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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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삼한공신
개국공(開國公) 광익공(匡益公)
박양유
朴良有

시호
광익(匡益)
생몰년
? ~ ?
1. 개요
2. 약력
3. 생애



1. 개요[편집]


고려 초기의 문관. 여타 고려 초기 인물처럼 생몰연도가 불확실하며 제대로 된 기록도 없다. 현존 기록을 살펴보면 최소 경종, 성종 두 임금을 섬겼다.


2. 약력[편집]


역임
직위
공관어사(工官御事) - 지도성사(知都省事)
공관 장관 - 어사도성 운영 관여
시중
문하시중의 전신
추증
직위
태사
삼사 중 하나
시호
광익(匡益)


3. 생애[편집]


상주박씨 족보에는 시조 사벌국왕 박언창의 손자이며 고려 개국공신으로 시중을 지낸 박욱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자세한 기록이 전무해 박양유에 대해 잘 알기 어렵지만 경종의 신임을 받아 성종 때도 꽤 높은 자리에 있던 것으로 보인다. 성종이 자신의 조카 목종서경에 데려가 개령군 봉호를 물려줄 때 성종의 봉책문을 받든 두 신하 중 하나다. 이 때의 관직은 건축 및 건설 담당 부서인 공관의 장관이자 6관의 부관리자였다. 여기서 계속 승진해 시중 직위까지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
소손녕 침입 당시 임시 편성된 북계 군단
상군사(上軍士)
중군사(中軍士)
하군사(下軍士)
시중(侍中) 박양유
내사시랑(內史侍郞) 서희
문하시랑(門下侍郞) 최량
기타 지휘관
제도(諸道) 병마제정사(兵馬齊正使)
군사적, 외교 관련으로도 꽤 뛰어났는지 서희, 최량과 함께 상군사로 북방에 나가기도 했다. 후 거란과의 교섭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단편적인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이게 끝. 나름 경종의 배향공신인데다 후계자 책봉식의 주역, 북방 군단 지휘 등 굵직한 일은 다 했는데도 열전 하나 없고 가족관계나 언제 태어나 죽었는지도 모른다.

고려사 예지 태묘에 기록된 배향공신 중 개국공신에도 임명된 신하는 시호에 개국(開國) 미칭이 붙어있다. 박양유 또한 시호에 개국이 붙어 있어 그가 고려 개국에도 일조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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