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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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군인.
대한민국 육군의 예비역 대장이며 육군3사관학교 출신 첫 소장/중장/대장 진급자이다. 육군 제2작전사령관(舊,제2야전군사령관)을 끝으로 예편하였다.
2. 생애[편집]
1948년생.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오진리 출신#으로 문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0년 3사 1기로 임관했다. 소대장으로 임관한 이듬해인 1971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대령 시절 제1보병사단 제11보병연대장을 역임했다.
소장 시절 제36보병사단장, 육군교육사령부 교육훈련부장 및 대한민국 육군본부 감찰실장을 역임했고, 중장으로 진급하여 제11군단장[2] 및 육군교육사령관을 역임했다. 2006년 11월 제2작전사령관에 취임했으며 2008년 3월, 군 인사에서 퇴역하였다. 그리고 퇴역할 당시 그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마지막 현역 군인이였다. [3]
3사 출신 최초로 소장(사단장), 중장(군단장), 대장(사령관)으로 진급하였다. 이로 인해 3사 출신 '1기' 라는 특성으로 다양한 최초 기록을 갖고 있으며, 3사출신 최초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에 임명된 이순진 대장 이전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인물이다.
2.1. 주요 경력[편집]
3. 여담[편집]
- 소탈한 성격으로 부하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합리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는 덕장이며, 인간을 중시하는 '인간중심 리더십'을 현장에 접목시킨 지휘관이기도 하다. 베트남 전쟁에서 무수히 많은 전우가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기에 위와 같은 리더십을 중요시한 것으로 보여진다.
- 특이사항으로 육사와 비교하면 3사 1기는 70년에 임관했으므로 임관 연도로만 따지면 육사26기와 동기가 된다. 그러나 3사 1기는 1년간 교육받고 소위가 되었으므로, 사관학교 입교 연도로 따지면 육사29기와 동기가 된다.[4]
- 중령시절 50사단 정보참모를 역임하면서 당시 소위로 사단 음어대회 준우승을 했던 고성균 장군을 군사령부 대회에 데리고 갔던 일화가 있다. 우승을 하도록 사단장으로부터 여러 압박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성균 소위에게 대회 준비와 연습에 관한 주관을 모두 맡겨주고 제대로 연습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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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취임 당시에는 제2야전군사령관이었으나 2007년 11월부로 보직 이름이 바뀌었다.[2] 제9군단과 함께 해체되었다. 참고로 이 두 군단은 대한민국에 존재했던 유이한 향토동원군단이었는데 향토동원군단 정리작업으로 인해 해체되었다. 육군동원전력사령부가 9, 11군단의 후신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 부대는 기존 9, 11군단의 업무 중 해당 지역 동원 기능 일부만 승계했기 때문에 후신으로 보기에는 거리가 멀다.[3] 부사관의 경우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은 대부분 2000년대 초중반에 전역했다.[4] 예전의 3사 출신들은 지금처럼 다른 대학교에서 2년을 교육 받고 입교해 2년 군사교육 받고 임관한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입교해서 군사교육을 받고 임관했기 때문에 육사출신보다 나이가 최소 2살~3살 이상 어리게 임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