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양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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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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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양궁협회 로고.svg 리커브 여자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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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
이영숙 · 황숙주
1978
김진호 · 오영숙 · 황숙주
1979
김진호 · 박영숙 · 안재순 · 황숙주
1980
김진호 · 박영숙 · 안재순 · 황숙주
1981
김미영 · 김진호 · 박영숙 · 백종미 · 양경순 · 전문규 · 황숙주
1982
김진호 · 박영숙 · 양경순 · 황숙주
1983 1기
김미영 · 김옥경 · 김진호 · 박영숙 · 서향순 · 신정순
1983 2기
김미영 · 김진호 · 박영숙 · 서현주 · 정재봉 · 황숙주
1983 3기
김미영 · 김진호 · 박영숙 · 이순미 · 정재봉 · 황숙주
1984 1기
김진호 · 김미영 · 이순미 · 정재봉
1984 2기
김진호 · 박영숙 · 서향순
1985 1기
김미영 · 박민화 · 박정아 · 서은정 · 서향순 · 이숙향 · 이혜영 · 임명란 · 정재봉 · 조은신 · 허복자 · 황은희
1985 2기
김미경 · 김미영 · 김진호 · 김차남 · 박정아 · 서향순 · 양경순 · 오영숙 · 이숙향 · 이유미 · 이혜영 · 정재봉
1985 3기
김진호 · 박정아 · 서향순 · 양경순 · 이숙향 · 조윤정
1985 4기
김진호 · 박정아 · 서향순 · 양경순
1986 1기
김미자 · 김진호 · 박정아 · 박종숙 · 서향순 · 송영미 · 이선희 · 임명란 · 전애자 · 정민자 · 정재봉 · 지인숙
1986 2기
김미자 · 김진호 · 박정아 · 박종숙 · 이선희 · 임명란
1987 1기
김미자 · 김진호 · 박정아 · 박종숙 · 왕희경 · 이선희 · 임명란 · 정재봉
1987/88
김경욱 · 김수녕 · 박미경 · 박정아 · 박종숙 · 왕희경 · 이선희 · 이애리 · 이유미 · 이혜영 · 임명란 · 황은희
1988 2기
김경욱 · 김수녕 · 박정아 · 왕희경 · 윤영숙 · 이선희
1988 3기
김수녕 · 왕희경 · 윤영숙 · 임은숙
1989
김경욱 · 김수녕 · 박미경 · 박종숙 · 왕희경 · 이선희 · 이은경 · 정창숙
1990 1기
김경욱 · 김미희 · 김수녕 · 왕희경 · 임정아 · 정창숙 · 조윤정 · 한희정
1990 2기
김경욱 · 김수녕 · 문영희 · 박정아 · 이문영 · 이은경 · 이장미 · 한희정
1991
김수녕 · 김승실 · 문영희 · 이선희 · 이은경 · 조윤정 · 이장미 · 한희정
1992
김수녕 · 김승실 · 이은경 · 이선희 · 이장미 · 임정아 · 정창숙 · 조윤정
1993
김경욱 · 김효정 · 염연자 · 이명옥 · 이은경 · 이희정 · 임정아 · 조윤정
1994
강경옥 · 강현지 · 김경욱 · 양승숙 · 염연자 · 이은경 · 임정아 · 한희정
1995
김경욱 · 김정례 · 김조순 · 염연자 · 이은경 · 임정아 · 조미숙 · 황진해 · 박혜정[자격포기]
1996
강현지 · 김경욱 · 김남순 · 김은진 · 김조순 · 박명화 · 손민정 · 윤혜영 · 이은경 · 이희정 · 조미숙 · 최은주
1997
강현지 · 김두리 · 김조순 · 윤혜영 · 정창숙 · 조윤정 · 최은주 · 황진해
1998
강현지 · 김남순 · 김조순 · 이미정 · 이은경 · 임정아 · 정창숙 · 조미숙
1999
강현지 · 김두리 · 김조순 · 윤혜영 · 이은경 · 이희정 · 정창숙 · 하나영
2000
강현지 · 김남순 · 김수녕 · 박회윤 · 윤미진 · 정창숙 · 최남옥 · 최은정
2001
강현지 · 김경욱 · 김문정 · 박성현 · 우송이 · 최남옥 · 최은정 · 최진
2002
김문정 · 박성현 · 박회윤 · 안세진 · 윤미진 · 임귀숙 · 최은영 · 최진
2003
박미경 · 박선준 · 박성현 · 안세진 · 윤미진 · 이성진 · 이현정 · 최진
2004
김문정 · 박성현 · 안세진 · 윤미진 · 이성진 · 정승화 · 정창숙 · 조은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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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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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김문정 · 김희정 · 박성현 · 안세진 · 윤옥희 · 이성진 · 이특영 · 최은영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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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곽예지 · 김문정 · 김유미 · 박성현 · 윤옥희 · 이수지 · 주현정 · 한경희
2010
곽예지 · 기보배 · 김문정 · 박소희 · 오다미 · 윤옥희 · 장혜진 · 주현정
2011
기보배 · 김문정 · 윤옥희 · 장혜진 · 정다소미 · 주현정 · 최현주 · 한경희
2012
기보배 · 김민정 · 김유미 · 심예지 · 윤옥희 · 이성진 · 장혜진 · 전나영 · 정다소미 · 정지민 · 최현주 · 한경희
2013
기보배 · 윤옥희 · 이특영 · 장혜진 · 전성은 · 정다소미 · 주현정 · 최미선
2014
이특영 · 장혜진 · 전성은 · 전훈영 · 정다소미 · 주현정 · 최미선 · 홍수남
2015
강채영 · 기보배 · 박미경 · 이특영 · 장혜진 · 전성은 · 최미선 · 홍수남
2016
강채영 · 기보배 · 박미경 · 이은경 · 이특영 · 장혜진 · 전성은 · 최미선
2017
강채영 · 기보배 · 박미경 · 이은경 · 장혜진 · 최미선 · 최민선 · 홍수남
2018
강채영 · 박미경 · 안산 · 이은경 · 장혜진 · 정다소미 · 최미선 · 최민선
2019
강채영 · 안산 · 장혜진 · 전인아 · 정다소미 · 조아름 · 최미선 · 최민선
2020
강채영 · 곽진영 · 안산 · 윤옥희 · 장민희 · 전훈영 · 정다소미 · 최미선
2021
강채영 · 안산 · 오예진 · 유수정 · 임해진 · 장민희 · 정다소미 · 최민선
2022
강채영 · 김수린 · 안산 · 이가현 · 이은아 · 임시현 · 정다소미 · 최미선
2023
강채영 · 기보배 · 김소희 · 안산 · 임시현 · 전훈영 · 정다소미 · 최미선
[자격포기] 소속 학교 사정으로 입촌 포기





박성현
朴成賢 | Park Sunghyun


파일:202201.jpg

출생
1983년 1월 1일 (41세)
전라북도 군산시 소룡동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소룡초등학교 (졸업)
월명중학교 (졸업)
전북체육고등학교 (졸업)
전주대학교 (체육학 / 학사)
용인대학교 (체육학 / 박사)
종목
양궁
신체
172cm, 70kg
가족
배우자 박경모, 슬하 3녀
소속
선수
전북도청 (2001~2011)
코치
전북도청 (2011)
감독
전북도청 (2012~ )
대한민국 대표팀 리커브 여자 (2022)
해설
SBS (2016~2023)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어린 시절
2.2. 2001~2003
2.3. 2004~2008
3. 은퇴 이후
4. 수상 기록
5. 여담
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양궁 선수이며, 한국 양궁 최초로 개인전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현재는 전북도청 양궁팀 감독. 170cm의 체구와 잔부상이 없는 신체 조건을 바탕으로 힘의 양궁을 구사했다. 시위를 당기고 놓는 슈팅이 남자 선수 못지 않았다. 힘이 워낙 좋다보니 바람이나 기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2. 선수 경력[편집]



2.1. 어린 시절[편집]


군산시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양궁에 입문했다. 군산에서 중학교까지 다닌 후, 전북체육고등학교에 진학해 선수 생활을 계속했다.


2.2. 2001~2003[편집]


2001년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고향 실업팀인 전북도청팀에 입단했다. 이 당시에는 철저한 무명이었는데, 실업팀에 입단한 첫 해 그 어렵다는 대표 선발전을 통과하며 세계선수권 대표로 발탁되었다. 이 대회에서 선배 김경욱을 결승전에서 연장 3차례 접전 끝에 누르고 깜짝 개인전 우승에 성공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3년 세계선수권에서는 윤미진에게 지면서 개인전 준우승을 차지했고,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어쨌든 한국 양궁이 중시하는 국제 대회에서 계속 대표로 발탁되었다는 것에서 실력을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당시 한국 여자 양궁의 간판은 2000 시드니 올림픽 개인전 및 단체전 금메달리스트인 윤미진이었다.


2.3. 2004~2008[편집]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1위로 대표 선발전을 통과한 후에, 올림픽 본선에서 큰 활약을 했다. 예선 격인 랭킹 라운드에서 682점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1위로 개인전 시드 배정을 받았다. 영국의 앨리슨 윌리엄과의 4강전에서 8년 전 김경욱이 한 것처럼 비슷하게 표적의 정중앙을 맞추어 카메라를 부수는 모습으로 생중계를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며 결승에서는 후배 이성진을 누르고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이어 열린 단체전에서도 중국을 한 점차로 누르면서 금메달을 차지하여 2관왕에 오름과 동시에 일약 신궁 계보의 계승자가 되었다. 올림픽 이후에도 대표로서 기량을 과시하며 건재를 이어갔다.[1]

2005년 아시아선수권 개인전 금메달과 세계선수권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 후배 윤옥희를 누르고 개인전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양궁 선수로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개인전 타이틀을 차지하며 국내양궁 선수 최초 그랜드슬램이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2007년 세계선수권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전 은메달을 차지했고, 베이징에서 열린 프레 올림픽에서 2관왕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 어렵다는 대표 선발전도 다시 통과하면서 2008 베이징 올림픽까지도 참가가 확정되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여자 양궁 단체전에서 중국을 다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통산 3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개인전에서도 결승까지 올라가면서 한국 여자 양궁 역사상 최초로 2연패[2]에 도전했지만, 은메달로 개인전을 마쳤다.

개인전 당일은 폭우가 쏟아지고 경기장의 지형 지물과 맞물려 바람이 종잡을 수 없게 불면서 기상상황이 경기에 많은 변수로 작용하였다. 또한 결승전 당시 박성현이 활을 과녁에 조준할 때마다 관중석에서 느닷없이 호루라기 소리[3]가 나면서 관중의 관람 태도[4]가 많은 공분을 샀다. 박성현의 결승 경기 이전에도 호루라기[5] 소리는 여러 번 나왔고 항의가 빗발쳤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호루라기가 경기 중에 울렸으며, 이는 결승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6]조직위에서 관객 퇴장과 같은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듯하다. 문제의 호루라기 소리는 크래커타임[7]마다 반복 등장하여 경기를 방해하였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 캐치하기 힘든 부분이기 때문에 양궁장에 처음 온 관객의 매너 없는 행동이 아니라 양궁을 하는 사람이거나 최소 양궁을 잘 아는 사람의 악의적 소행으로 여겨진다. 결국 예선을 27위로 통과했던[8] 중국의 장쥐안쥐안에게 1점차로 밀리면서 1984년부터 이어져 온 개인전 한국의 연속 우승이 막을 내렸다.[9] 이 때문에 전성기 시절 월등한 경기력[10] 을 보이고 세계 여자 양궁 최강자로 오랜 기간 동안 머무르며 국내외 경기에서 충분히 많은 업적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살짝 저평가를 받기도 한다.


3. 은퇴 이후[편집]


올림픽 이후 같은 대표팀 동료인 박경모와 결혼을 발표했다. 결혼 후에도 선수 생활을 이어갔지만, 2009년 세계선수권과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후, 사실상 선수보다는 소속팀인 전북도청의 감독의 역할에 더 전념하고 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후배 기보배가 양궁 여자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박성현은 중국에게 개인전 금메달을 빼앗긴 한을 풀게 되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남편 박경모와 함께 SBS 해설위원을 맡아 아래와 같은 말들을 했다.

끝까지 집중해야 돼요.

루틴 해야돼요.

후회없이 활을 보내야 됩니다.

크게 보고 쏴야 됩니다.

상대를 의식하지 말고 본인에게 집중해야 됩니다.

후회나 미련없이 쏴야 됩니다.

한국 남녀 대표팀이 양궁 단체전에서 동반 금메달을 따자 선수들을 칭찬하며 "너희들 어느 별에서 왔니? 너희 별로 돌아가면 안 된다!"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도 남편 박경모와 함께 SBS 해설위원을 맡았다. SBS에서는 박성현과 박경모가 합계 5개의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것을 내세워서 통합 5관왕, 5관왕 커플이라고 광고했다. 한편 중계도 꽤 코믹한 편이었는데, 혼성 단체전에서 김제덕이 화이팅이 넘치지만 안산은 매우 차분한 것에 착안하여 "김제덕은 불같이 뜨겁고 안산은 얼음같이 차갑다"라고 평가했다.[11] 여자 단체전에서는 1번 주자가 더 중요한지, 3번 주자가 더 중요한지에 대해 남편과 논쟁하기도 했다. 반면 남자 단체전에서 김제덕이 2번 주자로써 맹활약하자 2번 주자가 가장 중요한 걸로 합의했다.[12][13]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는 안산을 응원하면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해설위원 시절처럼 이미 쏜 화살은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으며, 결국 안산이 한국 선수 최초 단일 하계올림픽 3관왕이라는 위업을 달성하자 굉장히 기뻐하였다. 안산의 업적은 대한양궁협회와 감독과 코치와 동료 선수들의 업적과 마찬가지라며 한국 양궁계를 찬양하였다.


4. 수상 기록[편집]


올림픽
금메달
2004 아테네
단체전
금메달
2004 아테네
개인전
금메달
2008 베이징
단체전
은메달
2008 베이징
개인전
세계선수권
금메달
2001 베이징
개인전
금메달
2003 뉴욕
단체전
금메달
2005 마드리드
단체전
금메달
2007 라이프치히
단체전
은메달
2003 뉴욕
개인전
은메달
2007 라이프치히
개인전
동메달
2001 베이징
단체전
동메달
2005 마드리드
개인전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2 부산
단체전
금메달
2006 도하
단체전
금메달
2006 도하
개인전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2003 양곤
단체전
금메달
2005 뉴델리
개인전
은메달
2005 뉴델리
단체전
유니버시아드
금메달
2003 대구
단체전
금메달
2003 대구
개인전
월드컵 파이널
은메달
2008 로잔
개인전


5. 여담[편집]


  • 前 쇼트트랙 선수 박승희와 비슷한 점이 있는데, 두 사람 모두 박씨이면서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2관왕을 달성한 선수였다. 그러나 중국 선수에게 금메달을 빼앗긴 피해를 입었지만,[14] 다음 경기 때 금메달을 획득하여 중국 선수에게 당한 과거를 설욕했다. 게다가 박성현과 박승희는 아시아에서 개최된 올림픽에서 SBS 해설위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15]

  • 런던 시가 올림픽 기념으로 지하철 역을 스포츠 스타의 이름으로 바꿀 때, 한국 및 양궁을 대표해서 임페리얼 워프 역이 임시로 박성현 역으로 불렸다.[16]

  • 2004~2005년까지 곰돌이 푸티거를 체스트 가드에 계속 붙이고 다닐 정도로 좋아했다고 한다.


6. 둘러보기[편집]







파일:세계양궁연맹 로고_상하.svg

세계양궁연맹 리커브 랭킹 1위 수성 일수
1,264일 (역대 1위)



파일:세계양궁연맹 로고_상하.svg
World Archery
리커브 여자 세계 랭킹 1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성현
(2001.10.1 - 2003.6.30)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나탈리아 발리바
(2003.7.1 - 2003.8.3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윤미진
(2003.9.1 - 2004.8.3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성현
(2004.9.1 - 2005.6.30)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성진
(2005.7.1 - 2006.10.9)
파일:러시아 국기.svg 나탈리아 에르디니예바
(2007.7.24 - 2007.8.27)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성현
(2007.8.28 - 2008.4.10)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나탈리아 발리바
(2008.4.11 - 2008.7.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윤옥희
(2008.7.9 - 2009.4.24)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성현
(2009.4.25 - 2009.7.29)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윤옥희
(2009.7.30 - 2010.8.15)
[1] 단체전 당시 중국이 240점을 기록했으며, 박성현은 9점, 8점, 10점을 쐈다. 8점을 쏘고 남은 한 발이 남은 상태에서 중국의 장 쥐안쥐안이 웃으면서 춤을 췄다. 당연 10점을 쏘지 못할거라는 예상과 금메달을 따고 방해를 하였으나 박성현은 보란듯이 10점을 쏘고 241점으로 한국이 금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4년 뒤 개인전에서는 중국 관중들의 매너 없는 응원(크래커 타임에 호각불기, 고성으로 욕하기, 페트병 두드리기)으로 인해 박성현이 패배했다.[2] 동시에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상 첫 하계올림픽 2관왕 2연패 도전이었다. 동계올림픽에서는 쇼트트랙전이경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2회 연속으로 여자 1,000m와 3,000m 계주에서 2관왕에 올랐다.[3] 준결승과 8강전에서 장쥐안쥐안과 만났던 윤옥희와 주현정 역시 이러한 비매너 행위에 흔들려서 결국 패배했다.[4] 선수가 과녁에 조준할 때에는 조용히 하는 것이 양궁 관람 시 관객의 기본 매너다.[5] 공식적으로 경기장 반입 금지 품목이다.[6] 14년 후 중국이 두 번째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양궁보다 더 심각한 편파판정이 발생했는데, 쇼트트랙 선수였던 황대헌이준서, 박장혁이 박성현 이어 두 번째 피해자가 되었다.[7] 선수가 화살을 놓기 직전 가장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시간이다.[8] 예선 1위는 박성현, 2위는 윤옥희, 3위는 주현정[9] 사실 장 쥐안쥐안은 전 올림픽 단체전 결승때 중국이 240점 쏘고, 한국이 한발 231점으로 한발이 남은 상태에서 웃으면서 춤췄다.[10] 영상에 의하면 윤미진 조차 국가대표 선발전 당시 박성현은 제치고 2, 3등을 바라봤다고 할 정도였다.[11] 해당 발언은 팬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어 안산 - 김제덕 조합을 얼음과 불의 노래라고 부르게 되었다.[12] 라디오스타에서 김우진과 오진혁에 의하면, 서로 1번 주자(김우진)가 에이스다, 3번(오진혁)이 에이스다라고 말했다.[13] 통념상 2번 주자는 국제대회 경험이 가장 없는 사람의 자리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예외도 많은데, 도쿄 올림픽에서는 일본의 후루카와 다카하루, 미국의 브래디 엘리슨, 대한민국의 강채영 등 경험이 가장 많거나 기량이 가장 좋은 선수가 2번 주자로 단체전을 참가한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2011년 토리노 세계선수권의 임동현, 2015년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기보배 역시 상하이 1차 월드컵에서 2번 주자로 시즌을 시작했으며, 국제 대회 데뷔전을 치른 강채영최미선이 1, 3번으로 시즌을 시작했다.[14]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중국 선수에게 피해를 입는 광경을 중계한 인물은 前 SBS 아나운서 배기완이었다. 박성현은 중국 관중들의 비매너 소음 응원으로 인해 장쥐안쥐안에게 금메달을 빼앗겼고, 박승희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계주 3000m에서 호주 심판의 편파판정으로 실격당하는 것 뿐만 아니라,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개인전 500m 결승에서 상대 선수의 과실로 인한 넘어짐으로 리젠러우에게 금메달을 내줬다. 또한 前 수영선수인 박태환도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다른 중국 선수에게 금메달을 내준 적이 있었다.[15] 또한 두 사람이 중계한 2020 도쿄 올림픽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모두 코로나 19에 열린 올림픽으로 종합 3위를 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두 국가 모두 대한민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 선수들에게 민폐를 끼치면서 '최악의 올림픽'이라는 오명을 받았다.[16] 런던 올림픽 홍보를 위해 런던교통공사는 역대 하계 올림픽 선수 361명을 선정하고 역마다 선수들의 이름을 붙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우리나라 선수로는 박성현과 박태환이 이름을 올렸으며 당시에 올림픽 레전드 맵이라는 명칭으로 지하철 노선도가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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