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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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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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세두 그레이스 박
Se-Doo Grace Park
출생
1985년 12월 2일 (38세)
미국 캘리포니아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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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학력
서울예술고등학교
인디애나 대학교 제이콥스 음대
줄리어드 음악원 (학사)
줄리어드 음악원 (석사)
콜번콘서바토리 (최고연주자과정 졸업)
수상
2010년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 콩쿠르 3위
2011년 자라 넬소바[1] 추모 국제 콩쿠르 우승[2]
2012년 스위스 베르비에 국제 페스티벌 최고의 첼리스트상[3]
2012년, 2015년, 2018년 캐나다 예술평의회 주최 첼로 오디션 탑3 선정
소속
인디애나폴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2015~2016)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 (2016~)
카브릴로 컨템포러리 뮤직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2017~)
링크
파일:Capture.jp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
2. 대학 진학 전 생애
3. '전액장학생' 신화의 시작
4. 첼로 콩쿠르 활동
5. 연주와 강의 활동
6. 여담



1. 개요[편집]


한국계 미국인 첼리스트.


2. 대학 진학 전 생애[편집]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한국으로 돌아와 7세 때 처음 피아노를 시작했으며 음악에 소질을 보이자 지인의 추천으로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첼로를 시작했다. 인문계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서울예고 재학 중 캐나다로 떠났으며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로열음악학교에서 수학하며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 제이콥스 음대에 진학했다.


3. '전액장학생' 신화의 시작[편집]


박세두는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 제이콥스 음대 2학년을 마치고 지도 교수였던 츠요시 츠츠미 교수가 일본 토호 가쿠엔 음악학교의 교장으로 부임하게 되어 학교를 떠나게 되자, 미국 맨하탄에 있는 줄리어드 음악원 학사 과정에 편입 시험을 보게 된다.

전 세계에서 몰린 학생들 중 1순위 지망이었던 티모티 에디 교수의 스튜디오에서는 단 한 명을 발탁한 오디션에서 당당히 합격한다. 그것도 전액장학금[4] 수혜를 받았다. 그 후에 동 대학원에서 석사과정 내내 역시 전액장학금을 받으며 수료했다.

석사를 마친 후에는 LA로 옮겨 콜번 콘서바토리에서 최고연주자과정 (A.D.) 을 마쳤다. 지금은 학비도 있고 많은 것이 다르지만, 박세두가 재학할 당시 콜번 콘서바토리는 재학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학비는 물론 기숙사비, 식비 등 모든 것을 전액 장학금으로 지원했었다.

그 외에 스위스의 베르비에 페스티벌 (2년 연속)을 비롯해 미국의 라비니아 페스티벌, 사라소타 페스티벌, 아스펜 페스티벌 (2년 연속), 메도마운트 페스티벌 등 오디션에 합격해 참가한 모든 페스티벌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심지어 캐나다에서 고등학생 시절, 당시 수학했던 로열음악학교에서까지 전액 장학금을 수혜 받았던 알려지면서 '전액장학생의 신화'로 알려졌다.


4. 첼로 콩쿠르 활동 [편집]


3년에 한 번씩 열리는 캐나다 예술평의회 (Canadian Art Council) 주최 악기 오디션에서 2012년, 2015년, 그리고 2018년 연속 TOP 3에 올랐다.

2012년 오디션 합격의 부상으로 50만 불 상당의 1824년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맥코넬 니콜라스 갈리아노 II를 3년 간 무상으로 대여,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 악기를 가져가게 되면서 외신은 물론 한국의 언론도 이 소식을 발빠르게 알렸으며 이는 첼리스트 박세두라는 이름을 확고히 굳히는 계기가 된다.

관련기사:10대 한인, 200년 된 명품 첼로 연주한다
외신을 잘못해석해 기자는 20대가 훌쩍 넘은 사람을 10대로 만들었다. 줄리어드에 학,석 통합과정은 없다
2015년 박세두는 다시 한 번 오디션에 합격했고 같은 악기를 3년 간 다시 무상으로 대여해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녀에게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3년이 지나 서른이 넘은 나이에 2018년 다시 열린 오디션에 참가, 다시 TOP 3에 들며 무려 10억원이 넘는[5] 악기를 차지했다.

그녀가 2018년 시즌부터 다음 3년 인 2021년까지 무상으로 임대하게 된 악기는 1730년에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뉴랜드 요하네스 프랜시스큐스 켈로니아투스라는 첼로이다.

TOP 3에 3번 연속 든 연주자는 지극히 드물었었고 특히 한국인은 더 드물었기에 외국은 물론 한국 음악계까지 다시 한 번 들썩이게 된다.
전미의 외신은 물론 캐나다 한국일보를 비롯해 한국의 언론에서도 일제히 주목하며 보도했다.

관련기사:95만 불 명품 첼로 잡는 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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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서 보도한대로 3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이 오디션에는 최대 3번까지 합격이 가능하다.
3번 연속 탑3에 들은 음악가로는서 박세두는 이 오디션에 더 이상 응시할 수 없다.


5. 연주와 강의 활동[편집]


15세에 차이코프스키 로코코 변주곡을 협연으로 한국에서 오케스트라와의 데뷔를 했다. 외국으로 건너간 후에는 솔로 및 실내악 연주자로서 미국 전역과 유럽에서 연주를 했다.

솔로 데뷔 이후 자라 넬소바 추모 국제 콩쿠르의 우승자인 그녀를 위해서 헌정되어 작곡된 연주곡으로 연주를 했다. 캐나다 한인 교향악단의 고별 콘서트에서 마지막 협주자로 공연을 했다.

캐나다 로열 콘서바토리의 교수진과 일원으로 구성된 ARC(Artists of Royal Conservatory) 앙상블의 2013-14 시즌의 객원 첼리스트로 초청 되어 캐나다 토론토에서 가장 큰 콘서트 홀 중 하나인 Korner Hall에서의 CBC 라디오 실황 연주를 비롯해 캐나다 서부와 유럽 순회 연주에 참가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 받는 첼리스트로 장르를 가리지 않고 최고의 연주자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었는데 그 중에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로버트 레빈을 비롯해 팝가수 나단 파체코의 PBS 스페셜 무대에 함께했다.

2015년 부터 인디애나폴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했으며, 2016년, 미국의 메이저 오케스트라인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로 자리를 옮겼으며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2018년 여름, 한 달 간의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영국 순회 연주를 마쳤다.

박세두는 학생을 가르치는데 있어서도 탁월한 선생으로 명성이 높다. 정식으로 미국 대학을 비롯한 다수의 경연대회에서 심사위원으로 위촉 되면서 공연 외적 활동도 자연스레 넓혀졌다.

캐나다의 매니토바 대학교와 매니토바 첼로 소사이어티에서 마스터 클라스를 했었다. 줄리아드 스쿨 예비학교 오케스트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콜번 콘서바토리의 성인 실내악 워크숍, 그리고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 부속 아카데미에서 코칭을 했었다.

현재는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 피바디 음악대학에 출강하며 워싱턴의 스튜디오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6. 여담[편집]


  • 처음으로 음악에 입문한 시작한 계기가 피아노 반주자로 교회에서 봉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후에 첼로를 전공했다.

  • 첼로를 전공했지만 음대 입시생의 콘서트 반주를 하는 경력도 있을 만큼 피아노 실력도 출중하다고 한다.

  •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줄리어드 음악원 재학 중 교내 KCCC [6] (한국대학생선교회)의 부회장이었다.

  • 1년에 1번 이상은 교회에서 연주로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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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18~2002) 생전 자클린 뒤 프레과 함께 첼리스트의 '여제'로 추앙받았으며 1962년부터 사망 전인 2002년까지 40년 간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교수로 지냈다[2] 콩쿠르의 초대 우승자이다[3] 상의 명칭은 'Prix Nicolas Firmenich de Violoncelle - '올해 최고의 첼리스트'라는 뜻이다[4] 1년 학비는 6만 불 이상으로 엄청난 금액이다[5] 미화로 95만불이다[6] Korea Campus Crusade for Ch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