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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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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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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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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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32대
안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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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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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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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대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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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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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의원 (부산 수영구)
제15-16대
유흥수

제17대
박형준


제18-20대
유재중








대한민국 제28대 국회사무총장

제38·39대 부산광역시장
박형준
朴亨埈 | Park Heong-joon


파일:박형준 부산시장.jpg

출생
1960년 1월 19일[1] (64세)
경상남도 부산시 동구 초량동
(現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거주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2]
본관
밀양 박씨 (密陽 朴氏)
현직
부산광역시장
플랫폼 자유와 공화 공동의장
재임기간
이명박 정부 제3대 정무수석비서관
2009년 9월 1일 ~ 2010년 7월 16일
제28대 국회사무총장 (장관급)
2014년 9월 1일 ~ 2016년 6월 20일
제38·39대 부산광역시장
2021년 4월 8일 ~ 현직
서명
파일:박형준-서명.svg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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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조현[1]
자녀
1남 1녀
학력
서울숭덕국민학교 (졸업)
동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 (졸업)
대일고등학교 (졸업 / 2회)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회학 / 학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회학 / 석사[2]·박사[3])
병역
전시근로역 (부등시)[4]
종교
무종교
신체
181cm[5][6], B형
소속 정당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17
경력
중앙일보 기자
부산경제정의실천연대 기획위원장
포럼신사고사무총장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문민정부)
지방분권부산운동본부 집행위원장
동아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 교수
동아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국제학과 교수
제17대 국회의원 (부산 수영구 / 한나라당)
부산문화콘텐츠마켓 조직위원장
한나라당 대변인
한나라당 혁신위원회 총간사
국회문화관광위원회 상임위원
한나라당 언론발전특별위원회 간사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제17대 국회 후반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위원회 위원
대통령실 홍보기획관 (이명박 정부)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 (이명박 정부)
대통령실 사회특별보좌관 (이명박 정부)
제28대 국회사무총장 (정의화 의장)
미래통합당 혁신통합추진위원장
중도·보수 통합추진혁신통합추진위원회 위원장
미래통합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
제38-39대 부산광역시장[7] (민선 7-8기 / 국민의힘)
제14대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부회장


1. 개요
2. 경력
5. 정치 성향
6. 방송 출연
7. 저서
8. 기타
9. 소속 정당
10. 선거 이력
11.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파일:박형준도정슬로건.png

대한민국사회학자교수 출신 정치인. 제38, 39대 부산광역시장.

동아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제17대 국회의원,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국회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대표적인 이명박 정부의 인사이며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보수 논객으로 활동했다.

대학생 때에는 학생운동을 했고 대학교 졸업 후에 기자가 되었다가 공부를 더 해서 사회학 교수가 되었다.

1990년대부터 교수로 일하면서 시민단체 활동을 하고 1994년 민주자유당에 입당 후 문민정부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에서 활동하였으며 2004년 17대 국회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청와대에서 보좌관으로 일했고 박근혜 정부 시기에 JTBC 정치토론 프로그램 썰전을 통해 보수 논객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3]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사무총장으로 일하기도 했으며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썰전 고정 패널이 되었다.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부산광역시장에 당선되었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역대 부산시장 최다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이는 역대 대통령 후보들의 부산 지역 득표율까지 포함해서 보더라도 제14대 대통령 선거 김영삼제16대 대통령 선거 이회창 다음으로 높은 득표율이다.[4]


2. 경력[편집]




3. 생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박형준/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비판 및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박형준/비판 및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정치 성향[편집]


자유주의, 공화주의, 민주주의의 3가지를 보수의 핵심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그의 기본이념은 고전적 자유주의가 주장한 소극적 자유를 전제로, 신공화주의적 자유[5]와 적극적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며, 이는 자유주의에 기반한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이다. 다만 공공선의 존재를 인정하고, 시민적 덕성과 사회 내의 연대정신을 강조하며, 모든 것을 시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자유방임주의, 자유지상주의 등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기본 개념 중 하나인 최소 국가론도 부정했고, 작은 정부/큰 정부 프레임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보면 그의 정치관은 개인의 자유를 전제로 하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결국은 함께 더불어 사는 공화 정신이 필요하다는 이념이다.

또 행복을 매우 강조하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는 개개인마다 행복을 느끼는 일이 다르다는 '행복 다원주의'를 제창하지만, 동시에 평생교육과 타인과 함께 사는 삶이 행복에 매우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공화주의적 면모도 있어서 그런지, 사회적 합의와 적절한 절차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대한민국 보수 정치인 중에 공화주의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유승민 의원과 비교해 보면, 유승민 전 의원은 시민적 덕성과 공공선, 헌법정신을 가장 중시하는 고전적 공화주의자인 반면[6], 박형준 시장은 자유주의가 공화주의보다 우선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그러면서도 자유주의와 공화주의가 상호 보완성을 지닐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한다.

소련이 주도한 사회주의는 실패했으나,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성과도 있음을 인정한다. 다만, 스웨덴발렌베리 가문과 경제 자유도[7] 등을 들면서, 스웨덴식 사민주의가 반시장적이지 않음을 피력하기도 한다.

정계 복귀 이후, 보수 통합을 주도하였고, 그 이후로도 황교안과 한동안 호흡을 맞췄다. 황교안이 대체로 범친박에 뿌리를 두었음에도 적극적으로 기용을 한 셈. 미래한국당 공천 관련해서는 한선교 당시 대표가 다름아닌 황교안 대표가 박형준 선대위원장의 공천을 요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위에서 보듯이 대표적인 친이계 인사인 그를 황교안이 중용한 것이 포인트.

그의 정치이념에 대해 더 깊게 알고자 하는 사람은 '보수의 재구성: 새로운 정치를 위한 자유공화주의 선언'이라는 그의 저서를 읽어보면 된다.


6. 방송 출연[편집]


연도
방송사
제목
2013
파일:SBS 로고.svg
최후의 권력
2014 ~ 2018
파일:MBC 로고.svg
시사토크 이슈를 말한다
2017 ~ 2019
파일:JTBC 로고.svg
썰전
2019 ~ 2020
파일:KBS 로고(1984-2023).svg
정치합시다
2019~ 2020
파일:TV CHOSUN 로고.svg
강적들


7. 저서[편집]


연도
출판사
제목
1990
학문사
현대 사회와 윤리
1991
백산 서당
현대 노동 과정론
1992
동아대학교 출판부
현대 사회와 이데올로기
1994
길벗
21세기 프론티어
1996
박영률 출판사
정보화의 문명사적 의미와 국가 전략의 방향
1997
동아대학교 출판부
21세기의 이해
2001
의암 출판 문화사
성찰적 시민 사회와 시민 운동
2007
한국 행정 연구원
규제 협상의 적용 방안에 관한 연구
2019
메디치 미디어
보수의 재구성 (공저)[8]


8. 기타[편집]


  • 이재오, 이동관, 임태희와 더불어 그야말로 이명박 대통령 시절, MB키즈라고 불리며 대통령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그보다 더 사랑을 받았다고 평가되는 사람은 이명박의 정치 입문 이전부터 가신[9]으로 활동한, 진정한 이명박의 집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김백준[10]밖에 없다.[11]

  • 최초로 국회사무총장과 지방자치단체장을 모두 지낸 정치인이다. 원래는 박형준이 유일했으나 21대 국회 후반기 사무총장에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임명되면서 유일 기록은 깨졌다. 다만 박형준은 先사무총장 後부산시장이고 이광재는 先강원지사 後사무총장이라는 차이점은 있다.

  • 부산 출신이지만 어린 시절 부산을 떠나 학창시절을 모두 서울에서 보냈기 때문에 사투리를 전혀 쓰지 않는다. 1995년부터 뽑힌 민선 부산시장 중에서는 유일한 표준어 화자다. 평소 말하는 걸 들어보면 그냥 서울 사람이 표준어로 말한다고 느껴질 정도다. 보통 사투리를 고친다 해도 억양에는 흔적이 남아 있기 마련인데[12] 그런 것도 없다. 부울경 지역 정가에서도 박형준을 두고 "처음 만났을 땐 서울 사람인 줄 알았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 # 동남 방언은 고치기가 매우 어렵다. 악센트와 인토네이션이 정반대에 가깝기 때문. 유년기를 경상도에서 보내고 어릴적부터 주변에 표준어 구사자가 없었다면 사실상 고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단 억양이 고착화 되기 전 초등학교는 서울, 중학교는 부산, 고등학교는 다시 서울처럼 번갈아 오갔다면 표준어와 사투리를 매우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기는 하다. 물론 이것도 억양을 고치려는 노력이 수반 된 경우이고 보통은 한쪽으로 쏠리기 마련. 한편 이러한 점 때문에 부산광역시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박형준 시장의 부산 사투리 억양을 시험해 본 적이 있는데, 평소에 사투리를 쓰지 않을 뿐이지 부산 사투리 자체는 생각보다 유창하게 잘 구사한다는 평이다.#

  • 키가 181cm으로 동나이대 남성에 비해 상당히 키가 큰 편이다.[13] 또 온화한 비주얼을 지녔으며 패션센스도 괜찮은 편. 목소리 톤도 좋고 화법도 정치인 치고는 온건해서 젠틀한 이미지가 강하다.

  • 사회학 교수를 역임한 적이 있어서인지 토론, 작문 능력이 매우 뛰어나고 합리적인 성격으로 알려져 부산시장 이전부터 합리적 보수의 대표주자 중 하나였다.


  • 남경필과 사적인 친분이 있다.[14] 썰전 238화에서 말하길 남경필의 장남이 마약 투약으로 체포된 후 속상한 마음에 문자 메시지로 "형, 가슴에 비가 내려요"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2017년 광역서울도 토론회에서 서로 옆자리에 앉아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찍히기도 했다.

  • 유시민과 매우 가까운 사이인 걸로 알려져 있다. 서로 국회의 같은 축구팀에서 뛴 적도 있고, 같은 나이[15]에 동세대를 지낸 정치인들이기도 하다. 유시민은 JTBC 뉴스현장에서 토론 상대로 누가 좋냐는 사회자의 질문을 들었을 때 유승민과 함께 박형준을 언급했는데, 그것은 곧 박형준을 합리적인 보수로서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 썰전 출연 당시 박형준이 자신의 하차요청글이 빗발치고 있다며 하소연할 때 적극적으로 위로해 준 것도 유시민이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전원책이 하차하면서 공석이 된 보수 패널 자리에 박형준을 제작진에게 적극 추천한 사람도 유시민이다.

  • 토론 능력에서 그 유시민도 몇 안 되게 인정한 인물이 박형준과 유승민이고, 본인도 뛰어난 토론 능력으로 유명하나, 100분 토론 출연 당시 노회찬의 공격에는 잠시 쩔쩔맨 적이 있었다.

박형준: 한미 FTA가 성공했다는 거를 이번에 확인받은 겁니다, 사실상 거꾸로.
(김구라 유시민 일동 폭소)
박형준: 한미 FTA를 노무현 정부에서 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할 때는) 얼마나 반대했어요? 내가 정무수석 할 때거든. 한미 FTA 안 된다고 그 난리를 치고, 그때 그렇게 떠들던 사람들 다 어디 갔어요?
유시민: 더 양보했잖아, 원래 우리가 해 놓은 것보다. 원래 우리가 해 놓은 대로 했으면 더 잘 됐지.
박형준: 에이, 어쨌든 그때 국회에서 망치 휘두르지, 그 다음에 뭐 최루탄 터뜨리지, 정의화 국회의장은 그것 때문에 아직도 목에 문제가 있어요.[16]
유시민: 아니 귀하 정부에서 물러섰잖아 더.
박형준: 물러서긴 뭘 물러서요?[17] 아니 그러니까, 물러섰든 안 물러섰든 지금 그렇게 성공적이고...
유시민: 원래 70점 짜리를 60점 만든 건 인정하셔야지.
박형준: 그것 때문에 반대했어요? 그건 아니잖아요.[18]
유시민: (멋쩍게 웃으며) 그것 때문이네!
이에 김구라는 유시민더러 한방 먹었다며 웃었다. 다음 회차인 227회에서 김구라가 유시민에게 주변 반응이 어땠냐고 묻자 유시민이 말하길 그동안 매너리즘에 빠졌던 걸 반성하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 이렇게 유시민과 나름 막역한 사이인 듯 했으나, 2020년 21대 총선을 거치며 급격히 냉랭해졌다. 유세 기간 막바지, 논란이 되었던 유시민의 180석 논란에서, 미래통합당 선대위원장이었던 박형준이 그 말을 캐치해 이를 강력히 비판했다. 투표가 끝나고 KBS 개표방송에 함께 출연해, 미래통합당이 출구조사에서 유리한 것으로 보이자 옆에 있던 유시민을 비웃듯 "그 말을 캐치했기에 우리가 그나마 이만큼 선방했다"며 자축했고, 유시민은 그 말을 듣자 표정관리가 안 되며 "이제 인간적인 정은 싹다 무시하도록 할께요."라는 말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본 개표에서 박형준은 패배를 맛보았다. 개표 막바지 180석이 확정되었을 때 박형준 교수는 패인에 대해 조목조목 얘기했는데, 이때 유시민이 끼어들어 그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 더 있다며 부아를 돋구기도 했다.

  • 썰전 244화에서 밝히길 국민의당에 합류할까라는 생각을 적극적으로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제3지대론'을 추진할 당시 우리 정치가 양극화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봐서 중도에서 합리적 진보와 보수가 만나는 틀을 구상해서 실행하려고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잘 안됐다고 밝혔다. 이를 듣고 게스트로 온 박지원 의원이 그 때 그 선택(국민의당에 안 온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말해 빵 터트렸다.


  • 진보 진영의 정치인들하고 가까운 사람들이 많은데,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정청래다. 정청래의 정치 성향을 보자면 어색해 보이는 조합이지만 정청래가 박형준과 함께 썰전에 출연했을 당시 말한 바에 의하면 함께 일했을 때 헤매고 어려웠던 부분을 박형준이 많이 도와주었고 자신이 의견을 다소 과격하게 피력할 때도 매우 합리적인 의논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둘 다 성향이 성향이다 보니 부딪힐 때도 많지만 정청래는 늘 박형준을 얘기할 때 존경스럽다며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빼먹지 않는다.

  • 자신도 과거엔 좌파였다고 밝혔다. # 5공 때 엄청난 탄압 속에 젊은 지식인들은 쉽게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 모택동주의에 빠져들었고, 박형준 본인 또한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해갔다고 한다. 다만 애초부터 박형준 본인은 교조주의적 태도와는 거리를 두었고, 88년 유럽에 체류하며 동유럽체제 문제점을 보면서 마르크스주의는 더 이상 희망의 원리가 될 수 없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19] 이후 해당 과거가 재조명되면서 과거 주사파였던 하태경과 비슷하게 자유한국당을 비난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실제로 하태경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캠프 대변인이었기 때문에, 당시 박근혜 캠프 단장이었던 유승민과는 한때 정치적 대립 관계였다. 하지만 썰전에서 말하길 창과 방패 같은 관계(유승민이 창, 박형준이 방패)였다고 하며, 유세가 끝나고 서로 회식 자리에 함께해서 덕담을 건넬 정도로 개인적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박형준이 친박 때문에 정계 일선에서 물러나고 유승민도 비박계가 된 지금은 서로 협력하며 원만하게 지내는 듯. 다만 박형준은 자신이 국회사무총장 시절 많이 도와줬는데 유승민은 그걸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농담조로 살짝 디스하기도 했다. 유승민이 2017년 바른정당에서 개강한 지방선거학교 강연에 박형준을 초청하기도 했다.

  • 썰전 263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정치 보복이라고 비판하며, 언제까지 이런 방식을 계속 할 수 있겠느냐, '덕이 미움을 이긴다' 라며 국민통합으로 '미움의 정치'를 넘어서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에 유시민은 동의하면서도 통합이라는 미명하에 과거의 불의를 덮으면 과연 통합이 될 지라는 딜레마가 있다고 반박했다. 박형준은 덮자는게 아니라고 했는데 이와 관련해서 논란이 일어났다.

  • 썰전 255회에서 이명박 정부 당시 검찰의 박연차 게이트 관련 노무현 수사에 대해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 과정에 정치보복적 성격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당시 청와대 내에서도 신중한 수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었고 MB도 구속 기소에는 부정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서 같은 친이계 출신이지만 정두언의 주장은 맥락이 조금 다른데 이명박이 구속 기소에 부정적이었지만 어차피 재판에서 실형인데 구속시키면 이명박 본인이 구속을 주도한 것처럼 되어버려 정치적 부담을 느낀 것이라고 한다.# 이 두 주장은 서로 다른 맥락이지만 양립도 가능하다. 당시 청와대가 노 전 대통령 구속 건에 대해 신중론과 정치적 부담 등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구속수사에 회의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20]

  • 2009년 행정구역 개편 논의가 무르익을 당시(청와대 정무수석 재직)에 광명시, 구리시의 서울편입 논의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력하기도 했다. 기사


  • 부산시장 출마가 가시화된 때인 2020년 11월 18일 MBC의 '시선집중'에 출연하여 동남권 신공항 문제에 관해 '당연히 가덕도로 가야'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와대 보좌관이던 때인 2011년 4월 6일에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에는 이명박이 신공항을 백지화한 것이 잘한 일이라고 옹호한 바 있다.#

  • 부인(조현)은 부산 지역 유명 화랑인 조현화랑의 설립자이다. 해당 화랑에 관해서는 인터뷰 기사 참조.


  • 농구광이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농구를 좋아하여 농구를 직접 즐겨 했으며, 시장으로 부임한 직후 프로농구 kt 소닉붐이 부산을 떠나 수원으로 연고지를 이전하자 곧바로 새로운 부산 연고 프로농구단 유치에 힘을 썼다. 소노 스카이거너스 창단 당시에도 유치 신청을 했으며, KCC 이지스가 원래 연고지였던 전주시와 체육관 문제로 갈등을 겪자 이에 적극적인 구애를 보내 KCC 이지스를 부산으로 이전시키는데 성공했다. 2023년 10월 22일 KCC 이지스가 부산으로 입성한 뒤 처음으로 열리는 홈 경기에서 시투를 했다.

  • 농구 외의 스포츠에도 관심이 많은 편인데 롯데 자이언츠의 홈 구장인 사직야구장의 재건축을 확정하면서 십 년 넘게 이어져 오던 부산 신구장 논쟁을 종식시켰다. 롯데의 구단주인 신동빈 회장을 직접 만나 사직 신구장 건설에 대해 업무 협약을 맺었으며 이외에도 e스포츠 육성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 시장 취임 후 부산 연고팀인 롯데 자이언츠 홈 경기에서 시구를 4번이나 했다. 첫 번째 시구는 시장 취임 직후인 2021년 4월 16일 삼성전, 두 번째 시구는 2022 시즌 홈 개막전이던 2022년 4월 8일 두산전, 세 번째 시구는 2023년 4월 7일 kt전, 네 번째 시구는 2023년 6월 13일 한화전에서 했다. 부산이 2030 엑스포 유치를 준비하고 있다 보니 시구 당시 입었던 유니폼 뒷면 등번호를 '2030 부산엑스포'로 마킹하고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 부산광역시장으로는 최초로 부산 아이파크의 클럽하우스를 방문했으며, 이날 축구 전용구장 건립, 구덕운동장 개·보수, 클럽하우스 및 훈련장의 안정적 지원 및 사용료 감면, 경기 일정 홍보 지원 등 대한 의견을 들어보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 역대 부산광역시장 당선자 중 '최고 득표수'[21], '최고 득표율'[22]을 모두 이뤄낸 인물이다.

  • 부산시장에 취임한 지 2년 5개월이 지난 2023년 9월 26일 부산지역 언론사인 국제신문이 시민들을 상대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박형준 시장에 대한 지지율은 54.8%가 나왔고, 부정평가는 39.4%를 기록했다.# 취임한 지 2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50%가 넘는 안정적인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박형준 시장의 자택이 있는 동부산 지역에서 지지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부정평가 역시 적지 않지만 그래도 부산시민들로부터 전직 시장들 보다는 훨씬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23]

9.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파일:민중당 1990년 글자.svg

1990 - 1992
창당
정계 입문[24]

[[무소속|
무소속
]]

1992 - 1994
정당 해산

[[민주자유당|
파일:민주자유당 글자.svg
]]

1994 - 1995
입당
정계 복귀

[[신한국당|
파일: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1995 - 1997
당명 변경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1997 - 2009
합당[25]

[[무소속|
무소속
]]

2009 - 2010
탈당[26]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2010 - 2012
복당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2
당명 변경

[[무소속|
무소속
]]

2012 - 2020
탈당[27]

[[미래한국당|
파일:미래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20
입당

[[무소속|
무소속
]]

2020
비례대표 출마 철회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2020 - 현재
복당


10.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수영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50,803 (58.80%)
당선 (1위)
초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27,940 (41.96%)
낙선 (2위)
[28]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무소속|
무소속
]]

24,630 (29.59%)
[29]
2021
재보궐선거
(광역자치단체장)
부산광역시장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961,576 (62.67%)
당선 (1위)
초선[30][31]
2022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938,601 (66.36%)
재선[32]



11. 둘러보기[편집]













[1] 음력 1959년 12월 21일.[2] 과거에는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였던 수영구 민락동에 거주했다.[3] 다만 썰전에는 국회사무총장에서 물러난 다음에 유시민의 추천으로 합류했었고, 썰전 출연 이전에도 알 사람들은 다 아는 보수논객 중 하나였다.[4] 투표율(49.1%)이 낮아서 나온 결과다. 앞서 7기 선거 투표율 58.8% 비하면 상당히 줄어든 결과다. 대통령선거와 비교한다면 더 형편없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에게 패했던 문재인은 적지 부산시민으로부터 받은 표가 882,511표로 박형준의 표와는 큰차이는 아니다.[5] 비간섭을 중심으로 하는 소극적 자유와 달리, 신공화주의적 자유는 예속받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6] 징병제에 대한 옹호, 보수는 공동체를 지키는 것이라는 소신 등이 이를 알 수 있다.[7] 스웨덴의 경제자유지수는 세계 20위권 안에 속한다.[8]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실 연설기록비서관실에서 일한 권기돈과 공저.[9] 이명박이 현대에서 일하던 시절에 그 역시 현대 직원이었다.[10] BBK 주요 관계자 중 한 명으로, 특별한 정치 경력은 없으나, 이명박 서울시장 때는 서울메트로 감사를 맡았고, 대통령이 되자 청와대 총무비서관 및 총무기획관, 즉 총무실 한 자리로 4년 내내 있었다. 그 이후 그 자리를 맡은 사람은 이명박의 친형 이상득의 비서실장이었던, 이상득의 오른팔 장다사로였다. 2010년 당시 자원외교 논란의 중심이던 메릴린치(뱅크 오브 아메리카 계열사)에 김백준의 아들 김형찬(피터김)이 상무로 들어갔었고, 훗날 메릴린치 한국지점장에 투자은행부문 대표까지 되고 승승장구하다가 2016년에 그만둔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2010년 당시 메릴린치는 자원외교 자문비에 힘입어 무려 저 유명한 골드만삭스를 제치고 외국계 자문회사 중 자문 쪽 1년 수입으로 1위를 찍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당시 그냥 메릴린치가 잘 나간다는 기사만 수없이 나오다가, 그가 김백준의 아들이었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 다 끝나고 나서야 알려진다.[11] 2017년 11월 20일, MBN판도라에서 주진우 기자는 박형준은 MB 정권 당시 이명박의 총애를 받던 사람이라고 지목했다. 이에 정두언 전 의원은 자신이 알기로는 그렇지 않다며 일을 잘해서 그럴 수는 있겠지만 확실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박형준 본인 또한 방송에서 그건 아니라고 주장했다.[12] 당장 2021년 재보궐선거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 경선에서 맞붙은 이언주 전 의원만 봐도 그렇다. 평생 부산에서 산 기간보다 수도권에서 학업, 정치 생활한 기간이 더 긴 데다가 본인은 사투리를 안 쓰려고 노력하지만 억양은 남아 있다.[13] 현재로 치면 186~188cm 정도 되며 지금도 성인 남성이 180cm이 넘으면 키가 크다고 평가받는다.[14] 남경필은 또한 유시민과도 사적인 친분이 있어 서로 농담을 나누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15] 박형준의 출생년도가 1960년이기는 하지만, 빠른 년생이라서 사실상 유시민과 동갑으로 취급된다.[16] 김선동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릴 때에 가루를 고스란히 마신 사람이 당시 회의를 진행하던 정의화 당시 국회부의장이었다.[17] 재협상으로 바뀐 건 유예 세 개 정도인데, 이 유예들 중 한국이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는 자동차 관련은 한국에게 불리하게, 미국이 강한 축산물과 의약품은 한국에게 유리하게 바뀌었다. 오히려 물러선 것이 아니라 2:1로 더 나아간 셈. 괜히 트럼프가 한미 FTA를 불편하게 여긴 게 아니다.[18]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에 진영논리로 무분별하게 반대했다는 뜻. 이후 반응을 보면 알겠지만 유시민도 아예 부정하지는 못 했다.[19] 인물과 사상’ 12월호에 기고한 글.[20] 실제로 당시 한나라당을 비롯한 여권에서도 갑론을박이 심했다. 아무리 그래도 전직 대통령인데, 소환 조사를 하더라도 다 준비해놓고 한 번에 깔끔하게 끝내야지 뒤로 언플하면서 모욕 주면 되느냐는 주장도 심심찮게 나왔을 정도다. 특히 한나라당 내에서 참여정부 인사들과 사적으로 가까웠던 박희태 국회의장, 홍준표 당시 원내대표가 검찰을 향해 맹폭격을 쏟아내기도 했다. 사실 저 두 사람이 검사 출신이라 수사를 주도했던 일부 정치검사들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동하고 전직 대통령에게까지 모욕을 주는 광경에 매우 분개했다는 후문도 있다.[21] 2021년 재보궐선거, 961,576표(62.67%)[22]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득표율 66.36%(938,601표)[23] 서병수는 임기 4년 내내 낮은 시정 지지율에 허덕이다가 재선에 실패하고 물러났으며 그나마 퇴임 2년 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지만 오거돈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24] #[25] 통합민주당과 신설 합당.[26] 정무수석비서관 임명으로 인한 탈당[27] 총선 공천 탈락 불복으로 인한 탈당[28] 친박 무소속 유재중이 당선됐다.[29] 유재중이 재선에 성공했다. 무소속으로 나온 악영향인지 민주통합당 후보와의 표차도 얼마 나지 않았다.[30] 전임자 오거돈 사퇴.[31] 9년 만의 선출직 출마. 역대 부산시장 후보자 중 최다 득표수.[32] 역대 부산시장 후보자 중 최고 득표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