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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龐煖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매체에서의 방난



1. 개요[편집]


전국시대 조나라의 장수. 할관자(鶡冠子)에 따르면 조무령왕 시절부터 조나라를 섬겨온 노장이자 제자백가, 그중 종횡가 출신의 학자.

무령왕 시절에는 무령왕과 병법논담을 하며 전쟁은 적국을 멸망시키는 각종 방법 중 가장 하책이라고 평가하며 직접 전선에 나서지 않았으나, 조도양왕 시기가 되어 염파, 조사 등의 유능한 장수가 모두 죽거나 파직되자 70세를 넘긴 노구로 장군에 임명된다.방난의 나이에 대한 글.

조도양왕 3년(기원전 242년), 장군에 임명되어 연나라를 공격하여 극신(劇辛)을 패사시켰다.

조도양왕 4년(기원전 241년), 조나라, 초나라, 위나라, 한나라,연나라 등이 합종하여 진나라를 공격할 때, 정예부대를 이끌고는 최(蕞)를 공격하나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이후 제나라의 요안을 공격하여 점령했다.

이후 한비자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진나라가 업을 침공할 당시에 연나라를 공격하러 갔다가 업이 함락되자 남하했다고 하며, 그 이후의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 소설인 열국지에서는 진나라의 장군인 몽오가 조나라를 공격하던 중에 반란이 일어나자 회군하는데, 이에 방난은 매복해 몽오군을 습격하고 몽오를 죽이지만 몽오가 죽기 직전에 방난에게 화살을 날려 그의 머리를 맞히면서 동귀어진했다.


2. 매체에서의 방난[편집]



2.1. 킹덤[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방난(킹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조나라의 장수로 실존인물의 행적과 공유하는 바가 있긴 하지만, 무의 최강을 집착하는 이름만 같은 다른 인물에 가깝다.

2.2. 달인전[편집]


이목과 함께 이담의 삼천 결사대의 일원으로 장평 대전 이후 첫 등장한다. 장평 대전이 기원전 260년이고 장군에 임명되었다고 알려진 시기가 기원전 242년이니 결사대 일원일때 20대정도로 생각하면 킹덤의 방난과 마찬가지로 실제 기록된 인물 방난과 나이 차이가 꽤 큰 편이다.

이에 대해 작가 나름대로 재해석을 했는데, 무령왕 시절 병법을 논한 방난과 동명이인으로 설정해 별개의 인물로 두 명의 방난을 그려낸 점이다. 순자 아래에서 학문을 배울때 순자가 본작에 나오는 방난을 보고 "수십년전 너와 이름이 똑같은 사상가"가 있어서 자꾸 헷갈린다며 얘기하는 장면이 있다. 즉 본 문서에 나오는 무령왕 시절의 병법가이자 사상가인 방난을 따로, 도양왕 시절부터 종사하기 시작한 방난을 따로 설정한 것이다.[1] 또한 킹덤의 방난과 비슷하게 처음에는 무력 위주의 장수로 나오나, 재등장할때는 순자 밑에서 학문을 배우고 이후 병법을 배워 장군으로서 위치하게 된다는 점이 확실히 다르다.

신릉군의 5국 연합군이 진을 공격할때 초의 항연과 함께 재등장한다. 이때 완전히 이전과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고 언급되며 명백히 장군이자 군사로 항연을 보조한다. 13년전 장평 대전에서 그러했듯이 여전히 무력적으로도 뛰어나 몽오를 상대로 1합을 막아내기도 하고, 전체적인 그림을 짜며 항연과 함께 초의 군을 이끈다. 신릉군의 활약으로 진을 크게 몰아붙이지만 여러 이유로 연합군은 와해되고, 신릉군에게서 뒤를 맡기는 의지를 받는 인물 중 한명으로 나온다.

신릉군 사후 붉은 삼협이 또다시 진의 공동을 찌르기 위해 달인들을 모을때, 이목 등과 함께 재등장한다. 초의 춘신군의 전령 아래 방난이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다시한번 연합군을 결성해 진을 공격한다. 이때 방난이 칭한 연합군의 이름은 의로운 마음의 연합군. 합종군의 수장으로 진군을 거세게 밀어붙이며, 몽오를 비롯해 표공, 왕전 등 진의 장수들을 계속 패퇴시킨다. 과거 염파가 장평대전에서 그랬듯이 도척을 비롯한 자유로운 군대를 능수능란하게 펼쳐 몽오의 진을 완전히 깨트린다. 이후에도 전열을 가다듬어 진 수도 함양으로의 공격을 선언하며, 이전에 신릉군이 그러했듯이 진을 아예 멸망 시킬 생각으로 공격을 펼친다. 장평 45만의 원념을 진의 수도에 던져놓을 때라며, 합종군과 함께 몽오군을 다시 추격한다.

장단이 비검 절계와 그 이상의 기술로 표공을 베어버린뒤 이어서 몽오까지 중상 상태로 만들자 지휘관을 잃은 진은 크게 요동치고 다시금 함곡관에 도달하는데 성공한다. 신릉군의 공격 이후 6년, 그의 유지를 뒤이어 다시 함곡관을 공격하게 된 것에 감격하나 그와 동시에 염파군, 도척군, 유방군이 도착하지 못한 것에 의아함을 느낀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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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름대로 합리적인 해석인게, 무령왕과 도양왕은 짧게 봐도 55년, 길게보면 80년의 차이가 난다. 방난을 아주 젊게잡아도 70대 중후반의 나이가 되어서 장군직에 종사한 것으로 되는데, 평균 수명과 기록의 부실함을 생각하면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연소왕부터 연왕 희까지, 약 6~70년에 걸쳐서 연나라를 섬긴 극신이 방난과 옛날부터 교류가 있던 사이임을 감안하면 그냥 노장일 가능성도 있다. 일단 달인전에서는 확실하게 둘을 구분하였기에 후대에 나오는 방난은 젊은 장수로 그려진다.[2] 도척군은 진시황이 고용한 이민족에게 몰살당했고 유방은 이러한 낌새를 느끼고 후방으로 빠진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