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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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코칭스태프>
72 박승민 · 73 이희근 · 74 최윤석 · 77 정현석
· 80 고동진 · 86 김남형 · 90 김정민 · 92 최원호 [[감독|

]]
· 88 박재상 · # 김재걸 · # 정경배 · # 김우석'''
<퓨처스 코칭스태프>
71 이대진 · 75 박정진 · 79 마일영 · 81 김성갑
· 82 박윤 · 83 남원호 · 87 추승우 · 89 정범모

<잔류/재활군 코칭스태프>
57 정우람 · 70 강동우 · 76 윤규진 · 91 이상훈

<트레이닝 파트>
84 이지풍 · 김형욱 · 김연규 · 최우성
김재민 · 서진영 · 배민규 · 김소중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군입대선수등록선수
다른 KBO 리그 팀 명단 보기


박정진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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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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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37번}}}
최호원
(1994~1998)

박정진
(1999)


김경원
(2000~2001)
{{{#fff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23번}}}
조윤채
(2000)

박정진
(2001~2003)


엔젤
(2004)
{{{#fff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18번}}}
이상목
(2003)

박정진
(2004)


김해님
(2005~2006)
{{{#ffffff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51번}}}
윤근영
(2007)

박정진
(2008~2009)


윤근영
(2010)
{{{#ffffff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17번}}}
신주영
(2008~2009)

박정진
(2010~2018)


김범수
(2019~2020)
{{{#ffffff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75번}}}
타나베
(2019)

박정진
(2020~)


현역




파일:박정진2023.png

한화 이글스 No.75
박정진
朴正眞 | Park Jung-Jin
[1]
출생
1976년 5월 27일 (47세)
충청북도 청주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청주중앙초 - 청주중 - 세광고 - 연세대[2]
신체
183cm, 88kg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9년 1차 지명 (한화)
소속팀
한화 이글스 (1999~2018)
지도자
한화 이글스 1군 불펜코치 (2020)[3]
한화 이글스 2군 불펜코치 (2020)[4]
한화 이글스 1군 불펜코치 (2020)[5]
한화 이글스 2군 투수코치 (2021~)
프런트
한화 이글스 전력분석원 (2019)
한화 이글스 해외 스카우트 (2019)
병역
공익근무요원 (2004~2006)
등장곡
송민호 -
1. 개요
3. 프런트 경력
3.1. 2019년
4. 지도자 경력
4.1. 2020년
5. 피칭 스타일
6. 여담
6.1. 동안
7. 연도별 주요 성적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한화라서 행복하다. 시작과 끝을 모두 한화에서 할 기회가 주어져 정말 기쁘다."

ㅡ2017년 12월 29일, 2번째 FA 계약 직후의 인터뷰에서. #


한화 이글스 소속의 투수. 現 한화 이글스 소속의 코치. 커리어를 모두 한화에서 보냈으며 30이 넘어서 포텐이 터지며 한화 암흑기 시절 불펜에서 고군분투하던 선수였다.


2. 선수 경력[편집]


박정진의 선수 경력



3. 프런트 경력[편집]



3.1. 2019년[편집]


[단독]배영수 한화와 결별, 현역 연장 택했다...박정진도 떠난다 은퇴식을 제안했으나 현역 연장 의지를 밝히면서 한화를 떠나게 되었다. 자세한 방출 이유는 불혹은 넘긴 나이에 1년을 등판 못해 미심쩍은 몸상태와 팀에 좌완 투수가 많아서 그렇다고. 박정진 본인은 일단 2019년 3월까지 몸을 만들어보고 은퇴 여부를 결정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후속 기사에 따르면 현역 연장 의지는 타팀이 아닌 한화에서 이어가는 것이었다며 한화 외의 다른 팀에서 뛰고 싶은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한다. 이대로 은퇴 수순을 밟을 듯..

2019년 1월 30일에 각 구단 스프링캠프 일정이 시작되었고, 1월 31일 한화 이글스의 2019시즌 스프링캠프 출국장에 모습을 드러내며 한화와 함께하게 되었음을 알렸다. 사실상 현역 은퇴를 결정지은 셈. 그 뒤 한화가 구단 홈페이지 공지오피셜 기사를 통해 전력분석 및 해외 스카우트 연수를 시행한다고 발표했고, 이번 스프링캠프에서는 전력분석 트레이닝을 받는다고 한다. 이에 많은 한화팬들이 돌아온 박정진을 반겼다.

박정진은 이에 대해 "내 욕심이지만 올겨울 재활을 더 열심히 해 내년에는 팀에 보탬이 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팀에서 제의한 은퇴식을 정중히 사양하고 재도전을 언급했던 것이다. 결과적이지만 팀 입장을 100% 이해한다. 팀이 가고자 하는 리빌딩도 알고 있다. 젊은 선수들 위주로 팀을 꾸려가는 것이 맞다. 또 내가 보여준 것이 아예 없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정이었다. 구단에는 나올 때도 거듭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고 말했다.

3월 14일 SK와의 시범경기에서 구단 자체중계 해설로 등장하였다.


4. 지도자 경력[편집]



4.1. 2020년[편집]


육성군 투수코치 보직을 맡게 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1군 불펜코치로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다. 기존 1군 불펜코치였던 마일영 코치는 2군 불펜코치로 이동했다.

헌데 6월 6일 1군 엔트리에는 없었으나 선수단과 동행하던 중 김성래, 장종훈, 정민태 등과 함께 돌연 1군에서 말소되었다가 최원호 감독대행 취임 이후 다시 1군으로 올라오며 정식 불펜코치가 되었다.

시즌 종료 후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 체제 출범에 따라 2군 투수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다.


5. 피칭 스타일[편집]


"박정진 선배는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투수다. 박 선배에게 안타를 뽑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 내가 운이 좋거나 박 선배의 운이 나쁘거나. 실력으로 공략하긴 힘들다."

KIA 타이거즈 타자 최형우 - 박동희 기자의 칼럼에서 발췌.#



데뷔 3년차였던 2001년 당시 투구폼.[6]



포심-슬라이더의 투피치 투수로 완전히 오버핸드에서 내려꽂는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가 특징. 신체조건이 좋지 않은 점을[7] 최대한 높은 위치에서 팔을 쭉 뻗어 특유의 디셉션을 섞어 혼신의 역투를 하는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눈물이 난다.[8] 전 각주에서 언급되었듯이 박정진의 착화 신장은 183cm인데, 맨발 신장이 203cm인 더스틴 니퍼트보다도 릴리즈 포인트가 더 높다.[9] 이런 극단적인 오버핸드 유형의 특징인 디셉션도 있어서(위 영상 초반 참조) 타이밍 잡기가 까다로운 편.

시원시원하게 뿌려대는 돌직구가 일품으로[10] 다른 투수들은 피해가기 바빴던 참교육자를 상대로 칠 테면 쳐 보라는 식으로 가운데 포심을 꽂아 넣으며 삼진을 잡던 장면을 연출하며 한화 팬들을 들뜨게 했으나, 터지기 전엔 그게 다였다.

하지만 2010년대 초 빈약한 한화 불펜에서 송창식, 안승민과 함께 한화의 필승조 중 하나로 활약하는 등 2010년과 2011년에는 불펜계의 류현진급이 되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공을 뿌리는 특이한 투구 폼으로 인해 부상에 대한 우려가 있었으나, 본인은 이 폼이 여러 가지 투구 폼 중 가장 몸에 무리가 없었다고 한다. 이에 관한 내용은 아래에 서술.

타점이 높고 최대한 공을 숨겨서 끌고 나오는 투구 폼 때문에 공략이 까다롭다고 한다. 타자들이 타이밍을 잡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했다. 공을 내리면서 몸을 살짝 꺾는데 작은 키 탓인지 팔이 올라오는 과정이 보이지 않고 팔이 사라진 후에 꺾인 몸이 펴지고 갑자기 손목이 보이면서 공이 릴리스된다는 듯. 공의 릴리스 포인트를 제대로 못 잡으니 스윙 타이밍을 잡기도 힘들다고 했다. 가장 비슷한 타입의 다른 투수로는 오카지마 히데키 정도?
동시에 이 릴리스 포인트를 본인도 못 잡을 때가 있어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게 단점이다. 감을 못잡으면 공이 포수 키를 넘기거나 땅에 처박히기만 한다. 이 때문에 특히 등판 후 첫 타자 상대에 애를 먹는다. 위급상황에 올라올 수도 있는 불펜으로선 치명적인 약점.

김현수김광현이 던지는 슬라이더보다 박정진이 던지는 슬라이더가 훨씬 치기 어렵다고 한다. 실제로 저 투구폼과 맞물려 슬라이더가 굉장한 위력을 발휘하는 투수로 투석기 슬라이더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 25년 동안 슬라이더만 갈고 닦은 그야말로 슬라이더 장인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심지어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동기인 이승엽마저 같은 얘기를 한다.

제구가 거칠고 묵직한 구위의 포심과 날카로운 슬라이더로 승부하는 전형적인 파워 피쳐인데, 보통 투수들이 젊을 때 파워 피쳐였다고 해도 같은 팀 레전드 송진우정민철 같이 나이가 들면서 정확한 제구력이나 다양한 변화구로 승부하는 피네스 피쳐로 바뀌어 간다는 것을 보면,[11] 불혹의 투수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좋은 구위의 이유가 어째 그 동안 어깨를 하도 안 써서[12] 불혹의 나이에도 어깨가 싱싱하게 남았다고.


6. 여담[편집]


  • 별명은 이렇게 정말 뒤늦은 나이에 포텐이 터졌기에 "노장+유망주"라는 뜻에서 '老망주'. 터지기 전엔 '부잣집 도련님'.(아래 참조) "정진"이라는 별칭도 있다. 포텐이 터지기 전과 후의 성적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2010 시즌 이전과 이후의 기록 비교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8시즌
210
275⅔
14
13
3
21
0,519
5.16
274
37
163
205
174
158
1.553
7시즌
426
465⅔
28
28
31
68
0.500
4.25
415
39
215
466
244
220
1.325

  • 현역 통산 96홀드를 기록했는데 이는 역대 빙그레 - 한화 순수 선수 중 최다 홀드 기록이다.

  • 집안이 청주시에서 좀 잘나가는 집안이라고 한다. 그래서 생긴 것과 겹쳐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별명이 있었고, 야구 못하던 시절엔 부잣집 아들이라 야구 설렁설렁 한다고 까였던 바 있다.

  • 언급했듯이 팀 사정상 믿을맨이 박정진 거의 한 명뿐이다 보니 한화 팬들 입장에선 혹시나 혹사라도 크게 당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었는데, 탄산음료를 10년 넘게 입에도 안 댈 정도로 개인적인 몸 관리를 무척 철저히 한다고 했다. 팀 내 체력 측정에서 5순위 안에 꾸준히 든다고 했다.

  • 2011년도의 활약상 덕분에 마구마구에서 2011시즌 정규 카드를 처음으로 레어로 받았다.[13]

  • 두산의 좌타자들을 상대로 엄청나게 강했다. 한화가 두산에게 몇 년동안 고생한 주된 원인은 고비 때마다 김동주를 넘지 못한 것. 잠실 원정에서 두산 투수들을 공략하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발빠른 두산의 좌타자들(이종욱, 오재원)에게 한화 투수들이 탈탈 털렸던 것이 그 원인. 하지만 박정진이 2010년부터 각성한 후 두산의 좌타자들을 탈탈탈 털어 버리면서 두산 팬들에게는 거의 악마와 같은 존재로 군림했다. 2010년에 이종욱, 김현수, 이성열, 오재원을 상대로 29타수 1피안타. 2011년은 혹사 여파가 있었는지 2010년보다 못했지만, 여전히 두산을 상대로 쏠쏠한 모습을 보였다.

  • 2018시즌에도 계속 뛴다면 1994년 세계 청소년대회 우승 멤버 중 가장 오래 선수 생활을 하게 된다. 프로에서 롱런한 선수가 극히 적었던 당시 멤버 중 오래 뛰었던 선수로 이승엽김선우(1년 아래)가 있었으나 김선우는 2014시즌 종료 후, 이승엽은 2017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그리고 박정진은 2018 시즌을 앞두고 2년 계약을 맺으며 현실이 되었다.

  • 원래 세광고를 졸업하고 1995년 한화 이글스에 지역 고졸우선 지명으로 입단하기로 했으나 연세대학교한화 이글스 양쪽에 모두 등록을 해 이중등록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결국 본인과 부모님이 구단을 찾아가 단장에게 직접 사과하고,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한화 이글스에 들어가겠다는 식으로 마무리되었다.[14] 이중등록을 한 이유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연세대학교 출신이라 자기까지 연세대학교에 진학하면 3대가 연세대학교 출신이 된다고 해서였다.[15][16][17]



  • 얼굴 때문에 믿기 힘들지만 2016 시즌까지 KBO 리그 전체 투수 중 차고령자였다. 당시의 최고령자는 한때 팀 선배였던 최영필. 그리고 2017년 6월 최영필이 은퇴하고 같은 해 10월 이승엽이호준까지 은퇴하면서[18] KBO 리그 현역 선수 중 최고령자가 되었다.[19]

  • 팀 내 최고령 선수임에도 오래달리기 훈련을 하면 상위권에 속한다고 한다.

  • 전임 감독 재임 시절 1회부터 불펜에서 몸을 풀라는 지시를 받고, 4~5회 몸을 풀다가 9회 다시 몸을 풀고 등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즉, 1회부터 9회까지(...) 불펜에서 대기했던 셈. 어느 경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략 1회에 터진 경기가 빠르게 좁혀졌다가 다시 점수차가 벌어졌다가 9회에 큰 점수차로 이기거나 진 상황이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 유먼 메달 투수부분 최다 수상자이다.(5회)



6.1. 동안[편집]


실외 종목인 야구나 축구 선수들은 동안이 되기에 불리하지만,[20][21][22] 그런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박정진은 엄청난 동안이다. 홍성흔, 조성환, 이승엽, 박진만과 동갑이고 장성호, 서재응보다 1살 형이다.

파일:PJJ_1.jpg

옆의 선수는 노안으로 유명한 91년생 안승민. 보다시피 상당한 동안이다. 그런데 목소리는 또 나이에 걸맞게 중후하다.

파일:external/lh4.googleusercontent.com/baby%2520eagle.jpg
이게 놀랍게도 고졸이 아닌 대졸 선수의 사진이다. 옆에 숫자 37은 당연한 얘기지만 절대로 저 당시 나이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당시 배번 37을 일컫는다. 근데 37세에도 이 얼굴이었다(...).

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25EB%25BF%258C%25EC%259E%2589%25EB%25B0%2595.jpg
뿌잉박의 전설. 2011년에 올라온 사진이다(...). 그렇다면 35살...

파일:external/536863888ac5a8e939e2de754d408c2bf8e25f5706c970da675a5ee8815ccf0e.jpg
2014년 오키나와 마무리 훈련에서 피칭 연습 도중에 신임 김성근 감독에게 쓰담쓰담을 시전 받았다. 평소 내려꽂는 피칭 스타일을 좋아하는 김감독이라 박정진의 투구폼이 맘에 들었던 듯.

여담으로 이 기사의 댓글 중에

김성근: "마, 이 아이가 생긴 거 보아하니 젊어 보이는데 공도 잘 던지고 잘만 키우면 미래에 좋은 투수가 되지 않을라나 시포요."

박정진: "감독님, 저 마흔살인데요."

김성근: "??"

라는 베플[23]이 있었는데, 여기서 '감독님 저 마흔살인데요.'를 따와서 붙은 별명이 감저마.

2016년 8월 3일 기아전 중계방송 도중, 안치용 해설위원이 자기가 대학 1학년 신입생 시절에 최고참 4학년이었는데 그때부터 저 얼굴이라고 한다.

동안의 얼굴에 비해 목소리가 굉장히 중저음이다. 인터뷰영상

한창 살려조로 구를 때는 등판간격이 잦아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얼굴이 약간 까무잡잡해진 편이었다. 그리고 잦은 등판으로 인한 피로가 얼굴에 묻어나면서 약간 아저씨화된 모습을 보이기도...

최훈은 동안력을 이렇게 표현했다.노안듀오#


7.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 투수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9
한화
12
12⅓
0
0
0
0
0.000
8.03
15
2
10
11
12
11
2.027
2000
17
14⅓
0
0
0
0
0.000
5.65
17
3
10
10
10
9
1.814
2001
30
57
4
3
0
0
0.571
4.74
53
5
33
44
34
30
1.474
2002
41
47⅓
1
2
0
4
0.333
6.65
60
11
25
37
40
35
1.732
2003
57
100⅓
6
7
3
11
0.462
4.31
82
8
53
73
52
48
1.316
2004
31
32⅔
3
1
0
4
0.750
5.51
33
6
23
23
20
20
1.714
2005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2006
2007
1군 기록 없음
2008
5
1⅓
0
0
0
0
0.000
6.75
4
1
1
0
1
1
3.750
2009
17
10⅓
0
0
0
2
0.000
3.48
10
1
8
7
5
4
1.742
2010
56
79⅓
2
4
10
6
0.333
3.06
58
3
39
80
32
27
1.185
2011
64
(5위)
86
7
6
7
16
0.538
3.24
70
6
29
92
33
31
1.140
2012
63
49⅓
4
4
3
12
0.500
5.47
36
4
27
45
30
30
1.277
2013
30
21⅔
1
5
1
6
0.167
5.82
17
2
15
21
15
14
1.431
2014
60
49⅓
4
4
9
7
0.500
6.02
54
5
26
51
39
33
1.601
2015
76
(5위)
96
6
1
1
15
0.857
3.09
84
8
44
92
37
33
1.281
2016
77
(1위)
84
4
4
0
6
0.500
5.57
96
11
35
85
58
52
1.54
2017
55
48
3
2
1
7
0.600
3.94
38
6
27
51
28
21
1.29
2018
1군 기록 없음
KBO 리그 통산
(16시즌)

691
789⅓
45
43
35
96
(10위)
0.511
4.55
727
82
405
722
446
399
1.40

  • 타자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2
한화 이글스
3
0
.000
0
0
0
0
0
0
0
0
.000
.000
2003
3
0
.000
0
0
0
0
0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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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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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유어 이름으로 아는 경우가 많지만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상에서 "박정진(朴正眞)"이라고 검색하면 1994년자의 신문 내용에 세광고 소속 선수로 나온다. 또한 바르고 참되다라는 뜻의 정진하다(正眞-)라는 형용사는 한자가 있는 낱말이다.[2] 체육교육과 95학번[3] ~6월 5일[4] 6월 6일~6월 7일[5] 6월 8일~[6] 해당 경기는 2001.09.29 경기이며, 박정진은 7.1이닝을 1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승리 투수가 된다.[7] 프로필상 그의 신장은 183cm인데 그대로 믿기는 힘든 편. 맨발 신장은 180cm전후로 보이는데 야수면 몰라도 투수 치고는 작은 키다.[8] 40대 아저씨들은 "친구야! 불혹의 힘을 보여줘!"라며 응원한다.[9] 게다가 니퍼트 또한 오버핸드에 가까운 높은 쓰리쿼터형이었다. 그런 니퍼트보다도 높은 릴리즈 포인트를 갖고 있었다.[10] 훨씬 젊고 150까지 뿌려대는 이분보다 공이 좋고 덜 맞는다[11] 물론 온갖 괴물들이 넘쳐나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는 40대에도 윽박지르는 투구를 하는 투수가 없지는 않다.[12] 1999년 입단인데 2010년부터 1군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았으니 그동안 어깨만 단련된 셈. 커리어를 통틀어 100이닝을 넘긴 경우도 2003년뿐이다.[13] 그리고 강제 커리어 하이 시즌인 2015년에도 엄청난 활약 덕에 레어를 받았다.[14] 비슷한 사례로 2년 전인 1993년 신일고 출신 강혁 역시 OB 베어스한양대학교 양쪽에 이중 등록을 하는 바람에 이중계약 파동이 일어났고, 영구제명까지 당했다. 만약 한화가 한 발 물러서지 않고 강경하게 나섰으면 박정진 역시 영구제명을 당하거나 이에 준한 징계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15] 본인에 의하면 거의 한화로 가는 게 확정적인 상황에서 연세대학교에서 입학 제의가 왔다 보니 급하게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만약 연세대가 아닌 다른 대학에서 입학 제의가 왔다면 곧바로 프로로 직행했을 거라고 밝혔다.[16] 그도 그럴 것이 박정진이 대학에 입학하던 90년대 중반에는 아마추어와 프로 구단 간 스카우트 경쟁이 가장 치열하던 시절이었다. 예를 들어 대학 쪽에서 고교 졸업반 선수를 스카웃하기 위해 장학금, 생활비 지원 및 동기들을 같이 데리고 입학할 수 있다는 조건을 제시한 뒤 다른 학교나 프로 구단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코치나 선배들을 동원해 지방에 있는 여관에 감금(!)시켜 놓으면, 이걸 또 프로 구단 스카우터가 뒤를 밟아서 해당 선수를 도로 빼돌려놓은 뒤 선수 부모님한테 연락해 높은 계약금을 제시하는 등 웃지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17] 한화는 이 해에 박정진 외에도 대전고 투수 오창선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오창선 역시 고졸 연고 입단을 했지만 홍익대학교로 방향을 틀었고 이 과정에서 구단으로부터 받은 계약금 일부를 돌려주지 않았다. 오창선은 이후 KBO에서 영구 제명되었다가 대학 졸업 직전 사면되어 한화에 입단하지만 별 활약없이 사라졌다.[18] 등록 기준[19] 이승엽의 은퇴투어 중 한화에서는 한밭야구장 베이스를 뽑아 롤링페이퍼를 써줬는데, 박정진만이 승엽아!라고 말을 놓아 관람객들을 다시 한 번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기도 했다. 이승엽과는 동갑내기에 세청우승동기이다. 다들 박정진이 이승엽에게 말을 놓는 걸 보고 좀 충격을 받았다는 팬들도 많았다. 저 얼굴이 어떻게 이승엽과 동갑이며, 저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라서(...).[20] 실제로 농구 선수나 배구 선수들이 미남 미녀 선수들이 많기도 하다. 우지원, 이상민, 황연주, 한송이 등등... 모두 동안. 야구 선수나 축구 선수의 얼굴은 동년배의 일반 직장인보다도 더 나이들어 보이는 경향이 있다. 수염까지 덥수룩하게 기르면 더더욱.[21] 대표적으로 진갑용이 사적으로 친한 김원준에게 이라고 부르는 것을 생각해 보라! 실제로 김원준이 진갑용보다 1살 많다. 물론 연예인(배우, 가수)은 동 연령대에서 가장 노화가 늦고 실외 스포츠 선수는 동 연령대에서 직업군인이나 건설노동자 다음으로 노화가 빠르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게다가 노안 연예인도 다소 있으며 김원준은 그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최강의 동안이니..[22] 다만 같은 실외스포츠인 축구 선수에 비하면 야구 선수는 덕아웃에 있는 시간이 많은 편이며 시즌의 7-80%를 자외선이 별로 없는 저녁시간대에 하기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늙어보인다.[23] 사실 박정진은 연세대 재학 시절 인스트럭터로 온 김성근에게 지도받은 적이 있다. 위 사진에서도 김성근이 박정진의 연세대 시절을 언급하며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네가 벌써 마흔이냐"라고 말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