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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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박인천
(1946~1984)
제2대
박성용
(1984~1996)
제3대
박정구
(1996~2002)
제4대
박삼구
(2002~2009)
제5대
박찬법
(2009~2010)
제6대
박삼구
(2010~2019)
권한 대행
이원태
(2019~2020)




금호아시아나그룹 제5대 회장
박찬법
朴贊法 | Park Chan-bup


파일:박찬법 회장.jpg

출생
1945년 3월 25일 (79세)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1]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본관
반남 박씨
직업
기업인
학력
법성포초등학교 (졸업)
법성중학교 (졸업)
배재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 / 학사)

1. 개요
2. 상세
3. 상훈
4. 여담
5. 어록



1. 개요[편집]


대한민국기업인. 금호아시아나그룹 제5대 회장.

말단 사원으로 시작하여 그룹 회장까지 승진한 베테랑 금호맨이자 샐러리맨으로 평가 받는다. 성씨에 더해 금호석화 박찬구 회장과 매우 비슷한 이름까지 겹쳐 오너일가 2세로 오해받기도 하는데, 박인천 창업주 일가는 밀양 박씨, 박찬법 전 회장은 반남 박씨로 전혀 혈연관계가 없다. 또 2세 돌림자는 찬이 아니라 구다.(박정구, 박삼구, 박찬구, 박종구)

2. 상세[편집]


1945년 3월 25일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가족과 함께 서울로 상경해 배재고등학교를 거쳐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한국과학교재공사에 들어갔으나 2년 만에 직장을 옮겨 1969년 (주)금호에 입사하였다.

(주)금호에서는 20년이상 '종합상사맨'으로 아프리카·중동·미국·홍콩 등 수출전선을 누비며 영업담당 이사로 승진, 아시아나항공 출범 후 10년 이상 영업 최일선을 챙겼다. 아시아나 미주지역본부장, 영업 부사장 등 요직을 거친 뒤 2005년 아시아나항공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듬 해 항공부문 부회장, 금호타이어 대표이사를 거쳐, 전문경영인으로서는 처음으로 2009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취임 1년만에 건강상의 이유로 회장직에서 사임하였고[2] 이후 그룹 상근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2016년 퇴임하였다.

3. 상훈[편집]


  • 동탑산업훈장 (2001년)
  • 경희인상 (2002년)
  • 한국관광학회 관광기업대상 (2003년)
  • 외국기업의 날 대통령표창 (2003년)
  • 한국윤리경영대상 (2003년)
  • 여성사랑 베스트 기업인 상 (2005년)
  • 금탑산업훈장 (2008년)

4. 여담[편집]


  • 박삼구 전회장과 동갑내기며, 친구 같은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그룹을 이끌어왔다. 그룹의 위기, 형제의 난으로 인하여 2선으로 물러난 박삼구 회장이 직접 다음 회장직으로 박찬법 부회장을 추대했다.

  • 47년을 그룹에 몸을 담았던 원로로 꼽힌다. 창업주 박인천부터 금호아시아나그룹 역대 회장들과 함께 근무했었던 말 그대로 '산 증인'이다. 다만 그 긴 세월 동안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성장과 전성기, 그리고 몰락을 모두 보게 된 인물로서 한편으로는 복잡한 심정이었을 듯.

  • 그룹 입사 → 아시아나항공 대표이사가 되기까지의 과정, 경험, 및 고통의 내용이 담겨있는 그의 경영일기가 있다. #

5. 어록[편집]


"효도는 모든 행동의 근본이다."


"주력 계열사 두 곳이 워크아웃을 신청했지만, 동요하지 말고 맡은 일을 다해주시길 당부드린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현재 상황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위기 극복을 위해 힘을 모으는 것이다. 워크아웃 기업에는 노사가 따로 없고, 내년에는 조직의 축소, 비용 절감, 프로세스 개선 등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탄탄한 수익성을 확보해야 한다."

-

2009년 12월 31일,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워크아웃 신청에 관련한 경영정상화 방안을 마련하고나서 소집된 임원 회의 中#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현재 우리의 위기상황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겸허한 마음가짐과 자세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굳게 단결하여 힘을 모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올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각 그룹사는 조직의 효율적인 축소, 비용 절감, 프로세스 개선 등을 통해 획기적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영업력을 극대화하여 탄탄한 수익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특히 워크아웃 대상 기업에는 노사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뼈를 깎는 각오로 노사가 합심하여 구조 조정안과 경영 개혁안을 수립하고, 이를 철저하게 실행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경영 정상화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합시다. 금호아시아나 임직원 여러분,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그룹의 창업 정신인 ‘집념과 도전’ 의 정신이 필요한 때입니다. 지난 1946년 그룹창업 이래 우리는 1,2차 석유 파동, IMF 외환 위기 등 수많은 시련과 고비를 넘겨오며, 비 온 뒤 땅이 더 굳듯이, 매번 더욱 강해져 왔습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절대 포기하지 않고 정진하는 ‘집념의 재도전’이라는 초심으로 돌아간 마음가짐과 자세로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저력을 발휘하여 지금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해냅시다. 우리 그룹의 미래는 비단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수많은 협력업체들, 그리고 가족들의 것이기도 합니다. 이 점을 잊지 말고,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결연한 각오로 전 임직원이 하나되어 구조조정에 적극 동참하여 그룹이 새롭게 태어나서 장차 국가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

2009년 1월 4일, 금호아시아나그룹 신년사 中.#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은 부지런하다는 거예요. 나도 천성은 게으른 편이지만, 성공한 사람들 보고 후천적으로 부지런하려고 노력했어요. 요즘엔 밤 11~12시에 자서 새벽 5시30분쯤 일어나요. 성공한 사람들의 두 번째 특징은 순진할만큼 진지하다는 겁니다. 교활한 사람들은 일정기간 성공할지 몰라도 반드시 헛발질하게 돼 있지.성공은 장기적으로 이뤄지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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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2월 7일, 한국경제 기자단들과 약 4시간 동안 서울 중림동 어느 대포집에서 인터뷰 中#


"효율성이다. 우리는 모양새를 갖추려고 불필요한 장거리 노선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철저히 돈이 되는 중국 일본 등 중단거리 노선에 집중한다. 두 회사의 비행기 운용시간을 비교하면 우리가 훨씬 높다. 또 고객 서비스에 강점이 있다. 아시아권에서 서비스 질로 우리와 경쟁할 수 있는 항공사는 싱가포르항공 뿐이다.”

-

2006년 1월 26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대한항공과 차별화되는 아시아나항공의 특징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 #


"아시아나항공은 '최고의 안전과 서비스를 통한 고객만족'을 경영이념으로 삼고 있습니다. 고객이 만족감을 느껴야 그 회사는 발전할 수 있습니다. 또한 경영도 합리성에 기반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치에 맞아야 모든 일이 순조롭게 움직입니다. 그래서 권위주의적 요소들을 걷어내고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CEO에게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카리스마엔 어느정도 독선의 요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죠. 혼자만의 결정보다는 여러사람의 중지를 모아 결정해야 공감할 수 있고 사업 추진에 있어서도 탄력을 받습니다. 저는 이것도 리더쉽의 한 방편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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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13일, 한경리크루트 단독 인터뷰 中 #


"저희는 바로 그 단 한번의 사고를 가슴 깊이 새기고 두번 다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창업 초기부터 ‘안전에 관한 한 타협은 없다(No Compromise with Safety)’는 기업문화를 견지했고, 영업활동이나 투자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서 이뤄집니다. 창사 당시 막대한 투자를 감수하면서 새 비행기 도입을 고집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소형 항공기 한두 대밖에 없었을 때도 김포에서 가장 큰 격납고를 지었어요. 항공사고 원인의 90%는 조종사 등 인적 요소에 의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우수한 조종사를 양성하는 데 주력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미국 보잉사의 자회사인 조종사 전문교육기관 FSB (Flight Safety Boeing)에 조종사 훈련 및 평가과정의 일부를 위탁, 우리 조종사들에게 부족한 비행절차와 시스템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비행 스케줄을 짤 때도 ‘인적 안전요소’를 우선 반영합니다. 조종사의 비행 기량과 경험은 물론, 성격과 취미 같은 사소하고 개인적인 요소까지 데이터화해 관리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기장과 부기장이 기량과 성격 등에서 상호 보완할 수 있도록 비행 편조를 짭니다. 특히 날씨가 나쁜 날이나 안전이 취약한 공항을 운항할 때는 반드시 A급 조종사를 선별해 투입하죠. 또한 ‘열린 조종실 문화’도 안전운항의 한 축입니다. 권위적이고 경직된 조종실 문화는 비행안전의 심각한 장애물이죠. 상하관계인 기장과 부기장이 조종실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불신하고 반목한다면 그보다 위험한 일도 없어요. 그래서 저희는 조종실의 수직적 명령계통체제를 수평적인 업무협조체제로 바꿨습니다. 지금은 반백의 기장이 아들 뻘 되는 후배 부기장에게 자상하게 조종기술을 알려주고, 부기장은 스스럼없이 기장에게 비행과 관련된 조언을 합니다. 아시아나에 근무하는 외국인 기장들도 이처럼 유연한 조종실 분위기에 놀라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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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15일, 신동아와 단독 인터뷰 중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 이후 큰 사고가 없었는데 이는 어떤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


"양 항공사가 15년 가까이 경쟁하는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경쟁이 있었기 때문에 고객들이 이전보다 저렴한 가격에 더 나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 경쟁사와 우리가 제로섬 게임을 한 것이 아닙니다. 매출면에서는 양사 공히 비약적인 발전을 했습니다. ··· 경쟁은 아름답고 효율적인 것입니다. 비록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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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30일, 머니투데이 기자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상하이 노선 배분을 두고 대한항공과 치열한 신경전을 펼친 것에 관련 인터뷰 中. #


"아시아나의 스타얼라이언스 가입은 매듭 없는 노선망을 향한 새로운 시작이며, 도전으로 새로운 서비스 창조를 위한 투자 등이 더욱 가속화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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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17일, 아시아나항공 창립 15주년을 맞는 당일 오전 10시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 1층 그랜드볼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스타얼라이언스의 15번째 회원사로 3월 1일부터 공식 가입한다고 밝히면서.#

[1] #[2] 다시 박삼구 전 회장이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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