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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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 기업인 및 정치인이다. 제32대 국무총리이자 국회의원 11, 13, 14,[6] 15대[7] 의원이다.
2000년 5윌에 정계 은퇴한 포스코의 명예회장. 포항공과대학교의 설립자이자 초대 이사장이기도 하다. 포항 스틸러스의 전신인 포항제철 실업축구단도 창립하였다.
2. 생애[편집]
자세한 내용은 박태준/일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여담[편집]
자세한 내용은 박태준/여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어록[편집]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
한국전쟁이 휴전될 쯤에 새긴 좌우명
사심없이 헌신하라, 무한 경쟁시대일수록 필요하다.
자원은 유한하지만, 창의는 무한하다.[8]
조상의 혈세로 짓는 제철소다. 실패하면 우향우 해서 영일만에 빠져 죽자 제철보국(製鐵保國)을 우리 인생의 신조로 삼자.
신뢰를 얻으면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다.
항상 애국심을 갖고 일해달라.
창업 이래 지금까지 제철보국(製鐵保國)이라는 생각을 잠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철은 산업의 쌀입니다. 쌀이 생명과 성장의 근원이듯, 철은 모든 산업의 기초소재입니다. 따라서 양질의 철을 값싸게 대량으로 생산하여 국부를 증대시키고 국민 생활을 윤택하게 하며 복지사회 건설에 이바지하자는 것이 곧 제철보국 입니다. 우리는 국민과 인류에게 복락(福樂)을 줄 수 있는 제철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영일만에 모였을때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빈손이었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핵심 기간산업인 철강산업을 일으켜 보자는 비장한 각오로 모든 조소와 부정적 논리를 뒤로하고 건설에 박차를 가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 손으로 국가경제를 일으켜 보려는 철저한 공인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순한 고용인이 아닙니다. 포스코인이 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국민에게 봉사해야 하는 공인이 된 것입니다.
국가로부터 일관제철 사업의 소임을 부여받은 우리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국민의 여망에 보답해야 합니다. 개발도상국이 일관제철소를 성공적으로 건설 운영하는 것은 결코 어디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개인의 희생에 바탕을 둔 헌신적인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회사는 대일청구권자금을 전용하여 건설한 민족기업입니다. 우리의 모든 정열을 바쳐 신명을 다하겠다는 굳은 각오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것 자체가 큰 인연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속해있는 국가와 민족에게 의무감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 입니다. 제철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국민적 염원과 절박한 시대적 요청 앞에서 일관제철소 건설이라는 국가적 과업을 맡게 됐을 때, 나는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큰 인연이요 회피할 수 없는 일생의 사명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온갖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직원들에게 민족의 진운(進運)을 바꿀 대역사에 동참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자고 강조했습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자고 독려했습니다.
박태준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 묘소에 올린 25년 만의 보고서
[ 펼치기 · 접기 ] 각하!
불초(不肖) 박태준, 각하의 명을 받은 지 25년 만에 포항제철 건설의 대역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삼가 각하의 영전에 보고를 드립니다. 포항제철은 '빈곤타파(貧困打破)와 경제부흥(經濟復興)' 을 위해서는 일관제철소 건설이 필수적이라는 각하의 의지에 의해 탄생되었습니다. 그 포항제철이 바로 어제, 포항, 광양의 양대 조강생산 2,100만톤 체제의 완공을 끝으로 4반세기에 걸친 대장정(大長征)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나는 임자를 잘 알아.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어떤 고통을 당해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기 한 몸 희생할 수 있는 인물만이 이 일을 할 수 있어. 아무 소리 말아!“ 1967년 9월 어느 날, 영국 출장 도중 각하의 부르심을 받고 달려온 제게 특명(特命)을 내리시던 그 카랑카랑한 음성이 지금도 귓전에 생생합니다. 그 말씀 한마디에, 25년이란 긴 세월을 철(鐵)에 미쳐, 참으로 용케도 견뎌왔구나 생각하니 솟구치는 감회를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형극과도 같은 길이었습니다.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는 불모지에서 용광로 구경조차 해본 일이 없는 39명의 창업요원을 이끌고 포항의 모래사장을 밟았을 때는 각하가 원망스럽기만 했습니다. 자본과 기술을 독점한 선진철강국의 냉대 속에서 국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한숨짓기도 했습니다. 터무니없는 모략과 질시와 수모를 받으면서 그대로 쓰러져 버리고 싶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를 일으켜 세운 것은 '철강은 국력'이라는 각하의 불같은 집념, 그리고 13차례나 건설현장을 찾아주신 지극한 관심과 격려였다는 것을 감히 말씀드립니다. 포항제철소 4기 완공을 1년여 앞두고 각하께서 졸지에 유명(幽明)을 달리하셨을 때는 '2,000만 톤 철강생산국'의 꿈이 이렇게 끝나버리는가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철강입국(鐵鋼立國)'의 유지를 받들어 흔들림 없이 오늘까지 일해 왔습니다. 그 결과 포항제철은 세계 3위의 거대 철강기업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각하를 모시고 첫 삽을 뜬 이래 지난 4반세기 동안 연 인원 4천만 명이 땀 흘려 이룩한 포항제철은 이제 세계의 철강업계와 언론으로부터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철강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제 힘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필생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이 순간, 각하에 대한 추모의 정만이 더욱 솟구칠 뿐입니다. "임자 뒤에는 내가 있어. 소신껏 밀어 붙여봐"하신 한마디 말씀으로 저를 조국 근대화의 제단으로 불러주신 각하의 절대적인 신뢰와 격려를 생각하면서머리 숙여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각하! 일찍이 각하께서 분부하셨고, 또 다짐 드린대로 저는 이제 대임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가 진정한 경제의 선진화를 이룩하기에는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하면 된다'는, 각하께서 불어 넣어주신 국민정신의 결집이 절실히 요청되는 어려운 시기입니다. 혼령이라도 계신다면, 불초 박태준이 결코 나태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25년 전의 그 마음으로 돌아가 '잘 사는 나라' 건설을 위해 매진할 수 있도록 굳게 붙들어 주시옵소서. 불민한 탓으로 각하 계신 곳을 자주 찾지 못한 허물을 용서해 주시기 엎드려 바라오며, 삼가 각하의 명복을 비옵니다. 부디 안면(安眠)하소서!
1992년 10월 3일 불초(不肖) 태준(泰俊)올림
5. 소속 정당[편집]
6. 선거 이력[편집]
7. 상훈 내역[편집]
- 화랑무공훈장
- 금탑산업훈장
- 국민훈장 무궁화장
- 오스트리아 금성공로대훈장
- 페루 대공로훈장
- 브라질 십자대훈장
- 독일 십자공로훈장
- 영국금속학회 베세머금상
- 브라질 남십자성훈장(브라질)
- 페루 대십자훈장
- 오스트리아 은성공로대훈장
- 제2회 운경상(운경재단) - 국회의장이자 학생 독립운동가 운경 이재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장학재단.
- 일본 훈일등 욱일대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