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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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在森
(1933~1997)

1. 개요
2. 생애
3. 출신 학교
4. 수상 경력
5. 작품 활동
6. 문학 세계
7. 작품 목록
8. 기념사업
9. 작사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시인.

김소월 이후, 한국 서정시의 전통적 음색을 재현한 독보적인 시인으로 소박한 일상 생활과 자연에서 소재를 찾아 섬세하고도 애련한 가락을 노래했다.


2. 생애[편집]


1933년 4월 10일 동경에서 출생하여 3살 때, 어머니의 고향인 경남 삼천포시 서금동 72번지로 이주하여 성장했다. 박재삼 시인의 아버지는 지게 노동으로, 어머니는 생선 행상으로 가족을 부양하였다고 한다. 1946년 수남초등학교[1]를 졸업 후 3천 원이 없어 신설 삼천포중학교에 진학 하지 못하고 신문배달을 하던 중 삼천포여자중학교의 가사 담당 여선생의 도움으로 그 학교 잔심부름꾼으로 들어갔고 교장의 도움으로 이듬해인 1947년 삼천포중학 병설 야간중학교에 입학하여 낮에는 여중에서 잔심부름꾼으로 일하고 밤에는 수업을 들었다. 1948년 교내신문 “삼중(三中)” 창간호에 동요 ‘강아지’, 시조 ‘해인사’를 발표했다. 1949년에는 경영부진으로 야간중학교가 폐쇄되어 주간 중학교로 흡수되었는데 이때 야간 중학교에서 전교 수석을 한 덕택에 학비를 면제받고 주간 중학교 학생이 되었다. 삼천포여자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시조시인 김상옥에게 시를 배웠다고 한다.[2] 제1회 영남예술제(개천예술제) ‘한글 시 백일장'에서 시조 ’촉석루‘로 차상으로 입상했다. 1950년에는 김재섭, 김동일과 함께 동인지 『군상』을 펴냈다. 1951년 4년제 중학 졸업 후 삼천포고등학교 2년에 편입학 하였다. 1953년 삼천포고등학교를 수석 졸업(제1회) 한 후 피난지 부산 동광동에서 제2대 민의원이었고 중학교 시절 교장이었던 정헌주(鄭憲住) 선생의 집에서 식객노릇을 했다고 한다. 1954년 은사 김상옥의 소개로 현대문학사에 취직, 1955년 고려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에 입학했다.

1953년에 시 「강물에서」가 모윤숙에 의해 『문예』에서 추천되고, 1955년 시 「정적(靜寂)」이 서정주에 의해 『현대문학』에 추천되었으며, 같은 해 시조 「섭리(攝理)」가 유치환에 의해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1955년에 『현대문학』 창간과 함께 편집 사원으로 입사했다.

1957년에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그 해 대학을 중퇴했다. 1958년 육군에 입대하여 1년 6개월 복무하고 예비역으로 편입되었다. 1961년에는 구자운, 박성룡, 박희진, 성찬경 등과 함께 '1960년대 사화집(詞華集)' 동인으로 참여했다. 1962년 김정립 여사와 결혼해 하숙을 하던 서울 종로구 누상동 166의 20번지에서 신접살림을 차리고 그 해 1962년에 첫 시집 '춘향이 마음'을 출간했다. 1963년 '문학춘추' 창간에 참여하여 1년 동안 근무하였다. 이어서 1965년 '대한일보' 기자로 입사하여 3년간 근무하다 35세이던 1967년 고혈압으로 쓰러져 6개월가량 입원했다. 한동안 반신불수, 언어마비로 고생하였다. 그 후 대한일보를 퇴사했다가 1969년 삼성출판사에 입사하였고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11-83번지에 처음으로 집을 마련할 때 쯤 다시 고혈압으로 쓰러졌다.

1970년에 두번 째 시집 '햇빛 속에서'를 펴내고 이때부터 서울신문, 대한일보, 국제신보 등에 바둑 관전기를 쓰기도 했다. 이후에도 끊임없이 글을 쓰고 발표하여 타계할 때까지 시집 15권, 시조집 1권, 수필집 10권, 시선집 13권을 펴냈다.

1986년부터 1987년까지 공연윤리위원회 가요음반심의위원도 역임한 바 있다.
1987년 12월 통일민주당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
1993년 7월 한겨레문학 초대편집위원
1994년 3월 한국시인협회 기획위원장

1995년 조병화 시인과 함께 전 국회의원 박철언을 월간 '순수문학' 4월호에 시인으로 등단시켜 준 것#에 대해 김강태 시인(1951~2003)이 1996년의 기고문 중에 비판적 언급을 하였다.#

같잖은 인물들을 시인으로 내보냈다. 정치인이 시인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독재 정권 시절에 문제 많던 국회의원을 정식으로 등단시킨 건 문단의 수치다.


1997년 6월 8일 지병인 고혈압, 만성신부전으로 향년 64세에 타계했다. 그의 장례는 한국시인협회장으로 치러졌다. 말년의 투병 당시 박재삼 시인 돕기 운동이 벌어져 문단과 삼천포 지역주민들을 중심으로 모금하여 서울 중랑구 묵동의 박재삼 시인 집으로 성금 전달식이 열리기도 하였다.

슬하에 1녀 2남을 두었다.


3. 출신 학교[편집]




4. 수상 경력[편집]


고등학생 때 제1회 개천예술제에서 차상을 받으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참고로 이 때 장원이 이형기 시인. 제2회 현대문학신인상, 한국시인협회상, 노산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인촌상 등을 수상했다.


5. 작품 활동[편집]


1962년 첫 시집 『춘향이 마음』을 간행한 이래 시집 『햇빛 속에서』(1970), 『천년의 바람』(1975), 『어린 것들 옆에서』(1976), 『추억에서』(1983), 『아득하면 되리라』(1984), 『내 사랑은』(1985), 『대관령 근처』(1985), 『찬란한 미지수』(1986), 『바다 위 별들이 하는 짓』(1987), 『박재삼 시집』(1987), 『사랑이여』(1987), 『울음이 타는 가을강』(1987), 『다시 그리움으로』(1996),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고』(1997) 등 다수의 시집과 시 선집을 간행하였다. 수필집으로는 『울밑에 선 봉선화』(1986), 『아름다운 삶의 무늬』(1987), 『슬픔과 허무의 그 바다』(1989) 등이 있다.


6. 문학 세계[편집]


그의 시 세계는 시 「춘향이 마음」(1956)과 「울음이 타는 가을 강」(1959) 등으로 대표된다. 그는 이런 시들을 통해 한국 서정시의 전통적 음색을 재현했으며 소박한 일상 생활과 자연에서 소재를 찾아 섬세하고도 애련한 가락을 노래했다.

그는 “누님의 치맛살 곁에 앉아/ 누님의 슬픔을 나누지 못하는 심심한 때는/ 골목을 빠져 나와 바닷가에 서자”(「밤바다에서」 1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슬픔이라는 삶의 근원적인 정서에 한국적 정한의 세계를 절제된 가락으로 실어, 그 속에서 삶의 예지와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그의 시에 있어서 자연이란, 삶의 이치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음으로써 영원하고 지순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세계이다.

그는 그 자연에 의지하여 위로와 지혜를 얻지만, 때로는 자연의 완벽한 아름다움과 인간과의 거리 때문에 절망하기도 한다. 박재삼의 시는 1950년대의 주류이던 모더니즘 시의 관념적이고 이국적인 정취와는 달리 한국어에 대한 친화력과 재래적인 정서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 주어, 전후 전통적인 서정시의 한 절정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그의 시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구어체의 어조와 잘 조율된 율격은, 그의 시의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을 보장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7. 작품 목록[편집]



  • 울음이 타는 가을 江 (1959)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 질 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 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 자연 -춘향이 마음 抄- (1956)

뉘가 알리
어느 가지에서는 연신 피고
어느 가지에서는 또한 지고들 하는
움직일 줄 아는 내 마음 꽃나무는
내 얼굴에 가지 벋은 채
참말로 참말로
사랑 때문에
햇살 때문에
못 이겨 그냥 그
웃어진다 울어진다 하겠네.

  • 추억(追憶)에서 (1962)

진주(晋州) 장터 생어물전(生魚物廛)에는
바다 밑이 깔리는 해 다 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진주 남강(晋州南江)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 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 세상을 몰라 묻노니 (1979)

아무리 눈으로 새겨 보아도
별은 내게는
모가 나지 않네
그저 휘황할 뿐이네.
사랑이여 그대 또한
아무리 마음으로 그려보아도
종잡을 수 없네
그저 뿌듯할 뿐이네.
이슬 같은 목숨인 바에야
별을 이슬같이 볼까나.
풀잎 같은 목숨일 바에야
사랑을 풀잎같이 볼까나.
진실로 진실로
세상을 몰라 묻노니
별을 무슨 모양이라 하겠는가
또한 사랑을 무슨 형체라 하겠는가.


  • 병상(病床)에서

내일 어머님이 시골에서 오시는데,
한달 보름만에 오시는데,
우리 집 뜰에 와서 처음으로 핀
목련(木蓮)의 마지막 꽃잎마저 다 져벼렸네요.
눈물 흘리듯이 져버렸네요.
그러나 시방 한참
산당화(山棠花)가 잘 피어 있고
라일락이 피기 시작했거든요.
다만 목련(木蓮)의 그 맏며느리 같은
탐스러운 꽃잎이 아니고
끼니 없는 사람에겐 더 아프게 보일
밥알로만 피어 있거든요.
그러면서 결국은
꽃이 피었으니 신기하거든요.
그런데 하나 걱정이 남았어요.
이 좋은 봄날,
내 팔다리에서는 꽃이 피기는커녕
저리고 막막한 고혈압(高血壓)만 재발(再發)한 걸
어쩔 수 없이 보여 드려야 하거든요.

  • 허무(虛無)의 내력 (1996)

늘 돈은 조금만 있고
머리맡엔 책만 쌓이고
그 책도 이제는
있으나마나한데
땅 밑에
갈 생각만 하면
나는 빈 것뿐이네.

  • 수정가
  • 햇빛 속에서
  • 소곡
  • 정릉 살면서
  • 천년의 바람
  • 어린 것들 옆에서
  • 뜨거운 달
  • 비 듣는 가을나무
  • 거기 누가 부르는가
  • 아득하면 되리라
  • 간절한 소망
  • 내 사랑은시조집
  • 대관령 근처
  • 찬란한 미지수
  • 가을 바다
  • 바다 위 별들이 하는 짓
  • 박재삼 시집
  • 사랑, 그리움 그리고 블루편
  • 사랑이여
  • 가을바다
  • 기러기 마음을 나는 안다
  • 햇볕에 실린 곡조
  • 해와 달의 궤적
  • 꽃은 푸른빛을 피하고
  • 허무에 갇혀
  • 나는 아직도
  • 다시 그리움으로
  •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고
  • 박재삼 시선집


8. 기념사업[편집]


그의 생가 터에는 현재 김밥집(...)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생가 근처의 길이 '박재삼길'이라고 명명되었고, 근처의 노산공원에 '박재삼문학관'도 건립되었다. 또 해마다 '박재삼 문학제'를 개최하고 있다.


9. 작사[편집]


삼천포중앙여중 교가를 작사했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뒤에는 와룡산이 우뚝 솟았고
앞에는 남일대가 바다로 이어
장하고 아름다운 자리를 택한
빛나는 이 고장의 배움의 터전
그 이름 영원한 삼천포중앙여중
가꾸고 닦는 것만 우리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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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 삼천포초등학교[2] 김상옥 시인은 삼천포여고 교가를 작사했으며, 이후 박재삼은 삼천포중앙여중 교가를 작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