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대(1924)

덤프버전 : r20210301



본관
밀양 박씨
출생
1924년 4월 1일
경상북도 예천군 유천면 매산리[1]
사망
2000년 2월 6일
서울특별시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편집]


박주대는 1924년 4월 1일 경상북도 예천군 유천면 매산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0년 4월 일본 나고야시 오와리(尾張)중학교에 재학하고 있을 때 이평산(李平山)의 지령에 따라 동경에 유학중이던 학생 20여 명과 문학청년동맹(文學靑年同盟)을 조직하고 수필지인 <금강산(金剛山)〉을 등사 제작하여 동지들에게 배포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1942년 9월 오사카시 고노하나(此花)상업학교의 야간부에 3학년으로 편입한 뒤 동지들을 규합하여 수필지인〈금강산(金剛山)〉을 재발행하여 활동하다가 귀국하였으나 1944년 일경에게 연행되어 강제로 징병입영서를 받고 일본군 함흥43부대에 강제 입대되었다.

그후 일본군으로 중국에 파견되었다가 1944년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직한 군대인 한국 광복군이 충칭에 있음을 전해 듣고 광복군에 입대하기 위하여 동지 9명과 완전무장을 하고 일본군 진영을 탈영하여 중국군 제5유격대에서 활동하다가 1945년 3월 장시성 의춘(宜春)에서 중국군 제9전구에 편입되었다.

1945년 4월 1일 광복군에 입대하여 제1지대 제3구대에 배속되어 항일투쟁을 계속하던 중 8.15 광복을 맞이하였다. 이후 국내로 귀국하여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다 2000년 2월 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박주대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2000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