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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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有載
1934년 1월 15일 ~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기업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태안(泰安)[1], 호는 원곡(原谷). 종교불교이다.


2. 생애[편집]


1934년 1월 15일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 한곡리[2]#에서 아버지 박환직(朴煥稷, 1912. 1. 5 ~ 1979. 3. 9)과 어머니 연일 정씨 정증희(鄭曾姬, 1910. 4. 12 ~ 1996. 11. 18)[3] 사이의 1남 3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딸만 하나 있던 큰아버지 박환기(朴煥夔, 1906. 9. 29 ~ 1974. 10. 25)에 입양되었다.

옥천청산초등학교, 옥천청산중학교, 영동고등학교, 국제대학교(현 서경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하였다.

국제대학교 졸업 후인 1961년 무역업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1970년 여성들의 가사노동 완화 등을 모토로 하고 오리표싱크(현 에넥스)를 창업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충청북도 보은군-옥천군-영동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국국민당 이동진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정의당에서 충청북도지부 위원장, 중앙집행위원 등의 당직을 역임하였다.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1984년 정계에서 은퇴하고 기업인으로 돌아갔다.

1992년 오리표싱크를 에넥스로 변경하였다. 2011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건설경기 침체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자 정상화를 위해 100억원 어치의 개인 재산을 증여했다. 2019년 회장 자리를 장남 박진규(朴鎭圭, 1960. 7. 1 ~ )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명예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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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산파(靑山派) 23세 재(載) 형(衡) 항렬. 12.12 군사반란 가담자 중 한 사람인 박준병은 그의 숙부뻘이 된다.[2] 인근의 신매리와 함께 태안 박씨 집성촌이다. 12.12 군사반란 가담자인 박준병도 이 마을 출신이다.[3] 정환우(鄭煥宇)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