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규(순풍산부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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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순풍투명.png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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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명 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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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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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용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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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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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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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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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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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우 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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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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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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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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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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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식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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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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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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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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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달, 의찬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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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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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등장인물은 순풍산부인과/등장인물 참고




파일:순풍산부인과 박영규 2.jpg
이름
박영규(朴榮奎)[1]
출생
1956년 4월[2]
나이
1998년 기준 43세[3]
중야간식전[4]
구차방주
본관
밀양 박씨 규정공파[5]
직업
학원강사 → 영어 학습 비디오 판매업[6] → 번역가 → 학원강사 → 학원주임 → 부원장
좋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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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화투, 방귀총, 개고기, 돈 내기, 갑작스런 금전적 이득, 케찹, 공짜밥, 공짜술, 회, 아구찜, 깐풍기, 서류가방[1], 시원이[2], 밥풀 튀기기[3], PC통신, 독립하는 것[4], 돼지꿈[5], 소고기 장조림[6], 딸이 남궁연 괴롭히는 것, 보약[7] , 딸에게 엉뚱한 가정교육을 하는 것 등등

싫어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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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간호사, 최주봉[1], 고상순, 김미화, 돈 쓰는 것, 노구, 호돌이비디오[2], 형제세탁소[3], 벼락 맞는 것, 파업에 참여하는 것, 꼴찌족들(노영삼, 김인종, 정두섭, 이복건), 정배가 개 무덤 가지고 요구하는 것[4], 정배의 방귀총, 미달이가 화투치는 것, 김선생오중이가 냉장고 귀신이라 말하고 음식 숨기는 것, 이창훈이 끼치는 사소한 피해[5], 의찬이한테 구구단 지는 것, 송년회, 전세사기 당하는 것, 이봉원[6], 장인어른이 용가리 사위와 대결 붙이는 것, 식구들이 미달이에게 용돈 주는 것, 남궁연, 김찬우[7], 이창훈, 권오중 등과 돈 내기에서의 패배, 원장이 수학과 김주임만 챙기는 것[8], 장인어른, 장모님, 아내의 심부름과 각종 구박들, 병원 식구들이 이선생 편드는 것, 아내가 직장 동료 부인들에게 갑질하는 것, 장인어른이 내기 불복하는 것, 한테 물벼락 맞는 것, 헌혈, 이 출산 테이프에다가 김경호 노래 녹화 하는 것[9], 잡지에서 무직으로 표시 되는 것, 이 원장 아들 때리는 것, 스피드왕 번개 테이프 볼려고 하는 것[10], 학원 화장실 낙서[11], 장인어른에게 혼나거나 꾸중을 듣는 것, 장인어른오중이하고만 놀아주는 것, 장모님이 한입씩 음식 뺏어 먹는 것, 아버지 칠순 잔치에 아무도 안 오는 것[12], 미달이오중이 노트북 박살내는 것[13], TV 뉴스에 나오는 것[14], 권오중이 본인에게 묻지 않고 김찬우에게 닭똥집 주고 김찬우도 본인에게 묻지 않고 먹는 것[15], 장인어른이 짜가양반이라고 놀리는 것[16], 빨간색[18], 병원 커피자판기 사업 망하는 것[19], 느림보 아저씨[20], 개[21], 미래제과[22], 장인어른이 일본식 발음으로 말하는 것[23], 처제들[24]이 버릇없이 구는 것과 말을 안듣는 것, 딸이 남궁연과 친하게 지내는 것, 잘 나오던 방귀가 안 나오는 것, 도전 나도스타에서 입상 못하는 것[25], 민대가리가 술자리에서 돈 내라고 하는 것[26] 등등

배우
박영규

1. 개요
2. 특징 및 행적
4. 여담


1. 개요[편집]


마음을 고약하게 쓰니 주위에 사람이 모이나. 사람으로 밥벌어 먹는 사람이 사람이 안꼬이니 돈이 모일리가 없지. 마음을 곱게 쓰라고 해. 마음을.

- 208화에서 점쟁이가 박영규의 사주를 보고 한 말[7]

[8]


아유! 장인어른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세요!

- 본 작을 넘어 박영규라는 배우를 상징하는 대사


미달아!

- 자신의 주특기인 방귀총을 쏠때마다 딸을 부르는 대사.[9]


아이고 배야!

- 본 작에서 박영규의 유행어 중 하나.[10]


순풍산부인과의 등장인물. 배우박영규.[11]

오지명사위이자 오미선남편. 오지명과 더불어 가장 많은 에피소드들의 주역이 되는 중심 인물이자 마지막인 682화까지 순풍산부인과와 함께 하는 인물 중 하나이자 사실상 또다른 주인공. 일명 미달이 아빠라고 부른다. 작중 고향은 강원도 강릉시이고,[12] 445화 마지막 장면에서는 1956년 4월 생이라고 나온다.[13]


2. 특징 및 행적[편집]


이 시트콤 내 최강의 빈대 레전드 캐릭터[14]로, 어려서 봤을 땐 오지명은 역정 좀 잘 내는 할아버지에서 커서 보니 불쌍하고 고생 많은 고길동스런 캐릭터인 것에 비해서, 박영규는 어려서 볼 땐 얄밉지만 불쌍한 정도였는데 커서 보니 안하무인, 내로남불, 후안무치 등등 소인배에 딱 부합되는 인물상을 가지고 있다. 암을 유발하는 캐릭터 설정에, 배우 박영규 본인의 국내 최정상급 연기력까지 더해져서, 특히 몇몇 에피소드에선 가히 주먹을 쥐게 만들 수준의 노답력을 자랑한다.[15]

명대사는 장인어른 왜 그러세요~, 아이고 배야!에이씨 진짜!라고 징징대면서 침대에 드러누운 뒤에 마구마구 날뛰는 것이 가장 유명하다.

떽떽거리는 지명만 보면 늘상 구박 받는 것이 일상인 불쌍한 사위지만,[16] 뻔뻔함, 불결함, 쩔어주는 식탐, 자기중심적, 내로남불, 말 바꾸기, 표리부동, 빈대, 탐욕, 찌질함, 속좁음, 추접스러움, 허영심, 유치함, 반칙왕, 아첨, 구두쇠, 후안무치, 덤벙거림, 배은망덕, 꼰대, 고마움을 모름, 자기합리화, 이중잣대, 책임전가, 적반하장, 정신승리 등 인간의 거의 모든 부정적인 모습을 뚜렷이 보여주는, 정상인이 얼마 없는 수준인 해당 시트콤 내에서도 그야말로 끝판왕 격인 인물.[17]

하지만 그에 비하면 본인이 주인공격 인물인 것도 있고, 원장인 오지명의 맏사위라는 점도 있어서 그 행적에 비해서는 주위사람들에게 대단히 좋은 대우를 받고 살고 있다. 오원장 집 장녀인 아내 미선과도 나이차가 12살이나 난다. 심지어 장모가 아내 오미선을 19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낳은 탓에, 장모와 7살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지명의) 늦둥이 막내딸이자 막내처제인 혜교와의 나이차는 22살 차이로 딸이라 봐도 무방하다.[18] 이런 나이차도 있고, 장인어른을 제외하면 딸부잣집의 유일한 남자이자 그래도 먹물 좀 되고 맏사위라는 점이 크게 작용해서 매번 자신을 갈구는 지명을 빼면 의외로 상당히 편하게 살고 있다. 오중이나 간호사들은 물론 의사인 찬우, 창훈 등 주변인물들도 원장인 지명과 고용관계로 얽혀있거나 딸과의 연애관계 등으로 항상 연결이 돼 있기 때문에 영규의 진상짓을 알면서도 박선생님이나 형님이라곤 꼬박꼬박 부르면서 대우해주는 편이다. 당장 오중네 집에 가면 인사는커녕 바로 냉장고로 직행해 맥주나 기타 간식거리를 찾으며 심지어 마땅히 먹을게 없으면 왜 이렇게 식량고가 부실하냐고 타박까지 한다. 거기다 부인인 미선은 영규가 사고를 쳐도 거의 모든 상황에서 남편 편을 1순위로 들어준다. 사실 능력 자체도 나쁘지는 않은 편이다. 대형 학원의 강사 일을 하다 무리하게 벌인 사업이 실패해서 장인 집에 얹혀살고 있지만, 문제집 출제위원이 되거나 영어 관련 책을 출판하거나 번역 일을 하는 것을 봐도 평범한 동네 보습학원 영어강사로는 오버 클래스 수준이다. 김병욱의 다른 시트콤인 지붕뚫고 하이킥에 나오는 유사한 성격의 사위 캐릭터인 정보석과 비교하자면 대단한 능력자다.[19] 특히 결국엔 자기 힘으로 학원 부원장까지 승진하게 되고[20], 극 중반엔 계속 인기 없는 강사의 모습을 보였지만, 후반에 가서는 수강생이 너무 많아 힘들다는 투정을 부릴 정도의 초특급 인기 강사이자 수능 출제 문제도 다수 예측할 정도의 쪽집게 강사로 진짜 일타 강사의 모습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정말 오버클래스의 어마어마한 능력자다. 물론 그 시대상답게 발음이 유창하기보단 전형적인 한국식 된장발음의 영어를 구사하며 미국에서 살다와 발음이 유창한 학생을 만나면 당황하거나 열등감을 느끼는 등 회화능력은 부족하고 오로지 문법에만 특화된 그 시절 영어선생이라고 볼수 있지만 그렇다 해도 엘리트 급인건 사실이다. 다만 씀씀이와 집에서의 대우를 보면 능력 대비 수익은 처절하게 낮은 듯 하다.

자녀 교육도 완전 빵점짜리인 막장 부모로, 가령 428화만 봐도 훈육을 시킨답시고 간지럼 태우기, 높은 곳에 올려서 공포에 질리게 하기, 이불 덮어 가두기, 수염으로 얼굴 비비기, 거꾸로 매달린 채로 돌리기 등을 해서 공포에 질린 미달은 밖으로 나갔고, 다른 곳으로 출장을 갔다가 귀가하는 길이었던 지명이 올 때까지 집에 안 들어오는 상황을 만들었다. 미달이의 자초지종을 다 들은 오지명이 정말 극대노해서 이딴 게 훈육이냐고 호통을 쳤고,[21] 결국 박영규는 오지명에게 양민학살급의 참교육을 처절하게 당해야 했다. 다만 가족에 대한 사랑까지 없지는 않아서, 먹을 것이나 돈이 생기면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이 미달이와 아내 미선이고,[22] 표인봉과 태란이 사귄다고 착각했을 때는 자신이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을 때 가정이 어떻게 될지를 상상하다가 평화롭고 아름다운 일상을 보내는 가족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도저히 자신의 손으로 가정을 박살낼 수는 없다며 사람들 모르게 표간과 찬우 등에게 직접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어린애가 돈맛 보면 안 된다고 미달에게 주는 용돈이나 세뱃돈을 갈취하면서 은근히 눈치를 보며 미달이 용돈 받기를 호시탐탐 노리다가 잽싸게 채가는 등[23] 어린 자식의 물건도 뺏어가는 못된 인성을 자랑한다. 게다가 미달이 그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해서 남의 집 냉장고 함부로 터는 모습이나, 적반하장으로 따지는 빈대짓, 진상짓을 그대로 따라하면 훈육은 커녕 그걸 자랑스러워 하는 등 현실이라면 인간으로써는 절대 상종해선 안 될 인간이다.[24]

사람이 이렇게까지 얻어먹기를 좋아하고 인색하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과거 가난한 집에서 7남매와 함께 지내다 보니 먹을 것이 늘 모자랐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뭔가가 생기면 동생들이 달려들어 먹어치우고, 이를 뺏어먹을 수가 없었던 영규는 밖에 나와 물로 배를 채우고는 했는데, 우연히 친구 집에 갔다가 친구네 가족들이 정답게 밥을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입맛을 다시다가 얻어먹게 된다. 그 이후부터 이런 인색하고 얻어먹기 좋아하는 성격이 청소년기에 완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하여튼 그 한 번의 일로 인색한 성격이 지금까지 쭉 이어졌던 것을 보면 그런 가난했던 과거가 영규에게는 꽤나 트라우마가 되었을 것이다. 다 사람들도 바보는 아닌지라 박영규의 얌체짓은 알고 있으며, 장인인 지명은 "난 너 흉내내려 해도 못 내겠어!"[25], "저 놈 하는 짓만 보면 진작에 부자가 됐을 것 같은데!", "사람 믿지 말라고는 했지만, 너어는 진짜!" 등의 식으로 갈구고, 성질 좀 있는 찬우나 할 말은 하는 성격의 소유자인 남궁연도 이것을 지적하다가 영규가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통에 싸워서 잠시 틀어지기도 했다. 그나마 무던한 성격인 창훈과 오중은 그냥 넘어가는 편이지만, 결코 몰라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559화에서 오중이 일감이 떨어져 돈에 쪼들리자 영규의 행동 패턴을 따라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26] 사정을 아는 창훈이 식사자리에서 웃으며 요즘 오중이 '리틀 박영규'로 통한다고 농담조로 말을 했음에도 정색하며 "내가 박영규를 닮았다고!? 내가 형님을 닮았단 말이야?!"라고 경악하면서 반문하고, 넋이 나간 듯이 자조적으로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여줄 정도다.

얌체짓에만 그치지 않고 우기기, 나이 들먹이기, 적반하장으로 성내기 등 하여튼 비호감 짓들엔 아주 정평이 나 있으며, 표간호사오랑우탄이나 이빨 드립 등으로 놀리는 등, 만만하다 싶으면 막말도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이래저래 공인 혐오&진상 캐릭터다. 한 번은 자신이 인심을 너무나 잃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아내 미선에게 물어본 뒤 그제서야 그 이유를 깨닫고는 바뀌어보려고 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결국 자신도 고작 이틀만에 포기해 버리고 원래대로 돌아왔다. 장인이 외국에서 모두에게 선물을 부쳤는데 그걸 함부로 열어보고 자기 거랑 바꿔치기하거나 아예 싸구려 국산 물건으로 바꾸고 좋은 건 혼자 독차지하는 등, 과연 상식인은 커녕 사람은 맞는지 심히 의심스런 수준으로 최악의 인성을 자랑한다.

가난한 집안의 명문대 출신에 잘 나가던 영어 강사였다는 설정 때문에 자신의 지능과 두뇌에 대해서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다. IQ 148을 자랑하는 김찬우와 고차원 문제를 가지고 대결할 때, 오태란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에 나오는 문제라는 말을 하자 잠시 혹해서 개미 소설을 피려고 하다가 고작 이것 밖에 안 되는 사람이냐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스스로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만 김찬우가 거의 다 풀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하게 소설을 배껴 결국에는 승리하는 염치없는 모습으로 마무리 되었다.

146화에서는 지명이 다른 간호사들은 합쳐서 15만원을 방송국에 수재의연금을 내고, 찬우는 50만원을 냈는데, 지명은 혼자서 10만원밖에 수재의연금을 내지 않아서 만회하기 위해 천리장성 회식을 하고 영규에게 100만원을 방송국에 수재의연금을 내라고 심부름을 보낸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뉴스에 '순풍산부인과 박영규 100만원'이라고 대문짝만하게 나오자 지명이 기절초풍하며 영규에게 따진다. 영규는 방송국에 전화하는 시늉을 하고[27] 지명은 노발대발하며 끝난다. 참고로 1990년대 후반 당시 100만원이면 아이스크림이 500원 정도였으니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

167화에서는 영규가 지명에게 은사인 황 교수의 고희 선물로 송이버섯을 주라는 심부름을 가지만, 송이버섯을 그만 버스에 놓고 내리는 바람에 선물을 잃어버리게 된다. 수중에 1만원밖에 없었던 영규는 그 대신 슈퍼마켓에서 과자 종합선물세트를 구입해서 황 교수에게 전해주고 식사까지 대접받고 왔다. 다음날에 황 교수가 노발대발해서 그의 아들이 병원에서 일하고 있던 지명에게 돌려보내고, 지명도 어이없어하면서 분기탱천해서 잠시 집으로 올라온 뒤 영규에게 "네 눈에는 이게 송이버섯으로 보이냐?"라고 일갈한다.[28]

188화에서는 영규가 첫 월급을 받았는데 미선과 미달을 제외한 식구들에게는 4장에 1만원 하는 티셔츠[29]를 사왔고, 미선, 미달과 함께는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갈비를 나누어 먹었다. 이에 경악한 나머지 식구들이 영규네가 자고 있는 사이에 구운 새우를 다 먹어버리는 등 왕따를 당한다.[30] 그래서 영규가 분위기를 만회하기 위해 식구들을 위해 한상 차려놓고 10만원짜리 상품권을 경품으로 추첨하겠다고 했으나, 미달 또한 참가하겠다고 했는데 미달이 당첨되는 바람에 계획이 일그러졌다![31]

236화에서는 영규의 학원 원장이 초대를 해서 다른 동료 강사들은 모두 하나같이 값비싼 고급 선물들을 준비해 온 가운데 영규만 별볼일 없는 선물을 준비해 왔다.[32] 영규가 급한 마음에 은행 현금인출기를 찾아다니지만, 당시 은행 현금인출기는 늦게까지 운영하는 곳이 없었고, 편의점에도 현금인출기가 없었다. 그래서 태란에게 선물이 될 만한 걸 가져오라고 해서 어찌저찌 미선에게 건네서 원장에게 선물을 주는 데 성공하지만, 선물의 상태는 굴비를 몇 마리 먹고 과일들을 조각나거나 몇 개 없어서 원장 부부를 경악하게 하였다.

그래도 동네 반상회(홍제동 3통 8반) 반장이기도 하며, 평소에는 자타공인 최고의 빈대짓에 각종 민폐를 저지르는 캐릭터이지만, 숙적 고상순만 만났다 하면 반감이라도 작용하는 것인지, 이상할 정도로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대쪽으로 돌변한다.사실 이렇게까지 사람이 변하는 이유는 고상순이 영규마저도 도저히 못 봐줄 정도로 인격이 더 개막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후반으로 갈수록 보여주는 영규의 인성 역시 고상순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라 어찌 보면 일종의 동족혐오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반상회 때 일을 아줌마들이랑 처리하는 모습도 그렇고 , 일단 자리에 앉혀주면 자신의 의무는 완수하려는 책임감은 갖추고 있다. 아내인 미선과의 부부애도 돈독하다. 물론 남들에게 잘 보여서 생기는 지위를 생각해서 얼굴에 철판을 깔 수도 있고 그 성격이 어디 안 가는 탓에 이걸 반상회 아줌마들도 눈치챘는지 영규가 아버지 칠순잔치 때 버스까지 대절해서 초대했는데, 아주머니들 중에서 단 한 명도 찾아오지 않았다. 물론 당시는 직장이 주6일제였고, 장소가 지금도 서울에서 상당히 장거리인 강릉이라 엄두가 나질 않았겠지만, 영규에게 따로 못 간다고 말 안 하고 단체로 꽃놀이를 간 걸 보면 영규의 인망을 대충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적인 공간에서 이렇게 인성에 비해 편하게 사는 것에 비하면 나이 먹은 아저씨라서라고는 하지만, 학원에선 이상할 정도로 인기가 없다. 학원은 영규가 거의 유일하게 상식적으로 살고 있는 곳이라 해도 무방한데다가 설정상 실력이 좋은 영어강사이기에 더욱 신기한 노릇이다.[33] 546화에서 지난 5년간의 스승의 날은 영규에게 트라우마와 같았지만, 마침내 2000년 스승의 날, 학생 1명이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양말을 선물로 주자 너무나 감격해서 그 양말을 손에 차고 기뻐했을 정도였다.

173화에서 면접을 보고 175화부터 첫 강의을 하게 되었는데, 첫 강의에서부터 영철이라는 학생이 미국에서 살다 와서 영규보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면서 영규가 틀린 것도 거침없이 지적해준다. 그 뒤 영철이에게 빵과 주스를 사주며 "틀린 걸 지적하지 말라!"라고 부탁해보고 밤새워서 코피를 흘려가며 수업 준비를 하지만 그 다음날 영철이 이사 때문에 다른 학원으로 가면서 공쳤다.

224화에서 철수라는 학생이 며칠째 무단결석하여 철수의 집에 직접 찾아가 학원에 나오라고 잔소리하고, 그것도 모자라 철수 오토바이 뒷자리에까지 얻어 타면서 철수와 친구들이 노는 노래방까지 따라간다. 그리고 마이크를 잡으며 철수에게 "난 널 사랑하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다음날 철수는 학원에 나오지 않아서 영규가 철수가 출석할 때까지 수업을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마침내 철수가 나타났으나 그저 학원에 두고 간 시계를 찾으러 왔을 뿐이었다. 결국 영규는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을 이어가면서 끝난다.

270화에서 영규의 수강생이 점점 줄어서 폐강될 위기에 처하고, 어느 날 학생인 민우가 그만두기로 영규에게 알리지만, 영규는 민우를 데리고 밥도 먹이고 안방에까지 데려가 용돈도 주고, 심지어는 클럽에까지 같이 놀아준다. 그런 결실이 통했는지 다음날에 민우가 수업에 나왔으나, 대신 다른 학생들이 모조리 다 그만두는 바람에 다른 강사의 반으로 편입되어서 결국 폐강되고 말았다.

본래 당시 여고생이었던 오미선의 과외교사였다가, 지명 부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다. 이 때를 회상하는 태란의 말에 의하면, 지명에게 무진장 맞았었다고 한다. 결혼 이후 꽤 잘 나가는 영어 강사로서 큰 집도 사고 잘 살았으나, 강의용 비디오 테이프를 만들자는 꼬임에 넘어가 큰 돈을 들였다가[34] 쫄딱 망했고, 아내 미선에게 미용실을 내 주기 위해서 빌린 돈까지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그야말로 알거지 신세로 전락했다. 그 뒤로 채권자들과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며 단칸방에서 연탄가스를 마시고 사경을 헤매는 등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삶을 살다가 결국 처가에 1달만 얹혀 살겠다고 머리를 조아리고 들어가서 어쩔 수 없이 처가살이를 하게 되었으나, 그 뒤로도 계속 처갓집에서 눌러앉아 살게 되었다.[35]

그리고, 독립을 선언한다고 하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463화464화가 지명 - 용녀 부부의 이런저런 간섭들 때문에 본인들이 하고 싶은 것들도 제대로 못 하는 통에 참다 못하여서 독립 선언을 하고 이사를 가는 에피소드인데, 이중계약 사기를 당하고 하루도 안 되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에피소드이다. 그래도 그래도 1년 후에는 기어이 독립에 성공한 모양이다.

그 나름대로는 업계에서 경력이 화려하다 보니 작품 초반부에는 유명 대형 학원 강사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으나, 정말 갖은 이유로 전부 실패하고 결국 동네 보습학원 강사가 되었다. 나중에는 영어과 주임으로도 승진한다. 중반부에 학원을 옮기느라 잠시 백수일 때 한 잡지사에서 오지명 원장을 취재했는데, 기사에서 사위 박영규(무직)으로 소개되었다. 잡지를 받아본 영규 가족이 자존심이 상해 잡지사를 찾아가 수백 수천 부 기사에 일일이 '학원강사' 스티커를 덧붙이는 장면이 압권이다.[36] 결국 100부를 다 못 붙이고 영규와 미선이 쫓겨나게 되고 영규와 미선이 피곤에 절어서 자고 있는데 영규의 머리 위에 학원강사 스티커가 그대로 있는 걸 클로즈업 하고 끝난다.

항상 남의 집(특히 김의찬의 집)에 가서 냉장고부터 뒤지고 먹을 거 밝히고 돈 안 내는 지독한 빈대로 나온다. 그리고 주변 인물들에게는 툭하면 방구총을 쏘곤 했는데, 어느 날 본인의 방구총을 가족들이 흉보는 것을 보고 한동안은 안 했으나, 언젠가부터 은근슬쩍 재시작했다. 후속작에서 카메오 출연했을 때도 미달에게 자주 쐈다. 그러다가 노구에게 남의 집에 와서 무슨 이런 드러운 총을 쏘고 있냐며 욕 먹는 건 덤이다.

그러던 사람이 극후반부엔 뜯어먹기 기술에서 자신을 압도한 최주봉에게 연거푸 당하거나, 다른 인물의 에피소드에서 평범하게 조역으로 활동 및 가족애가 좀 드러나는 에피소드도 나오는 등 어그로와 발암력은 그래도 아주 약간이나마 낮아지게 된다. 등장인물들도 "박영규가 뜯어먹는 건 당연한 거다!"라고 하며 해탈한 것도 있다. 물론 그 빈대 붙는 클래스가 어디 간 건 아니라서 자기가 친 사고가 주위의 모든 사람을 불행으로 빠뜨리고도 정작 본인은 태풍의 눈 마냥 태평하거나, 부원장 자리를 얻기 위해서 인망이 두텁던 라이벌 선생에게 누명까지 뒤집어씌우는 등[37] 막장인간스러운 모습은 끝까지 유지되었다.

배우 본인의 특성을 살려 작중에서도 노래를 잘 한다는 설정도 있었다. 누가 노래를 부르면 화음을 넣거나 노래경연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돈에 얽히지만 않으면 그래도 의외로 상식적인 면모를 많이 가지고 있긴 하다. 물론 박영규의 거의 모든 에피소드가 이 관련돼 있는 게 문제다.

한 번은 그의 모든 꼼수를 다 간파한 친구들이 영규를 몰아세워서 술 한 번 얻어먹어 보려고 했는데, 외통수에 걸린 영규는 그대로 도주해 버렸다. '그 날 나는 (술값 35만원 아끼려고) 30년지기 친구 3명을 잃었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라는 멘트가 압권이라[38] 많은 시청자들이 그의 인물됨의 지표로서 기억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건 영규가 오중과 창훈에게 돈 안 쓰고 술과 밥 얻어먹기 비법을 고수로서 하수들에게 전수해 준다는 식으로 선심이나 쓰듯 공개한 수법들의 마지막 사례인데, 사실상 이 수 년간 내가 이 수법으로 니들 수십, 백만원어치 이상도 벗겨먹어왔다고 부끄러움도 없이 광고나 하는 꼴이다. 본인 진상 짓을 어차피 다들 알고 지내다 보니 새삼스럽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런 걸 자랑이랍시고 밝히는 것부터가 인성이 어떤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셈이다.

작중 박영규가 그렇게 빈대붙으면서 악착같이 모으는 돈들은 대부분 자신의 강릉 친가로 간다. 특히 월급 7-80만원[39]으로 모은 돈들을 가지고, 강릉의 부모님에게 보내거나 사정이 어려운 동생들에게 전달해주곤 한다. 심지어 사정 어려운 동생에게 빚 보증을 쓰거나 1,000만원 가까이 대출을 받아 지원해줬다.[40] 정작 본인이 얹혀사는 처가에는 첫 월급에 돈 아깝다고 동네 10,000원 4벌 티셔츠나 사 준다는 양반이 고향집에는 100만원이고 200만원이고 그 거액을 맘대로 보내니 내로남불도 이런 내로남불이 없을 정도다.[41]

하지만 그가 빈대짓을 하는 데에는 나름 속사정이 있다. 413화에서 보면 어릴 적에 워낙 집안이 가난했다고 한다. 게다가 형제도 7남매나 된데다가[42] 밥도 부족해 어린 동생들에게 밀려서 늘 굶고 다녔다고 한다. 이러한 집안사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빈대짓을 했던 것이다. 이렇게 워낙에 얄미운 짓을 골라 하는 캐릭터여서 김병욱도 박영규도 둘 다 걱정들을 많이 했지만, 박영규의 능청스럽고 비굴한 연기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서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가 된다. 얌체같은 짓을 골라서 하지만, 오히려 본인이 된통 당하는 에피소드도 많다. 특히 후반부에 최주봉한테 된통 연속으로 당한 건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로 꼽는다. 최후반부에 갈수록 학원에서 일도 많아지면서 어느 정도 예전에 비하면 수입도 짭짤해지다 보니 더는 맨날 얻어먹고 도망가지는 않는다. 헌데 이건 뜯어먹을 상대들인 권오중, 표인봉, 오지명 등이 하차한 통에 더 이상 빈대 붙기가 불가능해져서 그렇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밉상짓의 대가로 302화에서는 식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박영규가 아버지로부터 경주시 황남빵, 호두, 건문어, 건과일, 육포, 과자 등을 한 상자 선물받았는데, 박영규는 건문어만 식구들에게 조금 나누어주고 나머지 간식들은 침대 밑에 숨겨두고 혼자만 꾸역꾸역 먹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용녀가 침대 밑에서 그 상자를 발견하고 태란, 혜교까지 불러서 경악을 금치 못한다[43]. 영규가 나중에 미달이 침대 위에서 본인의 간식들을 먹고 있는 것을 보고 경악하자 할머니가 찾았다고 하면서 할머니랑 이모들이 이런 거 혼자 먹었다고 욕했다고 했고, 뒤늦게 상자를 들고 능청스럽게 거실로 내려와서 다 먹은 줄 알았는데 남았다고 같이 먹자고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다음날부터 영규는 식구들에게 월급날 대접하겠다고 했다가 무시당하고, 다른 가족들과의 대화에 참여해도 본인의 말은 죄다 무시당하고, 만회를 위하여 모둠회 두 접시를 대짜로 사 왔음에도 식구들이 무시해서 결국 방에서 미달이와 같이 먹었다. 결국 영규는 사태 수습을 위하여 강릉에 가 있는 아내 미선에게 전화하지만[44], 미선조차도 본인 같아도 싫어하겠다고 핀잔을 주면서 내일 일찍 가겠다고 하였고, 어쩔 줄 몰라 하던 영규는 다른 식구들이 약수터에 가려던 도중 태란이 올 때 새우를 좀 사다가 해 먹자고 하자 최후의 수단으로 새우튀김으로라도 만회하기 위하여 밖으로 나가서 새우튀김 재료를 사 온 뒤 그것을 만들어서 기다린 뒤 다른 식구들이 귀가하자 식구들에게 권해 주었지만, 그것조차도 끝까지 외면당해서 영규 혼자서 눈물을 흘리며 간장을 찍어 먹는 것으로 끝난다[45].

그리고 이러한 밉상짓과는 별개로, 은근 불쌍한 모습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도 몇몇 보인다. 257화에서는 어떤 남자아이가 방 유리창을 깨고 도망간 걸 목격하자, 그 아이를 추격한 끝에 집에 찾아가서 유리창값을 배상해달라고 요구했더니 아이의 아버지가 오리발을 내민채 꺼지라면서 문전박대 시켜서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다가 이판사판으로 박영규가 그 집 들창을 떼어왔으며 이에 복수한답시고 그 집 주인도 영규집으로 가서 영규의 방문을 떼어가고 이에 열받은 영규는 결국 아예 그집 대문까지 뜯어버리고 결국 몸싸움까지 나서 경찰서까지 갔다. 경찰이 추궁을 하자 아이가 자백을 함으로써 결국 유리창값을 기꺼이 받아낸다.

이와 반대로 312화에서는 미선이 기원에게 떼인 돈 100만원을 다시 되돌려 받으려고 그가 운영하는 약국[46]에 찾아갔으나, 기원은 처음에는 약국이 장사가 안 된다[47], 손님들이 돈을 안낸다[48], 제약회사에서 수급이 들어오는데 15만원이 없어서 미칠 지경이라면서 은행이라도 털도 싶은 심정이다 등의 별별 말도 안 되는 핑계들을 대면서 돈을 자꾸자꾸 안 줬고, 잠시 후에는 오히려 본인한테 15만원만 꿔 달라면서 적반하장스럽게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밤에 귀가하던 영규가 우연히 기원이 아우디를 몰고 수박을 한 통 사서 귀가하는 것을 보고 경악해서 다음날에도 찾아갔지만, 다음날에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돈을 자꾸 안 주자[49] 급기야 본인이 가져간다면서 계산대로 들어가서 돈통을 열어보자 십원 주화 하나도 없었다[50]. 돈이 많다는 걸 확인한 영규에게 본색을 드러내며 영규를 약국에서 내쫓고 약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 뒤 문을 잠거버렸다. 그래서 영규는 약국 입간판을 뺏어오면 아예 폐업해버리고 돈을 돌려 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기원은 다음날에도 계속 입간판을 제작해서 세워둘 뿐이었다[51]. 결국 입간판을 엿새에 걸쳐서 6개나 집에 들여놓고도 돈을 끝끝내 받아내지 못한[52] 영규의 완패로 다른 약국들에 입간판도 못 파는 처량한 신세가 되며 끝난다.

이 외에 박미달이 립스틱으로 영규 옷을 묻히고, 자기 아는 친구 소개팅 주선해주려는 모습을 목격한 미선이 바람 피는 걸로 오해하고 저래놓곤 미선은 남편 몰래 학교 남자 동창[53]이랑 만나다가 들키는 내로남불스러운 모습으로 보여준 에피소드나, 박미달이 계속 영규 말 안 듣고 본인이 근무하는 학원 원장 아들 정태를 괴롭히다가 결국엔 그만 팔까지 부러뜨려버리는 만행을 저지른 바람에 개고생하는 에피소드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레전드는 536화로, 자신의 아버지의 칠순잔치를 위해 사람들을 초대하고 버스 대절까지 하는 등 평소 그 답지 않은 모습을 보였지만, 문제는 잔치 장소가 하필이면 그의 고향인 강릉인지라 사람들은 그 머나먼 강릉까지, 그것도 당일치기로 가기엔 시간적으로 꽤 부담스러워했다는 거고[54] 결국 나중엔 다 다른 약속이 있다는 식으로 빠져서[55] 아무도 안 오는 바람에 결국 어쩔 수 없이 혼자 쓸쓸히 눈물 흘리면서 버스 타고 강릉으로 간 레전드 에피소드이다. SBS 공식 유튜브 채널의 해당 에피소드 영상. 댓글 중 마지막에 영규가 눈물 흘리는 장면을 두고 버스 대절비가 아까워서 우는 것이라는 댓글이 다수의 추천을 받아 올라가기도 했다. 참고로 버스기사는 야인시대에서 조봉암 역할을 맡았던 한춘일이다.

그 외에 350화에서는 아내인 미선과 상의도 없이 동생[56]에게 100만원을 보냈다가 참다참다 미선이 폭발하자 자리를 피하려다 밀쳐진 미선이 장롱에 부딪히며 쓰러지자 서러워서 펑펑 울고, 이에 온 지명 일가가 다 와서 영규에게 집중포화를 퍼부은 일이 있었다. 결국 크게 소외감을 느낀 영규는 집을 나가 지하 창고의 매트릭스에서 혼자 지내며 라면 끓여먹고 신문지 덮고 자며 청승을 떨다 앓아눕게 되는 처량한 신세가 된다. 게다가 그 찌질한 꼴을 발견한 게 하필이면 물건 놓으러 온 표간호사라 병원 식구들에게도 다 알려지게 된 것은 덤. 그래도 그 한 편 잠깐 힘들고 결국은 무사히 돌아오고도 원래의 진상 짓을 반복하는데다, 평소의 적립해 온 쓰레기짓 대비 응보나 참교육당하는 비율이 너무 낮기 때문에 불쌍한 감정보단 간만에 드디어 박영규가 당하거나 고생하는 꼴 보니 시원하다는 느낌이 우선적으로 들게 된다.

식성 역시 상당한 수준인데, 특히 남이 사주는 밥이면 더욱 잘 먹는다. 이러한 식성으로 인해 한 번 된통 혼났던 에피소드가 있는데, 287화가 바로 그 에피소드로, 친구들하고 같이 고깃집을 개업한 한 친구한테 찾아가 오픈 기념으로 공짜로 무제한으로 준다는 말에 밑도 끝도 없이 고기가 너무 맛있어서 왕창 먹었고, 그 상태로 다음 날 친구들과의 낚시 약속이 있어서 낚싯대를 빌리려 찬우네로 갔다가 마침 찬우가 집에서 동료들하고 같이 회와 매운탕을 먹고 있었고 결국 배부른 상태에서 또 다시 왕창 먹고 낚싯대를 빌린 다음 집으로 갔는데, 이번엔 용녀가 아귀찜을 해놓아서 고민하다가 배 부른 상태에서 또 다시 왕창 먹게 되고, 결국은 과식이 원인이었는지 배탈이 나서 병원으로 갔는데, 알고보니 위궤양이 있는 상태에서 과식을 하는 바람에 위에 천공이 났고 지명이 이를 보고 배가 터졌다고 놀리고 나중에는 주위 사람들한테까지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터졌다는 식으로 잘못 소문이 난 에피소드가 있다.[57]

316화에서도 미선 및 미달과 생고기를 무려 14인분 먹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작은아버지로부터 얻어온 휘호를 찬우에게 표구하라고 돈 10만원 빌린 거 때우는 셈으로 넘겼기 때문이다. 인봉이 대한제국의 황족 의친왕이 쓴 친필이 아닌가 50만원 상당의 가치가 있다고 언질을 줬고 다음날 인사동 화방을 하는 친구에게 감정을 시가 100만원의 진품이라고 받으면서 쐐기가 박힌다. 이에 찬우가 돈으로 주거나 표구를 돌려주지 않고 저녁을 사겠다고 영규에게 통화해서 영규가 미선 미달과 함께 100만 원어치를 얻어먹겠다고 한 것이다. 방영분으로만 무려 14인분을 먹은 것이 확인되면서 끝난다.

이 외에 개고기를 먹겠다고 그렇게 싫어하는 강토엄마 집에 찾아가서 온갖 조롱과 비꼼을 들으면서도 안면에 철판 깔고 귀머거리마냥 고기만 걸신들린듯이 먹거나, 집에서 수제비를 하는데 의찬이 집에서 깐풍기 시켜먹는다는 소리 듣고 바로 건너가서는 역시 염치도 없이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등, 식욕 앞에선 그나마 빼기 좋아하는 가식적인 점잔조차 사라지고 거의 짐승 수준의 모습을 보여준다.

60화에서는 삼계탕이 먹고 싶어서 용녀에게 먼저 삼계탕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 거절당하고,[58] 지명의 환자 남편[59]이 오리탕집을 한다고 해서 영규가 그 집에 가서 오리탕을 먹자는 것을 지명이 겨우 말린다.[60] 하지만 환자 남편에게 이미 명함을 받은 영규는 기어이 오리탕집에 가서 오리탕을 먹다가 눈병에 걸린 환자 시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영규는 돈을 내는 척을 하면서 공짜로 오리탕을 먹어오고 눈병까지 감염되어 온다. 환자 남편이 집에 오리탕을 포장해 와서 오리탕을 몰래 먹은 사실을 들키게 되고,[61] 미선도 건강보험증을 건네다가 미선까지 감염되어서 격리된다. 게다가 미선이 2층 화장실을 쓰는 틈을 타서 영규가 1층 화장실을 쓰고 수건까지 쓰면서 그 수건을 쓴 지명도 감염이 되어 셋이 격리된다. 지명, 영규, 미선은 눈병을 이겨내기 위해 손도 잡아보고 돌림노래도 불러보지만 여전히 가렵다. 결국 영규와 미선이 보고 싶은 미달이 저녁에 2층으로 올라가 울면서 문을 열려고 하고 용녀와 나머지 식구들이 만류하고, 영규과 미선이 눈물의 상봉을 보여주자 지명이 입모양으로 "놀고 있네!" 하면서 끝이난다.

게다가 음식 자체를 굉장히 더럽게 먹는다. 남이 시킨 음식에 멋대로 젓가락을 들어 쩝쩝거리는 건 기본이고, 한 번에 왕창 입에 넣어서 볼을 부풀리고 우물거리면서, 코를 훌쩍이고, 말하다 음식물이 튀기는 등 보는 사람이 혐오스러워서 못 먹을 정도. 저런 모습을 보고 지적한 사람들이 오지명과 선우용녀[62]와 웬그막에서 까메오로 만난 노구. 특히 노구는 "참! 빨리도 먹는다!"라고 하면서 쪽까지 준다.

220화에서는 용녀가 영규의 밥풀을 튀기고 방귀총 쏘는 습관을 교양 없다고 지적하자 영규는 미달이가 뭘 보고 배우겠냐는 용녀의 말에 발끈해서 되레 용녀에게 크게 화를 낸다. 이에 용녀가 쓰러져 앓아눕는다. 영규가 용녀 방 앞에서 석고대죄[63]한 끝에 용녀와 영규가 화해하는 이야기도 있다.

341화에서는 용녀가 영규의 식습관 중 수박 한가운데를 파먹는 것을 지적하자 영규는 혼잣말로 자기만 갖고 그런다고 욕한다. 그러고 식구들이 집에 없는 틈을 타서 선풍기를 2대나 가지고 방에서 선풍기 바람을 쐬자 용녀가 지적하고 영규는 발끈한다. 이에 영규는 한여름에 내복, 목폴라, 코트를 입고 용녀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지만 결국 먹히지 않는다.

460화에서는 미달과 처제들[64]에게 방귀총을 쏘며 즐거워한다. 그러나 장모인 용녀와 처제들이 흉보는 것을 우연히 듣고 충격을 받는다. 계속 표정이 안 좋고 기운이 없어 보여서 아내 미선이 요즘 들어 왜 그러냐고 했더니 사실대로 다 말해버린 바람에 식구들이 더 이상 방귀총 쏘는 것을 가지고 뭐라 하지 않았다. 그래도 본인도 이것은 아니올시다다 생각했는지 한동안은 하지 않다가 몇개월 지나 은근슬쩍 재시작했고, 후속작에서도 주변사람들에게 수시로 쏴제꼈다.

496화 역시 방귀와 관련된 에피소드인데, 한밤중에 장유착증 때문에 병원에 실려가게 되었고, 의사로부터 방귀만 나오면 퇴원이 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정작 이 때는 방귀박사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나와야 할 방귀가 제때제때 안 나와서 그야말로 죽는 게 아닌가 하고 오만 잡생각에 걱정하게 되는데, 마침내 며칠 후 방귀가 나왔고, 영규는 기뻐하며 자연스레 퇴원하게 되었다[65].

자신이 밀양 박씨 가문의 후손이라고 자랑했지만, 알고 보니 279화에서 근본도 없이 종살이하던 고조할아버지가 양반집(박 판서) 별당아씨를 보쌈해서 밀양 박씨를 사칭한 것이었다.[66] 6대조 조상은 각각 산적, 남사당패 여인이었고 5대조 할아버지는 외줄타기 명수로 이름높은 광대였다. 한편 고상순과의 대화에서 언급되기로 외가쪽은 대대로 소잡던 집안이었다고 한다.

군대는 행정병[67]으로 다녀왔는데, 1979년팀스피리트에 참가했다고 한다. 그때도 식탐은 알아줬는데, 장교 막사에 갔다가 그 곳에 있는 김밥을 먹고 기절해서 그대로 죽을 뻔 했다고 한다. 538회의 군대 에피소드에서는 그가 이등병이던 시절인 1981년 당시 무식한 선임[68]이 빈센트에 대한 노래로 고통받는 역할을 맡았다. 다만 극초반인 26회를 보면 영규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당시에 군복무를 했었다고 언급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해당 사건은 1976년에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에 설정오류에 해당한다.[69]

이후 연장방송이 확정되면서, 순차적인 멤버들의 휴가에 이어 박영규 본인도 638화(2000년 9월 25일)에 약 한달간 미국 연수를 간다는 설정 하에 휴식기 차원으로 잠시 하차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장인어른인 오지명이 완전히 하차한 다음 회차인 654회(2000년 10월 17일)에 다시금 화려하게 순풍산부인과에 복귀한다. 다만, 복귀하고 나서는 장인 오지명이 인봉과 함께 독일로 떠난다는 설정 하에 완전히 하차해서 부재중이었기 때문에 장인과 더이상 마주치지 못했고, 장인어른과의 케미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지명이 떠난 후에 실질적으로 지명을 대신해 가장 역할을 수행하게 됨으로써 그간의 박영규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으로 보여지게 된다.

후속작인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카메오로 오미선, 박미달 등과 같이 71화[70]와 72화[71]까지 2번 나왔는데, 드디어 처갓집에서 독립해서 노홍렬(이홍렬)과 같은 아파트로 이사하는 것으로 나왔다. 거기에서 이불킥을 하는 연기를 레전드급으로 선보였었다.


3. 똑바로 살아라박영규와의 비교[편집]


똑바로 살아라에도 똑같은 설정으로 박영규가 고정으로 나온다. 순풍의 박영규는 동네반장과 강사(주임), 부원장 역할 등 최소한의 자기가 맡은 역할의 책임을 다 하려고 하며 인간성이 어느 정도 올바른 편이지만, 똑살의 박영규는 일상 패시브 자체가 범죄인데, 정형외과 병원 과장(사무장) 직책으로 병원 운영비를 빼돌려서 부인과 같이 동네 돈놀이를 하고, 제약회사한테 수시로 돈을 받아 몰래 병원 의료기기와 약품을 교체한다.[72] 게다가 걸린 뒤에 이사장한테 안 걸리면 장땡이란 식으로 받은 뇌물을 안 돌려주고 어물쩡거리거나 걸리면 오히려 역으로 큰소리내며 화내는 것과 배째라는 덤이고, 이런 뇌물, 횡령, 배임 같은 행위를 아주 당연지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인성 자체로만 보면 두 캐릭터의 설정 및 환경을 고려했을 때 똑살 박영규가 더 나쁘다고 보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 달리 보면 똑살 영규가 순풍 영규처럼 얹혀사는 입장이기는 해도 병원에서 을의 입장에서나마 직장을 가지고 가정을 부양하는데다가 자기보다 성질 고약하고 막 나가는 아내에게 쥐여 살아왔다는 점, 갑의 입장에 있는 주변 사람들이 순풍에서보다 훨씬 깐깐하고 자존심이 세거나 하나같이 사고뭉치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동정받을 여지는 순풍 영규보다 더 크다.

한편 순풍 박영규는 똑살 영규처럼 각종 이권과 이해관계가 오고가는 위치에 있지는 않아서 스케일이 큰 사고는 치지 않는다. 고상순과의 1회성 에피소드들에서는 의외로 선을 지키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러나 일상의 자잘한 측면으로 들어가 보면 순풍 영규가 더 무개념하며 철이 덜 든 듯한 모습도 보인다. 일례로 자기가 기분이 좋거나 상대방이 은혜를 베풀었을 때 독한 방귀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화답하는 정말 이상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 덤으로 상대방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한다. 사실 방귀라는 소재가 지니는 생리적인 특징과 극중에서의 코믹한 묘사 때문에 그렇지 순풍 영규의 이런 행태는 에티켓은 둘째치더라도 거진 괴롭힘에 준하는 안 좋은 행태다.[73] 그 외에도 사적 영역에서 주변인들을 우습게 보고 깔보고 벗겨먹고도 부끄러움이나 고마움을 모르는 행태는 똑살 영규를 거의 상회하다시피 한다. 병원에서 환자가 싸우면서 자기가 원장이라고 고래고래 소리 질러놓고 그게 들통나니까 자기 잘못은 생각도 안 하고 자기 잘못을 고자질 했다고 믿는 순풍산부인과 직원들과 한 달 넘게 계속 싸우려다가 그걸 말리다 말리다 지친 미선이 통곡할 정도. 게다가 좀 괴짜스럽고 고집이 세긴 해도 사람 자체는 착하고 마음씨 따뜻한 장인장모의 케어를 받는 환경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순풍 영규의 상대적인 온건함(?)은 결코 좋게 평가할 것이 못된다.

똑살 박영규는 최소한 다른 사람들 눈치는 어느 정도 본다. 그리고 음식도 더럽게 먹거나 하지 않는다. 또한 적어도 부끄러움과 고마움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는 한다.

그리고 두 캐릭터가 각 극중에서 포지션이나 행태는 비슷하지만, 성격의 방향이나 방식이 좀 다르다. 순풍 영규가 매사에 교활하고 약삭빠른 편이라면, 똑살 영규는 다혈질적이고 직선적인 면이 강하다. 비슷한 점은 감정적으로 욱하는 경향이 있고 자기 생각과 느낌을 먼저 앞세우는 이기적인 경향이 있는 것 정도였다. 또한 두 시트콤의 세계관 내에서 영규의 위치와 역할이 다르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또한 순풍산부인과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똑살의 인물들 못지않게 괴짜들이기는 하지만, 순풍 박영규 주변의 인물들과 똑살 박영규 주변의 인물들을 비교해보면 그래도 평균적으로는 순풍 쪽이 더 양반인 편이고,[74] 영규를 대하는 태도도 똑살에서보다 더 부드러운 편이다. 똑살에서 순풍 오지명 포지션인 노주현만 놓고 보더라도 상식적이고 인정도 있기는 해도 오지명보다 훨씬 깐깐한데다 자기애도 강하고 고집불통이다. 사실 전반적으로 똑살 세계관 자체가 영규 뿐만 아니라 다른 메인 캐릭터들의 기행과 골 때리는 행태들이 더욱 부각되고 업그레이드된 편이다. 그래서 똑살에서는 영규 쪽이 어설프게 빈대붙으려다 타격을 입거나 역으로 주변인물들의 민폐나 기행으로 본인이 피를 보는 경우도 은근히 많다.[75]


4. 여담[편집]


작품과 배역이 워낙 크게 성공해서 담당 배우 박영규는 코믹 이미지를 벗는데 시간이 매우 오래 걸렸다. 국희덕이에서 천하에 몹쓸 악역을, 다모해신에서 진중한 선역으로 열연했고, 작품들도 모두 성공했음에도 미달이 아빠 이미지는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고, 게다가 개인사로 해신 이후 수년간 활동을 쉬게 되면서 이 기간이 더욱 길어졌다. 그러다가 2014년,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에서 이인임 역으로 열연하면서 비로소 코믹 이미지는 사라졌다. 정도전의 작가 정현민도 박영규를 캐스팅하려는 강병택 PD에게 "미달이 아빠잖아요?"라고 하면서 마뜩찮아했을 정도니 정말 오래도 갔다.[76] 정도전 이후로는 권신, 국회의원, 이사장, 회장 같은 높으신 분들 배역을 많이 맡게 되었고, 그조차도 대체적으로 깨끗하지 않은 인물들이 많다.

작중에서 워낙 막장스런 모습들이 많은 탓에 혹시 이 배역을 연기한 배우 박영규 역시 이 작품의 박영규 캐릭터와 똑같은 사람이 아니냐는 되도 않는 반응도 요즘 들어서 부쩍 많아졌다.[77] 다만 해신이나 다모, 정도전에서 박영규의 연기력을 본 사람들은 이런 반응이 많지 않다.

사실 순풍산부인과에서 박영규가 맡은 '미달이 아빠' 배역은 본래 박영규가 아니라 이덕화에게 먼저 제의가 들어올 예정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밝히길, 이덕화는 코믹한 연기를 해야 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데다 다른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어서 거절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순풍산부인과가 대박을 터뜨리자 '미달이 아빠' 배역을 거절한 것에 땅을 치면서 후회했다고 한다. 그 당시의 이덕화는 순풍산부인과가 방영될 때 같은 방송국SBS에서 1998년의 홍길동에 출연해서 30%, 2000년의 경찰특공대와 2001년의 여인천하로 연타석 홈런을 치는 커리어 상승세였던 반면에 박영규는 1997년 이혼 이후로 커리어 자체가 위기였던 상황이었다.

작중 출신 고등학교에 대해서 설정 오류가 있다. 박영규가 동네 반장 선거를 준비하는 에피소드 중 선거 포스터에 적힌 박영규의 약력을 보면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적혀 있지만, 이후 학원 면접을 보러 가는 에피소드에서는 정릉고등학교[78]를 졸업했다고 언급한다. 참고로, 실제 배우 박영규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실제 고향인 대전광역시에 소재한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이다.

극 후반부부터 개인 자가용이 생겼다. 674회에서 영규의 동생 영광이 백화점 경품에 당첨된 것으로, 실제 차종은 당시 이제 막 출고된 지 얼마 안 된 대우 매그너스지만, 극중 자동차의 이름은 '포그니'라고 나온다. 그러나 마지막회에서 장모 용녀가 운전연습을 할 때 사이드 브레이크를 제대로 채우지 않은 탓에 카페 담장에 부딪혀 차가 망가졌다.

친척들 사이에서는 똥싸개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로맨스 영화나 불륜남 전담 배우로 멜로에 나오던 이미지의 박영규는 이 작품으로 인해 탈모를 만천하에 공개했다.[79] 특히 저 헤어스타일에 더듬이처럼 휘날리며, 빈 곳이 보이는 것으로 인해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나, 그 이후로 달관했는지 아예 보리울의 여름에서는 저 상태의 머리에서 반삭을 해서 M자 탈모의 승려 역할을 하고, 이후 가발 밀란의 광고모델이 되어 탈모 가발 전담 모델이 된다. 이덕화의 하이모와 쌍벽을 이룰 정도다.

옛날 자사시트콤이나 예능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만을 편집해서 틀어주는 유튜브 채널 중 하나인 SBS 빽능 채널에서는 영규에게 영규레기(영규+쓰레기)라는 별명을 붙였다. 예시.

[1] 순풍산부인과 173회에서 이력서를 한자로 쓸 때 朴榮奎라고 썼다. 279회 밀양 박씨 에피소드에서도 자신을 '榮(영화 영)' 자 쓴다고 소개했다. 대만판에서는 榮奎라고 하면 첫 자음이 r이 되어 우리말과 거리가 멀어져서 그런지 英奎라고 불리고 자막에도 그렇게 적혔다.[2] 445화 마지막에 나온다. 그런데 152화에서는 미선이 '아빠 생일'이라는 뜻으로 아.생이라고 10월 7일에 표시해 놓았다.[3] 31세인 오미선과 12살 차이라고 언급되며, 252회에서 잡지사에서 오지명이 취재하러 왔을 때 기사에 사위 박영규/42세라고 소개되었는데, 이건 만 나이로 보인다.[4] 오중창훈끼리의 무협지식 은어.[5] 실제 박영규 배우 본인의 본관. 25대손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후술.[6] 한동안 영어강사로 잘 나갔으나,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전재산을 끌어다 '내가 알아야 할 모든 영어는 영규에게서 배웠다'라는 영어 학습 비디오 테이프를 제작하였다.[7] 이 화에서 박영규는 어릴적부터 돈 맛을 보면 버릇이 나빠진다는 개똥철학을 들먹이며 딸 미달이의 세뱃돈을 갈취했다.[8] 근데 정작 이 말을 한 점쟁이 본인도 사기꾼이었다. 배우는 역시 심심할 때마다 등장했던 윤기원또기원.[9] 쏠때마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모습이 귀엽다고 한다.[10] 당시 시청자들은 물론이고 개그맨들도 성대모사로 많이 이용했다.[11] 참고로 이 배역은 애초 이덕화로 캐스팅 예정이었으나 본인이 거절하여 변경하게 되었다. 거절 후 다음 캐스팅은 박미선의 실제 남편인 이봉원이었으나, 이봉원조차도 시트콤 도전은 부담스럽다며 거절하였다. 이덕화, 이봉원 모두 훗날에 거절한 것을 후회했다고 밝혔으며, 대신 이봉원은 추후 미선의 첫사랑으로 우정출연하였다.[12] 허나 작중에서는 어릴 적부터 마포구에서 살았다고 언급한다. 아마도 태어나고 잠시 강릉에서 살았다가 가족과 함께 혹은 홀로 유학 차 상경했다가 부모는 이후 다시 강릉으로 귀향한 모양.[13] 참고로, 박영규는 실제로는 1953년 생이며, 실제 출생지는 대전광역시(당시 충청남도 대전시)이다.[14] 본래 멜로물에서 진지한 역할을 주로 맡았던 박영규는 이 역할로 완전히 이미지가 변하게 된다.[15] 그래도 똑바로 살아라의 캐릭터에 비하면 양반이다 라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훨씬 많다. 이쪽은 그래도 나름 자신의 역할엔 최선을 다하며 도리는 하는 것과는 달리 그쪽은 횡령, 배임, 뇌물등 일상이 범죄이며 성격도 더욱 개차반이다.[16] 사실은 불쌍하달 것도 없이 오히려 영규가 스스로 매를 버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서 구박 받는 거야 당연지사였다.[17] 그래도 같은 배우가 맡은 역할들인 엄마엄일남이나 앵그리 맘홍상복에 비하면 양반이다. 이 둘은 아예 인간 말종이다.[18] 게다가 배우끼리 비교하면 28살 차이다.[19] 그러나 인격 측면에서는 지붕뚫고 하이킥의 정보석이 훨씬 낫다. [20] 중상모략을 펼치긴 하지만 실제로는 본인 자체의 능력으로 올라간 게 맞다.[21] 이에 영규는 미달이 하도 말을 안 들어서 교육 좀 시키느라고 그랬다고 되도 않는 해명을 했지만, 상식적으로 이딴 말에 누구고 속을 사람은 없다.[22] 미달이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펑펑 울자 큰 맘 먹고 좋은 피아노를 구입해서 고장난 부분을 조율사까지 불러 고쳤는데, 미달이가 피아노에 관심을 끊고 발레를 배우겠다고 하자 울상을 짓는다.[23] 208화에서 오중에게 세뱃돈을 받는데도 영규가 그걸 보고 뺏어가고 나서 오중이 아닌 자신의 주머니에 넣는다.[24] 오죽 막장짓이 심했으면 유튜브에 올라오는 시트콤 편에서 박영규가 나오는 편은 발암 걸린다는 영규에 대한 욕설 vs 시트콤에 너무 과몰입하지 말라는 쿨병으로 언제나 싸울 정도다.[25] 302화에서 영규가 아버지에게 받은 간식 세트들을 혼자 숨겨놓고 식구들에게는 건문어 한 봉지만 나눠준 이야기에서 나온 대사였다.[26] 다트내기에서 까치발 반칙쓰기, 맛있는 거 먹는 자리에 은근슬쩍 끼어들기, 배달왔을 때 화장실 가서 돈 안 내기, 회식자리에서 신발 오래 묶기 등이 있었다.[27] 빽능에서도 '일부러 그랬다에 한 표'라고 섬네일에 적힐 정도로 박영규가 일부러 자기 이름으로 내고 왔다는 것이 중론이다.[28] 이 에피소드는 후속작에서 노영삼이 노구의 심부름으로 포항시에 거주하는 작은할아버지의 생일선물인 로열젤리를 택배회사에 부치러 갔다가 버스 안에서 잃어버리고 얼렁뚱땅 넘어가려다가 막판에 들통나서 된통 꾸중듣는 것으로 재탕된다. 여담으로, 해당 에피소드의 댓글을 보면 이 과자세트를 그냥 그대로 돌려주라고 부탁하는 황 교수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황 교수의 깐깐한 성격을 생각해보면 절대로 그런 실수를 해서는 안 됐었는데, 영규가 그런 실수를 저질러 버렸으니 영규가 자승자박인 셈이다.[29] 흰 바탕에 2002년 월드컵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였으며, 지명은 1988년 서울올림픽 호돌이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받았다.[30] 미선의 경우에는 용녀, 태란, 혜교가 고스톱을 하는데 끼지 못하는 등의 왕따를 당한다. 본래 고스톱은 3명이서 하는 거라지만, 미선에게 광도 안 파는 식으로 따돌렸다.[31] 이후 식구들 반응이 냉담해지자 미달이 받은 상품권을 뺏어서 무효라고 다시 추첨하자고 하자 미달은 울고 식구들은 그냥 미달이 주라고 하면서 각자 방으로 들어가버린다.[32] 미선은 그래도 정초인데 과일박스나 양주라도 사서 가자고 했지만, 영규는 그런 데에 가서 비싼 걸 내놨다가는 다른 선생들한테 아부나 한다고 욕만 먹는다면서 오늘 같은 날은 조용히 인사만 한 뒤 다음에 우리끼리 갔을 때 그 때 좋은 걸 내 놓으면 된다고 주장하면서 가벼운 음료세트를 사서 같이 갔는데, 송이버섯, 갈비, 술 등 하나같이 고급 선물들을 가지고 온 동료 강사들에 비하면 상당히 초라해서 이걸 내놓을 엄두가 안 났다.[33] 실제로 박영규는 영어 실력이 능통하다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작품 내에서도 수능을 8문제나 적중시켰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그러나 영규가 실력이 좋은지는 몰라도 미달이도 잠재울 만큼 수업 스타일은 재미도 더럽게 없을 뿐더러 짠돌이인 성격상 돈이 아까워서 학생들에게 음료수나 과자를 쏘는 경우가 한 번도 없을 테니 당연지사이기도 하다.[34] 제목은 '내가 알아야 할 모든 영어는 영규에게서 배웠다'. 딸인 미달이가 보다가 하품하고 지겨워 할 정도로 재미가 없으니 말 다했다.[35] 1화에 얹혀산지 6개월째라고 나온다. 하지만 445화에선 처가살이를 98년 2월 19일에 시작했다고 하는 걸 보면 설정오류인 듯 하다.[36] 다음 호의 '바로잡습니다' 코너로 정정해 준다고는 하는데, 하필 잡지가 계간지였다.[37] 그 선생의 이름으로 된 홍보 스티커를 주위 사람들 사이드 미러에 붙여서 사람들이 그걸 떼면서 투덜대게 만들었다. 이런 식의 사보타주를 하는 이상 본인이 증오하는 강토엄마보다 나을 것도 전혀 없는 셈이다. 박영규도 강토 엄마가 자리, 돈 등의 목적을 위해 거짓 루머 퍼뜨려서 시달린 적이 있었는데, 자신도 똑같은 짓을 한 것이다.[38] 이걸 다 보고 난 창훈과 오중은 말 그대로 자지러졌다.[39] 98년 당시 보습학원 강사 월급이다.[40] 2000년 어린이날에 방송한 540화를 보면 카드론으로 300만원을 지원해주고 이전에 이미 300만원을 빌려줬는데, 못 받았다고 한다. 따지는 미선에게 내 집에 내가 돈도 못 부치냐며 적반하장으로 나서고, 둘은 놀이동산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도, 놀이동산에서 놀이기구를 타면서도, 미달의 공연을 보면서도 내내 입씨름을 벌이다가 귀가 이후에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결국 밤에 영규가 방 안에서 베개를 들고 나와서 내려가서 다른 곳에서 잔다.[41] 나중에는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 내의 코너 중 하나인 고향에서 온 편지에 어머니가 그 사실을 폭로하면서 가족들에게 또 다시 제대로 찍히고 만다. 이때 영규는 TV 뉴스에 나쁜 쪽으로 3번이나 출연해 가족들에게 단단히 찍혀 있는 상태였다.[42] 그 중에 둘째 내지는 셋째로 보인다.[43] 이 과정에서 호두는 다 썩어 있었다.[44] 왜 미선이 남편의 고향에 가 있느냐면, 영규의 동생 영식이 결혼식을 하는데, 영규는 본인의 학원 일 때문에 바빠서 불참하게 되고, 그 대신 아내만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45] 마지막에 간장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지는 부분이 최대 압권이다.[46] 약국 이름은 '기원약국'.[47] 하지만 실상은 초장부터 2명의 손님들이 왔다 갔고, 또한 영규가 2시간 동안 그의 약국 앞에서 약을 구매해 간 사람들을 조사해 본 결과 20만원 넘게 팔렸다.[48] 더불어서, 전부 외상이고 심지어 돈 안 내고 도망가는 놈들도 있다는 또다른 핑계들까지 덧붙였다.[49] 또한 영규가 아우디에 대해서 묻자 본인의 차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밤에 대리운전을 해 준다면서 또 핑계를 댔다. 지금이야 외제차를 흔히 목격할 수 있고, 자가용으로 맘껏 갖고 다닐 수 있지만, 저 당시에 외제차는 오로지 부잣집 사람들만 몰고 다녔던 귀하고 비싼 차로써 외제차 구경은 강남구 같은 부자 동네에서나 일상이었을 뿐 다른 동네들에서 목격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50] 물론 진짜 한 푼도 없는 건 아니고 기원이 이럴 줄 알고 사전에 다른 곳으로 돈을 다 치워버린 것이다.[51] 처음과 두 번째에는 경악했지만, 세 번째에 가져갔을 때는 도리어 영규가 사라지자 집을 팔아서라도 계속 해 놓을 거라면서 태연하게 큰소리를 뻥뻥 쳤고, 핸드폰을 꺼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52] 게다가 미선도 며칠 안으로 영규의 아버지에게 돈을 빨리 부쳐야 하는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되었으니 말이다.[53] 박미선의 실제 남편인 이봉원이 출연했다.[54] 현재야 영동고속도로 확장과 강릉선 KTX 개통 등으로 당일치기가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게 되었지만, 방영 당시만 해도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는 다소 빠듯한 거리였고, 아직 주 5일제도가 도입되기 전이었다. 직장인은 물론이고 학생들과 군인들도 주말 오전 일과까지는 하는 것이 일반적인 시기였음을 감안하면 여러모로 초대를 받는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55] 사실 영규가 사람들을 초대하는 방식부터 문제였던 것이 그날 시간이 되면 가겠다는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무조건 오라면서 마구잡이로 불러댔다. 당장 학원에 칠순잔치 안내문을 붙였을 때 다른 학원강사들이 무슨 칠순잔치를 공고까지 하냐며 마뜩잖아했던 것도 그렇고, 초대받은 다른 사람들도 하나같이 심드렁한 반응이었다.[56] 658화 이후로 등장하는 동생 영광과는 다른 인물로, 이름은 영한이다. 위에도 언급하였듯이 설정상 박영규는 7남매다.[57] 지명도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용녀가 주변 사람들에게 영규가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터졌다고 이야기를 했고, 심지어 미달이까지 아빠 배가 터졌다고 동네방네 광고를 하고 다니는 바람에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이다. 여담으로, 미달이에게 이 이야기를 들은 정배는 정말로 영규의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다가 터지는 상상을 하면서 몸서리를 쳤다.[58] 이 때 대화가 압권인데, 부엌에서 된장찌개 냄새를 맡고서 실망한 영규가 혹시나 싶어서 "된장찌개도 끓이고 삼계탕도 끓이시는 거예요?"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미선이 말했던 것처럼 내일 해준다는 말에 실망해서 "내일은 무슨 내일이야 오늘 먹고 싶다는데..."라고 중얼거리기까지 한다.[59] 배우 성동일의 젊었을 때 모습으로, 54화에서도 환자 가족 중 하나로 나온 바 있다.[60] 환자에게 부담을 주지 말라고 몇 번이나 경고를 했으나 영규는 집밥이 입에 들어가지 않았고 결국 밖에 나가 오리탕을 사먹게 된다.[61] 지명이 "오리탕 먹고 오리발 내미는거야?"라고 일갈할 정도였다.[62] 수시로 밥풀을 튀기고 쩝쩝거린다고 타박한다.[63] 그러나 435화에서 영규가 지명이 선물받은 은사의 유품에 담배가 떨어져 태워먹은 이야기에서는 아무리 석고대죄를 해도 지명이 용서하지 않자, 정확히는 석고대죄를 하고 있다가 딴짓하고 있을 때 지명이 와서 용서하지 않자 결국 포기하게 되는 이야기도 있다.[64] 태란혜교.[65] 그리고 막판에는 병원 내에 이게 소문이 쫙 퍼졌는지 영규가 용녀와 미선과 함께 나간 뒤 2명의 간호사들이 뒷담화로 저 사람이 방귀박사라고 하자 폭소하며 자리를 뜬다.[66] 참고로, 배우 당사자는 밀양 박씨 규정공파 25대손이다.[67] 229화에서 극중 박영규가 언급.[68] 윤기원이 연기했다.[69] 북괴 도끼 만행 사건 때문에 군대 있을때 정말 죽을 뻔했었다고 언급했었다(...)[70] 극중 노영삼이 과외 도중 프라이드(pride)를 fried로 잘못 알고 '치킨(chicken)'으로 답하다 격분하는 회차.[71] 소세지값을 놓고 노구와 대립을 벌이는 회차.[72] 자기가 돈을 요구하는 게 대부분이다.[73] 똑살에서도 영규가 다른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방귀를 뀌어대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아주 가끔이며, 의도적인 경우는 그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이다.[74] 물론 개별적인 차이는 있다. 가령 순풍에서 영규의 딸 미달이 통제 불능의 심각한 트러블 메이커인 반면 똑살 영규의 딸 혜진은 미달과는 180도 대조적으로 반듯하고 지적이고 똑똑하고 개념이 있는 아이이다.[75] 이게 특히 부각된 경우가 똑살 영규가 싫어하는 3인방(안재환, 노민정, 노형욱)과의 에피소드와 아내 이응경의 억지, 심술, 민폐와 엮일 때가 그렇다.[76] 강병택 PD는 정작가에게 해신을 보라고 했고, 해신을 본 작가는 수긍했다.[77] 특히 실존인물 박영규가 이혼을 세 차례나 한 것을 악용하여 실제 사생활도 순풍의 박영규처럼 아주 지저분하고 드러울 것 같다느니, 인생이 저따구니까 이혼도 세 번이나 한 거라느니 식으로 너무 막 나가는 악플을 다는 인간들이 존재한다. 다만, 근데 이렇게 따지면 똑같은 대표 악역 전문 배우들인 정보석이나 이덕화, 손병호 같은 사람들도 작품 내에서의 모습과 수준이 같은 사람들이라는 얘기가 되므로 이는 지나친 고정관념이다. 근데 실제로 이런 식으로 안 좋은 편견에 사로잡힌 배우들이 일부 있는데, 공공의 적조규환으로 유명한 이성재는 그저 조규환 역할 하나 때문에 생계에 타격이 간 것에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도 있고, 또한 작중 이성재의 차량이 아우디였는데, 그가 아우디를 몰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우디의 이미지가 나빠진 것도 모자라 매출이 감소하는 일까지 있었다. 오죽하면 이성재 본인도 "배역은 미워하더라도, 배우는 미워하지 맙시다!"라는 명언까지 남겼을 정도다. 또 정웅인의 경우에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의 희대의 악역 민준국 연기 하나 때문에 욕 먹은 것도 모자라 쉬는 날 마트에 갔다가 경찰에 신고를 당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성재의 명언마따나 배역은 그저 배역일 뿐이니 연기와 현실을 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물론 조민기조재현처럼 악역 전문 배우들이 실제로도 범죄를 저질러서 몰락한 케이스도 있지만, 이런 경우도 정말정말 극소수다.[78] 실제로 서울특별시 강동구에 소재한 배재고등학교와는 달리 가상의 학교이다.[79] 막상 이후에 나온 똑바로 살아라에서는 가발을 쓰고 연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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