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진(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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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포항 스틸러스 웹 사이트





박호진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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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파일:K리그1 로고.svg






포항 스틸러스
Pohang Steelers
파일:pohang_coach_2021_4.png
이름
박호진
朴虎珍 | Park Ho-Jin
출생
1976년 10월 22일 (47세) /
대한민국 경기도 연천군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90cm
직업
축구선수 (골키퍼 / 은퇴)
축구코치
소속
선수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9~2010)
광주 상무 불사조 (2003~2004 / 군 복무)
광주 FC (2011~2012)
강원 FC (2013)
강릉시청 축구단 (2016~2017)
지도자
광주 FC (2012 / 플레잉 코치)
호남대학교 (2014~2015 / 코치)
강릉시청 축구단 (2016~2017 / 플레잉 코치)
연세대학교 (2018~2019 / 코치)
포항 스틸러스 (2020~ / 골키퍼 코치)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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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서울오류남초등학교 (졸업)
문일중학교 (졸업)
문일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졸업)


1. 개요
2.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현역 시절 포지션은 골키퍼였다. 현재는 포항 스틸러스의 골키퍼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수원 삼성 블루윙즈[편집]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1999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했다. 문제는 이 팀의 주전 골키퍼가 바로 이운재였다는 것. 그래도 이운재가 상무에 입대한 2001년에는 리그에서만 11경기에 출전하며 처음으로 두자릿수 경기를 뛰는 등 기회를 받았다. 하지만 이운재가 전역하고나서 다시 이운재에 밀려 2002년 5경기 출전에 그쳤다.

결국, 2003년 K리그에 참가하기 시작한 광주 상무에 입대하며 출전 기회를 모색했다. 광주 상무에서는 활로를 찾을 수 있을까 했는데, 일병까지는 선임이자 주전 골키퍼 자리에 정유석에게 밀렸지만, 상병이 된 2년차에는 리그와 리그컵에서 17경기를 뛰며 K리그에서 가장 많이 출전한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2005년 수원에 복귀했지만 당시 국대 주전이자 주장이었던 이운재가 버티고 있는 수원에서 리그 단 4경기만 출전하는데 그쳤다. 이대로면, 선수 생활을 오래하기 위해선 수원을 떠나야 할 수도 있었다...
파일:04001599_20070315.jpg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2006년 독일 월드컵이 끝난 후, 주전이었던 이운재가 컨디션 난조를 보이자 주전 자리를 차지했고, 미친듯한 선방을 보여주면서 일약 수원 삼성의 후기리그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그 기세를 몰아 챔프전에서도 나쁘지 않은 활약을 했지만, 결국 팀은 패배, 준우승으로 만족했다. 하지만, 이 때의 활약 덕분에 박호진은 2006년 K-리그 베스트 11에 뽑히면서 전성기를 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07년 발 부상을 당해 몸 상태가 나빠지고, 여기에 이운재가 다시 부활하면서 주전 자리에서 밀려났다. 발 부상은 재활하는데 무려 1년 6개월이 걸렸고, 이 사이 백업 골키퍼 자리마저도 김대환에게 밀리는 등, 1군에서 자리조차 안정적이지 않게 되었다. 수원 입장에서도 박호진 정도의 백업을 내주기는 아까웠기 때문에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했고 결국 그는 2010년까지 팀에 남게 되었다.

그러다가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3대 감독인 윤성효 아래서 대대적인 리빌딩에 돌입하자, 그도 팀을 떠나게 되었다.


2.2. 광주 FC[편집]


파일:1299335938415_1.jpg
,광주 FC 시절,

이후 박호진은 신생팀 광주 FC에 입단했다. 주전 골키퍼 및 골키퍼 코치를 맡아서 2011시즌부터 뛰게 되었다. 5라운드 주간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등, 기량은 아직 쓸만하다는 것이 중론. 다만 간간히 나오는 기름손이 문제.

2012 시즌까지 팀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지만, 팀의 강등을 막지는 못했다. 팀을 떠나는 것이 확정적인 상황에서 지역 언론에서는 일단 강원 FC 이적을 보도했다.

2.3. 강원 FC[편집]


파일:55126607.2_59_20130514070922.jpg
,강원 FC 시절,

이후 2013년 강원 FC에서는 한 시즌을 뛰었다. 주전 경쟁을 하다 초반에 주전을 차지해서 좋은 선방과 더불어 한 골만 넣어도 얼굴이 푹 썩는 풋내기들과는 달리 단단한 멘탈을 보여줬다.그러나 네 골을 처먹자 장사 없더라 하지만 후반기에 들어서는 어린 골키퍼들에게 주전을 빼았겼다.

3. 지도자 경력[편집]


호남대학교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하였고, 2016년 부터 2017년까지 강릉시청 축구단에 플레잉코치로 입단하며 현역으로 복귀하기도 하였다.

2018년부터는 모교인 연세대학교에서 골키퍼 코치로 활동했다.

2020년 1월 6일 포항 스틸러스의 골키퍼 코치로 영입되며, 본격적으로 프로팀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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