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독교/한국

덤프버전 :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반기독교


1. 개요
2. 상세
3. 구성
4. 역사
4.1. 과거
4.2. 기독교 세력의 확대
4.3. 반기독교 심리의 형성
4.4. 인터넷 시대
4.5. 분열
4.6. 쇠락
4.7. 코로나 사태
5. 기독교의 입장
6. 비판
6.1. 태생 및 조직성 문제와 이율배반, 그에 따른 비판의 한계
6.2. 헛다리 짚기와 조작 사례
6.2.1. 기독교는 다른 신화의 표절 주장
6.2.2. 이완용은 기독교인?
6.2.3. 민족대표 33인 친일파 변절 조작
6.2.4. 법정 승려의 명언 조작
6.2.5. 조두순은 목사?
6.3. 소설 《성혈과 성배》의 내용을 진실이라 왜곡
6.3.1. 교진추 자살 사건은 기독교가 죽인 거다?
6.3.2. 아이스 버킷 챌린지 관련 루머
6.3.3. 로마사와 중세 서양사 왜곡
6.3.4. 예수는 불교의 가르침을 배워서 전파했다?
6.4. 극단적 성향
6.5. 기독교 자체에 대한 무지
6.5.1. 반기독교 내 타 종교인의 문제
7.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반기독교 감정 및 운동을 서술한 문서.


2. 상세[편집]


대한민국의 반기독교 역사는 조선 말기 천주교 박해, 일제강점기 공산주의 유입 등 현대 이전의 반기독교 풍조. 그리고 개발독재시기 기독교의 과열경쟁으로 인해 심한 민폐를 끼친 개신교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생긴 90~00년대의 현대 초기의 반기독교 운동, 그리고 00년대 말에 리처드 도킨스의 영향을 받아 생긴 무신론 운동이 있다.

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주로 사회적인 물의를 심각하게 많이 일으키는 개신교[1]관련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국내의 가톨릭정교회는 이미지가 좋은 편인데, 해당 두 종파는 개신교에 비해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킨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교회는 한국 내에서는 워낙 교세와 인지도가 낮아 그 존재를 아는 인구조차 극소수이며, 가톨릭은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나 이태석 세례자 요한 신부, 정일우 사도 요한 신부처럼 존경할 만한 성직자들이 많고, 개신교와 달리 공격적인 전도 활동을 하지 않는 편이라서 이미지가 좋은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에 대한 반발을 사회적 현상으로서 파악하고자 한다면, 그 대상은 이들 중 가장 광범위하게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개신교와 관련된 것일 수밖에 없다.

한국 반기독교 세력이 반대하는 개신교는 정치적, 교파적 차원을 떠나서 모든 개신교를 뜻한다. 초창기 반기독교 세력에 운동권이 들어간 것도 사실이었고, 전광훈의 정치적 난동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시국에서 사랑제일교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 BTJ열방센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 등으로 인해 보수-극우 개신교에 대한 반감이 전국적으로 심해진건 사실이었지만[2], 애초에 '개독 박멸'을 기치로 내세운 강경파나 타 종교 반기독파의 입장에서는 기독교 교리에 대한 혐오를 이유로 모든 개신교가 타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으며, 굳이 그쪽이 아니더라도 모든 개신교가 정도는 달라도[3] 교회가 벌이는 흔한 적폐(헌금 강요, 과도한 전도, 문화에 대한 규제 등등)에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마찬가지였다.

한국 내의 기독교의 비중과 영향력이 상당히 큰 데다가 개독교예수쟁이 문서에서 보듯 병크들의 수도 장난 아닌 만큼 기독교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 보편적으로 퍼져 있다. 심지어 이 틈에 이보다 더 해괴한 논리를 가진 사이비 이단들이 끼어들어 집단 자살이나 교단의 지도자에게 성 상납을 강요하는 일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 데에다, 개신교계 이단 중 하나인 구원파가 운영하는 재단이 소유하고 있는 해운 회사가 세월호 참사까지[4] 연계된 적 있다. 분명 이들은 개신교 내에서 메이저한 교단들이 인정하지 않는 일부 집단에 불과하지만, 개신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5] 이들을 단순히 일개 개신교 집단으로 알고 있기[6]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반개신교 정서가 널리 퍼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나 한국 인터넷에선 반기독교 정서가 퍼진 만큼 기독교를 비난하는 자료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개신교 외에 기독교 전체에 대한 반기독교 정서는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저지른 만행에 원인이 있으며, 이에 대해 외국의 기독교 비판 자료+반기독교 정서에 의한 잘못된 지식이 섞여서 기독교 전체를 싸잡아 잘못된 오류로 비난하는 사례도 많다.

3. 구성[편집]


어쨌든 기독교만 싫어하면 되는 반기독교 특성상 반기독교는 별의 별 인종들이 다 섞여있는데 민족주의 계열 좌파, 인본주의자, 세속주의적 리버럴, 무신론자, 국수주의자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타 종교 비방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일부 불교유교, 그리고 증산 계통의 종교, 심지어 교단 기득권층에 반감이 심한 냉담자들[7], 일본 서브컬쳐의 영향을 받고 권위주의적인 기성세대에 반감을 가진 오타쿠들 중 상당수[8][9][10]까지 한 진영에 결합되어 있다.

다만 여러 단체가 집결된 만큼, 분쟁이 그만큼 자주 발생한다. 애초에 하나로 묶였다 해도 무신론자, 세속주의자와 불교, 증산계 종교, 냉담자 등은 서로 상극일 수 밖에 없다. 후술하겠지만 이쪽도 기독교처럼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뉘어있다.

4. 역사[편집]



4.1. 과거[편집]


조선시대에 가톨릭이 처음 유입되어 퍼지기 시작했을 때, 이익의 제자들은 이를 수용하는 측과 이에 반대하는 측으로 나뉘었는데, 안정복은 '천학문답'을 지어 내세론을 통해 전도하는 모습이 불교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하였다. 숭유억불이 강고한 시대였던 조선 후기 유학자들은 불교를 어떻게 여겼는지 생각하자. 이후 제례 거부 등의 문제에 따른 정부의 박해와 지속적인 서양 세력의 위협(신미양요, 제너럴 셔먼호 사건)으로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어느 정도 드러났으며, '야소꾼', '야소쟁이' 등의 비칭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개화기 이후 서양 세력과 접촉이 빈번해지면서 기독교(가톨릭/개신교 모두)의 확산은 더 널리 이루어졌고, 정부에서건 민간에서건 기독교에 대한 반응은 온건해진 편이었으나, 1920년대 이후 종교 자체를 부정하는 공산주의가 도입되면서 이러한 국면은 전환점을 맞는다. 그러나 이 때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상에 따라 '주적' 일본에 맞서기 위해 종교계와 공산주의 계열이 연대하는 경우도 있었으며(대표적인 것이 6.10 만세 운동), 공산주의적인 비판의 중점은 단순히 종교가 아니라 식민지적 사회 체제 전반이었기에 따로 부각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광복 이후에는 북쪽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북한에서는 평안도 지역을 중심으로 대성하던 기독교 세력을 포함한 모든 종교 세력이 전멸하였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평안도 지역은 개신교도의 중심지였고, 평양은 '조선의 예루살렘', 선천은 '고개 숙인 선천'이라고 할 정도의 지역이었다. 반면 남한에는 종교 탄압을 피해 월남한 이북의 개신교도들, 미국의 원조와 더불어 정치계와 야합속에 개신교가 급속도로 세력을 불렸다.

가톨릭은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으로 인해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양지로 나오면서 세력을 불리다가 6.25전쟁과 민주화 운동 시기에 개신교와 어께를 나란히한 주류 종교로 발돋움했다. 여기서 4명의 추기경을 배출하고 1984년, 198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내한하는 등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4.2. 기독교 세력의 확대[편집]


군사독재 정권을 중심으로 이뤄진 급격한 산업화는 전쟁 이후에 그 최소한의 형태만이라도 유지해오던 공동체마저도 유지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올 수 있는 노동자들의 모임,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운동 등은 아예 고려 대상조차 되지 못했는데, 이 시대에 이뤄지는 정서적인 교감이나 지적인 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모임은 어떤 것이 되었건 간에 정부가 나서서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았기 때문이었다. 계모임이나 반상회와 같은 것들이 있었지만 이것이 정서적인 욕구를 만족시켜주지는 못했기 때문에 시민들은 이것이 가능한 공동체를 찾게 되는데, 이때 대안으로 나온 것이 교회를 통해 이뤄지는 개신교 공동체였다.

이 당시 한국의 기독교의 신학적 연구는 구한말에 외국인 선교사가 들여왔던 상당히 정통적인 신앙이 주류였고, 일제강점기부터 금주, 금연운동 같은 권면 운동을 전개했었다. 하지만 70년대부터 신사고 운동이라는 이단적인 사상을 기반으로 한 번영복음을 미국에서 들여오면서 모든 개신교가 상당히 기복화되었고, 이는 한국 사회의 세속적인 풍습과, 자본주의적 논리와 결부하여 기독교 종파가 빠르게 세를 확장해왔다. [11] 여기서 모든 개신교 종파가 밴치마킹하는 것이 바로 번영복음의 시초인 수정교회였는데, 크고 화려한 교회, 다양한 찬송, 편안한 예배를 중시하였고, 교회는 이것을 이루기 위해 소속 신도들에게 이웃 주민들을 향한 강압적인 전도를 요구했고 지속적으로 비싼 헌금을 강요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에리히 프롬이 이야기했던 모든 것을 구매할 수 있는 자본을 개인이 소유하는 것에서 받게 되는 중압감, 즉 자유라는 중압감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메커니즘이 작용하고 있었다. 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것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개인들은 자신들의 자유 자체를 자신들의 불안을 해소시켜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어떤 것에게 이양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일부 기독교 교파들이 막대한 자본을 얻어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그 위세를 떨치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기독교가 비교적 단순하고 명료한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오래된 종교들과는 달리 종교 개혁을 겪으면서 새롭게 태어난 종교이기 때문에 유연한 해석을 허락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한국의 경우에는 도시화를 통해 부동산을 이용해 막대한 재산을 축적해온 이른바 '졸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독재 정권에서도 이들을 견제할 이유가 없었던 데에다 이들 자신이 그 수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독재 정권이 이용해오던 논리를 그들 또한 따라하게 되면서 이들이 막대한 자금을 기부하는 개신교 교단 자체에서 이를 공식적인 입장으로서 표명하는 것조차 가능해졌던 것이다.


4.3. 반기독교 심리의 형성[편집]


민주화 이후 개발독재 시절에 개신교의 적폐가 여러가지로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반기독교 심리가 점차 형성되기 시작했다.

각 마을 서낭당이나 무속 계열 문화재가 암묵적 동의에 의해 근대화 과정에서에서 훼손되었으며, 각 교회들이 앞장서 불상이나 단군상 등 기물 파손을 저지르기도 하였다.[12][13]

또한 표현의 자유가 확산되다보니 목회자가 가르치는 교리 자체의 모순에 대한 지적이 늘어났으며 주로 교리 특성 상 민족 문화나 타 종교에 대한 편협하고 배타적인 태도,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무분별한 전도, 기복적으로 변질된 신앙, 부모의 교회 출석 강요[14], 게임 및 만화 혐오[15] 등이 매스컴에 밝혀지고 대중들의 담화에 오르게 되면서 서서히 기독교와 서구 문화에 대한 반감이 사회에 조금씩 퍼져갔다. 이러한 반감은 개신교를 넘어 천주교와 정교회까지 확산되었다. 이것은 인터넷 문화가 확산되어 가면서 논쟁의 궤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일부 기독교도들과 목사들이 벌이는 추태와 범죄가 매스컴에 밝혀진 것도 반기독교 심리 형성에 결정타를 남기게 되었다.


4.4. 인터넷 시대[편집]


1990년대 말 PC통신의 토론 게시판,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게시판(ex. 하이텔큰마을) 등에서 현대적 반기독교 여론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여튼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들어 인터넷 문화가 급속도로 확장되고 홈페이지를 개인적으로 만들던 시절[16], 라이코스에서 '이안티'라는 HN을 쓰는 불교 신자 대학생이 만든 반기독교 사이트가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면서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지닌 인물들과 타 종교인들이 이 사이트에 모여들기 시작했고, 오프라인에 반기독교 행사도 벌어졌었다.

그리고 '서프알바'라는 네티즌이 서프라이즈 등 진보단체 사이트에서 낚시글 도배 방식으로 교회 비리 폭로 활동을 벌였다.

또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다음'의 카페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위의 인물이 만들어낸 카페인 '클럽 안티 기독교'(이하 클안기)가 2000년 6월 19일 설립되고, 이후 인원이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이후 '십자 불꺼', '검은 십자가', '안티 예수', '기독교 비평' 등의 클안기에서 분가한 반기독교 사이트가 생겨났지만, 누가 뭐래도 가장 유명한 곳은 클안기였고, 자체적으로 개설된 반기독교 카페도 클안기의 영향에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이들도 나름대로 오프라인에서 활동을 하였으며, 각 카페에서 교류도 나름 활발하였다. 결국 클안기에서 『우리는 왜 기독교를 반대하는가(2003)』라는 책까지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클안기 등 몇몇 카페는 아무리 흥해도 카페라는 구조상 제약이 있는 고로, 좀 더 활발한 반기독교 운동을 위하여 독립적인 사이트 개설이 필요했다. 그래서 원래 클안기에서 벗어난 반기독교 사이트인 '개독교 박멸을 위한 시민연대'와 클안기가 협력해서 하나의 대형 사이트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반기독교시민연합(이하 반기련)이다.

초창기 안티 단체들은 단순한 논쟁과 기독교에 대한 비난만을 하는 단체였고, 또한 이안티가 이후 클럽 안티 기독교에서 탈퇴하고 안티 기독교 활동을 접은 이후로 어느 정도 표류를 하는가 했으나, 2003년 9월 러셀, 옹기쟁이, 꽹과리 등 네임드 안티들이 클안기의 한계를 벗어나고 안티 기독교 운동이 시민운동으로서 나아가겠다는 목적으로 반기련을 창설한다.

마침 한국 기독교를 신랄하게 비판한 오강남 교수의 저서 『예수는 없다(2001)』를 통하여 출판에 대한 영감을 받은 이들은 반기독교 서적의 번역 작업 및 프로메테우스가 시도하고 있던 성서무오설 비판까지 더하여 학술적인 반기독교로 발전하게 되고 '바이블 19금 제정 서명운동' 등의 활동을 펼치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의 한국 개신교 비판 일부를 인용한 사람들이 간과하는 점은, 오강남 교수는 캐나다에서 비교종교학 교수로 불교를 서양인에게 가르치는 교수이지만, 정작 독실한 개신교인이라는 것이다. 결국 기독교인에게서 나온 기독교 비판에 대해서 문구 몇개를 짜집기해서 기독교(개신교)는 자정 능력이 없다고 선동하는 셈이다. 더군다나 오강남 교수의 이 책은 어디까지나 기독교 내부의 개혁과 성찰을 촉구하는 거지, 반기독교에서 주장하는 '기독교 박멸'과 같은 과격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이들의 노력과 새로 유입된 반기독교 성향의 사람들의 시민운동주의 성향이 맞닿아 결국 반기독교 사진전과 출판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서 기독교가 직접적으로 반기독교에 대해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뉴스앤조이를 제외한) 국민일보와 같은 기독교 계열 신문에서 반기독교가 위험하다고 성토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4.5. 분열[편집]


이렇듯 무섭게 성장하던 반기련이었으나 사람 모이는 곳에 갈등과 분열이 있는 건 반기독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5년 10월에 벌어진 일명 '영자의 난'이 대표적이다.

2005년 5월 28일 반기련은 중앙사무실을 경기도 연천군에 개소했다. 보다 확실한 반기독교 운동을 위한다는 목적이었다. 고사의식을 통한 거창한 사무실 개소식도 하였고, 당시 반기련의 서버 운영자였던 '옹기쟁이'가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제출하고 유급 사역자로 연천 사무실에 상주했다. 이른바 '직업 안티'를 만들겠다는 심산이었다.[17] 하지만 반 년도 못 되어 각종 돈 문제와 관계자들 간의 오해와 비난이 얽혀 갈등이 엄청나게 커졌고, 결국 반기련의 네임드인 문학비평, 러셀, 옹기쟁이, 이드, 광복군, 인즉신 등이 탈퇴하여 2005년 10월 종비련(종교비판자유실현시민연대)을 창설하였다. 종비련은 반기련의 교조주의적인 안티 활동을 비판하며 자신들은 합리적인 종교 개혁 운동을 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첫 번째 활동으로 종교인 납세 운동(주로 개신교회를 겨냥한)을 전개하였다.

당연히 반기련에 남은 사람들은 이들을 배신자, 변절자라 부르며 욕했고, 탈퇴한 종비련 소속 사람들 역시 자신들의 정당성을 변호하며 한동안 추잡한 싸움이 이어졌다. 반기련 측에서 특히 문제삼은 것은 종비련이 '기독교 박멸'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타협을 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종비련 측은 여전히 자신들의 목적은 기독교의 박멸이라 주장하며 반기련 회원들의 저열함을 탓했다. 중도에 선 사람들이 사태 수습을 위해 노력한 끝에 그럭저럭 갈등은 봉합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또 종비련 내부에서 운영과 금전상의 문제가 얽혀 핵심인물이었던 '이드'가 후원 그룹을 데리고 이탈하여 2007년 종추련(종교법인법제정추진시민연대)을 창립하였다. 창립자가 빠져나간 종비련은 속 빈 강정이 되어 추동력을 잃고 명맥만 유지하다가 얼마 안 가 사라져버렸고, 종추련 또한 2011년 종감련(종교권력감시 시민연대)으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몇 번의 활동 끝에 수명이 다 되어 사라져버렸다.

반기련도 내부적으로 평온하지 못했다. 2005년의 혼란을 간신히 수습하고 그 후유증이 가시기도 전에, 2007년에는 서버 관리자인 '유령'이 자신이 운영하던 반기련 서버를 해킹하고 반기련을 떠나는 대형 사건이 터졌다. 영문을 모르는 회원들은 반기련 사이트가 접속이 되지 않자 '기독교인의 소행이다, 정부의 짓이다' 등등 음모론을 꾸미기에 여념이 없었다. 몇몇 사람들이 임시 사이트를 만들고 비상대책위원회가 조직되어 간신히 복구에 성공한 뒤 알아본 결과, 사건의 원인은 유령과 반기련 집행부의 일부 회원과의 갈등 과정에서 잡음이 심해진 것이었다. 반기련은 또 내부에서는 유령을 두둔하는 쪽과, 비난하는 쪽의 논쟁으로 패가 갈려 몸살을 앓아야 했다.


4.6. 쇠락[편집]


여러 번의 분열과 네임드 회원 다수의 탈퇴로 인해 반기련은 2010년대부터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물론 국내의 반기독교 세력 중에는 가장 크고 강성한 단체였지만, 분열의 상처는 회복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리처드 도킨스로 인해 촉발된 무신론 운동이 국내에서 반기독교의 자리를 대신하며 기존 반기독교 단체들의 지분을 빼앗아버렸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반기독교인들 중 상당수는 보다 논할 것도 많고, 반기독교 성향은 아니었던 사람들 역시 상당수가 뭔가 '그럴 듯해' 보이는 무신론 쪽으로 거처를 옮겼고, 새로 유입되는 사람들 또한 무신론 쪽에 많은 실정이다.

기독교 개혁을 주장하는 온건한 기독교 비판층과 기독교 박멸을 주장하는 극렬 반기독교주의가 물과 기름과 같은 사이인 건 지금도 마찬가지며, 기독교 박멸을 기치로 내세운 비이성적 극렬 안티 대부분은 아직까지도 온건한 기독교 비판층까지 기독교와 동일시한다. 단지 현재에 와서 이런 내적 갈등이 부각되지 않은 이유는 극렬 안티가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득세하고, 온건 비판층은 그런 극렬 안티의 등쌀을 못 이겨 반기독교 활동을 접거나 조용히 활동하기 때문이다. 국내에 개념 있는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조용히 신앙 생활을 하기 때문에 티가 안 나는 반면, 극성맞은 신자들이 항상 문제를 일으켜서 튀는 것과 비슷하다.

위에서 말했듯이 국내의 무신론 활동들도 반기독교적 성향이 강하다. 역시 2000년대 후반 들어 시작된 한국의 본격적인 무신론 운동이 자생적으로 발생한 것이라기보다는 리처드 도킨스 같은 서구학자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인데, 도킨스로 대표되는 무신론자들은 일명 '신무신론(新無神論)'이라 불리며 <종교는 쉽게 용인되어서는 안 되며, 종교가 그 영향을 끼치는 곳에서는 반드시 반박되고, 비판되고, 합리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요지의 주장을 내세운다. 그리고 문화적, 역사적 배경에 의해 그들이 주로 타겟으로 삼는 종교는 당연히 기독교다. 즉, 기독교 자체도 외국에서 들어왔지만, 그에 대한 반론들도 외국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국내의 무신론 활동은 태생적으로 기독교를 주 대상으로 하며, 무신론 그 자체보다는 반기독교 성향이 강하다.

그 때문에 국내의 초기 무신론 활동들이 반기독교 운동에서 받은 영향들도 상당하다. 반기독교 운동에서 활용해온 자료들이나 논거들도 대부분 외국에서 받아들여온 것인데 무신론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반기독교 운동 측에서 쌓아놓은 자료들을 많이 가져다가 활용하기 좋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무신론 활동 초기에는 서로 주고받은 영향이 상당히 크다.[18]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서로 다투기도 하는 등, 분열이 일어나는 상황이다. 이는 딱히 우열의 문제나 한쪽의 병크라기 보다는 위에서 언급할 '분열' 항목처럼 의견의 차이 때문이다. 애초에 반기독교 vs 무신론이 아니라, 무신론 내부에서도 항상 이와 유사한 분열들은 있었다. 게다가 한국 내 반기독교 운동 구도 자체가 서구식 강경 세속주의 및 무신론 vs 불교, 증산도 등 동양계 종교에 기반을 둔 반기독교주의로 애시당초 서로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반기련은 몇 년 동안 지속된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2021년 2월 문을 닫았고, 클안기는 아직 남아있지만 회원수 6천에 활동회원은 20여명에 불과하여 1만에 달했던 회원수와 수백명의 활동회원을 거느렸던 전성기에 비해 크게 쇠퇴했다.


4.7. 코로나 사태[편집]


2020년 벽두부터 시작된 코로나 사태는 반기독교 특히나 반개신교 정서가 국민적으로 보편화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사태 초기에 개신교 계통의 이단교회가 대규모 집단감염의 진원지가 되어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이에 대한 국민적 비난 여론이 매우 높아졌다. 하지만 개신교 교회들이 정부에서 권장한 비대면 예배보다 직접 대면예배방식을 고집하여 2, 3차 유행에서는 기성 교회, 기도원, 신학교 등 한국 기성교회 전체가 대규모 집단감염의 진원지로 드러나는 사례가 매우 빈번하게 나왔다. 또한 현 민주당 정부에 적대적인 극우 성향의 기독교 교단이나 반정부적 목사나 극우 신도들이 정부의 코로나 방역에 극도로 비협조적이어서 방역을 무시하거나 방해하기도 했다. 급기야 2020년 8월 대한민국 전체를 코로나로 마비시킨 전광훈과 관련된 기사에는 네이버를 중심으로 그를 지지하는 세력으로 추정되는 네티즌들이 전광훈을 이 시대의 진정한 애국자이자 하나님의 선지자라며 추켜올리는 댓글을 올려 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 결과 한국 전체의 특히 수도권의 코로나 확산의 절반 이상이 직간접적으로 개신교 교회와 관련된 사례로 드러났다. 특히 교회발 확산은 한 번에 수십 수백 명의 집단적 감염이 많아 크게 보도되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에 천주교나 불교 등 타 종교 집단에서는 그러한 집단 확산의 사례가 거의 나오지 않아 일반 서민들에게 개신교회가 곧 코로나 확산의 진원지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러자 일반 서민들이 개신교에 대한 반감이 한탄이나 짜증을 넘어 적개심을 표시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한국 개신교 교회가 코로나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는 도중에도 대면예배를 계속 고집하고 대면 예배제한 등 방역조치를 종교 탄압, 교회 탄압이라고 정부를 비난하며, 헌법도 제대로 모르고 무조건 종교의 자유를 운운하는 등 미숙하다 못해 이기적인 대처로 인해, 개신교 교회는 한국의 사회의 집단공동체 윤리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반사회적 집단이라는 부정적 인상을 강하게 심었다. 그로 인해 개신교 신앙 일반과 교회 및 신자들에 대한 서민들의 여론이나 평판이 한국 사회에서 크게 악화되었고 반기독교 정서가 서민들에게 보편화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코로나 장기화로 인해 자영업자나 서민들의 경제적 금전적 피해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개신교회가 대면 집단예배를 강경하게 고수하는 이유가 헌금 등 금전상의 이유로 인식되었다. 물론 개신 교회가 커뮤니티적 기능도 굉장히 커서 이를 핑계로 여는 경우도 있지만[19] 애초에 비상시국에 사람끼리 몰려다니는게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결국 사태를 유도리있게 판단한 개신교회나, 시국을 안일하게 바라보고 현 상태를 유지하던 목사들은 매우 이기적이고 주님이 아닌 돈을 숭배하는 사악한 반사회적 비협조적 비도덕적 집단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주었다. 또한 이 시기에 일어난 독실한 개신교인이자 목회자 자녀인[20] 부부에 의한 비인간적인 양천구 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으로 개신교인들의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히는 사건이 발생해 개신교에 대한 공격이 잦아지고,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교회에 대한 처신을 질타하는 의견이 점점 늘어나는 등 기존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1년 들어서는 교회의 집단 감염 사례 보도 기사에 순식간에 수백 개의 개신교/교인에 대한 혐오나 강한 욕설의 댓글이 넘치고 수천개의 추천이 달리는 등 일반 악플러들도 이러한 증오의 감정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 질타의 대상도 넓어졌는데, 안 그래도 안 좋던 인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빠져 초기에는 일부 이단 교단에 대한 질타에서 시작해 그게 기성 개신교 교회나 보수와 NCCK를 가리지 않고, 개신교 신자 전체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개신교 신자인 정치인과 유명인, 아이돌과 걸그룹의 홈페이지까지 무자비한 테러를 가하고 있고, 최근에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반감으로까지 나타났다. 더구나 코로나 백신접종이 시작되자 극우성향 개신교회가 백신유해론 벽보 부착 등 조직적으로 음모론을 유포하는 # 작태를 보이면서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적대감이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강해졌다. 이런 적대감은 대상이 거의 한국 개신교의 교회, 목사, 개신교 신자들에게, 특히 대면 집단예배 행위에 집중되어 있지 딱히 기독교 일반이나 신앙행위에 대한 혐오는 아니었다. 중앙 집권적으로 명령에 통제되어 상대적으로 깨끗하다는 느낌을 주는 가톨릭에 대한 공격은 거의 없는 편이다. 그래서 기존의 기독교 증오는 타종교인과 무신론자에 의해 주도되었으나 코로나 사태로 인한 기독교 증오를 이용한 반기독교 악플러들의 선동으로 인해 이제는 기독교 일반이나 신앙행위 자체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고 이런 사상과 무관한 시민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윤은혜 간증 영상에 대해 논란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2021년 이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는데, 32% 가량이던 한국교회에 대한 신뢰도가 21%로 급감하며, 20% 가량인 개신교인을 제외하면 한국교회를 신뢰하는 일반국민은 사실상 없다고 할 정도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 기사 댓글에서 악플러들이 얼마나 개신교의 이기심과 만행에 치를 떨고 개신교를 혐오하는지 여론을 가감없이 읽을 수 있다.

2021년 연말에 오미크론 변이 최초 확진자가 인천 숭의교회 목사 부부인데[21], 코로나19 시국에 선교하려 나이지리아 다녀왔던 것에서 비판이 있었는데 결정적으로 방역당국을 무시하고, 동선을 속이고 80여명을 만났다는 점에서 한동안 잠잠했던 서민들의 반개신교 감정이 다시 부활하였다.

5. 기독교의 입장[편집]


개신교 교세가 위풍당당하기만 하던 과거에는 반개신교 세력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세대가 바뀌면서 종교 자체가 힘을 잃어가기 시작하고, 코로나로 반개신교 분위기가 전국민적 규모로 번지자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일단은 기독교 내부에서도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 만큼 대책과 자정의 목소리가 있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신교 신자들은 그냥 피식 비웃으며 넘기는 듯. 반기련 대부분은 타 종교인이 아니라 기독교인으로 신앙 생활을 하다 교회로부터 상처 받고 교회를 등진 사람들이니[22] 이해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 하지만 반기독교 운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고 오직 종교적 믿음으로 인한 도덕성 회복만 유일한 답이라고 내놓는가 하면, #, #, # 오히려 반기독교계가 극단성으로 치달은 점만 지적하고 있다. #, # 아예 자신의 교리와 사상에 맞지 않는 것을 반기독교라 모는 등 해당 단어에 대한 오용과 왜곡이 심하다. #, #, #
물론 기독교 박멸 외쳐대는 반기독교와는 타협이 불가능하지만, 기독교 개선에 뜻을 내세운 정상적인 비판층과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반기독교 여론이 증폭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인 무분별한 전도와 시스템적 문제, 기독교 근본주의(특히 복음주의) 노선에 대한 해결책은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관련 논문


6. 비판[편집]



6.1. 태생 및 조직성 문제와 이율배반, 그에 따른 비판의 한계[편집]


반기독교라는 게 어떤 종류의 정해진 교리를 믿는 게 아니라 기독교에 대한 적개심 하나로 모인 것이란 점이다. 따라서 이들은 통합되기 어렵고 서로 간의 의견이 일치할 수가 없다. 또 이런 범주의 사람들이 모두 이성적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다. 왜곡된 사실을 믿거나, 주장하는 반기독교도들이 다수 있다는 점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그 밖에도 기독교에 대하여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극렬 불교도들도 있거니와 민족 종교, 특히 증산도, 대순진리회 같은 환빠들 중에서 일부 극렬 신자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대체적으로 반기독교진영내 구도가 서구식 강경 세속주의 및 무신론 vs 불교, 증산도 등 동양계 종교에 기반을 둔 반기독교주의인 셈이다.

따라서 단체로서의 반기독교측이 기독교에 대해 문제삼을 것은 아무래도 주장하는 사람마다 다른 원론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사건사고들에 크게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무신론자들이 흔히 하듯이 단순히 그 교리의 불합리성을 따지다가는 같은 반기독교 내에 포함된 다른 종교인들까지 같이 공격받는 격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문제들만 가지고 따지면, 일부 이단 드립으로 변명이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다.

결국 반기독교는 워낙 다양한 세력이 포함되어 있기에 오히려 큰 제약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을 비판하는 수준에 이르기가 힘들고 피상적인 비판에 그치기가 쉬운 것이다. 그런데 그런 피상적인 비판으로는 정작 반기독교의 핵심적인 모토인 기독교 전체를 반대하는 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그야말로 태생적인 한계라 하겠다.


6.2. 헛다리 짚기와 조작 사례[편집]


반기독교인들 중 맹목적이고 무지한 부류는 기독교를 까겠다는 일념만으로 역사나 특정 사실을 왜곡하거나, 유명 인물의 발언을 거짓말로 날조하는 행위를 서슴치 않으며, 이를 환영하고 널리 퍼트리기까지 한다. 반기독교의 주된 활동 영역은 인터넷인데, 그 특성상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가 진실인 것처럼 떠도는 경우도 잦다. 더구나 반기독교인들 중에 상당수가 키보드 워리어처럼 '논리성이나 개연성이나 어찌되었든 일단 까고 보자'는 식의 의식을 가진 사람이 많다 보니,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나 역사나 사상 등의 깊이도 들쭉날쭉해져서 오로지 까기 위해 적당히 주섬주섬 기워 만든, 그럴 듯해 보이는 헛소리에 불과한 경우가 있다.

반기독교인 중에 책 몇권 읽고 진리를 깨달은 것마냥 설치는 좆문가들은 학계의 연구 결과를 자기 입맛대로 취사선택하고 왜곡하여 사방팔방에 흩뿌리는 병크를 저지르곤 한다. 밑에서 언급할 예수 불자설과 예수 신화설은 물론이고, 이들은 자기들 딴에는 객관적으로 기독교를 연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신학자나 성서학자의 책을 읽는데, 정작 그들이 주장하는 본질은 쏙 빼놓고 개중에 기독교를 공격하기 좋은 요소만 골라서 그 학자의 주장 전부인 것처럼 왜곡을 일삼는다.

예를 들어 이들이 주로 들먹이는 학자로는 바트 어만이 있는데, 바트 어만은 스스로 불가지론자라 말하긴 하지만 반기독교인들과는 달리 성경의 연구 가치나 역사적 의의 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예수 신화설'은 진지한 학자라면 아무도 주장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하며, 무엇보다 이 학자가 책을 낸 이유는 반기독교인들의 생각처럼 '기독교와 성경은 전부 구라니까 빨리 빠져나와라' 따위의 의도는 절대 아니다. 과연 극과 극은 통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서양에도 헛다리 짚는 반기독교인이 많은 모양인지, 일례로 네팔 대지진 직후에는 "기드온 인터내셔널[23] 측에서 네팔에다가 구호물자를 보내주었는데 알고 보니 죄다 성경뿐이더라" 하는 근거 없는 카더라가 돌기도 했었다. #


6.2.1. 기독교는 다른 신화의 표절 주장[편집]


예수는 다른 신들을 그대로 베낀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학계에서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인터넷 등지에서 자주 돌아다니는 시대정신에서 나오는 잘못된 정보들을 토대로 만든 짤들이 주로 돌아다닌다. 이에 대한 반론은 예수 신화설 참고.

6.2.2. 이완용은 기독교인?[편집]


참고 자료.

이완용명동성당에서 암살당한 뻔한 사건 때문에 천주교인이라는 괴담이 돌았으며, '검은십자가'란 반기독교 카페에서 이를 보고 이완용을 개독이라고 우겨서 오프라인 행사에서 찌라시까지 돌린 일이 있었다. 하나 암살 시도가 있었던 그 날 명동성당에서는 벨기에레오폴드 2세의 사망으로 추도식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완용은 총리대신 자격으로 추도식에 참석한 것일 뿐이었다.

결정적으로 이완용은 일본에 아부하고 충성했지만 일본의 문화는 불교밖에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독교를 멀리했으며, 독실한 불교 신자로서 조선 불교의 친일화에 앞장섰던 인물이며 죽는 그 순간까지 독실한 불자였다. 자세한 사항은 불교/대한민국 참조.

더불어 종교와도 엮을수는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만일 이완용이 기독교인이였다해도 이완용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친일파가 된 것도 아닐뿐더러 실제 이완용은 불자인데, 그렇다해서 그것이 불교를 친일의 종교라고 볼 근거가 되지도 않는다. 또한 오히려 몇몇 독립운동가 중에 독실한 기독교인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감리회 신자였던 유관순 열사와 가톨릭 신자였던 안중근 의사를 예로 들 수 있고 제암리 교회 신자들이 일본 군인들에 의해 학살 당한 사건도 있었다.

6.2.3. 민족대표 33인 친일파 변절 조작[편집]


2010년대에 3.1 운동 당시에 민족대표 33인에서 불교신자인 만해 한용운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친일파로 변절했으며, 그중 대부분이 개신교도라는 루머가 널리 퍼졌다. 인터넷 상에서 검색되는 가장 오래된 해당 루머는 한겨레21에서 ‘종교비판자유실현시민연대’라는 시민단체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용운을 빼곤 모두 변절했다. 그 가운데 16명이 개신교 목사였다. 일제의 조선총독부에 협력하는 대신 선교의 자유와 비영리 법인의 혜택을 받으며 서로 이익을 챙겼던 것이다.” 라고 주장하며 1920년대 반기독교 운동도 이것이 원인이라고 왜곡한 것이 검색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며 민족대표 33인 중에서 정말 친일파로 변절한 사람은 박희도, 정춘수, 최린 등 3명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1920년대 반기독교 운동은 조선공산당같은 사회주의 단체에 의하여 주도되었다.1920년대 중반 반기독교운동 연구, 1920년대 일제강점기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와 기독교 관계에 관한 연구 기독교가 일제에 적극적으로 부역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며, 일제강점기 시절 국내 인구중에서 개신교도는 1%밖에 되지 않았지만, 민족대표 33인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여는 16명이 개신교였을 정도로 기독교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서 커다란 비중을 맡았다.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기독교 독립운동가로 도산 안창호, 윤동주, 백범 김구, 유관순, 주시경등이 있다. 일제는 제암리 학살 사건에서 제암리 교회당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불질러 학살하였으며, 105인 사건으로 신민회 회원과 평안도 개신교인들을 대대적으로 체포하였다.동아시아에서 기독교와 민족주의 관계: 일제 시기 한국 기독교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3·1운동과 기독교, 3·1독립운동과선교사들의 대응에 관한 연구

유명 역사강사인 설민석도 "민족대표 33인 대부분이 친일파로 변절했다"고 주장하며 룸살롱으로 비하해서 논란을 일으켰다가, 법원에서 "독립운동가 후손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6.2.4. 법정 승려의 명언 조작[편집]


주로 도는 짤방.

"믿지 않는다 하여 자신의 자식이라 하는 인간들을 지옥불에 던져버리는 당신네들의 신들을 난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차라리 난 지옥에 가서 당신네 신에게 버림받은 그 억울한 영혼들을 구제하겠다."라고 법정 승려가 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짤방이 만들어져 많이 퍼졌지만 이는 반기독교 세력이 벌인 유언비어로, 실제 법정 승려가 그 말을 했는지는 사실무근이다. 하지만 반기독교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에게도 아직도 사실인 것처럼 퍼져 수 많은 사람들이 낚이고 있다. 사실 이건 단지 '한 스님의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패기 쩌는 말들을 원래 있는 명언인 것처럼 법정 승려 사진에 붙여놓은 것뿐이다. 자세한 건 법정 문서 참조.


6.2.5. 조두순은 목사?[편집]


조두순 사건 당시 교회 화장실에서 이루어진 사건이라는 이유로, 반기련이 주축이 되어 조두순이 목사였다는 헛소문을 퍼트리기도 했다. 매일경제신문의 오보가 원인이기는 했으나, 단순한 오보로 끝날 얘기를 일파만파 퍼지게 만든 것은 분명히 반기독교의 잘못이다.

문제는 조두순이 목사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훨씬 후에도 반기독교인들은 조두순 목사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외에도 매일경제신문의 오보가 내려간 건 기독교측의 압력이라느니, 목사는 아니어도 집사는 맞다느니 등등 온갖 정신승리가 난무한다.


6.3. 소설 《성혈과 성배》의 내용을 진실이라 왜곡[편집]



파일:external/cfs7.blog.daum.net/download.blog?fhandle=MDN4aWZAZnM3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AvMy5qcGcudGh1bWI=&filename=3.jpg

국내에 소개된 뉴스기사.

로마 제국 병사 "판델라" 에게 강간당한 성모 마리아가 출산한 아들 예수가 결혼을 했고, 막달라 마리아와의 사이에 자녀가 있었으며,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남아서 84세까지 살았고, 현재 유럽의 귀족들 중에 그 후손이 살아있다는 주장을 한 《성혈과 성배》 라는 책이 영국에서 발간되고 동아일보에서 이것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것은 정식으로 밝혀진 역사적 사실이 아닌 가십거리에 불과하다.[24] 그런데 반기독교인들은 책 내용을 소개한 것을 마치 실제 사실인 것마냥 조작하여 인터넷 사방에 흩뿌렸다. 한때 국내 언론에도 보도된 적이 있는데, 반기독교인들이 그걸 또 발굴해서 사방에 퍼뜨리고 있는 중이다.

재판에 대한 개념만 생각해도 반박이 가능한 문제다, 역사적 내용에 대한 논란은 학계에서 수많은 학자들의 갑론을박을 통해 결정되는 거지 법원의 판결 하나로 결론나는 게 아니다. 법원이 저런 음모론에 판결을 하는 유일한 법리는 음모론에 대한 표현의 자유이지, 예수가 결혼한게 사실이냐 아니다라고 판결짓는게 아니다. 더군다나 예수는 산 사람이 아니니 재판의 대상이 아니다.

당장 이 사건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가장 크게 이득을 보았을 집단이 이 사건을 언급하거나 인용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 리처드 도킨스는 당장 자기네 나라에서 있었던 일임에도 왜 이 재판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재판 과정을 지켜본 영국의 기독교인들은 약 80%가 회교 등 타 종교로 개종을 하였으며, 유럽과 미국 등에서도 수많은 교회가 문을 닫는 등의 소동이 이어졌다는 내용까지 있는데, 제아무리 미국과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종교인 숫자가 줄어든다 해도 기독교도의 비율이 50%는 유지되고 있다. 즉, 애초에 그런 사건은 없었다. 실제로는 2012년부터 2022년까지 영국에서 423개의 사라졌다. 1980년대부터 약 500개의 교회가 사라진 것을 감안하면, 사건 직후에 문 닫은 교회가 더 적은 것을 알 수 있다.

이제는 그 "반기련" 에서도 말도 안 된다고 까고 있다(...) 어찌 보면 한국의 반기독교계가 최소한의 자기 교정은 하고 있다고 봐야 할지도?


6.3.1. 교진추 자살 사건은 기독교가 죽인 거다?[편집]


교진추에 반대하는 누군가가 교육과학기술부 사무실에 방화를 하고 투신 자살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 조사 결과 반기련의 회원으로 밝혀졌다. # 문제는 이미 교진추의 청원에 대해 한국과학한림원에서 검토 중이었고, 한림원에서 교진추의 주장을 받아들일 리가 없는 데다가 다방면에서 반대 의견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굳이 이런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을 택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기독교인들은 죽은 회원을 순교자로 떠받들며 영웅시했고 '기독교가 죽인 거다'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다(...) 그 때문에 반기련과 그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무신론자층과 치열한 키배가 벌어진 적도 있다.


6.3.2. 아이스 버킷 챌린지 관련 루머[편집]


아이스 버킷 챌린지와 관련해서 모 교회가 모금 운동을 하고 기부하겠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기독교에 반감을 가진 사람으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일부 발언만을 짜르고 편집하여 올려 억울하게 욕을 먹는 사건이 벌어졌다. # 결국 해당 교회는 모금 운동을 포기했다고 한다.


6.3.3. 로마사와 중세 서양사 왜곡[편집]


로마사와 서양사 해석에 대한 이들의 특징으로는 로마사와 중세 서양사 왜곡이 있는데, 로마사 왜곡은 대표적으로 "기독교 국교화로 인한 멸망설"이 있고, 중세 서양사 관련 왜곡은 그 유명한 "암흑시대설"[25]이 있다. 주장하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대부분 역사에 대한 무지와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고집에서 비롯된다. 로마인 이야기에서 반기독교 논조를 강하게 주장하면서 기독교가 로마를 망쳤다는 시오노 나나미의 주장을 답습한 것이다.

첫 번째 로마 말기의 사회적, 문화적, 외적 상황에 대한 고찰 없이 로마 멸망의 원인을 포용성이 강한 다신교를 포기하고 기독교를 택했기 때문이라 우겨댄다.[26] 이건 개인이 로마사를 배웠든 안 배웠든 똑같다. 오히려 기독교는 서로마의 멸망 이후 서유럽에서 사라질 뻔한 로마의 문화와 문명을 보존, 발전시켰고 중세의 안정화에 기여하였다.[27] 보통 유튜브 따위의 인터넷으로 로마사를 배운 한국의 딜레탕트 혹은 그냥 무지한 반기독교인에게서 이러한 성향을 볼 수 있다. 이들이 외치는 헛소리를 한 마디로 반박하자면 애초에 로마는 기독교 공인하고 1000년 넘게 잘만 버텼고, 아예 중세가 끝날 때까지 존속했다. 더군다나 로마뿐 아니라 이후에도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한 국가들은 잘 번성했으며, 근대 식민제국을 건설한 서유럽 국가들이 믿는 종교가 기독교임을 감안하면 이는 논할 가치도 없다. 이러면 이들은 자신들이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개신교일 뿐, 가톨릭까지 비판하는 건 아니라며 개신교만의 문제라고 말바꾸기를 시전하지만, 19세기~20세기 초의 초강대국20세기 중반~21세기의 초강대국만으로도 반박이 가능하다. 정작 개신교를 받아들인 나라들은 미국과 영국 이외에도 독일, 네덜란드 같은 나라들로 이들은 상공업과 과학, 학문이 발달된 선진국들이다.

서양은 아니지만 중세에 존재한 몽골 제국에 대한 왜곡도 저지르는데, 몽골 제국이 무슨 기독교 박멸만을 기치로 내세웠다는 투의 헛소리를 해대며 사실인 양 믿는다.[28] 이들 머릿속의 몽골인은 '더러운 개독 기사들을 학살하며 역겨운 교회를 모조리 불태우는 반기독교의 전사들이자 악의 군단'쯤 된다(...) 더 나아가서는 비기독교권인 고려중국에는 상당히 자비로웠으며, 언제나 몽골은 자신들의 적이 기독교뿐이라고 생각했다는 헛소리를 설파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몽골군은 동유럽까지는 복속시켰으나 서유럽은 몽골의 침입을 겪지 않았다. 툴루이의 부인인 소르칵타니는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도였고 이슬람화 이전까지 일 칸국은 기독교에 관대했으며 훌레구 칸의 부하 장수인 키트부카는 맘루크 왕조 이집트를 침공하기 전에 우트르메르의 가톨릭 세력을 끌어들이려 했다.[29] 몽골인이 기독교를 적으로만 생각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몽골 제국과 그 후계 국가의 침략전쟁에 큰 피해를 입었던 국가 및 지역은 서유럽의 기독교(가톨릭, 개신교) 국가들이 아니라 오히려 이슬람교 국가들, 북인도 지역, 중국 대륙, 한반도 등 유라시아의 비기독교 지역과 동유럽권(정교회) 국가들이었다.

이러한 유사역사학적인 많은 오류들은 특히 암흑시대로 알려진 중세, 마녀사냥, 플랫 에러, 천동설 등의 주제들 속에서 숱하게 발견된다.[30] 계몽주의 시대부터 고금을 통틀어 많은 반기독교인들이 이런 주제들에 대해서는 유독 비판적 사고가 결여된 채 기독교에 책임을 돌리는 소스라면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서 재생산을 반복해 온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기독교는 지구 평면설을 믿는다라는 편견인데 지구 평면설은 뉴에이지 혹은 창조과학에서나 나온 음모론일 뿐이지 실제 성경에서 지구 구형설은 나오며[31], 애초에 중세 유럽 천동설은 지구 구형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론이다. 게다가 전근대 가톨릭의 마녀사냥은 정작 중세가 아니라 근세에 많이 이뤄졌다. 거기에다가 당시 가톨릭 교회는 마녀를 사냥한다면서 무고한 사람 잡지 말라고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6.3.4. 예수는 불교의 가르침을 배워서 전파했다?[편집]


예수의 가르침이 실은 불교에서 배워왔다는 설이다. 종교학계에서 잠시나마 떡밥거리가 되기도 했으나, 곧 완벽하게 논파당하고 전혀 근거가 없는 쌩구라로 드러났다. 하나 반기독교인들은 아직도 넷상 곳곳에서 이것이 진실인 것처럼 전파하고 있는데, 환빠와 다를바 없는 유사역사학이다. 자세한 건 예수 불자설 참조.[32]


6.3.5. 세모자 사건[편집]


세모자 사건이 한창 논란이 되던 당시 이 사건이 개신교 목사와 연관이 있다는 이유로 평소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던 반기독교인들이 폭발하여 넷상 곳곳에서 입에 담지도 못할 폭언과 비난을 퍼붓고, 유언비어를 마구 퍼트리며 이 사건이 넷상에 퍼지고 사람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데 단단히 한 몫 했다. 루리웹에서는 관련 게시물이 두 번이나 유머 BEST에 올라오기도 했다. 첫 번째로 유머 BEST에 올라온 게시물은 지워졌으나, 두 번째로 유머 BEST에 올라온 게시물은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뒤에도 그대로 남아있다. 원문 링크, 아카이브. 여기서 떠들던 유저들 중 그 누구도 스스로의 섣불리 결론을 내리고 욕설을 퍼부은 것에 대해 반성하거나 취소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고, 도리어 자신들이 정의를 위해 앞장선다고 대놓고 주장하는 꼴.

6.4. 극단적 성향[편집]


반기독교 중에서도 결국 극단적 성향을 보이는 집단이 생긴다. 어느 안티든지 극단으로 치달으면 그저 까기 위해 까는 행태가 만연하는게 다반사다.극단적인 반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 평신도들을 모두 개독교악의 축으로 취급한다. 그런 태도가 자신들이 반대하는 기독교의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여기거나 모든 불신자를 전도해서 구원해줘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각과 무서울 정도로 닮아 있다는 점은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링크[33]

극과 극은 통하는지, 결국 극단적인 성향의 반기독교인은 자기들이 주장하는 개독교와 똑같은 짓을 한다.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 참조. 기독교인들끼리 대화하는 사이트나 채팅창에 들어가 다짜고짜 기독교를 믿으면 안 된다는 내용을 주장하거나, 전도 완전히 도를 지나쳐서 기독교 관련 사이트를 테러하고 기독교인의 블로그에 개독이라고 악플을 도배한다. 연예대상으로 기독교인인 연예인이 뽑히면 음모론 터지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힌두교이집트 신화가 유명하지 않다는 점을 노려서 "사실 예수는 ○○○신을 베낀 것이다."라는 글을 퍼뜨리기도 한다.[34] 게다가 이 인간들, 꼴에 이단 사냥에도 열을 올린다. 이들이 내심 기독교인들보다도 더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자신들의 광신성과 몰지각함을 비판하는 사람들이다.

반기독교 단체 내에서 이런 '극단적' 성향을 지닌 세력이 주도적인 위치가 되면, 결국 여러 문제점이 나타날 수밖엔 없다. 극단적 성향이란 결국 소수이기 때문에 '극단성'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논점 이탈이나 방향의 어긋남에 대해서는 관대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방식은 초창기에 세력을 불리는 데에는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으나, 어느 정도 세가 커진 뒤에도 이를 고수할 경우 필연적으로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런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체가 바로 반기독교에서 그토록 비판하는 한국의 개신교다. 그런데 한국의 반기독교 또한 그 노선을 똑같이 걷고 있는 것이다.

단지 극단적이기만 할 뿐인 생각 없는 사람들에 의한 전체적인 집단의 수준 저하, 자정 작용의 약화나 무력화, 집단에 반대하는 세력의 등장 등 여러 문제점들이 생기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지 못하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식으로' 진지한 사상을 갖춘 회원들을 밖으로 몰아내는 결과가 발생하며 이미 발생했다 종국에는 저질 집단이 되어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현재 많은 한국 개교회들이 저질 집단으로 추락한 이유 또한 비슷한 메카니즘이란 걸 상기해보자.[35]

결국 어느 정도 크기가 커진 뒤에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을 갖춘 사람만을 자기 편으로 인정하고, 단순한 키보드워리어나 터무니없는 사상을 가진 극렬파들을 솎아 내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반기독교 집단들은 태생적으로 결속력 자체가 약하고, 이런 단체가 처음에 클 때는 앞서 말한 '극렬분자'들이 아주 큰 역할을 차지하기 때문에 단체가 커졌다고 해서 이들을 솎아내기도 곤란해진다. 비록 반기련이나 클안기 같은 대형 반기독교 커뮤니티가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정작 거기에서도 제대로 된 반기독교인들은 별로 없고, 그저 키보드워리어처럼 아무런 합리성도 없이 맹목적으로 기독교를 혐오하는 예수쟁이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판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이들도 자기가 욕하는 예수쟁이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서 반기독''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다. 광신적인 반기독'교도'들은 자신들의 행태를 비판하면 다 개독이거나, 혹은 종교인들에게 세뇌된 하수인이라는 헛소리를 하거나, "종교를 싫어하는 게 종교인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식의 뻔뻔한 궤변을 일삼는 짓으로 반발하는데, 이 특징 또한 자신들을 비판하는 자들은 다 사탄이라고 욕하는 개독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대표적으로 모 네이버 반기독교 카페에서는 교회 테러라며 교회에 오물을 투척한 사진을 올린 인간도 있었고, 이런 정신나간 짓을 "용기 있는 행위" 라며 칭찬하는 의견이 다수였다. 한편으로 땅밟기를 하는 개독들은 침을 튀기면서 욕을 하면서 말이다. 자신들이 비판하는 개독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걸 인증한 것이다. 심지어는 교회한테 사기 당한 원한을 지나가는 무고한 아파트 주민에게 뒤집어 씌우고 고함을 치는 극단적인 반기독교 여성도 있다(성인인증 필요).[36]

반기독교라는 명분 하에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자들은 기독교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자유니까 해도 된다는 말을 하는데, 싫어하는 게 자유라도 그로 인해 나오는 행동이 광신적이거나 타인에게 피해나 불쾌감을 주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근본주의와 광신도들이 왜 욕을 먹는가? 바로 이런 '자신의 믿음 때문에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행위' 때문이다. 게다가 정작 이런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게 되면 매우 편협한 신앙을 가지게 된다. 과거 주사파가 전향한 다음 뉴라이트가 된 것과 비슷한 원리.

또다른 문제로는, 기독교를 명분삼아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정상적인 기독교인도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모욕을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 악의 집단, 존재자체가 악행을 위한 종교로 취급하여, 기독교인이면 실제로 잘못을 저질렀던지 안저질렀던지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욕하고 모욕을 주는게 옳은것이라는 잘못된 확신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강해진 반기독교 정서를 이용해 "엄연히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인데도 기독교 신자나 기독교 자체를 죄악시 하면서 비난한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비판했던 기독교의 강제적 선도 등 부정적인 모습들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6.5. 기독교 자체에 대한 무지[편집]


진지하게 신앙심으로 교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겐 해당하지 않으나. 그 외엔 단순히 기독교가 싫다는 이유만으로 진지한 고찰도 없이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문제이다. 즉 모든 반기독교인들이 해당하지는 않는다. 기독교 신앙생활 경험 없이 그저 감정적으로 반기독교 성향이 되어버린 부류라면 기독교에 대하여 왜곡된 인식을 갖거나 아예 무지한 경우가 흔하다.

특히 교회나 성당을 다녔다가 반기독교로 돌아선 이들의 경우, 모태신앙이나 기복신앙 등 습관적으로 다녔지만 성경의 내용에 대해 관심 없거나 그냥 설교도 강론도 들으려 하지도 않고 '예수님에게 복 빌러 왔다'는 식으로 다녔다면 기독교 교리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자신에게 불행(사고, 질병, 입시ㆍ취업낙방 등)이 닥쳐오면 결국 신앙심이 떨어지고 반기독교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기독교를 깐다면서 정작 기독교가 무슨 교리를 가졌는지, 이들이 무엇이라고 주장하는지, 종파별 관계가 어떠한지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37][38] 실제로 모 사이트에 올라왔었던 글인데, 개신교 교회 목사에게 가서 십자군이랑 면죄부를 가지고 따진 경우가 있었다. 이는 역사 시간에 졸지만 않았어도 하지 않을 질문이나, 진지하게 이런 걸 묻는 사람들도 있다. 적지 않은 반기독교인들이 "기독교는 안 되지만, 천주교는 괜찮다"[39], "우리가 까는 건 개신교이지, 천주교가 아니다"[40] 라는 식의 종파 자체에 무지한 모습을 보인다.[41] 또한 모든 기독교 종파들은 진화론에 반대하고, 기계적 영감설을 주장할 것이라고 멋대로 단정하는 경우도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이런 부류의 반기독교인들은 진화론과 유기적 영감설을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을 보고 "그게 어딜 봐서 기독교냐?", "믿음이 부족하다" 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한다.[42][43] 즉 기독교 중에서도 근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을 가지고 기독교 전체를 까는 꼴인데, 이는 근본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으로는 적절하지만, 기독교 전체를 공격하는 내용으로는 부적절하다. 다만 근본주의자와 같은 믿음을 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상적인 독실한 신자들을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깎아내리는 경우도 반기독교 커뮤니티에서 기싸움으로 종종 벌어지곤 했다.

이러다 보니 주작을 해도 어설프게 해서 빈축을 사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 돌아다니던, 어떤 건물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단군 개새끼 크리스트 만세 - 순복음교회"라고 적힌 짤이 대표적.[44]


6.5.1. 반기독교 내 타 종교인의 문제[편집]


반기독교 세력이라고 해서 전부 무신론자만 있는건 아니다. 현대 반기독교 세력의 시초인 이안티만 해도 극렬 불교도였으며, 이런 타 종교인의 문제는 세력 내에서 심각한 이중잣대라는 문제를 태생적으로 안게 되었다. 즉, 종교 자체의 문제점을 기독교에게만 적용시킨다던가, 아예 반기독교 세력을 자기 종교의 전도 수단으로 악용하는 자도 존재했다. 다만, 이러한 문제점들은 주로 반기련, 클안기 등 초기 반기독교 커뮤니티에 한해서이고, 현재 무신론과 관련된 커뮤니티에서는[45] 전혀 해당사항 없는 내용이다.

'불교는 원래 신을 섬기는 종교가 아니므로 괜찮다'라는 식의 접근이 많이 보이며[46], '사천왕' 등 반기련의 네임드가 불교신자를 자처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47] 아예 금전적인 후원까지 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반기련 운영진측에선 부정하고 있지만, 이제와 반기련의 전체적인 성향이 거진 기독교 안티 성향을 띤 불교 사이트가 되어버린게 아닌지에 대한 비판이 있다.

이 이외에도 반기련을 포함한 상당수 네임드 반기독교 단체들은 기독교인과 일체의 소통조차도 폭력적으로 거부하는 고질적 문제가 있는데, 이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곳은 자연히 병들어 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단 반기련 등이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인 만큼, 종교적인 것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동시에 중립적인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친불교적인 성향이 분명하게 나타나며, 이는 반기련과 불교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의혹을 사는 데 충분하다. 반기련도 그렇게 썩어갔는데, 클안기는 아예 환빠 사이트로 변질되어버렸다.[48] 그 외 이슬람에 대한 태도는 이슬람은 기독교에 의해 탄압 받으니까 괜찮다, 기독교가 이슬람을 탄압하니까 테러를 당하는 것 아니냐, 어쨌든 기독교 탓이다'[49]라는 식의 어처구니 없는 주장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7. 같이 보기[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30 00:23:19에 나무위키 반기독교/한국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한국의 근본주의 개신교의 기원은 19세기 후반부터 미국 남부의 극보수주의 및 복음주의 성향 개신교가 한반도로 유입된 것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 해방정국, 6.25전쟁,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기복신앙 및 변질된 유교적 전통, 일제강점기 당시에 유입된 일본의 악폐습과 습합된 다음 부정적인 방향으로 토착화 된 것이 기원이다.[2] 애초에 IM선교회진주국제기도원은 기독교 우파와 상관이 없는 단체다.[3] 그 정도래봤자 땅밟기나 사원 훼손, 폭행 따위 중범죄를 저지르냐 안 저지르냐 차이다.[4] 구원파는 일개 사이비 종교로, 기독교계에서도 무척 경계한다.[5] 대부분의 국민들뿐만 아니라 기독교인까지 기독교의 계파 구분을 대강적으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6] 문제는 주요 교단에서 이단이라고 규정을 해도 개신교에 대해 악의를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저 공격하려고만 든다. 이들 사이에선 개신교에 대한 불신이 이미 팽배한 상황이라 '또 일부 이단 드립이냐?' 내지는 '사이비가 이렇게 많이 나오는 개신교의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같은 반응 외엔 보여줄 수 있는 게 없다.[7] 흔히 반기독교 커뮤니티에서 성서비평학에 대한 글을 올리면서 성경무오설을 까는 유저들이 바로 이런 자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과 성향에 맞게 성서비평학을 허용하는 진보성향 교회를 찾아서 가면 될 것을 굳이 냉담자가 된 이유는 그런 교회도 헌금 강요나 강압적인 전도 등 개신교 사회의 적폐행위에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뿐더러, 혹은 이런 냉담자들도 일부는 정치적으로 극좌성향이나 음모론에 물들어 있는 등 개인적으로 문제가 많다.[8] 일본 대중문화의 경우 신토와 일부 불교를 제외한 타 종교(사실상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 대한 묘사는 매우 타자화되어있다. 일본 서브컬쳐에서 신토의 경우 실제 신토에 비해 왜곡되는 경향이 있더라도 친근하게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불교도 일본 역사상에 나타난 신토와 불교간 애증관계(?)와 전국시대 때 군벌화된 승려가 난립하거나 그중 일부가 집권층에 반항한 역사 등으로 인해 타자화 및 부정적 묘사가 간혹 있긴 하나 그래도 일본의 대중적 종교니만큼 타자화는 많이 되지 않는다. 반면, 기독교의 경우 중립적 이상으로 묘사한다해도 판타지스럽거나 비교적 세속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고 나쁘게는 에도시대 기독교 탄압 및 악마화된 당시 사회분위기의 영향으로 인해 (이에 대해서는 시마바라의 난, 아마쿠사 시로 토키사다, 마계전생 문서를 참조) 악당이나 안티 히로익 팩션처럼 묘사되는 경우도 많다.[9] 반기독교 인구가 늘어난 것에서 오덕을 좋지 않게 보는 일각에서는 아브라함 계통 종교의 개념(정확히는 유대교 밀교에 관련된 것들)들이 많이 차용된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 일본 서브컬쳐의 영향도 한몫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고 실제로 2000년대 중반 종교 갤러리에서도 어느 몽골스러운 닉네임 혹은 그 이명으로 알려진 한 갤러가, '반기독교 중에 일본문화 영향받은 씹덕들이 많다'는 식의 주장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갤러는 정작 환빠 내지 증산도인라는 이야기도 있었다.[10] 한국쪽 얘기는 아니지만, 이런 현상(?)과 관련해 신이교주의(정확히는 북유럽 신화쪽), 반기독교를 포함한 반아브라함계 종교 성향, 네오 나치바르그 비케르네스는 혐일 (정황상 Weeb까지 까는) 발언을 하면서 '일본의 경우 (토착종교 신토는) 반기독교-신이교주의 대안이 될 수 없다'라는 주장을 한 바가 있다.[11] 흔히 한국 사회의 민속 신앙과 결부하였다는 말은 조용기 목사의 방언을 중시하는 교풍 때문이다. 원래 순복음교회가 속한 오순절교회가 방언을 중요시한다.[12] 대표적으로 불교계에서는 개신교인에 의한 사찰 방화가 이어지자 이를 중단하라고 성명을 내기도 했다.#[13] 단군상 파괴를 문화재 파괴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으나, 일선 학교에 놓인 단군상은 현대에 만든 것이라서 문화재로의 가치가 없다. 하지만 법적으로 무단침입죄와 손괴죄에 해당한다.[14] 모태신앙인 아이들이 이러한 성향이 심하다. 친구에 의해 전도된 아이들, 어릴 때부터 구원의 확신이 있어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과는 달리 모태신앙인 아이들은 매주 일요일마다 부모의 손에 의해 교회에 강제로 끌려가다시피해 왔기 때문이다.[15] 90년대부터 기독교 집안에서는 디즈니 만화동산 등의 만화류를 혐오했는데, 이로 인해 자녀들은 만화를 못보게 한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품고 적대적 성향이 된 경우가 많다. 이는 일제시대때 금주, 금연으로 대표되는 권면 사상에서 비롯되었지만, '물욕을 아끼고 선행에 보태라'라는 원래 권면 사상과 거리가 멀고 단순히 '놀 시간에 공부하라', '놀 시간에 성경 읽으라'는 목적이기 때문에 상당히 왜곡된 행위다.[16] 공교롭게도 바로 이 시기에 서울 지하철 7호선 강남구간 개통을 계기로 이수역 역명을 둘러싼 총신대학교의 발악이 이슈화되었는데, 가정에도 인터넷이 널리 깔리고 인터넷 카페 문화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이 시기에 한 개신교 신학대학에서 일으킨 이 논란은 대한민국에서 반개신교 정서에 불씨를 지폈다.[17] 그런데 의식 행사에 돼지머리를 제수로 놓고 고사를 지낸 게 당시 기독교 측에서 뿐만 아니라 안티 측에서도 논란이 되었었다. 기독교 측에서는 "무신론자인 척 하면서 우상숭배냐"고 비웃었고, 안티 측에서는 "돈 벌려고 안티하냐"고 비아냥거렸다.[18] 그 때문에 본 항목에 나와있는 반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이름만 살짝 바꾸면 대부분 무신론 진영에도 적용된다. 큰 차이점이 있다면 그래도 무신론자들이라 기독교 빼고 다른 종교는 괜찮다는 이중잣대는 부리지 않으며, 애초에 무신론 운동으로 넘어온 안티 기독교 진영이었던 사람은 죄다 과격파(타 종교인)의 등쌀에 못 이겨서 나온 온건파들이었다.[19] 특히 고령층들이 사람 만나는 데 종교집단만큼 쉽고 간편한 곳이 없다. 산업화세대부터 586 민주화 세대까지 교인들은 대부분 교회에서 인맥을 쉽게 이루었다. 더욱이 고령층들은 청장년층에 비해 전자기기 사용이 서투르고 소외감이 강해, 대면 관계를 더욱 고집하는 성향이 강하다.[20] 남편 안성은은 침례교 목사의 아들, 아내 장하영장로교 목사의 딸[21] 외국인 신자들을 담당하는 부목사[22] 특히 반기독교인이 되면서 무신론자나 반신론자가 되는 경우는 의외로 흔하다. 어쩌면 특히 반신론에 가까워진 경우.[23] 국제적으로 성경을 보급하는 단체로, 국내에서도 종종 군인교회 같은 곳에 비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24] 예수와 관련된 이런 식의 가십은 무수히 많다. 예수 불자설부터 시작해서 다빈치 코드까지. 다빈치 코드의 내용부터가 성혈과 성배와 판박이다.[25] 나무위키의 중세 항목만 가봐도 알 수가 있듯이 사학계는 중세를 암흑시대로 파악하는 견해에 상당히 회의적이며, 기존에 암흑시대의 원인으로 지목된 부분들은 상당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26] 좀 앞뒤에 살을 붙여서 "초기 로마는 동성애 덕분에 발전했고 후기에는 기독교가 난입해서 막장으로 만들어 망해버렸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27] 서유럽은 클로비스 이후 모두 가톨릭을 믿었고, 게르만 왕들은 서로마 유민들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라도 가톨릭으로 개종할 필요가 있었다. 동슬라브권(서슬라브/남슬라브는 가톨릭과 정교회가 섞였다)에서 정교회로 개종한 것도 동로마와의 교류를 위해서였다.[28] 보통 어설프게 인터넷에서 전쟁사만 본 경우다.[29] 십자군 영주들은 낯선 상대인 몽골을 믿기 어렵다며 거절했다.[30] 물론 상술했듯이 이런 비판은 본래 근대 계몽사상가들이 시작한 것이긴 하지만, 현대 들어서 중세사에 관한 연구가 발전하면서 이런 관점은 많이 수정된 편이다.[31] 이사야 40:22[32] 당초 예수가 살았던 현 이스라엘 지역에서 불교는 들어온 적도 없다.[33] 심지어 반기독교 사이트에서 활동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탈퇴한 한 회원이 반기독교인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자 개독이라고 몰고 가기도 했다.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Rzvz&articleno=370&categoryId=13&regdt=20110709231224/출력:  그 사람의 블로그만 구경했어도 적어도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34] 내용의 대부분은 대다수의 종교학자들이 비슷하다고 인정했다고 하는 건데, 성모자상에서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포즈가 호루스를 안고 있는 이시스의 포즈에서 영향을 받은 것 정도를 제외하면 공통점은 없다. 참고로 기독교 외에도 여러 종교나 신화들의 이야기들을 연구하다보면 비슷한 내용이 있는 경우는 많다. 노아의 홍수 사건만 보더라도 그리스 신화의 데우칼리온 이야기와도 비슷하다. 그렇다 해서 반기독교 주의자들의 논리를 무조건 맞다 치면 모든 종교들은 다 다른 종교를 베낀 나쁜것이라고 하는거나 다름이 없다[35] 기본적으로 개교회들은 개인이나 소수에 의해 운영되고 서로 경쟁이 붙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거나 새로 생긴 교회 혹은 교파에서 세력을 불리기 위해 무리수를 두기 쉬운 환경이다.[36] 해당 링크 영상의 댓글들을 보면 알겠지만 댓글 반응들은 오히려 개독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개신교를 비하하면서 해당 여성을 무조건 옹호하는 댓글이 태반이다. 이는 전형적인 유튜브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 유튜브에 악플을 다는 사람중에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사실상 거의 없음을 기억할 것.[37] 심지어는 "신이 왜 전지전능하다면 가룟 유다를 탄생시켰나? 가룟 유다가 없다면 예수가 죽었을 리는 없다. 그러니 기독교는 어이없는 종교다."라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완전히 기독교의 기본 교리에 대해 무지한 발언이다. 기독교 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온 목적은 애시당초 죽어서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였다.[38] 다만 이 말이 성서무오설이 옳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기독교 기본 교리에 대하여 무지한 예시 중 하나일 뿐이다.[39] 기독교는 천주교와 개신교, 정교회 등등을 모두 아우르는 말이지만, 개신교가 각종 문제에서 가장 화두가 되고 세력도 크고 한국어 용법에서 기독교를 그리스도교 전반이 아닌 개신교만을 의미하는 경우가 꽤 있고, 군에서도 종교 구분에서 개신교를 기독교라고 표현할 정도라 거의 기독교=개신교 단어 사용이 굳어진 상황이지만, 이는 엄밀히 말하면 틀린 것.[40] 면죄부와 십자군 전쟁때는 개신교가 없었다. 파시즘 후원, 군사정권과의 유착이라는 과거사 문제와 사제들에 의한 광범위한 아동성범죄와 같은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41] 불행히도 한국에서 개신교에 반감을 품거나 은연중에 그런 반감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게 말하고(가령, 천주교 신부님은 신뢰해도 교회 목사는 못 믿겠다.) 심지어 지상파 방송에서조차 개신교라고 하지 않고 기독교라고 해버려서 기독교 자체가 욕 먹기도 한다. 이는 한국 천주교가 군사정권에 맞서 싸웠던 역사에 의한 진영논리에 기인한 것이다.[42] 세계 최대의 기독교 종파인 가톨릭은 공식적으로 진화론에 반대하지 않으며 유기적 영감설을 지지한다. 조금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가톨릭은 진화론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진화론을 반대하지도 않으며, 진화론은 교리와 모순이 없다고 가르친다.[43] 그리고 개신교에서도 지금은 기계적 영감설보다는 유기적 영감설이 대세다. 특히 한국 개신교 중 최대 교파인 장로교는 거의 유기적 영감설을 믿는다.[44] 일단 국내 기독교에서는 '크리스트'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한국어 성경에서는 구약에는 '메시아', 신약에는 '그리스도'라고 음역하고 있기 때문. 거기다 '만세'라는 말 역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번역된 복음성가에 가끔 나오는 정도. 그리고 기독교에서는 단군에 대해 욕은 커녕 언급 자체를 거의 하지 않는다. 무시한다거나 욕 먹을까봐 피한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단군의 실존 여부가 기독교에 미치는 영향이 없기 때문에 그냥 언급할 일이 없다.[45] 대표적으로 디시 무신론 갤러리.[46] 초기 불교에서는 고정불변의 존재를 부정하기에 무신론 커뮤 및 학계에서도 이런 편견이 많이 있는건 사실이다. 다만 이러한 초기 불교조차도 아라한의 육신통(六身通)같은 초자연적인 영성을 믿기 때문에(이른바 수련만 하면 신적 존재가 된다는 꼴), 불교가 무신론과 일맥상통하다는 생각은 위험하다.[47] 사천왕은 반기련 관리자가 개인 사이트를 직접 홍보해줄 정도의 사이이다. #[48] 이에 클안기 시샵이 변명한 바 있지만 # 원래 시샵 자체가 진성 환빠인 데다가, 클안기가 오래 전부터 각종 계층들이 모였다 할 지라도 환빠들이 득세를 하는 상황이라 가려 들어야 한다.[49] 기독교를 맹비난하는 데는 앞장서면서 세계 기독교의 상황에 대해 의외로 무관심한 반기독교주의자들이 의외로 많으나, 기독교는 과거 전근대 시대와 식민주의 시대였다면 몰라도 21세기 들어서 세계 각지에서 가장 많이 탄압받고 있으며 다른 종교에 비해 순교자를 꾸준히 배출하고 있는 종교다. 이 탄압의 절대 다수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 같은 비기독교인들의 소행이다. 또 이러한 사실을 제외하고 봐도, "기독교가 이슬람을 탄압했으니 이슬람이 테러를 저지르거나 기독교를 괴롭혀도 어쩔 수 없다" 같은 어이없는 논리는 질 낮은 피장파장의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50] 자신들의 활동을 정당화시키고 기성 교회를 비난하기 위해 한국의 반기독교 여론을 체리피킹한다. 예를들면 전광훈 목사 관련이라거나 주요 개신교단의 친일 문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