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플리트 성역 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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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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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플리트 성역 회전
Battle of Van-Fleet · ヴァンフリート星域の会戦

날짜
우주력 794년, 제국력 485년 표준력 3월 21일 ~ 4월 말
장소
반플리트 성역
교전 당사자
파일:Goldenbaum-Dynasty.png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파일:Goldenbaum-Dynasty.png
파일:560px-Flag_of_the_Free_Planets_Alliance.svg.png 자유행성동맹 파일:560px-Flag_of_the_Free_Planets_Alliance.svg.png
지휘관
그레고르 폰 뮈켄베르거
리하르트 폰 그림멜스하우젠
오프레서
헤르만 폰 뤼네부르크
라인하르트 폰 뮈젤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라자르 로보스
알렉산드르 뷰코크
보로딘
무어
애플턴
싱클레어 셀레브레제
오토 프랑크 폰 반샤페
발터 폰 쇤코프
병력
은하제국군
함정 32,700척
장병 4,068,200명
자유행성동맹군
함정 28,900척
장병 3,367,500명
피해 규모
피해규모불명
기지 사령관 피랍
반플리트 4-2 기지 파괴
결과
은하제국의 승리

1. 개요
2. 배경
3. 전개
3.1. 제국군의 준비
3.2. 개전
3.3. 반플리트 4-2로 상륙하다
3.4. 지상정찰
3.5. 반플리트 4-2의 지상전
3.6. 반플리트 4-2의 함대전
3.7. 종전
4. 결과
4.1. 포상/추서 목록


은하영웅전설 외전 <천억의 별, 천억의 빛>의 에피소드
(시작)

반플리트 성역 회전

제6차 이제르론 공방전

1. 개요[편집]


  • 등장 작품
    • 은하영웅전설 외전 4권 <천억의 별, 천억의 빛> 1장~4장
  • 시기 : 우주력 794년, 제국력 485년 표준력 3월 21일 2시 40분 ~ 4월 말

우주력 794년, 제국력 485년에 은하제국군자유행성동맹군이 반플리트 성역에서 맞붙은 전투이다. 은하영웅전설에서 전투는 주로 함대전을 이야기하지만 제국측 주인공인 라인하르트 폰 뮈젤이 지상전에도 참여했던 까닭에 이 전투에서는 지상전의 비중도 꽤 높은 편에 속한다.


2. 배경[편집]


반플리트 성역은 이제르론 요새가 위치한 이제르론 회랑 지역에서 자유행성동맹으로 향하는 출구 주변에 위치한 여러 항성계 가운데 하나이지만 항성 반플리트가 불안정하고 8개의 행성 중 사람이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환경을 갖춘 행성이 없었고, 은하제국과는 너무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군사적 목적으로 건설된 기지를 제외하면 사실상 무인항성계였다. 따라서 다른 유인항성계에 비하면 전략적 가치가 매우 떨어지지만 이제르론 회랑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까닭에 동맹령을 향해 제국군이 진출하면 동맹군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나서면서 충돌하게 되는 지역이었다.

본 전투에서 제국군은 우주함대 사령장관 그레고르 폰 뮈켄베르거 원수의 지휘 하에 32,700척의 군함과 4,068,200명의 병력을 동원하였고, 동맹군 역시 우주함대 사령장관 라자르 로보스 원수의 지휘 하에 28,900척의 군함과 3,367,500명의 병력을 동원하였다.

여기서 제국 측의 주인공 격인 라인하르트 폰 뮈젤준장[1] 계급으로서 리하르트 폰 그림멜스하우젠 중장 휘하에 배속되어 소함대[2]를 지휘하고 있었다. 라인하르트는 자신의 영향력이 적은 것과 늙은 그림멜스하우젠의 무능함에 치를 떨고 있었다.


3. 전개[편집]



3.1. 제국군의 준비[편집]


우주력 794년, 제국력 483년 3월, 제국군은 반플리트 성계에 병력을 전개하여 동맹군과 대치했다. 우주함대 사령장관 그레고르 폰 뮈켄베르거 원수를 최고 지휘관으로 오프레서 상급대장, 리하르트 폰 그림멜스하우젠 중장, 헤르만 폰 뤼네부르크 준장, 라인하르트 폰 뮈젤 준장 등 다수의 장성이 참가했다.

이 중 그림멜스하우젠 중장은 제국군의 골칫거리였다. 그는 올해 76세로 역전의 노장으로 불리지만 실상은 그저 무능한 '폐물 노병'에 불과했다. 뮈켄베르거도 이 무능한 연장자를 치워버리고 싶었으나, 그의 의욕은 매우 왕성했고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마음대로 하게 놔두라는 황제 프리드리히 4세의 명까지 있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그래도 뮈켄베르거는 그림멜스하우젠 함대를 후방에 배치하려 했는데 그림멜스하우젠은 끈덕지게 저항하다가 나중에는 제국군에 쓸모가 없는 몸이라면 살아 있을 가치도 없다며 블래스터를 꺼내는 자살 연극까지 했다. 결국 뮈켄베르거는 그림멜스하우젠의 처우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수 밖에 없었다.

한편 라인하르트 폰 뮈젤도 골머리를 앓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림멜스하우젠 함대에 소속된 그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으나 그림멜스하우젠은 듣지 않고 자신이 세운 '노련한' 작전을 지시하고 회의를 마쳤다. 거기에다 그림멜스하우젠은 전투에도 적극적이지 않아 라인하르트를 열받게 했다.


3.2. 개전[편집]


우주력 794년 3월 21일 2시 40분, 양측의 포화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뮈켄베르거는 그림멜스하우젠 함대를 가장 좌측에 배치하여 사실상 전력에서 배제하고 전투에 나섰다. 제국군은 오목진형을 취했으며, 동맹군은 돌출진형을 짜 전투에 돌입했다.

전투에 돌입한 직후 라인하르트는 다시 한 번 폭발했다. 그림멜스하우젠 함대는 가장 좌측에 있는데다 양군이 취한 진형과 적은 전선의 움직임에 의해 함대의 8할이 전투에 참여하지 못했다. 라인하르트는 전 함대를 6광초 전진시겨 2시 방향으로 돌아가 포화를 집중하면 우익을 타격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림멜스하우젠은 병력을 활용해서 전황에 영향을 끼칠 생각이 없었다. 5시 30분쯤 되어서야 그림멜스하우젠 함대가 둔중하게 전진을 시작했는데, 뮈켄베르거는 반응이 지나치게 느리다고 비판했다.

3월 24일로 접어들자 전장은 점점 혼돈스런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제국군과 동맹군의 각 부대가 제각기 분단, 고립됐고 무질서하게 혼재돼 전선은 얽혀버려 총체적인 위치관계를 파악하는 것 조차 곤란하였다. 양측 참모부는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일부 병력을 차출하여 적의 배후로 우회시켜 찌르고, 본대가 정면 공격을 감행하여 적을 격파한다는 상식적인 작전안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적이 어느 위치에 병력을 어떻게 배치했는지조차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상황에서 아군 마저도 연계 따위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채 따로 놀고 있었기에 상황 타개는커녕 오히려 상황이 더 꼬여버렸다. 적도 아군도 서로의 병력배치도 신경쓰지 않고 자기들의 작전계획만 강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먼저 칼을 뽑아든 것은 동맹군이었다. 로보스 원수는 분산된 동맹군 함대에 집결명령을 내렸는데 이 때 참모들이 올리는 보고가 아주 가관이다. 총사령부는 실전부대와 멀리 떨어져 고립되어 있었고 실전부대 대부분은 연락두절 또는 행방불명 상태였던 것. 각 부대에 명령을 내리기 위해서는 통신파를 가동시켜야 했는데 이럴 경우 제국군에 감청당할 우려가 있어서 함부로 가동하지 못하고 결국 연락용 셔틀을 파견하여 집결명령을 내렸다. 그 결과 모든 동맹군 함대에 간신히 명령을 전달할 수 있었다.

한편 우회기동중이던 제5함대 사령관 알렉산드르 뷰코크 중장은 3월 26일에서야 로보스 원수의 반전 귀환 명령이 담긴 통신문을 수령했는데, 고심 끝에 이 명령을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무리하게 명령을 수행하여 되돌렸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판단 덕분이었는데, 작중에서도 이 때 무리하게 집결명령을 따랐으면 제국군 주력과 우회부대에 포착되어 전멸했을 것이란 언급이 나온다. 게다가 뷰코크 제독의 결정은 전투 후반부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다는 점에서 노련한 판단이었다.

이 때 참모장 몽샤르망 소장, 부관 파이펠 소령 등은 총사령부의 명령을 그냥 묵살해도 되는거냐면서 걱정하는 반응을 보였는데 뷰코크 제독은 '길을 잃었다고 보고하면 된다'거나 '그냥 셔틀 탑승자들 불러서 술먹여 재워버려'란 식으로 익살스런 대꾸를 하면서 참모들을 다독였다.


3.3. 반플리트 4-2로 상륙하다[편집]


30시간에 걸쳐 반플리트 성계 외곽을 방황하던 그림멜스하우젠은 총사령부의 명에 따라 반플리트 제4행성 제2위성, 통칭 반플리트 4-2 로 배치되었다. 총사령부의 의도는 장차 동맹군과의 결전이 벌어질 때를 대비한 예비대로 삼겠다는 것이었으나, 진짜 의도는 전투에 방해만 되는 그림멜스하우젠과 그의 함대를 전선에서 격리한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총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그림멜스하우젠 함대는 표준력 3월 27일, 반플리트 4-2에 착륙했다.

파일:반플리트임시기지.png
반플리트 4-2에 착수한 제국군

그림멜스하우젠 함정 12,200척은 반플리트 4-2 북극에 있는 빙관[3] 반경 85km 범위에 착륙했다. 대부분의 함정은 지상에 착륙했고 빙관 일부에 유지소이탄[4]을 쏴서 800㎢ 짜리 인조 호수를 조성했으며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특수한 액체금속 피막을 둘렀다. 그리고 그 위에 1,000척의 함정이 착수했다. 공병대가 나서 조립식 지상시설과 각종 인프라와 대공요격 시스템을 설치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제국군이 몰랐던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불과 2,420km[5] 떨어진 반플리트 4-2의 남반구에 동맹군이 이제르론 방면 보급 겸 후방근거지를 목적으로 100일전에 기지를 건설했다는 사실이었다.

반플리트 4-2에 위치한 동맹군은 제국군의 완전히 주둔한 뒤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반플리트 4-2의 자전과 공전 때문에 자칫하면 동맹군의 소재가 드러날까 우려하여 동맹군 기지에 적의 접근을 제때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동맹군 기지에는 전선 방면의 보급을 담당하는 최고책임자인 싱클레어 셀레브레제 중장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사무처리능력은 뛰어나지만 전투경험이 거의 없었던 까닭에 제국군의 상륙을 보고받자 크게 당황했다. 제국군이 자신들의 존재를 알고서 제국군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 후방기지를 점거, 파괴하기 위해 강하한 것이라 오판하고 만다. 이에 로젠리터 연대의 12대 연대장 오토 프랑크 폰 반샤페 대령을 급히 호출하여 대비를 지시했다.

사령관의 명령을 받은 반샤페 대령은 사령관의 추론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명령은 명령, 하급자인 그는 따라야 했다. 반샤페는 셀레브레제와 몇 가지 토의한 뒤 로젠리터 본부로 돌아와 부연대장 발터 폰 쇤코프 중령에게 적의 존재를 통보한 뒤 지상정찰을 할 테니 그때까지 기지를 맡으라고 명령했다. 발터 폰 쇤코프 중령은 제국군이 궤도상으로부터 공격이 없었던 것은 아군의 존재를 몰랐던 것이며 아군의 존재를 파악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모한 정찰은 적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지만 반샤페 대령은 쇤코프의 경고를 무시하고 장갑차 6대와 병사 35명을 차출하여 직접 정찰을 나갔다.


3.4. 지상정찰[편집]


우주력 794년 3월 28일 20시 45분, 정찰을 나간 연대장과 병사들이 8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로젠리터 연대에서 최강의 4중주로 칭송받는 발터 폰 쇤코프 중령, 카스퍼 린츠 대위, 라이너 블룸하르트 중위, 칼 폰 데어 데켄 중위가 연대장을 찾으러 9인승 장갑지상차 '변덕쟁이 요한'을 타고 기지를 출발했다.

3월 28일 22시, 함대의 항로설정을 담당했던 라인하르트 폰 뮈젤은 동맹군의 통신파 방향을 분석하여 적의 근거지가 위성 남반구에 있을 것이라고 주론한 뒤 장성급 회의에 그 사실을 보고했다. 라인하르트는 회의에서 무인정찰기를 동원해 수색 조사를 실시하자고 주장했지만 라인하르트를 좋아하지 않던 다른 장성들은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경솔한 정찰은 오히려 적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라인하르트도 이에 지지 않고 언쟁을 벌여 자신의 권한으로 대공/대지요격 시스템 구축과 가동을 승인받았는데, 헤르만 폰 뤼네부르크 준장이 라인하르트와 똑같은 의견과 제안을 내놓고 사령부로부터 승인을 받는 바람에 결국 주도권을 내준 격이 되어버렸다. 사령관의 승인을 받은 뤼네부르크는 육전부대를 이끌고 기지를 떠났다.

3월 29일 2시, 주변을 방황하던 쇤코프 일행은 소형 선행정찰기계 '지상 두더지'를 통해 제국군의 정찰부대가 움직이는 것을 포착하고, 린츠가 정찰부대 틈바구니에서 전임 연대장이던 뤼네부르크를 본 것 같다고 보고했다. 쇤코프는 그 보고에 의구심을 드러냈으나 초상화를 그리는 린츠의 취미활동 등으로 사람을 비교적 명확히 알아본다는 점으로 인해 가능성은 있다고 판단했다. 어쨌든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은밀히 움직인 쇤코프 일행은 29일 8시 40분 장갑차가 고장나서 퍼져 있던 연대장 일행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반샤페 대령은 갑작스런 쇤코프의 출현에 명령을 내린 기억이 없는데 왜 왔냐는 식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에 쇤코프는 적 발견과 접근 사실을 알리고는 장갑차 수리와 함께 서둘러 철수하려 했다. 그 말에 반샤페는 불쾌해했지만 상황이 불리한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고장난 장갑지상차에는 해치에 폭발물을 설치해 부비트랩으로 만든 뒤 재빠르게 장갑지상차에 올라 귀환하려 했다. 하지만 동맹군을 포착한 제국군이 신속하게 포위망을 형성하는 바람에 그만 고립되고 말았으며, 제국군 부대를 지휘하던 뤼네부르크와 재회하고 만다.

동맹군의 기습으로 제국군을 잠깐의 혼란에 빠뜨리고 포위망을 돌파하면서 탈출할 수는 있었으나, 적의 공격으로 중상을 입은 반샤페 대령은 기지로 돌아오자마자 군 병원으로 이송됐고 수술을 버틸만한 체력이 남지 않아 3월 31일 6시 40분에 사망한다. 한편 뤼네부르크도 위력정찰,威力偵察,의 목적을 달성했고 동맹군의 구원병을 염려하여 즉시 철수했기에 양측 정찰부대 간에 벌어진 충돌은 일단락될 수 있었다. 적의 기지를 탐지했고 적의 연대장 그것도 로젠리터의 연대장에게 치명상을 입혔으며 장갑차 네 량을 격파 및 포획(+사망 17명, 포로 7명)했기에 뤼네베르크는 충분한 전과를 얻었다.

3.5. 반플리트 4-2의 지상전[편집]


기지로 복귀한 쇤코프로부터 상황보고를 들은 셀레브레제 중장은 제국군의 공격을 염려해 공석이 된 로젠리터 연대의 임시 연대장 자리를 맡겼다. 그리고 제국군의 공격에 대한 대비에 나섰지만 당시 기지의 상황은 결코 좋지 않았다. 일단 기지부터가 전투가 목적이 아닌 보급을 위한 후방근거지를 목적으로 건설한 시설이었다. 이에 보급 및 행정병과만 우글거릴 뿐 전투부대는 연대나 대대 규모의 독립부대가 수평 분산되어 있을 뿐이며, 이들을 통합하여 지휘할 장성급 지휘관이나 조직 체계도 없는 초라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기지사령관 셀레브레제 중장은 전투경험이 없는 후방근무 출신이므로 뛰어난 지휘력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쇤코프와 같은 적임자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 최선의 상황이었겠지만 그래야 한다는 것조차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기에 결국 각 독립부대는 자신의 담당구역에서 알아서 싸우는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유리한 점이 있다면 기지로 들어오는 진입로가 좁아 제국군이 대병력을 한꺼번에 투입할 수 없다는 것, 보급기지를 목적으로 크게 건설된 곳이라 비축된 무기와 탄약이 풍부하다는 점 정도였다.

복귀한 뤼네부르크도 동맹군 기지에 대한 즉각적인 공격을 주장했다. 그림멜스하우젠 중장은 전제주의 국가의 군대 지휘관인데도 희한하게 꼬박꼬박 참모들의 의견을 물어본 후에 결정을 내리는 민주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이로 인해 뤼네부르크가 자신이 지상군 담당이므로 다른 참모들의 의견은 들을 필요없고 사령관의 결단이 중요하다고 강압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세에 밀린 그림멜스하우젠이 뤼네부르크의 제안을 수용했고, 역시 강력한 요구를 수용하여 라인하르트가 뤼네부르크의 부장으로 임명됐다. 이 과정에서 그 전까지 라인하르트라면 이를 갈면서 태클을 걸어대던 참모진들이 이번엔 뤼네부르크의 도를 넘는 강권에 이를 갈며 라인하르트의 편을 들어주거나 동정하는 기이한 상황이 펼쳐졌다.

한편 사령부의 지시를 애써 무시하고 기존 작전대로 움직이고 있던 뷰코크 제독의 제5함대가 반플리트 성역 제4행성 근처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리고 5함대 통신장교는 반플리트 4-2의 동맹군 기지에서 발신한 긴급구조 요청을 수신하고 이를 보고했다. 일개 후방기지에 제국군 함대까지 진주했다는 점에서 참모들은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내놓았으나 뷰코크 제독은 구조 요청을 접수하고 함대 급행을 지시했다.

4월 6일 6시 22분, 공격준비를 마친 제국군은 장갑지상차, 자주 레일 캐논, 지상공격기, 2연장 유선 미사일포 등을 이끌고 동맹군 기지 근처에 모습을 드러내며 병력을 배치했고 지상에는 본격적인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뤼네부르크는 4월 7일 0시를 기해 동맹군 기지에 총공격을 가하기로 예정했다.

보통 공격측에서 먼저 항복을 권고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인데, 서로 회선이 교환되자마자 쇤코프가 먼저 통신을 날려 기선을 잡았다.

『제국군에게 고한다. 쓸데없는 공격을 중지하고 두 손 들고 물러나라.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 주마. 아직 늦지 않았다. 너희 고향에서는 애인이 침대를 정돈하고 너희가 돌아오기를 기다릴 거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외전 4권 <천억의 별, 천억의 빛>, 김완, 이타카(2011), p.94~95

졸지에 자신의 차례를 빼앗긴 뤼네부르크는 쓴맛을 다시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무리하게 부장으로 끌어들여져 준비과정에서 이런저런 굴욕감에 시달렸던 라인하르트는 그런 뤼네부르크의 표정을 보고 동맹군에도 제법 유쾌한 놈이 있다면서 칭찬했다.[6]

파일:반플리트세로공격.png
붉은색이 동맹군, 초록색이 제국군
원래부터 수적으로 열세였고 셀레브레제 중장이 지휘 계통을 방사형으로 분산시키는 등 악조건 속에서도 분전한 동맹군 전투부대의 맹활약으로 제국군은 세 차례나 기지에 돌입하다가 격퇴당했다. 지형적으로 진형을 옆으로 전개시키기 어려워 제국군은 대병력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뤼네부르크는 쇤코프가 수비대 전체를 지휘하는 줄 알고 지휘력을 높게 평가했는데 실제 쇤코프가 담당한 방어선은 전체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만큼 동맹군 다른 부대들도 분투했다는 의미이지만 그것이 물량의 차이를 극복할 수는 없었고 상황은 계속 악화되어가고 있었다.

지상에서의 전투가 무르익고 있을 무렵 이 상황이 동맹군, 제국군 모두의 윗선에 전해졌고 이에따라 지상군 뿐만 아니라 우주함대까지 분주해졌다.

라인하르트와 키르히아이스 둘 다 지휘관의 지위를 내려놓고 전선에 나가 백병전을 벌이고 있었다. 주장(主將)인 뤼네부르크가 앞서 나가있기에 후방에서 가만히 지휘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방어선은 제국군의 공세에 무너졌고 핸드 캐논에 의해 사령실 벽면이 날아가면서 기지 내부까지 제국군 병사들이 침투하는 상황까지 몰렸다. 동맹군은 두 차례 반격을 가해 쫓아내려 했으나 제국군에게 밀려 기지가 유린당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쇤코프의 연인 발레리 린 피츠시먼즈 중위가 제국군 장갑척탄병과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그리고 몰려오는 제국군과 맞서 싸우던 데어 데켄은 뤼네부르크와 맞딱뜨렸는데, 이를 본 쇤코프는 데어 데켄을 대신하여 뤼네부르크와 맞서기 위해 달려가다가 라인하르트를 놓쳐버린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대위와 마주쳐 1:1로 맞붙는 바람에 발목이 잡혔다.

막상막하의 승부를 치르던 도중 잠시 결투가 멈췄고 서로의 실력에 감탄하여 쇤코프가 키르히아이스의 이름을 묻는 찰나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옆에서 폭발이 일어나 두 사람은 헤어졌다. 쇤코프는 찾고있던 뤼네부르크에게 키르히아이스는 라인하르트에게 각자 본래의 원래의 목적을 위해 달려갔다. 하지만 쇤코프가 도착했을 때 데어 데켄은 이미 뤼네부르크의 공격에 죽어 있었고 뤼네부르크는 마침 그곳을 떠나려고 하고 있었다. 분노한 쇤코프가 뤼네부르크에게 덤벼들고 여기에 블룸하르트가 가세하자 뤼네부르크는 그대로 도주해버렸다. 사실 이때 제국군에게는 사령부로부터 이미 전투중지 및 철수 명령이 내려져 있었지만 최고지휘관인 뤼네부르크 스스로가 일선에 나서서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지시할 사람이 없어 전달이 늦어졌다. 이 때문에 혼전은 여전히 수습될 가능성 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한편 라인하르트는 키르히아이스와 재회하며 기지 사령관 셀레브레제 중장을 포로로 사로잡는 공적을 세웠다. 이 공로가 뤼네부르크에게 돌아갈 것에 대비하여 키르히아이스는 즉시 사령부에 라인하르트가 적 장군을 잡았다고 본부에 보고를 올렸고, 라인하르트는 같이 세운 공적인데 그럴 필요가 있었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더불어 나중에 보고를 받은 뤼네부르크는 이를 보고하려다가 키르히아이스가 선수친 사실을 파악하고는 겉으로는 꽤 순화된 반응을 보였으나 속으로는 화를 삭히고 있었다. 기지를 파괴하고 적 사령관을 포획하는 성과를 올린 제국군은 서둘러 철수했다.

3.6. 반플리트 4-2의 함대전[편집]


지상에서 동맹군과 제국군이 혈투를 벌일 시점 뷰코크 제독의 제5함대가 반플리트 4-2 상공에 나타났다. 5함대는 위성 상공에 정찰기를 띄워 지상의 상황을 파악했으며, 지상의 제국군으 그제서야 5함대의 존재를 확인했다. 낙관론에 빠져있던 참모진은 뒤늦게 정신차리고 그림멜스하우젠 제독에게 동맹군의 대병력이 이쪽으로 쇄도하고 있다고 비명에 가까운 보고를 올리며 상공에서 공격당하면 우리는 다 죽으니 공격 중지 명령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노제독 그림멜스하우젠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한편 제국군 총사령부에서도 제5함대가 반플리트 4-2로 이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뮈켄베르거 원수는 즉시 주력부대를 반플리트 4-2로 가라고 명령했으나, 타이밍이 조금 늦어 제5함대를 격멸할 기회를 노쳤고 제국군 주력은 제5함대를 뒤따라 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뷰코크도 이 사태를 예측하고 있어 12함대 사령관 보로딘 중장에게 연락을 했다.

파일:5함대12함대8함대.png

그렇게 되어 겨우 변경성역의 조그만 위성 하나에 동맹군과 제국군 대병력이 밀집한 꼴이 되어버렸다. 안 그래도 좁은 공역에 동맹군과 제국군 부대들이 꾸역꾸역 진입하기 시작했고 전투양상은 혼전이 되었다. 얼마나 좁았는지 12함대는 간신히 전개를 마친 시점에서 동맹군 부대가 잇따라 진입해 12함대를 밀어붙이는 통에 기껏 세운 전술을 포기하고 적과 교전해야 했다.[7] 이 사태에 보로딘 제독은 "이건 좀 수습하기 힘들겠군. 제국군이 어떻게 사태를 처리할지, 좋은 방법이 있다면 배우고 싶을 정도인걸."라고 말했다. 가장 먼저 진입한 제5함대 소속 참모들도 혼전 사태에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으나, 뷰코크는 태연했다.

뮈켄베르거 원수는 지상전 병력으로 인해 발이 묶인 그림멜스하우젠 함대에 신경질을 부리면서 동맹군 후방을 공격할 것을 지시했다.[8] 그림멜스하우젠은 간신히 지상부대를 수용하고 대응에 나섰지만 이 공격도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하면서 결국 교착 상태에 빠져들었다.

3.7. 종전[편집]


이후 양측은 누계 3억 명을 동원했으나총병력이 7백만인데?[9] 서로를 압도하지 못하고 찔끔찔끔 맞붙다가 동시 철수로 마무리 되었다. 결국 양군이 병을 물린 것은 4월 말이 되어서였다. 중요성이 큰 전투는 아니었기 때문에 양쪽 모두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고, 결국 이어지는 제6차 이제르론 공방전의 전초전 정도로만 평가받게 됐다.

4. 결과[편집]


5월 19일, 제국 함대는 오딘으로 귀환하였다. 그림멜스하우젠 중장은 당초 승진추천을 받지 못했으나 황제 프리드리히 4세의 개입과 군부의 타협으로 대장계급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때의 조건으로 함대 사령관 대신 전투를 치를 일이 없는 군무성 고등참사관으로 직을 옮겼다. 라인하르트는 셀레브레제 중장을 사로잡은 공적으로 소장으로 승진하여 역대 최연소 기록을 갱신했으며[10], 부장인 라인하르트가 승진했는데 지휘관인 뤼네부르크가 승진하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는 논리에 따라 역시 소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는 승진하지 못하고 대위에 머물렀다. 라인하르트는 분노하여 당장 군무성으로 달려가 담당자인 군무성 인사국장 하우프트 중장에게 따졌는데,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서 인사 제3과장에게 맡겼다가 봉변을 당한 하우프트 중장은 라인하르트의 추궁에 항복하여 소령으로 승진시키겠다고 답했지만 영관급 장교가 소장의 부관을 맡은 전례가 없으므로 키르히아이스를 더 이상 부관으로 삼을 수 없다고 조건을 달았다. 라인하르트도 500년 가까이 쌓여온 제국군 역사를 모두 꿰뚫을 수 없는 노릇이므로 딱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고, 거기에 라인하르트와 키르히아이스가 임관 이후 지금까지 같은 부서에 배속된 것 자체가 이례적인 대우였기에 더더욱 반박할 수 없었다. 결국 라인하르트는 키르히아이스의 발목을 잡는 대신 계속 데리고 다니느냐, 아니면 키르히아이스를 놓아줘서 출세할 수 있도록 돕느냐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라인하르트의 고민을 해결해 준 사람은 의외로 그림멜스하우젠 제독이었다. 그림멜스하우젠은 나도 라인하르트도 승진했는데 라인하르트를 잘 보좌한 키르히아이스가 승진하지 못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직접 키르히아이스를 추천해 소령으로 승진하도록 도왔다. 키르히아이스는 이 건에 대해 직접 그림멜스하우젠을 만나 감사를 표했다.[11][12]

6월 7일, 새로운 인사가 정식으로 결정되었다. 라인하르트는 제국 우주함대 총사령부에 소속되었으며, 키르히아이스는 총사령부 소속 장성 부속이라는 애매한 칭호를 받아 라인하르트를 보좌하게 되었다. 그리고 6월 11일, 프리드리히 4세는 라인하르트가 20살이 되면 어느 백작가를 계승할 수 있도록 궁내성에 지시를 내렸고, 라인하르트는 '딸을 권문에 팔아넘긴' 뮈젤이라는 성을 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했다.

한편, 발터 폰 쇤코프 중령은 셀레브레제 중장을 적에게 넘긴 책임을 물어 승진 없이 계급과 직위를 그대로 유지했지만, 우주력 794년 8월 15일 부로 정식으로 대령으로 승진함과 동시에 13대 연대장에 올랐다. 그리고 카스퍼 린츠라이너 블룸하르트도 각각 1계급 승진하여 소령과 대위가 되었다. 그리고 알렉스 카젤느 준장이 동맹군의 보급을 관할하는 후방참모에 임명되었는데, 그전에 동맹군 내에서 보급 분야의 최고 권위자였던 셀레브레제의 자리를 메우고 셀레브레제가 군사기밀을 불 경우를 대비해서 새로운 보급 시스템을 마련해야 했기에 이 방면에서 유망한 인재였던 카젤느가 발탁되었다.

4.1. 포상/추서 목록[편집]


포상은 다음과 같다.



추서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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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하제국 유년학교 살인사건 당시인 제국력 484년 4월에 대령이었는데, 그 사건으로 승진한 것은 아니므로 언제 준장이 되었는지는 불명. 계속 함께 승진해 오던 키르히아이스가 그대로 대위인 것을 보면 높으신 분이 뮈젤의 생일(3월 14일)을 맞이하여 3년 연속으로 그냥 승진시켰을 수도 있어 보인다. 라인하르트는 전년도인 484년에도 명목상으로는(실질은 비밀작전인 지향성 제플입자 발생기 탈환 작전 공적으로) 생일축하로 진급한 바 있다.[2] 총 205척으로 함대 구성은 순양함 40척, 구축함 130척, 포함 25척, 미사일함 10척.[3] 氷冠, 산 정상이나 고원을 덮은 돔 모양의 영구 빙설. 면적은 대체로 5만 ㎢ 이하로 대륙 빙하보다 규모가 작다.[4] 油脂燒夷彈, 벤젠, 파라핀, 셀룰로이드 따위의 불이 잘 붙는 기름을 넣어서 만든 폭탄.[5] 서울에서 필리핀 마닐라 정도의 거리.[6] 이 둘은 서로를 몰라봤지만 엄연히 두 명장의 첫만남이다.[7] OVA에서는 동맹군 함선이 동맹군 함선에 부딪혀 격침되고 제국군 함선이 제국군 함선이 쏜 포에 맞아 격침되는 등 전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동맹군 함선과 제국군 함선이 바로 옆에서 포격을 주고받는 등 진형도 제대로 짜여지지 않았다.[8] 그린멜스하우젠 함대의 참모도 " (지상군 버리고) 얼른 행성궤도로 올라가서 전투하셔야죠." 라고 진언하지만, " (황제폐하의 총희인) 그뤼네발트 후작부인 동생인 라인하르트 뮈젤 준장 버리고 궤도로 올라가자고?, (뮈젤 준장 버리고 올라간거) 누가 책임질건데." 라는 그림멜스하우젠 제독의 말에 데꿀멍한다.[9] 그리고 애초에 제국과 동맹은 양쪽 총병력을 합쳐도 3억은 안 된다.[10] 애초에 이 전투에서 빈플리트 4-2의 반란군 보급기지를 박살내고 기지 책임자인 셀레브레제 중장을 체포한거 이외엔 제국군에 있어서 공치사를 논할 부분이 없긴 했다.[11] 이 감사는 라인하르트가 권해서 한 것으로 평소엔 쓸모없는 노인네가 웬일로 도움 되는 일을 해준데다 어쨌든 그가 추천한 덕에 키르히아이스가 승진했기에 그랬던 것.[12] 그러다가 여기서 키르히아이스는 그림멜스하우젠의 숨겨진 면모를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