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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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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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 재무위원장
제10대
장승태

제11대 전반기
박태준


제11대 후반기
정재철







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북 포항시 북구)
제15대
허화평[1]

제15대
박태준


제16-19대
이병석





대한민국 제32대 국무총리
박태준
朴泰俊 | Park Tae-joon


파일:attachment/ptjposco.jpg

출생
1927년 10월 24일[1]
경상남도 동래군 장안면
(現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2]
사망
2011년 12월 13일 (향년 84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국가사회유공자묘역
본관
밀양 박씨
종교
기독교 (개신교, 장로회)[3]
학력
와세다대학 (기계공학 / 수료)
육군보병학교 (수료)
육군공병학교 (수료)
육군대학 (졸업)
단국대학교 정법학부[4] (정치학 / 학사)
국방대학원 (행정학 / 석사)
셰필드 대학교 (공학 / 명예 박사)

청암(靑巖)[5]
재임기간
제2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1961년 7월 7일 ~ 1961년 9월 1일
제32대 국무총리
2000년 1월 13일 ~ 2000년 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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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박봉관, 어머니 김소순
형제자매
6남매 중 장남
배우자
장옥자
자녀
딸 박진아, 박유아, 박근아, 박경아
아들 박성빈
신체
171cm, 65kg, O형
의원 선수
4
의원 대수
11, 13, 14, 15
경력
제2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국가재건최고회의 상공담당 최고위원
대한중석광업 대표이사 사장
포항종합제철 대표이사 사장
한국철강협회 회장
학교법인 제철학원 이사장
국제철강협회 이사
한일의원연맹 회장
포항종합제철 대표이사 회장
한일경제협회 회장
제11대 국회의원 (전국구 17번 / 민주정의당)
제11대 국회 전반기 재무위원회 위원장
민주정의당 중앙위원회 부의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산업과학기술연구소 이사장
한일경제협회 명예회장
한일의원연맹 한국측회장
제13대 국회의원 (전국구 6번 / 민주정의당)
민주정의당 대표위원
민주자유당 최고위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제14대 국회의원 (전국구 2번 / 민주자유당)
제14대 국회 한일의원연맹 회장
중국철강회사 首鋼총공사 명예고문
포항공과대학교 총동창회 명예회장
제15대 국회의원 (경북 포항시 북구 / 무소속)
자유민주연합 총재
자유민주연합 2회 지방선거 중앙당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고위국정운영협의회 위원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고문
2002 FIFA 월드컵 추진 국회의원연맹 회장
민족화해협력협의회 상임고문
제32대 국무총리 (국민의 정부)
포스코 명예회장
포스코 비상임고문
포스코 청암재단 이사장
약칭
TJ
군사 경력
임관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6기)[1]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48년 ~ 1963년 1월 20일
최종 계급
소장 (대한민국 육군)

1. 개요
4. 어록
5. 소속 정당
6. 선거 이력
7. 상훈 내역
8. 관련 문서
9.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군인 출신 기업인정치인이다. 제32대 국무총리이자 국회의원 11, 13, 14,[6] 15대[7] 의원이다.

2000년 5윌에 정계 은퇴한 포스코의 명예회장. 포항공과대학교의 설립자이자 초대 이사장이기도 하다. 포항 스틸러스의 전신인 포항제철 실업축구단도 창립하였다.


2. 생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박태준/일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여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박태준/여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어록[편집]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

한국전쟁이 휴전될 쯤에 새긴 좌우명


사심없이 헌신하라, 무한 경쟁시대일수록 필요하다.


자원은 유한하지만, 창의는 무한하다.[8]


조상의 혈세로 짓는 제철소다. 실패하면 우향우 해서 영일만에 빠져 죽자 제철보국()을 우리 인생의 신조로 삼자.


신뢰를 얻으면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다.


항상 애국심을 갖고 일해달라.


창업 이래 지금까지 제철보국(製鐵保國)이라는 생각을 잠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철은 산업의 쌀입니다. 이 생명과 성장의 근원이듯, 철은 모든 산업의 기초소재입니다. 따라서 양질의 철을 값싸게 대량으로 생산하여 국부를 증대시키고 국민 생활을 윤택하게 하며 복지사회 건설에 이바지하자는 것이 곧 제철보국 입니다. 우리는 국민과 인류에게 복락()을 줄 수 있는 제철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영일만에 모였을때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빈손이었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핵심 기간산업인 철강산업을 일으켜 보자는 비장한 각오로 모든 조소와 부정적 논리를 뒤로하고 건설에 박차를 가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 손으로 국가경제를 일으켜 보려는 철저한 공인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순한 고용인이 아닙니다. 포스코인이 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국민에게 봉사해야 하는 공인이 된 것입니다.


국가로부터 일관제철 사업의 소임을 부여받은 우리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국민의 여망에 보답해야 합니다. 개발도상국이 일관제철소를 성공적으로 건설 운영하는 것은 결코 어디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개인의 희생에 바탕을 둔 헌신적인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회사는 대일청구권자금을 전용하여 건설한 민족기업입니다. 우리의 모든 정열을 바쳐 신명을 다하겠다는 굳은 각오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것 자체가 큰 인연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속해있는 국가와 민족에게 의무감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 입니다. 제철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국민적 염원과 절박한 시대적 요청 앞에서 일관제철소 건설이라는 국가적 과업을 맡게 됐을 때, 나는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큰 인연이요 회피할 수 없는 일생의 사명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온갖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직원들에게 민족의 진운(進運)을 바꿀 대역사에 동참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자고 강조했습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자고 독려했습니다.



파일:성업보고서.png

△ 보고서를 낭독하는 박태준

박태준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 묘소에 올린 25년 만의 보고서
[ 펼치기 · 접기 ]

각하!

불초(不肖) 박태준, 각하의 명을 받은 지 25년 만에 포항제철 건설의 대역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삼가 각하의 영전에 보고를 드립니다. 포항제철은 '빈곤타파(貧困打破)와 경제부흥(經濟復興)' 을 위해서는 일관제철소 건설이 필수적이라는 각하의 의지에 의해 탄생되었습니다. 그 포항제철이 바로 어제, 포항, 광양의 양대 조강생산 2,100만톤 체제의 완공을 끝으로 4반세기에 걸친 대장정(大長征)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나는 임자를 잘 알아.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어떤 고통을 당해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기 한 몸 희생할 수 있는 인물만이 이 일을 할 수 있어. 아무 소리 말아!“ 1967년 9월 어느 날, 영국 출장 도중 각하의 부르심을 받고 달려온 제게 특명(特命)을 내리시던 그 카랑카랑한 음성이 지금도 귓전에 생생합니다. 그 말씀 한마디에, 25년이란 긴 세월을 (鐵)에 미쳐, 참으로 용케도 견뎌왔구나 생각하니 솟구치는 감회를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형극과도 같은 길이었습니다.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는 불모지에서 용광로 구경조차 해본 일이 없는 39명의 창업요원을 이끌고 포항의 모래사장을 밟았을 때는 각하가 원망스럽기만 했습니다. 자본과 기술을 독점한 선진철강국의 냉대 속에서 국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한숨짓기도 했습니다. 터무니없는 모략과 질시와 수모를 받으면서 그대로 쓰러져 버리고 싶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를 일으켜 세운 것은 '철강은 국력'이라는 각하의 불같은 집념, 그리고 13차례나 건설현장을 찾아주신 지극한 관심과 격려였다는 것을 감히 말씀드립니다. 포항제철소 4기 완공을 1년여 앞두고 각하께서 졸지에 유명(幽明)을 달리하셨을 때는 '2,000만 톤 철강생산국'의 꿈이 이렇게 끝나버리는가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철강입국(鐵鋼立國)'의 유지를 받들어 흔들림 없이 오늘까지 일해 왔습니다. 그 결과 포항제철은 세계 3위의 거대 철강기업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각하를 모시고 첫 삽을 뜬 이래 지난 4반세기 동안 연 인원 4천만 명이 땀 흘려 이룩한 포항제철은 이제 세계의 철강업계와 언론으로부터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철강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제 힘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필생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이 순간, 각하에 대한 추모의 정만이 더욱 솟구칠 뿐입니다. "임자 뒤에는 내가 있어. 소신껏 밀어 붙여봐"하신 한마디 말씀으로 저를 조국 근대화의 제단으로 불러주신 각하의 절대적인 신뢰와 격려를 생각하면서머리 숙여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각하! 일찍이 각하께서 분부하셨고, 또 다짐 드린대로 저는 이제 대임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가 진정한 경제의 선진화를 이룩하기에는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하면 된다'는, 각하께서 불어 넣어주신 국민정신의 결집이 절실히 요청되는 어려운 시기입니다. 혼령이라도 계신다면, 불초 박태준이 결코 나태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25년 전의 그 마음으로 돌아가 '잘 사는 나라' 건설을 위해 매진할 수 있도록 굳게 붙들어 주시옵소서. 불민한 탓으로 각하 계신 곳을 자주 찾지 못한 허물을 용서해 주시기 엎드려 바라오며, 삼가 각하의 명복을 비옵니다. 부디 안면(安眠)하소서!

1992년 10월 3일 불초(不肖) 태준(泰俊)올림




5.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무소속|
무소속
]]

1980 - 1981
정계 입문

파일:민주정의당 글자.svg

1981 - 1990
창당

[[민주자유당|
파일:민주자유당 글자.svg
]]

1990 - 1992
합당[9]

[[무소속|
무소속
]]

1992 - 1997
탈당
정계 은퇴
정계 복귀

[[자유민주연합|
파일:자유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1997 - 2000
입당

[[무소속|
무소속
]]

2000 - 2011
탈당
정계 은퇴
작고


6.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81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파일:민주정의당 글자.svg

5,776,624 (35.64%)
당선 (17번)
초선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파일:민주정의당 글자.svg

6,670,494 (33.96%)
당선 (6번)
재선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민주자유당|
파일:민주자유당 글자.svg
]]

7,923,718 (38.49%)
당선 (2번)
3선[10]
1997
7월 재보궐선거
(국회의원)
경북 포항 북

[[무소속|
무소속
]]

47,884 (47.49%)
당선 (1위)
4선[11][12]

역대 선거 벽보



7. 상훈 내역[편집]


  • 화랑무공훈장
  • 금탑산업훈장
  • 국민훈장 무궁화장
  • 오스트리아 금성공로대훈장
  • 페루 대공로훈장
  • 브라질 십자대훈장
  • 독일 십자공로훈장
  • 영국금속학회 베세머금상
  • 브라질 남십자성훈장(브라질)
  • 페루 대십자훈장
  • 오스트리아 은성공로대훈장
  • 제2회 운경상(운경재단) - 국회의장이자 학생 독립운동가 운경 이재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장학재단.
  • 일본 훈일등 욱일대수장


8. 관련 문서[편집]




9. 둘러보기[편집]


파일:포항 스틸러스 로고.svg
포항 스틸러스 명예의 전당

[ 펼치기 · 접기 ]
박태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포항의 창립자

한홍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초대 감독
(1973~1984)


이회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창단 멤버, 3대 감독
(1973~1980), (1987~1992)


최순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6대, 11대 감독
(1980~1988, 1991~1992)


박경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두 번째 리그 MVP, 원클럽맨
(1984~1992)

이흥실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첫 번째 리그 MVP
(1985~1992)


공문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원클럽맨
(1987~1998)


이영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원클럽맨
(1990~1999)


박태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원클럽맨
(1991~2001)


황선홍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9대 감독
(1993~1998)

홍명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세 번째 리그 MVP
(1992~1997, 2002)


라데
파일:세르비아 국기.svg
통산 최다 득점자
(1992~1996)


김기동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2대 감독
(1991~1993, 2003~2011)






파일:민주정의당 심볼.svg 파일:민주정의당 글자.svg 제11대 국회 전국구

[ 펼치기 · 접기 ]
이재형
나길조
김종경[A]
이용훈
김기철
송지영[B]
정희택
박동진
정원민
김정호
윤석순
김종호
최상업
황병준
류근환
김용수
박태준
박경석
이우재[B]
이춘구
김현자
정순덕[B]
배성동
김사용
이건호
신상초
오제도
김윤환
정희채
김춘수
박현태
이양우
박종관
고귀남
나웅배[B]
김집
지갑종
허청일
이상선
손춘호
정시채
안교덕
최낙철
김모임
이헌기[B]
이윤자
이민섭
이영희
김종인
박원탁
이상희
이영일
이경숙
조남조
김행자[A]
이낙훈
김영구
황설
하순봉
곽정현
전병우
정창화[C]
문용주[C]
김유상[C]
장경우[C]
류수환[C]
김지호[C]
이성재[1]
강창희[C]
이성배[C]
[A] A B 임기 중 사망.[B] A B C D E 임기 중 사퇴.[C] A B C D E F G H 승계.[1] 승계 전 사퇴.




파일:민주정의당 심볼.svg 파일:민주정의당 글자.svg 제13대 국회 전국구

[ 펼치기 · 접기 ]
채문식
윤길중
정석모
강영훈[B]
이병용
박태준
김동인
이광노
이윤자
이원조
김종곤
김인기
이동진
이도선
김종기
지연태
박철언
조경목
최창윤[B]
유기천
나창주
서상목
박승재
손주환[B]
이상하
김장숙
양경자
이상회
홍세기
김길홍
강재섭
김정길
조남욱
이재황
이민규
신영순
도영심
심기섭 [C]
안찬희 [C]
최상진[C]
[B] A B C 임기 중 사퇴.[C] A B C 승계.




파일:민주자유당 심볼.svg 파일:민주자유당 글자.svg 제14대 국회 전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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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B]
박태준[B]
김재광[C]
노재봉[B]
권익현
이만섭
정석모[B]
안무혁
이원조[B]
최병렬[B]
김종인[B]
김광수[B]
박재홍[B]
강선영
정시채
최운지[B]
강용식
박영수[B]
김영진[B]
강신옥[B]
서상목
윤태균
박구일
곽영달
이명박
이환의
강인섭
김동근
최상용[B]
주양자[B]
이현수
노인도
구천서[B]
조용직[D]
구창림[D]
박근호[F]
유성환[F]
이재명[F]
정옥순[F]
김찬두[F]
김사성[F]
이연석[F]
이민헌[F]
이수담[F]
배길랑[G]
김정숙[F]
김현배[F]
박승웅[F]
진경탁[F]
김무성[G]
허세욱[F]
김영순[G]
[B]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임기 중 사퇴.[C] 임기 중 사망.[D] A B 승계 후 사퇴.[F] A B C D E F G H I J K L M N 승계.[G] A B C 승계 전 사퇴.






[1] 음력 9월 29일[2]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3] #[4] 1961년 편입학, 1963년 8월 정법학부 정치학과 졸업.[5] 포항시도로명 '청암로'(포항공대의 주소도 청암로이다), 포항공대 도서관의 옛 이름인 '청암학술정보관', '포스코청암재단' 및 본 재단에서 시상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민간 시상인 '청암상' 등에 그의 호를 땄다.[6] 전국구(비례대표)[7] 경북 포항시 북구[8] 포스코 포항제철소 정문 간판에 이 격언이 새겨져 있다.[9]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신설 합당, 이른바 3당 합당[10] 1992.12 사퇴[11] 전임자 허화평 군사반란 혐의로 피선거권 상실[12] 1997.11 자유민주연합 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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