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처원

문서 조회수 확인중...


파일:박처원.jpg

1. 개요
2. 생애
3. 기타
4. 대중매체에서


1. 개요[편집]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기자회견장에서 한 발언

朴處源
1929~2008


2. 생애[편집]


1929년 평안남도 진남포(현 북한 남포시) 출생. 해방 후 월남하여 1947년 경찰이 되었으며, 제5공화국 내내 고문 경찰의 대표격으로 활동하며 말단 순경에서 치안감까지 올랐다.[1][2] 특기할만한것은 40여년간 경찰생활을 해오면서 오로지 대공업무만 담당하며 치안감 자리까지 오른것이다. 통상 경찰서장을 맡게되는 경정-총경시절이나, 지방시도경국장(현재의 지방경찰청장)을 맡는 경무관 계급에서도 일선 지휘보직은 일절 맡지 않았다. 당장 이사람의 치안감 보직인 치안본부 5차장도 원래 정보외사파트인 4차장 관할이었던 대공수사파트를 이사람의 치안감 진급에 맞추어 따로 분리하고 신설하여 만들어준 것이었다.[3] 치안감으로 영전하면서부터 치안본부 대공수사처 처장으로서 제4공화국~제5공화국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남영동대공분실을 총괄하게 되었는데 그의 재임기간 중 수많은 민주 투사들이 남영동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명을 달리하였으며 당시 남영동의 위상은 남산 국가안전기획부, 서빙고 국군보안사령부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4]

이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1996년 대법원에서 사건 축소 및 은폐 혐의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박처원은 자신이 자행한 고문 행위에 대해 한 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으며, 당뇨 증상을 이유로 집행유예를 받았고, 이후 2008년에 사망했다.

3. 기타[편집]


  • 전 경찰공무원 이근안과도 관련있는 인물로 1970년 이근안이 박처원의 경호원을 맡으면서 이어졌다고 한다.# 이 후 2021년 7월 30일 SBS 궁금한 이야기 Y에서 밝히길, 이근안은 박처원이 사망할때까지 시중을 드는 등 가족과 밀접하게 생활해 왔음을 밝히기도 했다.
  • 중죄인이지만 대공처장 현임 시절에 '운동권이라고 무분별하게 잡아들이지 말고 혐의가 확실한 자만 취조하라'라는 지침을 내리는 등 대공분야 지휘관들 중에선 비교적 유화적이고 합리적인 편이었다고 한다.[5]
  • 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그의 가족은 지주계급이었고, 북한에서 몰살당하고 혼자 도망쳐서 월남했다고 한다. 그가 남대문경찰서와 같이 경찰들 모두가 가길 원하는 요직도 거부하고 대공수사에서만 있었던 이유도 공산당에 대한 적개심 때문이라고 한다.


4. 대중매체에서[편집]


  • 2005년작 MBC 특별기획 주말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배우 강철이 분했다. 오타인지 실제 박처원의 항의 때문인지 몰라도 계속 박처언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 2017년작 영화 1987에서는 김윤석이 박처원 역을 맡았는데 스틸컷이나 캐릭터 컷을 보면 싱크로율이 상당하다.[6]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2-07-13 07:28:10에 나무위키 박처원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현재는 치안정감만 일곱 명에 치안감은 30명이나 되어서 엄청난 고위직은 아닌 것 같지만 당시 계급체계에서는 치안정감 두 명, 치안감은 아홉 명뿐인데다가 대공처장을 맡는 치안본부 5차장은 치안감 보직 중에서도 실질적인 경찰청 차장이라 할 수 있는 1차장 다음 가는 자리였기에 경찰조직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위인사였다. 단순 급수로만 봐도 2급이며 경찰 내에서 독립적인 수사부서(그것도 대공관련 부서) 하나를 총괄할 정도라면 현대 기준으로도 같은 직급에 있는 동료들에 비해 끝발이 꽤 센 편이다. 더 갈 것도 없이 군대 계급으로 치환하면 소장에 해당하는 계급으로 사단장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2] 박근혜 정부 시절 이철성 당시 경찰청장이 순경 공채 출신으로 경찰청장이 되어 화제가 된 바 있지만 이 사람은 애초에 특진이 잦아 실력만 있으면 6년 만에 경위가 될 수 있는 101경비단 출신이고 심지어 재직 중에 경찰간부후보생으로 선발되어 경위로 재임용된 케이스다. 사실 현대에도 경찰이라는 조직 자체가 규모에 비해 지휘보직이 적어 인사적채가 매우 심한 편이라 경찰대, 고시출신들도 경정, 총경에서 대부분 커리어가 끝나버리는데 치안감 이상 보직이 치안총감 포함 11명 밖에 안 되던 저 시절에 순경 공채 출신으로서 치안감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박처원이 경찰 내에서 초엘리트였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3] 박처원의 치안감 승진발표가 10월 24일에 났는데# 내무부 직제개정을 통한 치안본부 제5조정관 보직 신설은 10월 27일에 이루어졌다.#[4]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착각과는 다르게 5공 정권의 고문 행위는 주로 남산 안기부가 아닌 남영동 대공 수사관들 의해 자행되었으며(애초에 안기부는 그렇게 인원이 많은 곳이 아니다.) 5공정권의 대표적인 치부인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역시 안기부가 아닌 대공수사부 소속이나 형사부 소속 경찰의 소행이다. 심지어 고문기술자로 악명높은 이근안도 안기부나 보안사 소속이 아닌 현직 경찰로서 박처원의 경호와 허드렛일을 도맡던 사람이다.[5] 다만, 박처원의 이런 지침이 실제적으로 반영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4~5공시기 대공 사건들 중에는 공안조작 사건도 다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누구누구를 간첩으로 몰아서 여론을 묻으라' 는 청와대 측의 지시로 조작 대상을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6] 김윤석은 박처원과 비슷하게 보이기 위해 머리를 M자로 올리고 마우스피스와 옷 안에 보형물을 착용했는데 이 때문에 풍채가 상당히 커보인다. 박처원 역시 상당한 거구였음을 감안하면 훌륭한 고증인 셈. 이외에도 평안도 사투리를 쓰거나 공산주의자에게 일가족이 학살당했다는 설정을 부과하여 상당히 입체적인 인물로 만들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