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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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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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민주당(2008년) 로고.svg 정책위원회 의장
초대
박병석

제2대
박지원


제3대
전병헌

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 남북관계 및 교류협력발전특별위원장
제19대 전반기
이석현

제19대 후반기
박지원


제19대 후반기
원혜영

파일:국회휘장.svg 대한민국 국회의원 (전남 목포시)
제17대
이상열

제18-20대
박지원


제21대
김원이












대한민국 제25대 대통령비서실장
대한민국 제35대 국가정보원장
박지원
朴智元 | Park Ji-won


출생
1942년 6월 5일 (81세)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거주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양아파트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 구교주공아파트[1]
본관
밀양 박씨
현직
더불어민주당 일반고문

단재(旦齋)
재임기간
국민의 정부 초대 공보수석비서관대변인
1998년 2월 25일 ~ 1999년 5월 25일
제36대 문화관광부 장관
1999년 5월 23일 ~ 2000년 9월 19일
국민의 정부 제5대 정책기획수석비서관
2001년 3월 26일 ~ 2001년 11월 13일
제25대 대통령비서실장 (장관급)
2002년 4월 15일 ~ 2003년 2월 24일
제35대 국가정보원장 (장관급)
2020년 7월 29일 ~ 2022년 5월 11일
서명
파일:박지원 서명.svg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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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박종식
형제자매
3남 1녀 중 막내
배우자
이선자[1]
자녀
슬하 2녀[2]
신체
167cm, B형[3]
학력
오산국민학교[4] (졸업)
진도중학교 (졸업)
문태고등학교 (졸업)
광주교육대학 (초등교육학 / 전문학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상학 / 학사)
병역
육군 병장 제대
종교
가톨릭 (세례명: 요셉)
소속 정당

의원 선수
4
의원 대수
14, 18, 19, 20
경력
럭키금성상사 근무
동서양행 뉴욕지사장
데일리팻숀스 대표이사
제16대 뉴욕한인회 회장[5]
미주지역한인회 총연합회 회장
민주당 통일국제위원회 부위원장
제14대 국회의원 (전국구 21번 / 민주당)
민주당 수석부대변인
민주당 대변인
민주당 당무위원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
새정치국민회의 기획조정실장
새정치국민회의 총재특별보좌역
제15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대변인 (국민의 정부)
제36대 문화관광부 장관 (국민의 정부)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국민의 정부)
대통령비서실 정책특별보좌관 (국민의 정부)
제25대 대통령비서실장 (국민의 정부)
제18대 국회의원 (전남 목포시 / 무소속)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민주당 원내대표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제19대 국회의원 (전남 목포시 / 민주통합당)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제19대 국회 후반기 남북관계 및 교류협력발전특별위원회 위원장
제20대 국회의원 (전남 목포시 / 국민의당)
국민의당 최고위원
국민의당 원내대표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국민의당 대표
제20대 국회 후반기 법제사법위원회 간사[6]
민생당 상임고문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광주김대중컨벤션센터 이사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사업회 이사
김대중이희호기념사업회 부이사장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제35대 국가정보원장 (문재인 정부)
더불어민주당 당무감사원 고문

1. 개요
3. 정치력과 처세술
5. 소속 정당
6. 선거 이력
7. 어록
8. 여담
9.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정치인, 관료.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현재는 더불어민주당 고문을 맡고 있다.[2]


2. 생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박지원/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정치력과 처세술[편집]


수십년의 정치 경력으로 인해 '정치 9단, 족집게, 꾀돌이' 같은 별명이 있을 정도로 국내 정치가들 중에서도 가장 노련한 수완가로 평가받는다. MBC의 21대 총선 개표방송인 MBC 선택 2020에서는 아예 '8선 같은 4선'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이다. 깔끔하고 명쾌한 메시지와 능수능란한 정치적인 감각, 유머러스하면서도 촌철살인을 하는 말빨과 상대방의 약점과 흠결을 효과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정보력을 갖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국민의당 시절, 당대표는 안철수천정배였지만 국민의당이 제20대 총선에서 호남권의 표를 모두 싹쓸이하고 제대로 된 지역정당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원내대표로 활약하던 박지원의 공이라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당시 제1야당은 더불어민주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당 박지원 당시 원내대표가 싱크탱크 역할을 하며 정국을 이끌었다. 권력의 실세이자 핵심에 있어보기도 했고, 권력이 없었어도 다선 의원이자 야댱 대표 같은 거물급 정치인으로써 그 생리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2023년 현재에도 80세가 넘는 최고령급의 정치인이지만 여전히 두뇌회전도 매우 빠르고 국내 정치 흐름의 맥을 잘 짚는 상황 판단을 보여주고 있다. 2016년 12월 9일 헌정 사상 두 번째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진행돼 가결된 후, SBS에서 박지원을 초청해 의견을 묻기도 했다.

정계의 원로로 이 나이까지 살아남은 여의도의 정치 9단이라는 이름은 결코 허풍이 아닌지라 80이 넘은 지금도 국내 정치의 형세를 파악하는 능력이 여전히 매우 뛰어나다. 그 때문에 프로에서 초청되면 차분하지만 매우 예리한 면모를 보인다. 자유한국당/2.27 전당대회에서 모든 선거는 시대정신을 반영하기 때문에 당대표 선거 2위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일 것이라고 예측했고 실제로 맞아떨어졌다.

미국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 패싱 사건 관련하여 윤석열낸시 펠로시 미국 연방하원의장과 깜짝 만남을 할 거라고 예측했지만 빗나가서 "정치 8단"으로 내려간 거 아니냐는 말이 있었는데, 본인이 정치 9단 걸고 이 발언을 한 걸로 보아 윤석열을 나무라기 위해, 쉽게 말해 "펠로시 진짜 안 만나면 안 된다. 윤석열이 펠로시를 진짜 안 만난다면 그건 정말 비상식적인 처사다."라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 이 발언을 했다는 시각도 있다.

바른정당국민의당의 합당 후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으며 이후 바른정당이 국민의당에 이어 2차로 자유한국당과 합당하려 할 것이라고 예측을 내놓았다. 이후 바른미래당의 합당 결과가 그리 신통치 않으면서[3] 박지원의 예측이 맞았다는 것에 고무되어 이후 바른미래당이 과연 자유한국당과 합쳐질 것도 맞을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쏠렸는데, 결국 그 바른미래당에서 친유계가 새로운보수당 분당 후 21대 총선 국면에서 자유한국당과 합당하여 미래통합당이 되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맞춘 셈이 되었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총재였던 시절부터 대언론소통을 맡아 기자들과의 접촉이 잦았으며, 정동영 전 의원이 갓 정계입문 후 DJ에게 아침보고를 올리고자 출근하면 전날까지 기자들과 만난 박지원 전 원장이 차 안에서 운전사와 졸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고 한다. 이렇듯 기자들과도 곧잘 친근하게 지냈기 때문에, 일설에 따르면 당시 뉴스 기사에서 "야권의 한 고위 관계자" 라는 지칭이 나오면, 사람들은 대체로 박지원이 말하는 것이라 간주했다고 말할 정도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존경해서 그런지 MB정부 시절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공작으로 추정되는 혐의가 생기자 이명박을 공격하는 말을 쏟아내었다. 국가정보원 대북공작금 유용 사건,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 참고. MB정부의 국정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있는지 뒷조사를 하고,[4] 노벨평화상 수상 취소 청원을 모의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자신의 SNS에 즉각적으로 "천하의 못된 짓은 다 모아 자행한 MB와 MB정부 주동자, 가담자는 철저히 발본색원, 처벌해야 한다" 라며 "이미 수상한 DJ의 노벨평화상을 취소시키려 모의했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극렬한 반응을 쏟아냈다. 게다가 2017년 국정감사에선 "다스는 MB 거"라고 노골적으로 주장하며, 11월 1일에 출연한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선 "내가 미워하는 MB가 곧 구속되게 생기니 기분이 좋다"는 발언으로 대놓고 확인사살. 다만 그러면서도 김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의 "MB가 아버지의 국장을 마지못해 결정했다" 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면부정하며 "MB가 국장에 적극 협조해줬으며 지금도 감사하고 있다" 라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다.@

한때 같은 정당에 몸담았던 문재인 전 대통령과도 사뭇 노선이 달랐다. 민주당 분당과 대북송금 특검 등으로 참여정부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했던 영향이 있는 듯. 2017년 19대 대선 시기에는 '문모닝'으로 대변될 만큼 대립각을 세웠고, 후일에 스스로도 "반문의 괴수"였다고 인정하고 시인할 정도였다. 19대 대선 당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유세 중에 느닷없이 '문재인이 되어야 호남의 정치적 몫을 가져올 수 있다' 라며 말실수를 해서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만큼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매우 의식해서 나온 실수라고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때로는 지지, 때로는 비판을 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지지하는 모습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튼튼한 안보와 한미 동맹, 한미일 공조에 대해서 간과하고 있다."#, "DJ였다면 대일문제(강제징용)를 이렇게 악화시키지 않고 국익을 위해 결단을 내렸을 것."#, 최저임금 인상이나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기조에 대해서는 "한국 경제는 항공모함인데 정부가 고무보트처럼 획 돌려 좌초될 위기."#라며 비판하기도 하였다. 일자리 문제에 대한 정부 대응에 대해서도 비판한바 있다.# #

2017년 4월 북한이 한반도 긴장상황에도 불구하고 열병식을 하면서 ICBM을 공개하자 "지금 제정신인 거냐"고 비판했다. # 앞선 2월에는 IRBM(중거리 탄도미사일), 3월 초에는 사거리로 보아 ICBM(대륙간,장거리)으로 추정되는 미사일을 4발 시험발사하였다. 이에 3월 31일 트럼프 정부의 첫 무더기 대북제재 법안이 발효됐으며 같은 날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북한은 이란보다 시급한 위협.”이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5]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햇볕정책을 기본으로 한 대북 문제에 대해선 상당한 존재감을 크게 나타내고 있다. 민주당 시절에는 물론이고, 국민의당-민주평화당으로 당적을 옮긴 후에도 북한을 다루는 통일 분야에서 박지원 전 원장의 영향력은 여전히 상당하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야당 유력 인사 중에서는 이 대북 문제와 관련해 정부 및 여당과 항상 밀접하게 접촉하는 인사이기도 하다.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DJ는 외교 강화론자이며 늘 국익을 생각하라 하셨다. DJ는 주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965년) 한일회담 찬성, 일본 대중문화 개방, 비난을 감수하며 4대국 보장론을 주장하고 대만과 단교하고 중공과 외교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주창했다. 실제로, 일본 대중문화 개방으로 한류가 시작됐으며 중국과 외교관계 시작은 한국의 경제성장에 기여했고, 튼튼한 안보, 한미 동맹, 한미일 공조, 중러의 협력으로 햇볕정책을 이끌었다."고 회상했다.#

2010년 초 김정일 건강이상설이 대두되며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북한 붕괴 가능성이 제기되었는데, 언론 인터뷰에서 박지원은 "북한 붕괴는 잘못된 판단이고, 북한은 붕괴되더라도 누군가는 북한을 이끌고 간다" 라고 주장했다. 이어 "남북 경제협력 경색으로 남한기업의 손실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중국의 입지"라며 북한이 중국과의 경협을 늘려가는 것에 대해 우려하며 당시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다.# 12월에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직접 “머지않아 통일이 가까운 것을 느낀다. 통일에 대비해야 한다”며 북한 붕괴와 흡수통일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이후 2011년 12월 김정일의 사망에 이어 김정은이 등장하였다.

2016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 북핵문제에 대한 '햇볕정책 책임론'을 제기하자 "이명박, 박근혜 정권 동안 4번의 북한 핵실험이 있었고, 북한 미사일 기술의 진전을 알면서도 속수무책이던 대통령께서 '대화 위해 북에 준 돈이 핵개발 자금 됐다'며 햇볕정책에 책임을 떠 넘기고 있다.", "정부 말대로 하면 북한은 이미 망했거나 오늘 망해야 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동안 준 돈이 없는데 북이 핵 SLBM 미사일 핵잠수함까지 건조해서 실험을 하는건 무엇인가. 경부고속도로에서 사고나면 동작동 국립묘지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로 가서 항의하냐"고 반박한 바 있다.#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JTBC 인터뷰에서 앵커가 "햇볕정책은 남북한이 자주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차원에서 시작했던 것 아니었습니까?"라고 묻자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튼튼한 한미 동맹에서 출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후 미국에 가서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 대북정책을 이렇게 하자고 설득해서 그 결과를 가지고 어떤 의미에서 보면 클린턴 메시지를 가지고 6.15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에게 전달했던 겁니다. 그리고 북한의 핵문제는 남북 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북미 간의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지금도 주도권이 다시 미국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클린턴 대통령 때는 클린턴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설득돼서 이제 대북정책의 운전석에 김대중 대통령이 앉고 자기는 조수석에 앉겠다, 이렇게 합의되어서 한 겁니다. 현재 햇볕정책의 추진이 별로 가능해 보이지는 않지만 미국 정책도 늘 고착되는 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하는 거죠. 계속 우리는 미국에 대해서 설득을 해야 되고 북한에 대해서도 설득해야죠. 우리는 한미 동맹 속에서 북한과 전쟁을 막고 어떤 무력도발보다는 대화로 해결하자 하는겁니다. 남북 관계 개선은 2000년 6.15 정상회담 정신으로, 북한의 핵 문제는 6자회담 9.19 합의 정신으로 돌아가면 해결이 됩니다."라고 말했다.#

2018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사안인 페미니즘 문제에 대해서는 '워마드를 이해해야 한다'[6]는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또한 극단적 페미니스트들의 비하적인 내용이 담긴 악질적 문자 테러를 받았고, 이를 중단할 것을 경고했다.#

국정원장이 된 이후로도 이 정치력은 어디 가질 않은 모양인지,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와의 만남 이후 일본의 언론들은 "일본 총리 관저의 오산이었다" 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고 한다. # 보통 해외국가의 정보기관과는 몰래 만나는 것이 통상적이다. 근데 박지원 원장은 아주 대놓고 총리관저 정문으로 들어가 기자들과도 만났다. 아예 '일본 총리를 만나러 간다' 라고 언론에 방일 일정과 취지를 공개까지 했다. 이로 인해 일본 정부는 정보 관리도 제대로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일본의 정부 관계자들은 "어째서 벌써 언론 보도가 나갔는가" 라는 식으로 당황스러워 했다고 한다. 마이니치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 총리실 관계자는 박지원 국정원장을 보고 "약았다"라고 표현을 했다고 할 정도.

더불어민주당 복당 이후인 2023년에는 노태우 정부 때 여당과 3김이 이뤄냈던 협치를 항상 예로 들면서 당정협치, 여야협치를 굉장히 강조하는 모양새이다. 이재명이 홍준표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 일은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김기현 대표가 이재명 대표에게 밥이나 술 한 잔 하자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해 보수언론으로부터 협치 거부라고 공격당하자 박지원도 이것은 아쉬운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재명의 지지자들에게 수박이라고 공격당하고 있다.[7] 항의 문자폭탄을 받은 일로 개딸을 직접 공격했다가 증거가 없다며 몰매를 맞은 이원욱 의원의 경우 등 당내 정파 갈라치기에 대해서는 정말 민주당 지지자이거나 당원이라면 민주당을 분열시키지 않을 것이라며 외부공작설을 제기했다.

4. 비판과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박지원/비판 및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파일:민주정의당 글자.svg

1981
정계 입문 시도[8]

[[무소속|
무소속
]]

1981 - 1987
탈당
정계 입문

[[평화민주당|
파일:평화민주당 글자.svg
]]

1987 - 1991
창당

[[신민주연합당|
파일:신민주연합당 글자.svg
]]

1991
당명 변경

파일:민주당(1991) 글자.svg

1991 - 1995
합당[9]

[[무소속|
무소속
]]

1995
탈당[10]

[[새정치국민회의|
파일:새정치국민회의 흰색 로고타입.svg
]]

1995 - 1998
창당

[[무소속|
무소속
]]

1998 - 1999
탈당[11]

[[새정치국민회의|
파일:새정치국민회의 흰색 로고타입.svg
]]

1999 - 2000
복당

[[새천년민주당|
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0 - 2001
합당[12]

[[무소속|
무소속
]]

2001 - 2003
탈당[13]

[[새천년민주당|
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3 - 2004
복당

[[무소속|
무소속
]]

2004 - 2008
제명
정계 은퇴

[[대통합민주신당|
파일:대통합민주신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8
입당[14]
정계 복귀

[[통합민주당(2008년)|
파일:통합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08
합당[15]

2008
탈당[16]

2008 - 2011
복당

2011 - 2013
합당[17]

2013 - 2014
당명 변경

2014 - 2015
합당[18]

2015 - 2016
당명 변경

2016
탈당[19]

2016 - 2018
입당

2018
탈당[20]

2018 - 2019
창당

2019 - 2020
탈당[21]

2020
창당

2020
합당[22]

2020 - 2022
탈당[23][24]

2022 - 현재
복당[25]


6.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6,004,578 (29.20%)
당선 (21번)
초선[26]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부천 소사

31,786 (37.25%)
낙선 (2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목포

45,415 (53.59%)
당선 (1위)
재선[27]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63,705 (71.17%)
3선[28]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58,630 (56.38%)
4선[29]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47,528 (37.34%)
낙선 (2위)
[30]

역대 선거 벽보
[ 펼치기 · 접기 ]
파일:아이즈원 1996.jpg
파일:아이즈원 2008.jpg
15대 총선 (경기 부천시 소사구)
18대 총선 (전남 목포시)
파일:아이즈원 2012.jpg
파일:아이즈원 2016.jpg
19대 총선 (전남 목포시)
20대 총선 (전남 목포시)[1]
파일:2020총선민생당박지원.jpg
21대 총선 (전남 목포시)



7. 어록[편집]


날카로운 촌평과 깔끔한 메시지로 정평이 나있다.

정치는 생물입니다.

본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한 말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박지원 전 원장이 자주 이 말을 사용해왔다. 이제는 여러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용어가 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정책도 이 논리가 적용되어 결국 국가정보원장으로 등용되었으며, 박 전 원장을 비판하던 사람들도 대북 발언에 대해서는 옹호하고 박 전 원장에 대해 대북 전문가로 기대를 거는 모습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경복궁이 무너지면 대원군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냐?"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비판하며 한 발언.


"위장전입, 병역기피, 부동산 투기, 탈세. 이 4가지 다 지키면 뭐가 되는 줄 아십니까?"

"장관!"[31]

이명박 정부 시절 어느 유세 현장에서.


정치하면서 자기 가족하고 친구하고 밥 먹는 사람은 자격이 없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삼시 세끼를 기자하고 먹는 것이 제일 좋다.

2016년 5월 3일 국민의당 초선 국회의원 당선자를 대상으로 한 워크숍에서 특강을 하면서.


정권이 끝나면 저처럼 불행한 사람이 안 나와야 한다. 순간은 막아도 영원은 막을 수 없다. 안 수석이 대단히 위험한 위치에 있다고 본다. 정권 끝나자마자 어떻게 되겠나.

2016년 10월 2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의혹에 대해 방어하던 안종범 청와대 정책수석에게.#


안철수에게 모이는 사람은 민주당 계열에 있다가 실패한 사람들이다. 유권자들은 안철수 개인을 보고 좋아하겠지만 결국 그 주변사람들이 누군지도 살피면서 투표한 것.

2017년 대선 직후 안철수를 비판하며 한 말.


골프하고 선거는요, 고개 쳐들면 그 순간 집니다.

썰전 244화에서 전라남도지사 당선 가능성에 대한 답변.[32]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께서 21세기 정치인이 하지 말아야 할 3가지 중 2가지를 이행하셨다. 삭발, 단식투쟁 다음에는 국회의원직에서 사퇴하는 법인데 의원직이 없으니 당대표직에서 사퇴하게 될까 우려스럽다.[33]

2019년 11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게시물 中


제게 재판장처럼 말하지 말아주세요.

2019년 12월 30일 추미애 법무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中[34]


나는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지만 와신상담을 할 수는 없다.

2020년 1월 8일,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35]


국가를 위해서 정치인은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누웠다 일어날 줄도 알아야 한다.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 中, 기회주의자라는 세간의 평판에 대해 물었을 때.


저한테 못 당하니까 요물이라고 하는거죠.

(진행자 : 3분 전에 겸손을 말씀하셨는데...(일동 웃음))

정치인은 천의 얼굴을 가져야 한다. 또 정적을 폄훼해야 할 때에는 사정없이 해야 한다.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홍준표 의원이 자신을 '여의도의 요물'이라고 불렀던 것에 대하여 묻자#


이분은 비대위원장이 직업인 것 같아요. 그런데 비대위는 공천권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으니까 제가 하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2020년 4월 23일 KBS 더 라이브


대통령이 월 300만원 당비 내면 당무개입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세금 많이 내는 재벌들이 정치를 냅다 쥐고 흔들어도 된다는 얘기인가.

대통령 당무개입 논란에 대한 비평[36]


오동잎 떨어지면 가을이 오는 것인데 대통령은 지지율이 떨어지는데도 가을이 온 줄 모른다.

2023년 1월 계속되는 윤석열 당무개입 논란과 대통령 국정지지도 30%에 대한 비평


한덕수 총리 경질됐는데 모르고 총리실 출근했다가 신문 보고 알라.

매불쇼영빈관 신축 예산에 대해 신문 보고 알았다한덕수 총리의 대정부질문 답변에 대해 남긴 논평 #


2023년 대한민국 권력 1위는 김건희, 영부남 윤석열은 2위이다.

2023년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사퇴 사건 이후 외교안보관련 인사에 관한 비평 #


국민의힘 총재는 윤석열, 부총재는 전광훈이며 당대표 김기현은 그 다음이다.

2023년 4월 첫째 주 시사 in 유튜브 #


외교에도 승패가 있지만 양국이 이익을 51% 과 49% 정도로 나눠 가져야 회담 성공인 것인데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에 100% 전부 퍼준다.

2023년 4월 22일 제주도 강연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대한 비평 #


주어 없이 말하는 사람이 대통령감이면 차기 대통령은 나경원인가

윤석열 일본 사죄 관련 외신 인터뷰 논란에 대한 비평


윤석열 대통령 칭찬할 것은 부부 금슬 하나 뿐이다.

넷플릭스 투자 유치 김건희 여사 보고 논란에 따라 김건희 여사가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동반자냐는 물음에 답하며.


정치 입문 뒤에 떼돈 버는 사람들은 문제 있는 사람들이다. 나도 부자였는데 선거운동하고 재판하며 있는 재산 다 해먹었고 15년 넘게 검찰수사 받고 있어 재산을 숨겨놓을 수도 없다.

2023년 4월 민주당 돈봉투 사건에 대한 비평


윤석열 정부 1년간 업적은 만 나이 사용을 법제화한 것 뿐이다.

2023년 5월 10일 매불쇼


8. 여담[편집]



  • 이 유머감각을 보여준 예로, JTBC 적과의 동침 2회에서는 혼인을 앞둔 딸들을 두고 "너희 엄마 눈만 닮아라. 엄마 눈을 닮아서 좋은 남자가 있으면 잡아라" 라는 자뻑개그를 날리기도 했다. 물론 그에 이어 아내의 반응인 "그러다 네 남편도 감옥 갈라"라고 자학개그를 덧붙인 건 덤. TV조선 전원책의 이것이 정치다에서는 TV조선에 입사한 전원책 변호사에게 다짜고짜 "블라인드 채용제가 (실시)됐으면 제가 TV조선 기자됐습니다"라며 축하해주기도 했다.

  • 가끔 스스로를 칭하면서 '저 박지원이..' 같은 3인칭화를 사용하기도 한다. 물론, 정치인들은 자신을 지칭할 때 3인칭화를 많이 쓰긴 한다.

  • 녹내장으로 인해 왼쪽 안구를 적출하고 의안을 착용하고 있어서 양쪽 눈의 초점이 맞지 않아 어색해보이는 경우가 잦다. 이러한 신체적 콤플렉스를 소재로 한 원색적인 비하도 자주 있다. 눈이 하나라서 Eyes One이라는 개드립이라던지...

  • 정적을 포함한 누구와도 극단적으로 척을 지지 않으려 하며 특히 언론과도 친하게 지내는 등 특정 정치 성향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정치인으로는' 그야말로 모범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수십 년의 정치인생 중에 개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치명적인 위기가 몇 번 있었음에도 여든 넘은 나이까지 안정적으로 정계에서 활동하는 데는 이런 성격의 덕을 많이 본 듯하다.[37] 건강 유지 및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매일 아침 저녁 산책을 하는 습관도 건강에 도움이 많이 됐다고 한다. 정치부 기자들이 항상 여의도 국회에서 박지원과 무관한 정치소재라도 취재가 안되면 박지원한테 물어봐서 멘트라도 건지려고 근처 박지원이 자주 가는 산책로에서 기다리기도 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


일례로 적과의 동침 2회에서는 김무성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김무성 의원이 대통령이 되면[38] 나를 총리로 지명하기로 했다. 이게 바로 대통합이다."라는 드립에 이어 급기야는 김무성에게 "대통령님!" 드립을 쳤으며, 그 와중에도 깨알같이 "내가 형인데 총리로 만족하고 대통령직을 양보한 것은 내가 얼마나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인지 보여주는 것"이라는 자뻑개그를 시전했다. 아무리 예능이고 사적으로는 친한 사이라지만 방송 당시에도 일흔 넘은 야당 중진이 여당 중진에게 저런 드립을 서슴없이 친다는 것은 그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사실 그로부터 몇 년 전에는 두 사람이 원내대표 자격으로 협상하다가 결렬되면서 대놓고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 결렬된 상황에서 김무성이 박지원 방을 나가면서 “형님이 그러시니까 종북세력 소리 들으시는거요”라고 소리치자 분노한 박지원이 “뭐? 종북?”이라고 외치고 욕설을 하다가 “그래 이 X끼야 나 종북빨갱이다 이 새X야!”라고 했고 김무성도 멈춰서 약간 더 뭐라고 하다가 금방 나가버렸다고 한다. 그 직후 화가 가시지 않은 김무성이 이 사건을 국회출입기자들한테 그대로 말하는 바람에 신문기사가 잔뜩 났었다. 김무성은 “이건 박지원 원내대표가 스스로 종북임을 인정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지원은 이 일을 먼 훗날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김무성의 이름만 밝히지 않고 방송에서 유머소재로 말했다.

  • 많은 정치인들이 빈말로든 진심이든 정치가라는 직업의 고충이나 염증을 토로하고는 하는 데 반해, 박지원 본인은 "정치는 본인 적성에 딱 맞아서 아주 즐겁게 일한다" 라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평생 현역 정치인으로 일을 할 것이라고...

  • 말을 시작할 때 첫 5~6글자를 힘주어 뱉은 뒤 말을 끄는 버릇이 있다. [39]

  • 국민의 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경력 때문인지 현직은 국회의원이지만 사석에서는 의원님이 아닌 '장관님'으로 불린다. 일종의 예우 차원인 듯 싶다.[40] 비슷한 사례로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경우 장관직을 관둔지 30년이나 되었는데도 일부에서 장관님이라고 불리며, 이해찬더불어민주당 의원 또한 국무총리를 지낸 경력 때문에 사석에서는 의원님이 아닌 '총리님'으로 불린다고 한다. 이후 이해찬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되면서 대표님으로 불렸다.[41] 평균적인 국회의원[42]보다 평균적인 장관이[43] 권력과 희소성이 큰 부분이 있어서 그렇게 부르는데, 원내교섭단체 정당의 당대표[44]는 의전서열 고민할 필요없이, 희소성 뿐만 아니라 정부 독립성에서 장관보다 훨씬 강하고, 권력은 비슷하거나 실제로는 좀 더 클 수도 있으므로[45] 보통 장관을 했어도 원내 당대표를 했으면 장관 대신 대표로 부른다.



  • 2022년 현재로서는 문재인 정부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들 중 최고령이다. 전임 인사들까지 포함하면 1941년 출생인 김덕룡이 최고령이다.[46]

  • 광주 개새끼들아 발언이 논란과 동시에 밈이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 친문 지지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안철수 의원과 관련한 짤방이 있다. 실제 장면은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직후 열린 당선자 대회 및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 당시 안철수와 박지원이 대화하는 장면이다. 이때 박지원은 피로 때문인지 안경을 벗고 눈을 주무르는 모습을 보였다. 이걸 친문 지지자들은 안철수의 행동 때문에 박지원이 열받은 내용으로 패러디하는 경우가 많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의 둘째 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사돈이라는 얘기가 인터넷에 퍼져 있는데, 실제로는 사돈의 사돈 지간이라고 한다. 다만, 그래서 그런지 서로 인맥관계는 있는 듯 하다.

  • 방송에서 본인이 말한 바로는, 19대 대선 당시 바른정당 김무성 측과 안철수-유승민 연대를 추진하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김무성이 본인에게 말하길 "유승민이 대통령 후보자 토론의 힘으로 지지율을 더 올려볼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는데, 박지원은 "야, 토론만 잘해서 대통령되는 거였으면 유시민이랑 진중권이가 진작 대통령했다!"며 화를 냈다고 한다.

  • 2017년 10월 경부터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목요일 고정 출연으로 능구렁이 같은 입담을 뽐내고 있다. 특히 처음 출연했을 때는 김어준이 "민주당 시절에 그렇게 대표를 하시고 싶어 하셨는데 드디어 대표[47]가 되셨네요" 라고 축하의 말을 전하자 추억에 젖었는지 "하...내가 그때 친노들한테 맞아가지고"라고 답변해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 이후로도 출연했다 하면 빵빵 터뜨린다.

  • 2017년 12월 11일에 나온 뉴스에 따르면 호남에 갔다가 달걀을 맞고 왔다고 한다. 다만 이때 "내가 맞아서 다행이다." 라고 말하고 쿨하게 넘어갔다고...

  • 2018년 4월 27일에 개최되었던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 만찬에 야당 정치인으론 유일하게 초청[48]되었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 대북특사를 전담하다시피 하였고, 현재 문재인 정부의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자문위원이기에 원로자격으로 포함 된 것. 그리고 2018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수행원 자격으로 초청되어 정부가 북한 문제로 박지원을 신임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 보수 정치인 중에서는 유승민 전 의원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그분은 분명한 자기 정체성과 이념, 철학을 얘기하잖아요. 나는 보수다. 대북문제에 대해서도 안 된다. 그러한 보수가 있어야 됩니다. 또 저처럼 진보개혁적인 사람도 있어야 되고. 그렇게해서 상호경쟁하면서 발전해야죠. 유승민 전 대표는 그러한 면에서 보수를 대표하는 가장 훌륭한 정치인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 2018년 10월 15일 부인상을 당했다. 아내 이선자 씨는 2017년 말부터 뇌종양 투병중이었다고 한다.[49] 박 전 의원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임종 며칠 전 자식들을 모두 불러모아 아내의 임종을 함께 지켜봤다고 한다. 아내가 투병 생활을 할 당시 세브란스병원 화재 사고가 일어나서 아내와 본인이 대피하는 소동도 있었는데 다행히 큰 탈은 없었다.

  • 2019년 3월 29일, 4월 5일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에 김구라의 조력자로 출연해 김무성 전 의원, 박원순서울특별시장, 이낙연국무총리 등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다 실패하는 굴욕을 당했다. 또 방송 도중 의원내각제를 언급하자 채팅방에서 매우 거친 반응이 나와 그 후로 다시는 내각제를 언급하지 않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여담으로, 해당 방송에서는 총 500만원의 기부금[50]을 모아야 했는데, 김구라의 방에서는 40만원밖에 모으지 못 했고, 심지어 그 중 4분의 1인 10만원은 박 의원의 딸이 보낸 거였다고 4월 12일 자 방송[51]에서 안유진이 조심스레 말을 꺼내고 김구라가 이어받아 밝혔다.

  • 박 전 원장 관련으로 역대급 가짜뉴스가 있는데 바로 김대중과 박지원이 일본에게 400조를 받고 독도를 팔아먹고는 그 돈으로 IMF를 극복했다는 내용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엔 여기서 더 추가돼 400조 중 190조가 남아서 참여정부에 물려줬고 이걸 문재인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관리했다는 데까지 뻗친다.

  • TV와 라디오 출연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강적들에선 고정 게스트급으로 출연하기도 하였고 예능에도 진출하고 있다.

  • 2020년 1월 8일에 방송된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 5회 방송분에서 김영란법 이후의 정치인 출연료 가이드라인에 대해 밝혔다. 라디오 전화연결은 건당 3만원 , 라디오 게스트 출연은 5~10만원. TV 출연은 30만원 이하, 프로그램 길이가 1시간이 넘으면 50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 2020년 1월 8일 방송분에는 정치 생초보 입장에서의 돌직구 질문들이 많이 나왔는데 차기 대권주자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2022년에는 범진보진영 후보로 유시민 전 장관이나 손석희 사장이 적합하다고 언급했고 우파 진영 후보에 대해서는 박근혜가 석방되면 직접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52]

  • 18대부터 20대 국회까지 의원회관에서 사용한 방이 615호이다. 21대 국회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삼남 김홍걸 의원이 방을 이어받았다.[53]

  • 손자 사랑이 매우 각별한 듯 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국정원장 임명장을 받을 때에도 손자가 동행하여 손자가 대통령에게 꽃다발을 받기도 했다.[54]

  • 조 바이든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였다고 하여 대한민국 국정원장인 박지원과 더불어 대북문제를 잘 풀어갈 수 있겠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박지원이 소싯적에 뉴욕에서 일한 적이 있어 바이든과 개인적인 친분도 있을 거라는 예상이 나와 기자들이 김홍걸 의원에게 질문했더니 그건 아니라는 답을 들었다.

  • 키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공식석상에서 찍힌 사진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보다 조금 작다.

  • 이스포츠(e스포츠)라는 단어를 공식 석상에서 가장 먼저 사용한 인물로 알려져있다. 그때는 박지원이 문화관광부 장관 시절이었는데 2021년에는 미국인에게 "E-sports 단어 공식화한 사람이 지금 정보기관 수장이다" 라고 했더니 놀라더라는 우스갯소리도 돌아다닌다.

  • 현직 국가정보원장으로서는 다소 파격적으로 2021년 사망한 유상철 전 감독의 빈소에 직접 조문을 왔다.[55] 아무래도 유상철이 활약했던 2002 FIFA 월드컵이 과거 그가 비서실장으로써 모셨던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에 개최됐던 탓에 고인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대신해 2002 월드컵 주역인 유상철 전 감독 빈소를 찾아 김 전 대통령의 위로를 대신 전한 것으로 보인다.[56] #

  • 대표 별명인 '정치 9단' 과 길었던 정치 경력으로 인해 다선 의원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총 횟수는 4선으로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는 15대 총선 낙선 후 공보수석, 비서실장 등 정부에서 공직을 맡은데다 국민의 정부 말기에 터진 불법 대북송금 사건으로 인해 오랫동안 병원과 구치소를 오가며 생활한 전적 때문에 국회 복귀까지 공백기가 상당히 길었기 때문으로, 그 사이에 두 번의 선거를 놓쳤으니 그러한 공백기에 전부 총선을 나가 당선되었다면 6선까지도 가능했다.

  • 자타가 공인하는 '정치 9단'이며, 국민의 정부의 최고실세이자 2인자였고 정치적인 행보를 보면 머리가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어렸을 적에 녹내장 문제로 고생을 하고 병원 신세를 오래졌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공부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성인이 되고 난 후 눈이 괜찮아져 의대를 들어가기 위해 광주에 있는 재수학원에 들어갔다고 한다. 의대는 떨어졌고, 거기서 만난 여학생이 지금의 부인이었다고 한다. 부인은 교대에 들어가서 졸업한 뒤 선생님이 되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선생님이 배우자 선호도는 최상위권이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부인이 박지원과 교제함에도 불구하고 재벌, 부자, 의사 경제적 능력이 있는 남자들의 선자리가 들어왔다고 한다. 이걸 들은 박지원이 부인에게 "재벌 까짓거. 내가 너 재벌 부인 만들어준다" 이렇게 프로포즈하고 결혼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을 해서 성공도 했고 자타가 공인하는 실세 정치인의 부인이 되었으니 재벌 소리는 못 들었어도 반쯤 약속을 지킨 셈이다.

  • 미국에 있을 당시 김경재 전 의원의 소개로 김대중 총재(그 당시)의 생활비를 뒷바라지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가 되기 시작하였다. 김대중이 대선에 당선되면서 여러모로 동교동 1세대, 2세대들은 온갖 핍박과 고초를 겪어가면서 정권을 잡아놨더니, 그 열매는 박지원이 혼자서 다 따먹는다면서 굉장히 시기어린 질투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김대중이 박지원을 아꼈던 이유는 '수행실장' 이라는 직함으로 10년 이상 새벽 5시에 동교동 자택에 출근하여 김대중을 보필했다고 한다. 그 다음 기수가 정동영이었는데 6개월 하다가 도저히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DJ의 부지런함과 박지원의 성실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한다. 김대중은 비서들에게도 나이가 한창 어려도 존댓말을 썼는데, 박지원에게만큼은 반말을 쓰면서 친근하게 대했다고 한다.

  • 최민희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터뷰하면서 박지원 전 국정원장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전 시민단체에 있어서, 박지원 대표를 보면 구태의 상징이며 노회한 정치인으로 생각했는데 제가 국회의원이 되고 4년을 하고 보니 박지원 대표처럼 일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사람은 못본 것 같다.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이렇게 이야기했다.

  • 1988년 박지원이 뉴욕한인회장이었던 시절 정진석은 세계일보 기자 겸 워싱턴 특파원이었다고 한다. 뉴욕을 속속히 알고 있던 박지원은 본인 차에 정진석을 태우고 뉴욕을 여기저기 보여줬고 밥도 여러번 사줬다고 한다. 이명박이 현대건설 회장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갔을 때, 뉴욕한인회장 있었던 박지원 집에 묵으면서 신세를 많이 졌다고 한다.

  • 2023년 딸이 4월 "손주 안 보고 싶냐, 애들 시간 있을 때 미국에 오시지 않겠냐?" 라고 얘기했는데 국정원장 시절의 직권남용 혐의 재판 때문에 "출국금지 처분을 당해서 못 간다" 고 답했다고 한다.

  • 큰딸이 한달 500만원 정도씩 생활비를 보내준다고 한다. 그러다가 2023년 1월에 제22대 총선 출마설이 나오자 선거운동을 뜯어말리면서 생활비를 끊었다고 한다.

  • 건강을 위해 하루에 전복 한 개씩을 먹는다고 한다.


  • 지난 2022년 10월 29일 박실 전 의원 사망 이후 발생된 동작 을 지역 내분사건과 관련해 동작 을 국회의원이자 더불어민주당 동작 을 지역위원장인 이수진 의원이 자신의 지인에게 박실 그 인간, 동작 을 고문단들은 다 박지원 같은 인간들이다. 박지원이 누구냐? 박지원 배신자 새끼 아니냐? 박지원 그 배신자새끼 능구렁이 같은 인간이라고 뒷담화를 한 것을 알게 되자 바로 이수진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타일렀고 이수진 의원은 정중히 사과를 했다고 한다.

  • 이수진 의원의 뒷담화 이후 지난 2023년 6월 10일 이희호 사망 4주기 추도식이 있던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박지원 장관과 같은 밀양박씨이자 동향이며 호형호제하던 고 박성수 전 동작구의회 부의장[57]의 아들과 함께 추도식 현장에서 이수진 의원을 만났고 이수진 의원이 장관님 이수진의원입니다. 라며 인사하자 박지원 장관도 그래 이수진이 왔어? 라며 서로 훈훈하게 인사를 했다.

  • 학창시절에 친구들끼리 '국회의원 이름 쓰기'로 내기를 자주 했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본인이 많이 내기를 이겼다고 한다. 그러면서 박지원이 친구들에게 "한번 봐라! 국회의원도 되고, 나중에 야당 원내총무가 될거다"하고 항상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학창시절에 별명이 '원내총무'였다고 한다.


9. 둘러보기[편집]



















[1] 2023년 9월 7일 해남군·완도군·진도군 출마를 앞두고 임대 계약과 전입신고를 했다.#[2] https://youtu.be/dP36UidwHhw[3] 2018년 지방선거에서 안철수가 김문수에게도 밀리는 3위에 그치면서 크게 타격을 입었다. 결국 해당 선거에서 바른미래당은 1석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전패하였다.[4] 결과적으로 비자금은 찾지 못했고 해당 국정원 간부는 구속되었다. #[5] 긴장이 더욱 고조되어 8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미국을 위협하면 지금껏 전 세계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군사적 옵션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고, 실제 미군의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전개되며 그러한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6] 워마드의 탄생 원인을 고찰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추측된다.[7] 다만 이것은 이재명이 사적 접촉을 공식 거절하고 정책토론을 제안하여 성사시켰으니 잘만 한다면 이재명의 큰 공적이 될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국회의원은 의사당 밖에서 사적으로는 끝도 없이 친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예전에는 이렇게 만나서 어떤 일에 진척을 얻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언론매체와 법제도의 발달로 국회의원의 사생활조차 숨겨지지 않는 요즘 세상에는 고루한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8] 해외 교포라는 결격 사유로 실패.[9] 민주당과 신설 합당.[10]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을 위한 탈당.[11] 공직 취임으로 인한 탈당.[12]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13] 대통령비서실장 임명으로 인한 탈당.[14] 2008년 2월 11일 민주당과 합당을 앞둔 상태에서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했다.#[15] 민주당(2007년)과 신설 합당.[16] 총선 공천 탈락 불복으로 인한 탈당.[17]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18]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19]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20]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 반대)
[21]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22]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과 신설 합당.[23] 국가정보원장 취임으로 인한 탈당.[24] 국정원장은 당적을 가질 수 없어 민생당에서 탈당 처리 되었다.[25] 2022.12.19 #[26] 1995.8.31. 탈당으로 자동 의원직 상실.[27] 2008.8.13. 민주당 복당.[28] 2016.1.22. 더불어민주당 탈당.
2016.3.2. 국민의당 합류.
[29] 2018.2.5. 국민의당 탈당.
2018.2.6. 민주평화당 창당.
2019.8.12. 민주평화당 탈당.
2020.1.12. 대안신당 창당.
2020.2.24. 민생당 합당.
[30] 목포에서 첫 낙선.[31] 당시 MB 정부의 장관들 상당수가 이 4가지 원인으로 낙마했다. 이명박 자신도 해당되는 내용. 공교롭게도 박지원 역시 상술하듯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다(...)[32] 이후 247회에서 유시민유승민제일 고개 뻣뻣하게 들고 다니시는 분이라며 반 농담삼아 이 발언을 디스했다. 사실 썰전 이외에도 판도라, 강적들, 외부자들 등 온갖 시사 평론 프로그램에 여러 번 나왔는데 나올 때마다 저 말을 했고, 김어준의 뉴스공장 같은 곳에서도 하고 심지어 YTN의 뉴스프로그램 같은 진지한 곳에 나와서도 "제가 선거에 대해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라고 말하면서 저 똑같은 말을 했다. 20대 국회의원이 되고, 당대표 생활과 대통령선거가 끝난 이후부터 2년 6개월간 TV방송에 일주일 평균 출연횟수 1회(뉴스보도나 국회 내, 야외에서 한 인터뷰 같은 걸 모두 제외한 순수 방송국 스튜디오 출연만 따질 때)가 넘을 만큼 많이 출연하기 시작했는데, 방송에서 본인이 직접 말한 것만 10번은 무조건 넘고, 수십 번 정도 된다.[33] 결국 제21대 총선에서 낙선하고 당대표직도 사퇴해버려 3가지를 다 이행한 셈이 됐다. 그리고 박지원은 황교안이 재기불능이라고 예언했는데 이후 황교안은 제21대 총선 부정선거론자가 되면서 점점 권력 그리고 상식과 멀어졌다.[34] 실제로 판사 출신인 추미애 당시 장관 후보자의 긴장을 풀어주면서 추 후보가 전임자 조국 교수와는 다르다는 것을 청자들에게 상기시키는 언사라고 해석할 수 있다.[35] 한쪽 눈을 실명하고 의안 수술 후유증으로 수감생활 중 쓸개를 잘랐는데 그래서 그의 건강을 이유로 폄훼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한 것이다.[36] 이준석도 비슷한 말을 했다. 자신도 당대표 시절 당비 많이 냈는데 자기가 하자는 일들은 안 하더라고.[37] 정치적으로는 상극의 위치에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이런 측면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도 비슷했다. 덕분에 김종필도 독재정권의 2인자였다는 멍에를 안고도 민주화 이후로도 수십 년간 안정적으로 정치인생을 이어나갔다.[38] 방송 당시(2013년)는 박근혜 정부 초창기로, 새누리당의 지지도도 매우 높았으며 김무성 또한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던 시절이다.[39] ex) 윤석열 대통~령이 , 거듭 말씀드리지~마는 [40]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의 흑역사인 충성충성충성 사건 때도 이정현 전 대표가 박지원 전 국정원장을 “장관님”으로 칭하였다.[41] 사실 이해찬 전 대표는 예전 2012년에도 대표를 지낸 적이 있었으나, 18대 대선을 위해 안철수 세력과 합당하면서 합당 조건으로 이해찬의 대표직 사퇴를 내걸어 관철해 몇 달 만에 금방 물러났다. 더군다나 당시 야당 + 집단지도체제에서의 당대표였으니 여당 + 단일지도체제에서의 당대표직에 비해 확연히 밀린다.[42] 뉴스에서 눈에 자주 보이는 의원들이 주요직책을 맡은 다선 의원들이라서 그렇지, 따지고 보면 그 얼굴이 그 얼굴로 50명 이내다. 눈에 잘 띄지 않을 뿐더러 정치덕후나 자신과 연관이 있는 동네들의 지역구 의원이 아니면 '그런 사람도 있었어?'하는 초선, 재선 의원이 훨씬 많다.[43] 정부 부처의 숫자는 정권마다 정부조직법이 바뀌면서 조금씩 다르지만 대강 15~20개 내외다.[44] 당대표 대행 및 비대위원장은 제외하고, 전당대회로 뽑힌 정식 당대표만 포함.[45] 원내교섭단체 지선, 총선 공천권이나 내부경선 주도 권력은 의회정치에서 엄청나게 큰 권력이다.[46] 다만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사실상 무실권 명예직임을 고려하면 박지원을 역대 최고령으로 보는 관점도 아예 틀린 건 아니다.[47] 19대 대선 당시 국민의당 대표를 지냈다.[48] 같이 초청된 국회의원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당 대표, 우원식 원내대표, 그 외 도종환, 김현미 의원도 참석하였으나 이 둘은 각각 문화체육관광부, 국토교통부 장관 자격으로 참석했다.[49] 본인의 언급으로는 병중인 아내를 간호하기 위해 전남지사에 불출마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본인이 출마할 경우 공동교섭단체가 깨지는데, 재보선에서 민주평화당 후보의 당선을 장담할 수만은 없어 리스크가 컸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었을 것이다.[50] 강부자, 김구라, 정형돈, 김풍, 셔누의 방송에서 모인 기부금 총합.[51] 이 날 방송에는 박 전 의원 없이 김구라만 출연.[52]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파기환송심 등의 재판이 남아있고 법정다툼이 길어져 확정된 형만 받고 2021년 4월 출소하더라도 검찰에서 박근혜를 구속 수사할 가능성이 높다.[53] 다만 박지원 전 원장과 김홍걸 의원은 생각보다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편이다.[54] 보통의 경우 임명장을 수여할 때에는 그 배우자가 꽃다발을 받지만, 박지원의 경우에는 이로부터 2년 전에 상처해서 아내가 이 세상에 없기에 대신 손자가 꽃다발을 받게 된 것이다.[55] 국가정보원장의 경우 국가 정보, 대테러, 해외첩보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동선 자체가 보안사안일 만큼 국정원장이 모습을 노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렇기에 현직 국정원장이 장례식장을 찾는 예는 손가락을 꼽을 만큼 극히 드물며, 기껏해봤자 전직 대통령 빈소 같은 사회장 등 국가, 사회적 행사때 이따금 모습을 나타낼 정도이며 그마저 조문하지 않더라도 모두들 이해하고 넘어간다.[56]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2002 월드컵 4강 신화를 목격했고 김 전 대통령을 수행해 월드컵 경기장을 찾기도 했다. 또 김 전 대통령이 히딩크 감독과 월드컵 전사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마음껏 웃을 때 바로 옆에서 기쁨을 함께 했던 것을 계기로 친분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57] 박지원이 1983년 처음 김대중과 만난 뒤 김대중을 따르면서 고 박성수 전 부의장과 만나게 되었고 이후 서로 호형호제를 맺으며 굉장히 각별하게 지냈고 박성수 전 동작구의회 부의장이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부천 소사 출마 때와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에 박지원 전 장관의 선거자금을 후원하며 박지원 전 장관을 지원이 형님이라고 부르고 받들며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