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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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기업인, 정치인이다. 종교는 개신교이다. 본관은 함양.
1941년 전라북도 임실군에서 박세경[1]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동 대학교 정책과학대학원,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하였다.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재학 중인 1964년 정치외교학과 학생회장으로서 한일기본조약 체결에 반대하는6.3 항쟁에 참여하였다. 이후 3선 개헌 등 민주화운동을 하다 고초를 겪었다. 1971년 진산 파동의 여파 중에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장덕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7년 정일형(신민당)의 국회의원직 상실과 장기영(민주공화당)의 별세로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오제도 후보와 무소속 정대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0년 아버지 박세경과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조작에 연루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아버지 박세경과 함께 정치규제를 당하였다가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 1983년부터 대우그룹 임원을 역임하였다.[2] 훗날 김대중의 장남인 김홍일이 1988년에 김우중 대우회장으로 부터 거액의 정치 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쓸릴 때 정치자금은 자신이 김우중 회장에게 두 번이나 요청해 이뤄진 것이며 전달된 액수도 실제보다 엄청나게 과장됐다고 김홍일을 변호했다. [3]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95년 정계 복귀한 김대중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합류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전라북도 임실군-순창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0년 초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여 민주국민당에 입당하였고 정책위원회 의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화재보험협회 이사장을 맡았다.
2. 선거 이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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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승만 정권 때 여당인 자유당 국회의원이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고 야당 정치인이 되었으며 김대중을 후원하였다. 대부분 자유당 출신 정치인들이 나중에 대다수가 민주공화당과 유신정우회의 지지 세력으로 흡수된 것과는 반대의 케이스인 셈이다. 물론 박세경처럼 야당 정치인으로 변한 자유당 인사들도 있었다. 이후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등에도 연루되었다.[2] 김우중 회장의 경기고등학교 후배였다.[3] 본인의 말에 따르면 당시에는 전국구 후보의 헌금이나 기업의 정치자금 제공은 야당의 생존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며 1988년 이후에는 정치자금을 조성하거나 심부름도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4] 영등포구 갑[5] 종로구·중구[6] 96.3.2: 통합민주당 탈당으로 인한 의원직 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