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남 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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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내용
2.1. 분포 지역
3. 파(派)
4. 항렬자
5. 인물들
6. 조선 왕실과의 인척 관계


1. 개요[편집]


본관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潘南面)이다. 시조는 고려시대 인물 박응주(朴應珠)이며 그 위에 세대의 선조에 대해서는 기록이 전해지지 않아 알 수 없다. 모든 박씨들 소위 말하는 8박들의 원시조는 박혁거세이다.[1] 반남 박씨의 시조는 박응주이다. 이를 두고 반남박씨대종중에서도 밝히듯이 반남 박씨가 밀양 박씨의 지파라는 오해를 하면 안된다. 조선 말기, 밀양 박씨 측 기록(1899년)에는 박응주경명왕의 장남 언침의 후손이라며 밀양 박씨와 같은 계열로 추정하지만 반남 박씨 측은 이를 강하게 부정한다. 밀양 박씨 측 기록(1899년)에는 경명왕의 아들들이 언(彦)자 항렬을 사용했다는데, 경명왕 당시에는 항렬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고, 또한 당대에는 존재하지 않던 호칭이 사용됐기 때문이다. 실제 둘 사이를 연결할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으며, 두 집안 역시 서로 연관성을 찾으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어차피 밀양 박씨는 박씨의 대종이고, 반남 박씨는 벌열(벼슬)로 박씨 제일을 자랑해 서로 의존할 필요가 없다. 인구는 2015년 기준, 밀양 박씨 3백만, 반남 박씨 16만이다.

시조 박응주가 나주 벌집 명당에 묘를 쓰고, 후손들이 '벌처럼 일어났다'라는 야사가 있다.

실제 조선시대 때 평도공 박은(朴訔)이 조선 개국 공신(좌명공신3등)이 된 이후 최고 영예인 문묘 종사와 종묘 배향을 동시에 이룬 소론의 영수 박세채를 배출하면서 최고 명문가인 국반(國班)의 대열에 등극했다. 여주 이씨, 진성 이씨, 덕수 이씨, 광산 김씨, 은진 송씨가 같은 국반이다. 이 밖에도 종묘 배향공신이 1명 더 있고, 정승 7명, 대제학 2명, 왕비 2명(선조 비 의인왕후, 인종 비 인성왕후) 등이 나왔다. 더불어 문과 급제자 201명이 나왔는데, 조선 중기 노론이 집권할 때도, 후기 세도 정치가 판을 칠 때도 중앙에서 세력을 유지했다. 반면 무과 급제자는 18명에 불과하다.


2. 내용[편집]


조선 시대에 크게 현달[2]한 가문이다. 조선 시대 박씨 성을 가진 정승이 12명이 나왔는데, 7명이 반남 박씨이다. 이미 고려 말 신진사대부의 일원이었던 박상충과 그의 아들이자 조선 태종 대에 정승을 지낸 박은(朴訔)이 있었고, 특히 조선 후기에 인물들이 많이 보이는데, 특히 문묘에 배향된 대학자 박세채박세당;朴世堂), 박태보(朴泰輔) 등이 숙종 대에 활약한 인물들이다. 또한 연암 박지원, 환재 박규수 등의 이름난 실학자를 배출한 명문가였다. 이들의 명단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정치적으로는 대체로 서인 계열로서 노소론을 가리지는 않는 가문이었다. 태종 때 박은과 세종의 장인 심온 사이의 악연이 깊어 반남 박씨는 청송 심씨와 서로 통혼하지 않는 관습이 있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구한말 을사오적박영효, 박제순 등의 친일파들도 있었다.

21세기의 인물을 꼽자면 영화감독 박찬욱과 배우 박신양이 있다. 소설가 박완서도 바로 반남 박씨 이 집안이다. 우스갯소리로 문중의 아저씨들은 스스로를 고자 집안이라고 한다(...). 이유는 이상하게 자손 중에 여성이 거의 없어서(...)

수많은 박씨들 중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항렬자를 잘 따르는 집안이라서 끊이지 않고 계속 쓰이고 있다고 한다. 26세손까지 잘 쓰이는 집안이 많으나 27세손부터는 돌림자를 많이 쓰지는 않는다. 그리고 29세손의 춘자는 많이 촌스럽다. 박신양의 경우 나이대에 비해 항렬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 전에 유명한 역사의 위인들은 모두 21세손 아니면 22세손이다.


2.1. 분포 지역[편집]


주로 충청도전라도에 많이 분포한다고 알려졌지만 의외로 경상도 쪽이나 수도권에도 꽤 있다. 경남 산청군과 경북 영주시에 반남 박씨 집성촌이 있으며, 경기도 고양시에도 반남 박씨 집성촌이 있다. 2015년 인구수 총조사에 따르면 인구수는 밀양 박씨와 함양 박씨에 뒤이은 3위.

'반남' 박씨라서 전라도에 많을 것처럼 보이지마는 충청도와 경상도에도 의외로 많이 거주하고 있다. 특히 충남이나 전북 지역과 경북 서북부 지역, 충북 지역 등에서도 가장 많은 박씨는 밀양 박씨겠지만, 친구나 지인 이름에 박○서(緖), 박찬(贊)○, 박○우(雨)가 들어가 있으면 9할이 반남 박씨이다. 이런 건 경남이나 전남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반남 박씨가 압도적으로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곳은 경북 서북부랑, 충남 동부 전북 북부, 경기도 고양시이다. 서울 토박이 중에 반남 박씨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3. 파(派)[편집]


* 대종파: 파주 문산에 많이 세거한다
* 세양공 강 파: 호서에 많이살고, 그밖에도 경기도 남부, 전북 정읍에 많다.[3]
* 판관공 병균 파: 영남 북부를 대표하는 사림 집안이다. 특히 영주와 안동에 대거 집중되어 있다. 문과 급제자가 많다.
* 공순공 숭질 파
* 군수공 병덕 파
* 금성부원군 용 파
* 길주공 동망 파
* 남곽공 동열 파
* 남일공 응남 파
* 도사공 동준 파: 영남 서부, 특히 상주에 대거 집중돼있다.
* 도정공 응인 파: 호서 일대에 세거한다
* 동정공 상질 파
* 부솔공 동윤 파: 주로 호남과 영남 남서부에 집중적으로 몰려있다.
* 사의공 의지 파
* 부윤공 훤 파: 예산에 집성촌이 있다
* 직장공 상경 파: 호남 북부, 호서 일대에 세거하고 있다. 중시조인 박상경의 묘소와 사당이 금산에 위치해있다
* 직장공 환무 파: 위의 파와는 전혀 다르다. 박상경 직장공은 5세손이고, 이쪽은 3세손으로 매우 오래되었다.
* 참봉공파


등, 총 27개의 파가 존재한다.

4. 항렬자[편집]


항렬자는 27세부터 수교법(修交法)[4]으로 사용한다. 참고로 26세까지는 일월법(日月法)을 쓴다. 또한, 반남박씨의 모든 파가 동일한 항렬을 따른다.

23세
○양(陽)[5]
24세
승(勝)○, 영(泳)○[6][7]
25세
○서(緖)[8]
26세
찬(贊)○[9]
27세
○우(雨), ○하(夏)
28세
천(天)○, 인(仁)○, 지(持)○
29세
○춘(春), ○승(承)[10]
30세
헌(憲)○, 영(寧)○
31세
○오(五), ○오(吾)
32세
장(章)○, 재(宰)○
33세
○호(虎), ○순(純)
34세
겸(謙)○, 선(善)○
35세
○욱(旭), ○구(九)
36세
평(平)○, 두(斗)○

5. 인물들[편집]


  • 박강 (대신기전 개발자이며 청백리이다.)
  • 박광우 (아프리카TV BJ)
  • 박광서 (법학자, 중앙대학원장)
  • 박귀서
  • 박기서 (안두희 살해범, 의병 둘 다!)
  • 박규수 (고종때의 우의정, 대제학 역임)
  • 박계양 (조선 최초의 의사)
  • 박남춘 (인천광역시장)
  • 박도언 (삼성물산 사장)
  • 박동서 (서울대 교수)
  • 박동철
  • 박령우
  • 박명환 (야구선수, 현 투수코치)
  • 박병균 (영남 북부를 대표하는 사림 판관공파의 선조)
  • 박보검 (배우)
  • 박부양
  • 박선재
  • 박신양 (배우)
  • 박세당 (조선후기 유학자)
  • 박세채 (뮨묘 배향 18현)
  • 박상충
  • 박성용(기업인)[11]
  • 박삼구
  • 박승간 (판관공파로 문과 급제자 이다.)
  • 박승유
  • 박승임 (박승간의 동생으로 문과 급제자 이다.)
  • 박인천
  • 박승동
  • 박승일 (농구인)
  • 박승춘[12]
  • 박승화 (가수)
  • 박숭질 (연산군때의 좌의정)
  • 박완서 (소설가)
  • 박영선 (국회의원)
  • 박영교[13]
  • 박영효
  • 박엽
  • 박용욱[14]
  • 박은 (조선 전기 좌의정)
  • 박응서 (전 국제종합금융 사장)
  • 박응양 (애국 지사)
  • 박응주 (반남 박씨 시조)
  • 박인기 (판관공파로 문과 급제자 이다.)
  • 박중서 (독립 운동가)
  • 박종덕 (이조 판서 18번= 조선 최다 기록 이조 판서, 공조 판서, 대사헌, 수어서 역임)
  • 박종악 (정조때의 우의정)
  • 박종우(정치인) (국회의원)
  • 박종훈 (순조때의 좌의정)
  • 박제순 (을사오적)
  • 박제업
  • 박제윤
  • 박제후
  • 박정양
  • 박제경[15]
  • 박지민 [16]
  • 박지서
  • 박지원 (북학파 실학자)
  • 박진양 (독립 운동가)
  • 박찬대
  • 박찬법
  • 박찬석(정치인)
  • 박찬성
  • 박찬기 (고려대 교수)
  • 박찬규
  • 박찬도
  • 박찬웅 (의학박사, 서울대)
  • 박찬무 (의학박사, 을지병원장)
  • 박찬숙 (전 국회의원)
  • 박찬숙 (전 농구선수)
  • 박찬욱 (영화감독)
  • 박찬익 (독립운동가, 민족대표 39인 중 한명)
  • 박찬주(군인)
  • 박찬환 (배우)
  • 박천원
  • 박태서 (제일제당, 전주제지 사장)
  • 박태민 (프로게이머)
  • 박태보
  • 박태상 (대제학)
  • 박항서[17]
  • 박헌도 (롯데 자이언츠 야구선수)
  • 박회수 (헌종때의 우의정)
  • 박건우
  • 박현빈 (학생)

6. 조선 왕실과의 인척 관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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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귀화 박씨는 박연이 있는데 모든 박씨들의 본관이 박연이 귀화하기 전에 만들어졌다.[2] 顯達 : 벼슬, 명성 등이 높아서 세상에 알려지다.[3] 박영효의 파이다.[4] 안동 권씨도 역시 이 방법을 쓴다.[5] 탤런트 박신양이 이 항렬이다. 현존하는 반남 박씨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항렬. 현재 대부분의 반남박씨들의 할아버지~증,고조 할아버지급 항렬로 같은 항렬을 쓰는 역사적 인물로는 박정양이 있는데 헌종때 태어나 구한말에 활동한 인물로 같은 항렬인 박신양과 120년정도 차이난다..[6] 갑신정변의 주역 중 하나인 박영효가 이 항렬이다. 고로 박영효보다107년 뒤에 태어난 박신양이 항렬상으로는 박영효의 아버지이다.[7] 갑신정변에 가담한 박영효가 역적으로 몰리게 되자 영(泳)자가 승(勝)자로 바뀌었다는 일부 근거없는 풍문이 나도는데, 반남박씨 족보 乙酉譜(1825년 발행)에는 이때 이미 勝자 항렬이 정해져 있었다. 즉, 갑신정변(1884년)이 발생한지 근 60년 전에 이미 勝자 항렬이 정해져 있었으며 박영효의 집안인 오창공파 금양위 분서공 미(瀰)의 자손들은 갑신정변 이후에도 계속 泳자 항렬을 사용했다.[8] 박완서가 이 항렬이다.[9] 박찬호는 충주 박씨이다. 박찬욱 감독이 이 항렬이다[10] 더불어민주당박남춘 의원이 이 항렬이다.[11] 밀양 박씨로 알려져 있지만, '반남박씨 박성용'이라고 해서 검색해 보면 잘 아주 자세히 나와있다. 몇 세손인지는 몰라도 일단 박인천의 아들이니, 29세손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박찬법 회장은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반남박씨이고, 금호그룹 일가는 밀양박씨이다 라고 모 했다??[12] 2016년 국가보훈처장[13] 박영효의 형으로써 그래서 '급진 개화파'이다.[14] 항렬이 여기에서 제일 차이가 많이 난다. 왜 항렬 차이가 많이 나냐면 35세손 욱(旭)자 항렬을 쓰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이가 제일 적고 어려서 그런지 몰라도 보통 사람들과 7~8항렬 차이가 난다. 종갓집인가[15] 근세조선정감의 저자. 박제으로 알려져 있으나, 원래 이름은 박제이다. 근세조선정감은 흥선대원군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사료이다.[16] 그 K팝스타 출신 가수 맞다.[17] 집성촌인 산청이 고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