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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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금융인, 정치인이다.
2. 생애[편집]
1941년 전라남도 장성군 진원면 산정2리 산정마을[2] 에서 태어났다. #
광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7년 외환은행에 입행하였다. 1977년부로 교육보험 주식회사 기획, 부동산관리, 기업보험부장이 됐고 1987년에 부사장으로 승진하였다.
2.1. 정계 활동[편집]
그러나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퇴사하면서 정치인이 되었다. 14대 총선 결과 전남 담양군과 장성군의 국회의원이 되었으나 15대 총선에서 국창근 후보에 밀려 낙천되었고, 1997년 12월 재보궐선거에서도 본인 모교인 광주고등학교가 위치한 광주 동구 선거구 공천을 신청했으나, 민주정의당 출신인 이영일 전 의원에게 밀려 낙천하였다.
1998년 ~ 1999년 김대중과의 인연으로 산업자원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이후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전남지사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전라남도지사로서의 경력은 그에게 있어 너무나 끔찍했다. 전남지사 취임 한 달만에 아들(박명주)과 손자의 대한민국 국적이 상실되었다는 사실이 유출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2000년에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재직 시절에도 인사비리로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었으며 2004년 4월 27일, 4월 28일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그 다음날인 2004년 4월 29일에도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건강이 나쁘다는 핑계로 검찰 조사를 늦추었다. 차를 타던 중 한강다리에서 갑자기 운전기사에게 머리가 아프니 차를 세우라고 했고, 차에서 내려 투신자살했다.
박태영은 급히 병원에 옮겨졌으나 숨을 거두었다. 이후 전남지사직은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준영이 이어받았다.
사망 전인 탄핵 정국당시 때와 같이 하여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 입당을 선언했는데, 열린우리당은 입당원서 제출시 바로 당원으로 인정되는게 아니라 입당심사를 거쳐 입당을 해야 했고, 박태영은 입당심사를 받지 않아서 사망할 때까지도 열린우리당 당원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당에서도 좀 비정한 거 아니냐 하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3. 선거 이력[편집]
4. 소속 정당[편집]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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