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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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목사.
2. 생애[편집]
1936년 충남 예산에서 교육자 집안의 4남 2녀 중 4남으로 태어나 김천고등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을 졸업했다. 한국 전쟁 당시 미국인 선교사로부터 선교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선교사가 되기로 꿈을 꾸었던 그는 한국교회가 선교사 파송을 생각하기 힘들었던 60년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최초로 파송됐던 선교사가 되었다. 그렇게 1968년부터 에티오피아 선교사로 사역하다가, 2년 후 에티오피아가 공산화되자 미국 유학 길에 올라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석사, 토론토대학 녹스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대학에서 메릴 펠로우 연구생활을 했다. 뉴욕 롱아일랜드 교회를 거쳐 1974년부터 토론토한인장로교회에서 담임목사로 14년간 사역한 후 1988년 초 김계용 목사의 후임으로 나성영락교회 2대 담임으로 부임, 16년간 사회적으로 한흑기독교연맹 공동회장, 우리민족서로돕기 미주대표, 4·29 장학재단 이사장, 풀러신학교 이사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회 단체와 기독교 단체들의 대표를 맡아 으며 나성영락교회가 한인 이민사회의 모범 교회로 자리잡는데 공헌했다. 그렇게 교회를 크게 부흥시킨 그는 2003년 은퇴 후 원로목사로 남지 않고 새생명선교회를 설립해 중국, 과테말라, 동티모르, 몽골 등의 국가에서 교회 설립을 지원했고 필리핀, 루마니아 등 5개 국가에서 교회 지도자 세미나를 개최하며 해외 선교에 전념했다. 또한 재미한인기독선교재단 이사장을 맡기도 했으며 특별히 이민 120주년을 맞아 재미한인기독선교재단에서 출간한 ‘미주한인교회사’는 그가 발행인을 맡아 미주 한인교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게 하는 일에 크게 기여했다. 2020년대에 들어서는 코로나 펜데믹이 시작된 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45개 미주 한인교회를 선정해 4만 5,000달러를 전달했다. 또한 2021년에는 목회자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3. 사망[편집]
2018년 발병했던 전립선암 재발로 투병 생활을 이어오던 도중 LA 인근 라크라센터에 있는 자택에서 2023년 4월 26일 오전 3시 별세했다. 향년 8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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