었으며, 3라운드 위너스 리그 당시 STX SouL 상대로 프로토스 카드를 꺼리게 만드는 주역이었다.


3.8. 2009년 이후[편집]


2009년 1월 있었던 바투 스타리그 36강에서는 토스킬러답게 박대경을 2 : 0으로 깔끔하게 눌러버리고 16강에 진출했다. 이걸로 통산 13번째 16강 진출. 하지만 16강에서 qkraudtn김택용에게 패배. 이로써 광탈이 거의 확정될 뻔 했으나, 2월 18일에 송병구를 멋지게 잡아내고 2월 20일에 김택용박명수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어 송병구, 박명수와 함께 3자 재경기가 성사되었는데, 재재경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송병구에게 패배. 게다가 송병구가 먼저 2승을 거두면서 본인은 박명수와 동반 탈락하고 말았다.

이후 알 수 없는 개인 사정으로 팀에서 잠시 나와서 따로 생활한 듯 하며, 그 때문인지 저프전 절대 강자이자 STX SouL 팀의 주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리그 출전도 장기간 동안 없었다[54]. 이후 5월 22일, 박카스 스타리그 2009 36강에서 김정우한테 0대2로 완패하며 PSL행[55]. 그러다가 6월 7일, 곰TV클래식에서 팀 동료 김구현을 2 : 1로 꺾으며 토스전만큼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 이어 조병세까지 꺾으며 곰TV 클래식 4강에 진출하였으나, 이영호와 대결해 3 : 0으로 패해 탈락.

2009년 9월 29일 있었던 NATE MSL PSL에서 8강에서는 엠겜의 신예 토스 이정훈을 2대0으로 가볍게 꺾고 4강에 진출했고, 4강에서는 화승의 테란 유저 이학주도 2대0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고, 결승에서는 eSTRO의 토스 유저 서기수까지 꺾고 서바이버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인 2009년 9월 30일 있었던 EVER 스타리그 2009 PSL에서는 8강에서 T1의 신예 토스 정경두를 2대0으로 꺾으며 4강에 진출했고, 4강에서는 역시 웅진의 신예 저그 김민철을 2대1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고, 이제 결승만 뚫으면 본선행이었지만, 위메이드의 저그 유저 신노열한테 2대1로 역전패하면서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2009년 10월 17일 있었던 NATE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 승자전에서부터 박세정한테 패하며 출발은 불안했지만, 패자전에서 박명수를 잡았고, 최종전에서 박세정한테 복수에 성공하며 곰TV MSL 시즌4 이후 장장 5시즌만에 MBC GAME 스타리그 본선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12월 3일 NATE MSL에서 프로토스 유저인 김대엽 한 명에게만 두 번 패하며 광탈했다. 게다가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가 개막한지 몇개월이나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출전이 없었고, 김은동 감독은 출전을 위해 조금 더 실력을 다듬고 있다고 했지만... 팬들은 그저 속이 탔다.

하지만 세월이 많이 지난 2010년 1월 19일의 복수용달 5회에서 '괴물' 최연성을 상대로 2:0 으로 승리하였고 그 덕분에 최연성에게 자신을 등에 업고 "박성준은 본좌다"라고 외치는 굴욕을 선사하였다. 한편 최연성은 이날 방송에서 질레트 스타리그 5:0 참패 당시 자신의 심리적 상태를 언급하였는데, 첫 경기부터 예상치도 못한 빌드와 저글링 러쉬에 철저하게 제압당해 경기 내내 박성준과의 대결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본진 벙커 확장과 수비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고 고백하였다. 비록 현역 프로게이머와 플레잉 코치의 대결이라 저평가받기는 했지만... 같은 시기 NATE MSL 결승전 덕분에 임이박동론도 일어났다.

그러나 2010년 2월 5일,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1 예선에서 원종서를 만나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콩탈을 작렬시키며 탈락.

2010년 2월 18일, 하나대투증권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 박상우를 잡은 후 차명환에게 패했지만 오메킴을 잡고 2시즌 연속 MSL 진출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만우절에 진행된 MSL 32강전에서 티원저그 중 하나였던 박재혁을 잡아내고 승자전에 진출했으나, 한창 기세충천한 전태양에게 패하며 최종전에서 승부가 가려지게 됐는데, 최종전 상대가 저저전 최강자 이제동이 되는 바람에 연속으로 털리면서 MSL 본선을 2연속 32강에서 광탈하고 말았다.

게다가 4라운드를 앞두고 있었던 프로리그 4월 로스터에서도 말소되었고, 6월 10일과 11일, 각각 빅파일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와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2 예선에서 탈락했다[56].

이 시점 이후 신애와 밤샐기세.scx를 비롯한 방송 활동을 시작했고, 은퇴도 가까워 보였다. 그리고 스타크래프트 2로 전향했다.

6월 18일 이후 사회복무요원으로 인해 강민이 사라진 신애와 밤샐기세.scx에 출연했었다. 처음에는 게스트로만 출연하였지만, 뛰어난 입담과 투신 특유의 공격적인 플레이가 시청자들과 온게임넷 관계자들의 호평을 받아 정규패널로 활약하게 되었다. 그러던 도중 2010년 7월 27일 스타크래프트 2 자유의 날개가 전 세계적으로 출시되었고 이 당시 박성준은 STX SouL과의 계약도 종료되어갈 무렵이었기 때문에 방송인의 길과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전향 두 가지 중에 고민했지만, 결국 아버지의 권유와 최고의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하여 여전히 남아 있는 본인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이후 프로게이머 훈련 및 대회참가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신애와 밤샐기세.scx에서 자진해서 하차하였다.

7월 14일 신애와 밤샐기세.scx에서 유저투표로 인해서 팬더 코스프레를 하고 방송을 했다. 팬더 분장의 힘 덕분인지 방송당일 참가한 모든 경기에서 전승을 기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후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박성준이 2011년 GSL 결승전에 올랐을 당시에 신애와 밤샐기세.scx 출연진 및 스태프분들이 단체로 응원을 와 주었다고 한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처음부터 저그 유저가 아니었던 탓인지 당시 저그들과는 달리 컨트롤에 집중하는 게이머였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저그들 중에 컨트롤에 집중하는 저그는 드물었다. 물론 저저전으로 간다면야 뛰어난 컨트롤을 보이기야 했지만, 그보다도 저그 게이머들의 마인드는 컨트롤 할 시간에 물량을 더 뽑고 확장을 더 한다는 마인드가 강했다. 박성준이 데뷔했을 당시에는 타 종족을 상대로 근거리 유닛이 주가 되는 (저글링+뮤탈) 저그는 컨트롤에서 오는 이득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고, 해처리에서 모든 유닛이 나온다는 저그라는 종족 특성상 어느 점을 넘어서는 순간 저그는 컨트롤이 필요가 없어진다. 그런 걸 하지 않아도 회전력과 물량을 바탕으로 이겨버렸다.

하지만 박성준은 빠른 손을 바탕으로 전투에 의한, 전투를 위한 경기를 많이 만든다. 그래서인지 경기 자체가 박진감 넘치는 즐거움을 많이 주는 편이다. 박성준에 의해 저글링, 히드라, 뮤탈, 러커 등 저그의 모든 유닛이 한단계씩 진화했으며, 심지어 벙커링을 막는 드론 컨트롤 또한 박성준에 의해 극적으로 진화했다.[57] 벙커링을 막고 테란 본진까지 털어버리는 드론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삼연벙을 위시로 난무하던 벙커링이 이후 올인이 아닌 운영형 벙커링(후 더블)이 정립될 때까지 약 1년 가량은 사장됐을 정도다.

특히 박성준의 뮤탈 컨트롤은 스타판을 몇년은 앞선 컨트롤이었다. 서경종이 오버로드 뭉치기를 발견하기 이전에도 어마어마한 APM을 앞세운 미네랄 뭉치기[58] 지금의 뮤탈리스크 뭉치기에 필적하는 컨트롤을 자랑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뮤탈을 뭉쳐서 테란의 SCV를 적극적으로 솎아내거나 병력을 몰살시킬 수 있다'는 개념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뮤탈을 뭉쳐서 컨트롤하는 저그 유저는 있었고, 뮤탈 사거리를 활용해 아콘까지 잡아내는 플레이를 조용호가 선보이기도 했지만, 박성준은 적극적으로 뮤탈의 화력을 집중해서 병력을 잡아낸다는 개념을 제시했고 이는 당대에는 매우 신선한 것이었다. 서경종의 뮤탈리스크 뭉치기의 발견은 테란들의 뮤탈 내성을 강화시켜 박성준의 상대적인 기량 감소에 영향을 미친 바도 없잖아 있을 정도다.[59]

그 외에도 러커로 전진-저글링으로 퇴로 차단-러커 버로우-스커지가 날아오며 베슬 격추 등의 저글링-러커의 전투 구도 역시 박성준에 의해 제시되었다. 이에 비견되는 충격은 스타크래프트 2에서 링링을 우회해서 소소히 이득을 보고 상성상 우위인 화염차를 저글링으로 쌈싸먹으며 테란을 말 그대로 압살했던 이승현 정도였다.

그러나 박성준이 오로지 컨트롤에만 의존한 것은 아니다. 박성준의 정찰력은 당대 최고 수준으로, 어떤 종족전이던 어떻게든 저글링을 밀어넣으면서 정보 수집에 힘썼다. 박성준의 올인이나 공격 타이밍이 더더욱 강력하게 먹힌 것도 이러한 정보 수집으로 인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박성준을 컨트롤 저그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온전치 않다. 박성준의 운영은 자원 우위를 바로 병력 우위로 풀어내는데, 이 방식은 동시대의 저그들이 자원 우위를 테크 우위로 전환하던 것과 비교해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다. 박성준의 운영 방향 자체가 많은 병력을 확보하는 쪽에 치중되어 있었으며, 이 병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컨트롤에 집중하는 것은 자연스런 흐름이었다. 자원 우위를 병력 우위로 바로 풀어내는 박성준식 운영이 비록 테란전은 압도적인 컨트롤 능력을 선보이는 선에 그쳐 본좌급 테란을 꺾고 우승하는데는 실패했지만,[60] 프로토스전에서는 이것이 스타판 말기까지 매우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약점은 경기 자체가 너무 정형화되어 있다는 것. 초반의 정찰력을 제외하면 오로지 전투만으로 승부를 보았기 때문에 판짜기가 약했고[61] 타이밍도 홍진호의 유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경기가 정형화되어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드론 뽑는 타이밍이 한정되어 있다는 뜻이며, 이는 타이밍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내는 이윤열에게 약한 결과로 나타났다.[62] 또한 전성기 이후에는 멀티태스킹에서 약점을 보였다. 결국 테란들이 박성준에게 내성이 생기고 스타일이 파악되자 EVER 스타리그 2005 이후 다시는 테란전 정상급으로 올라오지 못했다.

자존심이 강한 것도 양날의 검이었는데, 3해처리 운영이 정석이 된 시절에도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며 2해처리를 사용하기도 하는 등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노력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프로토스전에서야 이 부분이 강자로 남는 원동력으로 작용했지만, 테란전에서는 분명한 약점이었다.

다만, 그의 전성기로부터 15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2021년. 그가 죽자고 붙들었던 테란전 2해처리는 한때 완성형 빌드라 불리던 3해처리를 몰아내고 다시금 테란전의 정석으로 자리잡았다. 드론을 째는 타이밍이나 이후의 운영이 훨씬 더 발전하긴 했지만, 테크 타는 테란을 빠르게 견제하여 선수를 취한다는 개념이 무려 15년이라는 세월을 거쳐 재조명된 것이다. 전략은 돌고 돈다는 개념에 비추어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4.1. 트레이드마크[편집]


그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한다면 저글링 러커로 대표되는 한방 병력 전투, 뭉치기도 없던 시절 어마어마한 APM만으로 뭉쳐서 뮤탈짤짤이, 엄청난 물량이 있다.
  • 저글링 : 기존 인식은 발빠르고 숫자는 많지만 체력이 약해서 러커 버로우하는 동안 버텨주는 유닛, 보조 딜러에 불과하던 유닛이었다.[63] 박성준은 몸빵 센 러커가 대신 맞아주는동안 저글링들이 많이 살아서 퇴로를 차단하고 싸먹는 전투방법을 통해 저글링도 핵심 딜러로 써먹으면 전투 시 컨트롤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후대 게이머들에게 영향을 주어 뮤링으로 중반 진출한 바이오닉을 싸먹는 컨트롤법으로 발전. 항상 저글링 찔러넣으면서 상대 테크 확인하고 정찰하는 것도 그의 장기. 후에 이걸 제일 잘하는 게이머가 다름 아닌 이제동.
  • 뮤탈 : 시대를 앞선 뮤짤. 오버로드나 라바로 뮤탈을 뭉치는 테크닉이 없던 시절, 오로지 피지컬로만 뮤짤을 선보였다. 빠른 손 속도로 뮤탈을 돌리면서 미네랄 찍어서 뭉치고 때리는 식.
  • 히드라, 러커 : 그의 한방 전투를 대표하는 유닛. 앞서 언급한 저글링, 뮤탈보다도 더욱이 그를 대표하는 유닛이 바로 히드라리스크이다. 특히나 히드라리스크를 주력으로 쓰는 그의 토스전은 박성준이 활약하던 시절에는 꽤나 이질적인 경기운영이었기에 더욱 주목받았다. 박성준의 대 프로토스전 히드라중심 전술운용은 그의 현역 선수생활이 끝나가던 시기인 09-10시즌 이후 더욱 정교하게 발달하여 저프전의 정석이 된다.

4.2. 테란전[편집]


2004년에는 최연성, 임요환, 전상욱, 서지훈, 이병민 등 강력한 테란들을 모조리 다이기며 테란전 최강자로 떠올랐으나 이윤열만은 넘지 못했다.[64]

선팩 조이기 및 SCV 잡는 뮤탈짤짤이, 저글링 러커, 벙커링 막는 드론 등 적지않은 부분에서 박성준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전상욱이 가까우면 벙커링 멀면 더블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2004년은 SCV와 마린을 동반하여 저그의 제 2 해처리 앞에 벙커를 짓는 초반 공격에 저그들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던 때였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삼연벙. 이 때 임요환의 연습상대가 박성준이었던 것으로 이후에 알려졌는데, 처음에는 임요환의 벙커링을 당해낼 방법이 없었으나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나중에는 50대 50 정도로 승률이 올라갔다고 한다. 이 때 임요환은 호랑이 새끼를 키운 셈이 되었고실제로 스니커즈 올스타리그에서 벙커링이 막히며 패했던 적도 있다, 한동안 박성준은 컨트롤로 벙커링을 막아낼 수 있는 유일한 저그였다. 다음 영상은 박성준의 벙커링 파훼 장면을 모아놓은 것으로, 임요환 서지훈 이윤열의 벙커링을 막아내고 승리하는 경기들이다.#

그러나 이후 스타일 파악 및 다른 저그들이 박성준급의 컨트롤을 습득하게 됨에 따라 테란에게 내성이 생기면서 박성준의 테란전은 매우 하락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질레트 스타리그 4강에서 최연성을 안드로메다로 날려보냈지만, 2005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결승에서 만나 3:0으로 셧아웃 당하기도 했다. 다만 2008년 이후로는 의외로 다양한 유닛을 사용하며 2003~2005년 저그들이 프로토스전을 하듯이 테란전을 구사했는데, 이게 의외로 괜찮은 성적을 올리기도 했다. 특히 메카닉 테란 부흥기에는 다수 히드라리스크를 선호하는 박성준식 운영이 제대로 먹히며 테란전이 은근 회복세를 보이기도 했다.[65]

4.3. 프로토스전[편집]


통칭 '프로토스의 재앙'으로 불리는, 저프전 역대 최강의 저그 프로게이머 중 한 명이다. 전성기가 지난 후 성적이 하락하여 평범한 수준까지 떨어진 다른 종족전과는 다르게 토스전만큼은 통산 승률 역대 1위를 찍을 정도로 대단히 좋다.[66] 경기 수는 이제동보다 적지만 승률은 68.1%로 이제동(67.1%)을 넘어선 역대 저프전 승률 1위.[67] 심지어 은퇴할 때까지 양대리그 프로토스와의 5전제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고, 5세트까지 간 적조차 없다.[68][69]

같은 팀이었던 올드게이머 매직저그 임정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임정호가 별명 때문에 퀸, 디파일러 등을 경기에 자주 사용한 선구자의 이미지도 있지만, 사실은 공격적으로 몰아치는 스타일을 더 선호했던 선수다. 박성준 역시 임정호의 이러한 공격성을 이어받고 더욱 발전시켜 투신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이다.

박성준은 저프전에서 프로토스가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불안한 심리를 잘 이용했다. 초반의 프로토스는 정찰력과 허리 역할을 해줄 드라군의 나쁜 저그전 상성 때문에 수동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으며, 재수없으면 확 밀려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70] 그렇다보니 프로토스가 가장 극혐하는 저그의 플레이도 초반 저글링 러쉬 이후 뮤탈짤짤이땡히드라를 콤보로 넣어서 마무리하는 운영인데, 박성준은 이것을 매우 잘 했다. 그래서 박성준의 토스전은 하이브운영 위주의 장기전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장기전에 약하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토스가 방어적으로 나온답시고 앞마당 근처에 필요 이상으로 캐논 꽃밭 공사를 해 놓으면 박성준은 빠르게 다른 자원지대를 다수 가져가면서 뮤탈짤짤이땡히드라 병력 생산으로 토스를 압박하는 플레이를 주로 펼쳤던 편. 이 때문에 상대하는 프로토스 게이머들은 박성준의 운영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여 평소보다 더 많은 캐논을 짓게 된다. 즉 그만큼 병력 생산이 줄어들거나 건물 건설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압박감에 시달렸고, 경기 전부터 심리적으로 우위에 서 있었다.

사실 전성기가 지난 후 박성준의 컨트롤은 다른 저그들과 비교해서 독보적이라 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멀티태스킹이 좋은 편도 아니었다. 그러나 박성준의 강점은 자신이 준비해온 빌드가 아니더라도 토스가 빈틈을 보이면 망설임 없이 히드라나 저글링을 찍어내 쇼부를 걸 수 있는 배짱에 있었다.[71] 2007년 박성준의 대 토스전 경기를 보면 아직 현대 저프전의 개념화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시기였음에도 박성준은 이미 초반 저글링-히드라 압박과 드론 펌핑으로 이어지는 운영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5전제에서는 판짜기까지 곁들여졌기 때문에 아무리 프로토스의 빌드나 최적화, 멀탯, 운영이 훌륭하다 할지라도 판이 말리면서 훅 가버리는 경우가 흔했다.

대표적인 경기로는 도재욱을 완벽히 제압한 EVER 스타리그 2008의 결승전이 있다.
  • 1경기는 5드론을 시도했고 도재욱은 캐논을 지으면서 프로브 비비기를 애용해 5드론 자체는 도재욱이 비교적 잘 막았으나, 문제는 박성준이 계속 저글링을 찍어내서 보낸 것이 아니라 딱 6저글링만 보낸 이후 더 이상 저글링을 소모하지 않고[72] 앞마당 확장 및 드론을 쭉쭉 뽑으며 테크에 집중했다. 도재욱은 박성준의 빈집을 공격하면서 카운터를 노리기 위해 앞마당을 올린 것을 확인하기 전부터 사각지대에 전진 2게이트를 건설하며 혹시 올지 모르는 저글링을 대비해 캐논까지 지었으나 질럿이 채 쌓이기도 전에 박성준에게 발각됐고[73], 발업이 된 것까지 확인한 도재욱은 혹시 모를 저글링 올인을 막기 위해 몰래게이트에서 애써 뽑은 상당수의 질럿을 회군시켜 저글링 러시에 대비해야만 했는데 미처 생각치도 못한 타이밍에 날아온 뮤탈에 의해 바로 게임이 끝났다. 이때도 박성준의 색다른 판단을 볼 수 있는데, 프로브가 모두 앞마당으로 빠지자 앞마당에 가서 프로브를 잡아야 한다던 해설진의 설레발과는 달리 막 올라가기 시작한 스타게이트 건물을 뮤탈로 때려부쉈다.[74]
  • 2경기는 서로 무난하게 출발했고 박성준의 빌드 상성이 좋지 않았으나, 오버로드가 드라군에게 잡히는 타이밍에 원래 2질럿 1드라군으로 입구를 막고 있어야 할 토스가 1질럿 1드라군만 있고 질럿이 뒤늦게 찍힌 걸 보자 "초반에 자원 먹으려고 배를 쨌구나" 하는 판단 하에 즉시 오버로드 시야를 통해 드론 미네랄 밀치기로 저글링과 함께 입구를 깔끔하게 뚫어버렸다. 토스는 캐논, 질럿, 프로브로 수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박성준은 무리해서 병력을 잡으려고 하지 않고 질럿의 기동력이 낮은 점을 노려 지속적으로 파일런, 포지와 게이트웨이를 집중 공격했다. 마지막에 도재욱은 미네랄과 넥서스 사이에 캐논을 올리며 결사 항전 의지를 다졌지만, 박성준은 저글링으로 프로브를 쉽게 잡을 수 있는 상황임에도 굳이 들어가지 않고 캐논 사거리 밖에서 넥서스를 부숴서 게임을 터뜨렸다. 프로브가 다 죽어서 GG를 쳤을 상황과 비교해보면 더 큰 심리적 충격을 주기 위한 방법으로, 박성준의 판짜기 능력을 보여주는 예라고도 할 수 있다. 도재욱은 이 경기 이후 멘붕하는 모습이 역력했으며, 드론 밀치기로 입구를 뚫어버린 직후 관중석에서 입을 떡 벌리며 경악하는 김택용의 표정과 GG콜 직전 박용욱 코치의 찡그리는 표정이 경기의 모든 상황을 요약해주고 있다.
  • 3경기 안드로메다는 서로 무난한 운영전이었고 심지어 도재욱이 크게 나쁘지 않은 상태[75]로 시작했는데도 잔뜩 움츠러들어 박성준이 대놓고 배를 째는 것마저 견제를 못 했고, 그렇게 확장력에서 밀려 패배한다.[76] 특히 후반부 십수 마리울트라리스크가 토스 병력을 둘러싸자 해설진까지 절규할 정도. 후반부만 보면 이게 박성준의 플레이인지 김준영목동저그인지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였고 결국 물량으로 도재욱을 눌러버리고 저그스럽게 이겼다.[77] 이 그림은 결국 1, 2경기에서 박성준의 극단적인 쇼부에 프로토스가 말려버렸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김택용마재윤레어 삼지창 중심 3해처리 레어를 3:0으로 떡실신을 시켜버린 후, 러커/뮤탈 이지선다나 땡히드라 등의 심리전과 테크니컬한 운영을 중심으로 하던 저그의 운영은 김택용의 비수류 앞에 무너지게 되었고, 한동안 저프전에서 토막 저그들이 양산된 적 있었다. 이때 EVER 스타리그 2008에 올라온 박성준은 슬럼프 시절에도 꾸준히 지켜왔던 자신의 스타일, 히드라 위주의 거점 중심 운영으로 드래프트 세대들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의 건재함을 알린다. 이런 운영은 워낙 독특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다른 저그 게이머들이 따라하려다 피를 많이 봤다. 공격성을 주체하지 못해 쇼부를 치다가 막히고 처참하게 무너진 한상봉이나, 히드라를 너무 많이 뽑았는데 별 피해를 주지 못하고 테크가 늦어지는 바람에 하이 템플러를 동반한 진출 타이밍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인 데뷔 초의 이제동이 대표적이었다. 이러한 박성준의 히드라는 운영이 가다듬어진 네오 사우론 저그를 거쳐 '개드라'로 진화하여 많은 프로토스 게이머들의 치를 떨게 만들었다. 당시 정상급 저그라고 보기는 어려웠음에도 저프전 최강자 김택용을 무너뜨린 조일장이나 이영한이 대표적이다.

승률부터 압도적인만큼 대다수의 프로토스 게이머를 상대전적으로 압도하는 편이다.[78] 저그전 최강 프로토스로 꼽히는 김택용과의 맞대결 또한 숱한 떡밥 중 하나. 이 둘의 맞대결은 공식전 3:3 호각세를 이루긴 했으나 다전제는 한 차례도 없었다. 맞대결 양상은 주로 박성준이 초중반부 전투력으로 김택용의 진영을 밀어버리며 끝나거나[79] 이를 버텨낸 김택용이 멀티태스킹 싸움으로 끌고 가서 이기는 식이었다. 팀내 연습을 할 때는 대체로 박성준이 우세했으며 3.3 혁명 때도 김택용의 연습에 도움이 약간이나마 되었다고 한다.[80] 그러나 중반부터 한방 힘싸움 중심의 저그전을 펼치는 저프전 최다패를 기록한 옛날토스 송병구에게는 총 상대전적 6승 7패를 찍으며 예상 외로 고전했다. 심지어 송병구가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던 07년도 이후의 전적은 박성준의 열세다.[81]

박성준의 토스전에 대한 평가의 흐름을 본다면, 데뷔 초에는[82] 최연성을 꺾어버린 테란전이 더욱 주목받았으며, 그 이후 이어진 삼신전의 시대는 토스 암울기였기 때문에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에서는 8강 안기효, 4강 박지호를 상대하며 토스전만으로 결승전에 올라갔으나, 이후 '프로토스의 재앙'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던 마모씨의 인지도와 포스에 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전술했듯, 개인리그 3전제에서 의외의 일격을 당한 것도 평가를 많이 깎아먹었다. 오히려 박성준의 토스전에 대한 평가가 크게 올라간 것은 EVER 스타리그 2008이었는데, 이 리그에서 전성기가 지난 박성준이 프로토스만 줄줄이 꺾고 우승했기 때문이다. 특히 2008년은 소위 말하는 육룡 시대였다. 이 시절 프로토스의 위용을 살펴보면 윤용태는 3전제에서 이제동을 격파했고, 송병구의 연간 저그전 승률이 무려 76.5%에 달했으며, 특히 결승전 상대였던 도재욱은 직전 경기였던 4강에서 박찬수를 상대로 앞마당 노가스맵을 끼고 역스윕을 해냈다.[83] 그런 와중에 전성기도 한참 지난 박성준이 프로토스 황금기에 떡하니 등장해 압도적인 스코어로 우승을 차지하는 모습은 임팩트가 클 수밖에 없었다.

박성준식 대 토스전 히드라 운영 'Hydra Circle'에 관한 글. 1 2 3

4.4. 저그전[편집]


의외로 저저전 승률이 공식전 5할이 안될만큼 저조한 편이다. 또한, EVER 2004 스타리그에서 삼연벙 바로 직전의 홍진호에게 2:0으로 압살당한 경기와 곰TV 시즌2 MSL 8강에서 박태민에게 3:0으로 셧아웃 당한 것 때문에 저저전이 약하다는 인상을 더 크게 받는 편이다. 그러나 저막으로 꼽히지 않는 것은 프로게이머 후반기와 슬럼프 시절에 깎아먹는 승률이 대부분이고, 컨디션이 좋을 때는 저저도 잘하는 편이었기 때문. WCG 예선에서 이제동을 2:0으로 꺾기도 했다.

박성준 이전까지만 해도 7-9기의 뮤탈리스크 타이밍을 노리는 스커지 테러가 가능했지만, 박성준은 뮤탈 컨트롤로 이 타이밍을 지워버렸다. 결국 이후 저저전에서 온리 저글링-스커지 조합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양박으로 묶이던 박태민과 맞붙은 2차 프리미어 리그 결승전은 박성준 저저전의 백미. 5경기 모두 박태민의 판짜기에 말려든 후 순수 전투력만으로 3판을 따내며 3:2로 우승을 차지했다.

4.5. 명경기[편집]


동일종족 연속 출전 금지 조항 때문에 랜덤 테란으로 출전한 경기. 당시 불꽃테란으로 이름을 날렸던 변길섭은 공1업을 하고 스팀 먹인 뒤에 체력을 채우고 메딕부터 넣어서 먼저 맞게 한 다음 성큰을 일점사하는 방식이었는데 박성준은 오히려 방1업[84]을 한 후 스팀 먹이자마자 어택땅으로[85] 조용호의 성큰 8개를 뚫어버렸다. 변길섭의 불꽃테란은 파이어뱃을 반드시 1-2기 섞어 몸빵+저글링 지우기 용으로 사용했고, 성큰에 맞는 마린을 메딕으로 지정해서 치료하는 등 세세한 컨트롤을 했지만, 박성준은 방업의 힘을 보여주며 그냥 어택땅에 가깝게 뚫어버렸다. 조용호의 팀 동료가 변길섭인 걸 생각하면 또 아이러니.
정말 저그의 물량을 제대로 보여준 무시무시한 경기. 유닛의 90%가 동시에 움직였다고 한다. 일명 미니맵 관광. 확실히 안기효가 스톰과 리버, 아콘을 써가면서 막기는 막는데 병력을 막으면 저글링과 히드라, 울트라가 또다시 몰려온다. 16분 25초부터
드론이 셋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뮤탈 컨트롤로 스커지의 자폭을 모조리 저지하고 기어이 역전승을 따냈다.
이윤열이 벙커링을 시도해 해처리가 파괴될 상황에 놓이자 드론을 바깥쪽에 빼놓고는 갓 생산된 저글링 6기와 함께 이윤열의 본진에 역으로 러시를 가서 털어버렸다. 벙커링을 들어왔던 SCV와 마린은 본진에서 새로 생산된 저글링 6기로 무난하게 막고 승리.
리버에 드론 절반과 앞마당까지 털리고, 본진 드랍은 막히고, 자원은 다 떨어져 가는 상황에 리버 견제가 또 들어오는데 그걸 막기는커녕 자원을 쥐어짜내 마지막 공격을 갔고 그 한방으로 경기를 뒤집었다.[86]
선팩 조이기에 당해 제대로 틀어막힌 상황에 뮤탈 컨트롤만으로 조이기 병력을 싸그리 잡아냈다. 더 놀라운건 그당시 뮤탈뭉치기 컨트롤이 아닌, 일일이 수작업으로 클릭해서 잡아낸것이다. 박성준의 피지컬이 그당시 얼마나 극강이었나를 보여주는 경기다.
파이어뱃을 두려워하지 않는 저글링의 맹공이 일품. 다만 경기는 공격을 끝내 막아낸 최연성이 승리했다. 최연성은 수비에 일가견이 있는 선수 중 하나다.
러시 한 번만 막으면 김택용의 필승인 상황에서 히드라러커 한방에 그대로 경기를 끝내버렸다.
좁은 입구라는 맵 특성을 아주 잘 활용하여 드론 밀치기와 저글링 올인 러쉬로 경기를 끝내버린다. 이때 당시 T1 소속이었던 박용욱의 일그러지는 표정과 김택용의 입이 떡 벌어지는 표정이 포인트.

5.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주요 기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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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타크래프트 2로 전환한 후 최초의 온게임넷 스타리그이자, 자유의 날개 시리즈로 개최된 유일한 온게임넷 스타리그.
[3] 역사상 마지막 온게임넷 스타리그이자, 군단의 심장 시리즈로 개최된 유일한 온게임넷 스타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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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타크래프트 2로 종목 변경.
[2] 정식 종목이 아닌 초청 종목이다.





5.1. 개인 리그[편집]


개인 리그 우승, 준우승 총합 상금 : 1억 1천만원 + $ 10,000




5.2. 팀 단위 리그[편집]




5.3. 전적[편집]


박성준의 스타1 양대 개인리그 A매치 통산 전적'
방송사























































































  • 임요환 : 듀얼에서 이기고 임요환의 온게임넷 스타리그 연속 진출 기록을 저지했다. 이는 임요환의 데뷔 후 첫 스타리그 진출 실패다.
  • 홍진호 : 마땅히 저그 최초 우승을 차지해야 할 홍진호를 제치고[89] 저그 최초의 우승을 달성했다.
  • 박정석 : 질레트배 결승전에서 3:1로 격파했다.
  • 최연성 : 최연성의 첫 온게임넷 스타리그 4강에서 우승을 막았으며, 그 경기 내용도 최연성 게이머 인생에서 손에 꼽힐 정도의 관광 경기였다.[90][91]
  • 서지훈 : 질레트 8강, EVER 2005 4강, 2006 프로리그 후기리그 결승전 등 우승한 대부분의 대회에서 항상 서지훈을 제물로 삼았다.[92]
  • 강민 : 이른바 애리조나 똥개 관광으로 강민을 제압했다.
  • 박태민 : 제2회 KT-KTF 프리미어 리그 통합 결승전에서 그를 3:2로 꺾고 최종 우승을 차지하고,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에서는 듀얼에서 그를 꺾으며 대신 본선에 진출하였다.[93]
  • 박용욱 : EVER 2005배에서 그를 꺾고 8강에 진출하는 것과 동시에 16강 3전 전패 기록 광탈을 안겨주었다.
  • 토스빠 : 네임드 프로토스 선수들에게 숱한 관광을 선사했다. 게다가 그전까지는 올인성 땡히드라 말고는 거의 안 쓰이던 히드라리스크를 힘싸움에 적극 활용하여 개드라로 진화시킨 게 박성준.[94]
  • T1팬 : 첫 로열로더 우승을 차지한 Gillette 스타리그 2004에서 듀얼에서는 임요환을 꺾고 본선에 진출하고 4강에서도 최연성을 상대로 사실상 세트스코어 5:0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3:2 승리를 차지하면서 대신 결승전에 진출하고 최연성의 스타리그 로열로더 기록을 저지하였다. 첫 번째 준우승을 차지한 IOPS 스타리그 04~05에서도 듀얼에서는 프저전 최악의 압살맵인 머큐리에서 당시 T1 소속이었던 박정길을 꺾고 본선에 진출하고, 16강에서도 디펜딩 챔피언 최연성에게 승리를 차지하여 그에게 조별리그 광탈을 안겨주는데 크게 일조하였다.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 EVER 스타리그 2005에서도 16강 마지막 경기에서 박용욱에게 16강 3전 전패 광탈 기록을 안겨주고, 비록 16강 본경기에서는 지고 8강에 동반 진출하긴 했지만 당시 이적생 전상욱을 상대로도 승리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준우승을 차지한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에서도 듀얼에서 박태민을 꺾고 본선에 진출하였다. 이후 박성준 본인이 T1에 이적했지만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먹튀로 전락하고 이후 STX로 이적하였다. 그리고 STX 이적 후 첫 개인리그였던 EVER 스타리그 2008에서도 16강에서 윤종민을 꺾었고, 결국 윤종민은 16강에서 1승 2패로 광탈하게 된다. 이후 결승전에서는 도재욱을 상대로 3:0 셧아웃으로 골든 마우스를 차지해버렸다.[95]







[1] 양친은 이혼했으며, 무녀독남 외동아들이다. 그러나 아버지와는 계속 연락하면서 지내는 듯 하다.[2] July 경력 상금.[3] 옛날에 쓰던 계정은 비밀번호를 잃어버려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4] 이쪽은 KeSPA 등록명이 박성준1이다. 본 문서의 박성준보다 나중에 데뷔했기 때문.[5] 재미있게도 SKT T1 시절에는 삼성 박성준의 동생인 박재혁과 팀 동료로 있었다. 여담이지만, 이들과 본관이 같다.[6] 가끔 최연성과 싸웠을 때에 쓴 게 최초라고 하는데, 링크 건 동영상이 최초다.[7] 그 외 현재는 모든 기록이 말소되어 0승 0패마주작 67승 32패 승률 67.7%, 조용호 43승 25패 63.8%, 홍진호 165승 110패 60.0% 등을 보아도 투신의 저프전이 압도적임을 알 수 있다.[8] 참고로 3종족 통합 대 프로토스전 3위는 이제동 67.1%, 4위 정명훈 65.9%이며, 프프전 역대 1위 김택용은 100승 57패 승률 63.7%로 전체 5위.[9] APM 300대 후반~400 초반. 시대가 지나 뮤짤이 필수가 되고, 멀티 태스킹이 일반화됨에 따라 김정우이제동은 이보다 더 빠른 속도를 보여주기도 하게 되었지만(참고로 박재혁은 700~800도 찍는다.) 당시에는 APM 400은 박성준만의 것이었다.[10] 챌린지리그의 시작이 2003년 12월이어서, 실제 경기는 2004년이었다.[11] 당시 F조는 박정석, 임요환, 박성준, 전상욱의 네 선수로 구성되었는데, 스타리그에 진출한 박정석과 박성준은 질레트 스타리그 결승에서 만나게 된다. 임요환의 불운.[12] 당시 한동욱은 온게임넷 스타리그 PC방 예선부터 올라온 최후의 아마추어 게이머였다.[13] 이 경기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다. 박성준이 "이기는 경기를 할까요? 재밌는 경기를 할까요?"하자 하태기가 "이기는 경기를 해라."라고 했고 4드론을 선택해서 승리했다. 참고로 당시 레퀴엠은 러쉬거리가 워낙 가까워서 저테전에서 저그가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14] 변태준이라는 말도 이 세 선수를 묶어 탄생했다.[15] 여담으로, 2004년 7월 1일을 기점으로 서울의 버스 환승체계가 많이 바뀐 탓에, 버스기사가 교통대란에 정신을 놨다는 식의 반응도 많았다.[16] 세월이 흘러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로서 전향을 앞두었던 2010년, 온게임넷 드리머 박성준 편에 출연한 박성준은 황제, 천재, 괴물, 영웅 등 모든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의 별명 중 자신의 별명인 투신이 가장 멋있다고 자부심을 표시하며 자신에게 이처럼 훌륭한 선물을 주신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박성준의 공격적인 성향과 잘 어울리는 별명이기 때문.[17] 케스파 연승 기록 역대 1위[18] '프로토스의 재앙'으로 불렸던 3.3혁명 이전 2006 시즌 마레기의 토스전이 21승 3패였다. 최연성의 저그전은 마레기의 토스전보다 패는 적고 승수는 2배 많았던 셈.[19] 최연성은 의도적으로 인터뷰 등을 통해 경기 외적인 상황에서도 상대를 도발하는, 거만한 태도를 보였었다.[20] 홍진호는 당시 승자 결승까지 전승 중이었다.[21] 3경기가 그 유명한 U보트 혈전이다.[22] 꺾은 상대가 심소명, 이재훈, 조용호, 박정석 등이었다.[23] 최연성이 1년 넘게 본좌 포스를 뽐냈던 양대리그와는 달리 iTV 랭킹전의 경우 최연성이나 박성준 모두 이제 막 데뷔하는 것이었고, 박성준이 조별 토너먼트에서 1위를 먹었던지라 당시 해설진들은 오히려 박성준에게 더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24] 다만, iTV 랭킹전은 저그맵이 도배되어있어 저그가 무려 10명 진출하는 등, 양대리그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9위부터 올라온 최연성이 진짜 괴물이었다.[25] 방송은 7월 8일. 때문에 7월 2일 열린 질레트 스타리그보다 나중에 했다는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다.[26] 다만 이 때 맵에 대해서는, 해당 맵 외국인 제작자가 인터뷰를 통해 사과했다고 한다.[27] 비슷한 예를 들자면 저그 신인이 전성기의 이영호를 꺾고 우승한 충격이다.[28] 최연성이 박성준을 상대로 승리했던 스타리그 당시에는 테란맵에 대한 비판 또한 제기되었었다.[29] 박성준의 기세는 조지명식에서도 이어졌었는데 지명권을 먼저 가지고 있던 다른 선수가 먼저 최연성을 지목하여 자신이 최연성을 지목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게 아쉽다고 조지명식 생방송 도중 발언하는 등 당시 괴물 포스를 자랑하던 최연성에게 대부분 프로게이머들이 표현하기 힘든 자신감을 줄곧 표출하고는 하였다.[30] 그리고 4강에 올라간 홍진호는 3연벙을 당했다. 3연벙 당시 임요환의 스파링 파트너가 박성준[31] 뮤탈 뭉치기 테크닉도 없던 시절이다![32] 다만 이건 맵의 영향도 크다. 박성준 우승 직후 안그래도 3해처리 강제맵이라 빡셌던 포르테는 네오 포르테로 진화하여 본진 미네랄 10덩이로 저그에게 더욱 불리해졌고, 알 포인트라는 새로운 3해처리 강제맵이 추가되었다. 815는 앞마당에 가스가 없어서 저그에게 불리했다. 그리고 박성준은 2해처리 기반의 저그였다. 박성준뿐만 아니라 홍진호, 조용호, 이주영 등 저그 유저들도 16강에서 포르테알 포인트에서 테란에게 짓밟히고 815에서 프로토스에게 얻어터졌다.[33] 하지만 이는 결승전에서 테란전 감각이 엉망이 되는데 일조했다.[34] 8강 임요환 2:1, 4강 한동욱 3:2[35] 다만, 이윤열, 최연성이라는 두 본좌에게 3:0 패배를 당한 것이 흠이었고, 엠겜에서의 약세와 함께 그를 임-이-최에 버금가는 본좌로 끌어올리지 못한 요인으로 보인다.[36] 2005년 전기 후기 프로리그는 5세트 경기중 2세트와 4세트가 팀플 경기였다. 팀플 페어를 다르게 짜면 중복되지 않는 엔트리로 처리되었기 때문에(이를테면 2세트 박성준 - 박지호, 4세트 박성준 - 문준희가 출장한다면 겹치기 출전이 아니라고 보는 식), 개인전 한 경기 + 팀플 두 경기 + 중복출장이 허용되는 에이스 결정전까지 총 네 경기를 출장할 수 있었다. 당시 많은 팀들이 수적으로 부족한 엔트리를 꾸리고 있었으나 2005년의 박성준처럼 한 선수에게 많은 경기를 출장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37] 1세트 박성준 승, 2세트 박성준/박지호 팀플 승, 3세트 박지호 승 이런식이었다.[38] 당시 총 프로리그 경기가 팀당 10경기였다.[39] POS팀을 먹여살린 공신임에도 불구하고 대우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최고의 대우를 받은 GO(CJ)의 서지훈과 대조되는 부분.[40] 이 승리와 더불어 다음날 벌어진 서바이버에서는 박대만오영종을 연파하며 MSL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41] esFORCE의 윤용태의 연봉 600만원이 이때 나왔다.[42] 훗날 히어로 소속 선수들의 개인방송에서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POS 시절 팀 운영금이 부족해서 박성준이 아버지 몰래 카드를 긁다가 걸려서 무릎을 꿇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43] FA 제도와 동시에 도입되었다.[44] 아이러니하게도 MBC GAME 시절 팀 동료이자 Griffin의 모기업 스틸에잇의 대표인 서경종이 이 사건의 당사자라는 것이다. 물론 이 사건이 터진 후에 대표에서 물러났지만, 이후 롤 팀이 해체되면서 다시 복귀.[45] 한때 최장 기록이었으나 현재 송병구에 의해 깨진 상태. 박성준의 기록이 16강 리그 시스템 시절이라고 송병구의 기록을 폄하할 지도 모르겠으나 송병구는 36강 시스템 개편 이후에도 16강을 못간 적이 없다.[46] 정명훈 등장 전이며, 이영호도 이 시절에는 중요한 고비마다 저그에게 발목을 잡히던 시기였다.[47] 즉, 16강전부터 테란을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48] 이후 엄재경 해설에 말에 따르면 속으로는 박성준의 승리를 예상 했지만 모두가 박성준의 승을 예상하면 관객들이 기대를 안 할거 같아 흥행을 위해 포장한 거였다고.[49] 스타리그, MSL 통틀어 결승에서 저그 최초로 셧아웃 우승을 기록하였다. 1년 뒤 박카스 스타리그 2009에서 이제동이 박명수를 셧아웃 시키며 우승했지만 동족전이었고 타 종족전에서는 박성준의 우승이 유일한 셧아웃 우승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50] 다만, 박성준을 김은동 감독이 키워냈다기에는 머쓱한 점이 있어 김윤환의 MSL 우승에 의미를 좀 더 부여하는 의견도 있다.[51] WCG 결승전, 신한05 스타리그 결승전[52] 곰tv 32강 , SKY06프로리그 그랜드파이널 5경기 등[53]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 송병구, 도재욱, Clubday Online MSL 2008: 김택용, 허영무, 윤용태, 김구현[54] 마지막 프로리그 승리 경기는 2009년 4월 18일의 오영종과의 경기였고, 마지막 프로리그 출전 경기는 2009년 5월 4일의 차명환과의 경기. 그리고 차명환전을 끝으로 스2 전향일까지 박성준은 프로리그에서 모습을 영영 볼 수 없었다. 그나마 그 와중에도 개인리그 예선은 꼬박꼬박 참여는 했지만, 번번히 PSL에서 물먹거나 본선 32강에서 광탈하기 일쑤였다.[55] 이후 박성준은 스2 전향일까지 다시는 온게임넷 스타리그에 돌아오지 못하였다.[56] 빅파일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는 박지수김봉준한테 연달아 패하며 광탈했고,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2 PSL에서는 당시 하이트 스파키즈의 신예 테란 신성은한테 초장부터 0대2로 패하며 광탈했다. 그리고 김봉준전이 박성준의 마지막 공식전이었다.[57] 삼연벙 당시 임요환의 연습 파트너가 박성준이었다. 훗날 박성준의 증언에 의하면 연습 과정에서 벙커링으로부터 파생되는 테란의 전략은 죄다 경험해봤다.[58] 이는 다른 의미로도 더 대단한 것이, 유닛 복수 지정이 12기까지밖에 안 되는 스타1의 특성상 12기 중 한 기를 오버로드로 채워넣으면 화력적인 면에서도 순수 뮤탈 12기가 뭉친 것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당시 테란들의 뮤탈 내성이 떨어졌던 점까지 시너지로 작용하면서 더더욱 충공깽일 수밖에 없었다.[59] 아이러니한 것은, 서경종이 처음으로 뮤탈 뭉치기를 발견했을 때 박성준은 그거 구리다면서 사용을 만류했었다.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대회에서 그걸 네가 할 수 있을 거 같냐? 언제 오버로드 끌어다 부대지정하고 또 풀고 다른 거 지정하고 그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그런데 다들 했고, 본인도 그렇게 됐다고 한다.[60] 물론 박성준의 컨트롤 혁명 그 자체만으로도 테란전에서 높게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61] 이는 테란전 얘기다. 프로토스전 판짜기는 전투력 하나만으로도 프로토스들이 다들 쫄아서 위축된 플레이를 했었기 때문에 알아서 판짜기가 가능했으며 5전제에서 2점을 내 준 적 조차 없었다.[62] 동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한 박태민이 특유의 판짜기로 이윤열과는 명승부를 펼친 반면 최연성에게는 참패했던 모습과 대조되는 부분.[63] 당시 저그에게는 생산력이 중요했기 때문에, 저그유저들은 어택땅 찍어놓고 생산에 집중해서, 나중에 충원되는 병력으로 적 한방병력을 정리하는 그런 개념이었지만 박성준은 컨트롤을 통해 한방 병력 교전에서 승리하고 찍어누르면서 전략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데 능했다. 특히 바이오닉을 상대할 때 러커는 몸빵이고 메인 딜링은 저글링으로 한다는 역발상을 사실상 처음으로 써먹은 저그가 박성준.[64] KTF Fimm 프리미어리그 리그 챔피언쉽에서 이윤열을 2 : 0으로 깔끔하게 완파한 적이 있다. 근데 그 2경기를 제외한 공식전 경기에서 다 졌다.[65] 저그전 메카닉 테란의 문제점을 보면 알겠지만...초중반 동안 수세에 몰려 있어야 한다는 점이 저그전 프로토스랑 모양이 똑같았고, 이는 레이트 메카닉이 개발되기 전 까지 해결되지 못했다.[66]이제동을 비롯한 후세대의 최상위권 저그들보다도 높다는 뜻이다. 이제동과는 1% 안팎으로 큰 차이는 아니지만, 저그의 테란전과 저그전 통산 승률 역대 1위는 이제동이 차지했다는 점과 타종족 역시 종족별 승률 1위는 대부분 드래프트 세대 선수가 차지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진짜 대단한 거다. 드래프트 이전에 데뷔한 게이머의 종족전 승률이 역대 1위를 지킨 사례는 전 종족을 통틀어도 박성준의 토스전과 송병구의 테란전밖에 없다.[67] ASL 체제로 넘어온 이후에도 박상현이 76.5%로 유일하게 이를 능가한다.[68] 다른 저프전 강자들의 경우, 홍진호는 박정석이랑 2번 만나 2번 다 패했고, 조용호 역시 우주닷컴 MSL 패자 결승에서 전적이 4배나 앞서던 박정석에게 2:3으로 패한 경험이 있고, 마재윤뭐 말할 필요도 없고... 박태민곰TV MSL 시즌2 4강에서 김택용에게 1:3으로 패배하였다. 이제동은 초창기긴 하지만 2007 1st 스타챌린지 결승전에서 안기효에게 1:3으로 패하였으며, 승리한 5전제 역시 5세트를 허용한 적이 두 차례 있었다.[69] 다만 3전제까지 포함하면 박성준도 몇 번 패한 적이 있다.[70] 스타 초창기 프로토스 프로게이머가 공방 저그에게 땡히드라를 당해서 졌다는 이야기가 자주 떠돌았으며, 실제로 사대천왕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이벤트전에서는 박정석이 랜덤토스가 나오고도 임요환 랜덤저그의 땡히드라에 밀려버린 경기가 있었다.[71] EVER 스타리그 2008의 결승전 트로이 맵에서의 2경기가 대표사례. 원래 다른 빌드를 준비했었는데 실수로 도재욱의 본진에 찔러넣어둔 오버로드를 늦게 빼는 바람에 살릴 수 없게 되자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죽을 거 더 보고 죽자" 하고 도망가던 오버로드를 다시 찔러넣어 시야를 밝혔고, 이를 통해 드론 밀치기+저글링 난입이 먹히겠다는 즉흥적인 계산 하에 시도했으며 그것도 아주 끄트머리에 나온 걸 겨우 클릭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짜온 판짜기가 막히자 과감히 버리고 곧바로 도박수를 걸어대는 저그가 프로토스 입장에서 얼마나 무섭겠는가? 설령 올인 전략을 빠르게 알아채서 대비해도 특유의 교전 컨트롤로 뚫어버리고 GG를 받아내니 도무지 답이 안 나오는 것이다.[72] 들어갔던 6저글링도 본진에 캐논이 완성되자마자 포지를 파괴하고 회군했다.[73] 이 때 박성준이 저글링과 오버로드를 프로토스 본진에 집어넣어 있어야 할 건물이 없는 걸 확인하고 어딘가에 몰래 건물을 지었구나 직감, 즉시 사냥개들을 풀어 그 냄새를 맡게 했고, 처음에 게이트웨이 끄트머리에서 간신히 놓치나 했더니 얼마 못 가 파일런이 발각된다.[74] 저그는 특히 지대공을 히드라만이, 공대공을 뮤탈과 스커지만이 전담하고 있는데 뮤커지는 둘 다 커세어에 약하며 히드라는 상위개체인 러커와 함께 저그의 주력 원거리 딜러라 상대해야 할 지상 병력이 매우 많다. 즉 커세어 숫자가 모이면 모일 수록 답이 없어진다. 더욱이 인구수를 전담하는 오버로드 역시 '공중유닛'이라 저그는 토스전에서 매우 커다란 약점을 가지고 시작하는 셈이다. 어차피 드라군을 비롯한 적 지대공 유닛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 경기는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으나, 박성준은 최소한의 변수마저 완벽히 차단하기 위해 본진에 저글링과 성큰을 대기시킨 다음 뮤탈들만을 토스 본진으로 보내 본진 상황을 체크하고 스타게이트를 먼저 부순 것이다.[75] 9발업에서 초반에 저글링을 8기나 찍었는데도 일꾼 피해가 3기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이 3기는 난입을 막던 프로브를 잡은 것.[76] 가장 큰 원인은 계속해서 도세어커세어가 끊겨버린 것. 1스타게이트에서 꾸준히 커세어를 모아야 했는데 어설프게 견제를 갔다가 스커지에 계속해서 잡히는 바람에 박성준은 무난하게 타 스타팅 멀티와 앞마당, 3룡이를 죄다 먹을 수 있었고, 겨우 커세어가 다수 쌓여 리버와 함께 나갈 즈음엔 이미 다수 뮤탈+스커지를 갖춘 박성준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없었다.[77] 경기 거의 막판에 엄재경 해설이 박성준은 힘으로 이기려 해서는 안 되는 선수라는 말까지 했다.[78] 의외로 개인리그에서 약했던 상대가 저막으로 유명했던 이재훈. MSL과 WCG 대표 선발전에서 두 번이나 2:0 패배를 당했다.[79] 대표적인 경기가 블루스톰에서 벌어진 디스코 사건. 본진 입구쪽 게이트웨이가 파괴되기 직전에 김택용의 연결이 끊겨 디스커넥트가 됐고, 리플레이 판독 결과 다크가 나오기 전에 게이트가 깨졌고, 설령 다크가 나왔더라도 경기를 뒤집을 상황이 안 된다고 심판진이 판단하여 박성준의 우세승으로 판정했다.[80] 전성기 시절 김택용을 상대로 밀리지 않을 것 같은 저그 플레이어들은 박성준과 함께 심소명이 꼽혔다. 실제로 심소명은 2전밖에 안 되지만 전승.[81] 사실 송병구에게도 공식전만 따지면 5승 2패로 크게 앞선다. WCG 예선 포함 비공식전에서 단 1승밖에 챙기지 못했던 점이 크다.[82] 스타리그 본선에 처음 올랐을 때 기준으로 온게임넷 A매치 토스전이 2승 3패였는데, 이중 2패는 저그 압살맵 패러독스에서 진 것이다. 그리고 시드 자격으로 자신을 지목했던 전태규와의 본선 첫 경기에서도 업저글링 빌드로 관광을 보내버렸으며, 결승전 역시 토스 유저인 박정석을 꺾고 우승. 즉 데뷔 초에도 마냥 토스전이 약하다고만 볼 수는 없었다.[83] 박찬수가 토막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토스 압살맵 화랑도가 두 경기나 배치되었던데다 도재욱의 저그전 승률 역시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딱히 폄하할 수는 없다. 게다가 이 5전제를 제외하면 토스가 저그와의 5전제에서 0:2 스코어를 뒤집은 사례는 없다.[84]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성큰의 공격 방식은 폭발형이라 소형 유닛인 마린에게는 데미지가 반감되는데, 여기서 마린이 방1업을 하면 성큰 두 방에 죽던 것이 세 방까지 버틸 수 있다.[85] 영상을 보면 성큰 일점사가 아니다. 조용호가 성큰을 이쁘게 1자로 지어놔서 일점사의 효용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86] 이것과 비슷한게 바로 2012 티빙 스타리그 허영무vs김명운 4세트 경기다. 종족만 다를뿐, 마지막 쥐어짜낸 올인러시를 허영무가 성공시켜서 승리를 거두었다.[87] 4강에서 최연성에게 0:2로 패배.[88] 4강에서 이영호에게 0:3으로 패배.[89] 홍진호는 마이큐브 스타리그 8강에서 탈락 후 2시즌 동안 스타리그에 진출하지 못했는데 하필 그때 박성준이 우승을 차지했다.[90] 최연성의 무적 포스에 흠집을 낸 유일한 게이머였다.[91] 하지만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결승에서 둘은 다시 만나 최연성이 3:0으로 우승을 거뒀다.[92] 다만 2차 프리미어리그 통합우승을 차지했음에도 서지훈에게는 조별 풀리그에서 졌다.[93] 하지만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 24강과 곰TV MSL 시즌2 8강에서 둘은 다시 만나 박태민이 각각 조별리그 1승, 8강 5전제 3:0으로 승리를 차지하였다.[94] 마모씨조차도 히드라는 레어 삼지창의 일환이나 심리전으로 활용하는 정도였지 주력 유닛으로 써먹은 경우는 많지 않다.[95] T1팬들이 박성준과 함께 가장 싫어했던 또 다른 선수는 오영종이다. 오영종도 첫 우승과 로열로더, 가을의 전설을 기록한 So1 스타리그 2005에서 4강에서 최연성을 상대로 3:1, 결승전에서 임요환을 상대로 3:2로 우승을 차지하였고, 이후 준우승을 차지한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에서도 8강에서 박태민에게 2:1, 4강에서 전상욱에게 3:2로 승리. 그리고 결승전에서 우승을 내준 상대는 임빠/T1빠들에게 있어서는 박성준이나 오영종보다도 더 싫어했던 이윤열이었다. 심지어 오영종에게 공식전 다전제 승리를 거둔 상대 자체도 이윤열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