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석(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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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97년 5월 9일
전라북도 남원군 산내면 대정리
사망
1933년 7월 19일
전라북도 남원군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박정석은 1897년 5월 9일 전라북도 남원군 산내면 대정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4일 남원군 남원읍(南原邑)에서 천도교인과 기독교인이 중심이 된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남원읍 장날을 이용하여 광한루 앞 광장에 모인 수천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방극용(房極鏞)·형갑수의 주도 하에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시위행진하다가 일경이 시위 주동자를 검거하기 시작할 때 피신하였다.

1920년 11월 19일에는 박권영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전주군 다가산 숲속에서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특파위원장 명의로 '친일행동을 하고 이를 고치지 않으면 실혼몰적(失魂沒籍)할 것이며 중국 상해(上海)에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위하여 군자금을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의 경고문을 만들어 남원군의 박봉규(朴奉奎)·박희옥(朴禧沃)·유시재(柳時在)·이교환(李敎桓) 등 유지들에게 보내어 군자금을 제공케 하였다. 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특사인 전경도(全京道)로부터 임시정부의 조선내 특파외무부원 임명장을 받고 남원군과 장수군(長水郡)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21년 2월 1일 남원군 운봉면에서 유문경(劉文敬)으로부터 군자금 10원(圓)을 받고 3월 9일에는 장수군 산내면에 거주하는 이상일(李相一)로부터 130원을 받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내는 등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해 5월 9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7년형을 언도받아 공소하였으나 7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조용히 지내다 1933년 7월 1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박정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