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일(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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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참고문헌



1. 개요[편집]


북한의 정치인.

2. 생애[편집]


1922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나 중앙당학교를 졸업했다는 정보가 있다.

1963년 6월, 만포군 인민위원장에 임명되어 1967년 11월 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1974년 6월 20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주 수단 대사로 발령받았고 8월 15일에 신임장을 봉정하였다. 1975년 6월 5일, 에티오피아와의 수교를 성사시켰으며 에티오피아 대사를 겸하였다. 1977년 5월 4일, 북한 대사관이 에티오피아에 개설되었고, 김국태가 신임 대사로 임명되면서 물러났다. 1978년 10월, 조명황이 신임 수단 대사로 임명되면서 귀국했다.

귀국 후 1980년 7월, 자강도 행정경제위원장에 임명된 것이 확인되었으며 1982년 2월, 최고인민회의 7기 대의원에 선출, 예산심의위원이 되었다. 1983년 2월에 자강도 인민위원장에 임명되었으며 1984년 10월, 김만금의 뒤를 이어 평양시 인민위원장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1984년 11월, 김만금 장의위원을 지냈다. 평양시 대표단장으로 쿠바, 페루 등을 방문했으며 1984년 12월, 조선로동당 6기 10중전회에서 중앙검사위원으로 보선되었다. 1985년 2월, 량광일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5년 6월, 인민봉사위원장으로 옮기고 인민위원장 자리를 서윤석에게 물려주었으며 당정 대표단장으로 니카라과, 소련 등으르 방문하였다.

1986년 1월, 비서국 비서로 승진한 리근모의 뒤를 이어 남포시 책임비서 겸 인민위원장에 임명되었으며 1986년 2월, 조선로동당 6기 11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보선되었다. 1986년 7월, 소련을 방문하였고 1986년 11월, 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예산심의위원에 재선되었다. 1987년 4월, 김일성 75세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고 1990년 4월,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최고인민회의 9기 1차 회의에서 중앙인민위원에 선출되었다. 1992년 3월, 현무광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1992년 4월, 김일성 팔순기념 김일성훈장을 또 받아 이중수훈자가 되었다.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7년 10월 2월, 남포시당 대표회에서 김정일 총비서 추대 결정서 채택 보고를 맡았는 등 활동을 이어나갔으나 1998년 9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서 탈락하였고 리영복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사라졌다. 이후 동정보도는 없다.

3. 참고문헌[편집]


  • (最新)北韓人名辭典(서울: 北韓硏究所,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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