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 라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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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라킨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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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
1990





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Larkin.png
배리 라킨
헌액 연도
2012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86.4% (3회)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5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제프 배그웰
(휴스턴 애스트로스)

배리 라킨
(신시내티 레즈)


켄 캐미니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88 ~ 1992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유격수 실버 슬러거
아지 스미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배리 라킨
(신시내티 레즈)


제이 벨
(피츠버그 파이리츠)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5 ~ 1996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유격수 실버 슬러거
윌 코데로
(몬트리올 엑스포스)

배리 라킨
(신시내티 레즈)


제프 블라우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8 ~ 1999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유격수 실버 슬러거
제프 블라우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배리 라킨
(신시내티 레즈)


에드가 렌테리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4 ~ 1996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유격수 골드 글러브
제이 벨
(피츠버그 파이리츠)

배리 라킨
(신시내티 레즈)


레이 오도녜즈
(뉴욕 메츠)


파일:MLB 로고.svg 1993년 메이저 리그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

칼 립켄 주니어
(볼티모어 오리올스)

배리 라킨
(신시내티 레즈)


데이브 윈필드
(미네소타 트윈스)




파일:Barry Larkin.jpg

신시내티 레즈 No.11
배리 루이스 라킨
Barry Louis Larkin

생년월일
1964년 4월 28일 (59세)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출신지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신체
183cm / 83kg
포지션
유격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2년 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51번 (CIN)
1985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4번 (CIN)
소속팀
신시내티 레즈 (1986~2004)
지도자
브라질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3~2022)
기록
30-30 클럽 (1996)

1. 개요
2. 선수 생활
3.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4. 플레이 스타일
5. 기타
6. 연도별 기록
7. 관련 문서
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미국의 전 야구 선수. 소속 팀은 신시내티 레즈였다. 포지션은 유격수로 연고지 출신 순혈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원 클럽 맨이다.


2. 선수 생활[편집]


신시내티 출신의 라킨은 어렸을 때부터 야구의 광팬이었다. 야구를 좋아했다면 설사 팀이 약해도 고향팀을 보면서 꿈을 키웠을텐데, 배리 라킨이 어린 시절을 보내던 때의 신시내티 레즈는 "빅 레드 머신(Big Red Machine)"이라 불리며 1970년대를 지배하던 초 강팀 중 하나였다. 자연히 고향 팀의 입단이 그의 꿈이 되었다. 특히 같은 포지션이자 팀의 주장이었던 데이브 콘셉시온의 뒤를 잇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고.

이후 1982년에 꿈에 그리던 고향팀 신시내티의 지명을 받았지만 낮은 순위에 실망[1]해서 미시간 대학교에 진학하여 여기서 두 차례 MVP에 오르고, 1984 LA 올림픽에 출전해서 은메달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1985년 드래프트에 나와 1라운드 4번으로 마침내 신시내티에 입단했다. 짧은 마이너 생활을 마친 후, 1986년 메이저리그에 입성해 그 뒤로 은퇴할 때까지 신시내티의 주전 유격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1990년 신시내티가 새 감독 루 피넬라의 지휘 아래 갑툭튀 돌풍을 일으키면서 당대 최강이었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를 4:0으로 완파하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할 때 일조했다. 아울러 1995년 신시내티의 중부지구 우승을 이끈 공로로 마이크 피아자, 그렉 매덕스를 제치고 내셔널리그 MVP에 올랐다. 성적은 이 두 선수에 비해서 보잘것 없었지만[2] 당시에는 MVP를 뽑을 때 성적 이외에도 팀의 성적이나 리더십같은 외적 요소도 고려했었고 라킨은 리더십같은 면에서는 매덕스와 피아자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표를 무난히 얻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미 팀 내 클럽하우스 리더로 떠오른 상황에서 마침내 1997년부터 팀의 공식 주장이 되어 유니폼에 주장을 상징하는 C자를 달고 뛰게 되었다.

다만 선수 생활 말년에는 투자를 꺼리는 구단주 마치 쇼트와 불화를 일으켜 의외로 트레이드를 요청하기도 했었다. 비록 트레이드 자체는 성립되지 않았지만. 말년에는 다소 평범한 성적이었고 결국 2004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나게 되었지만, 그를 찾는 구단이 없자 은퇴를 선언하고 레즈의 원 클럽 맨으로 남았다.

은퇴 후 2010년부터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후보로 올랐다. 수상 실적[3]과 세이버상으로는 첫 턴을 노릴 수 있지만[4] 누적이 비교적 나빴고 스테로이드 시대를 뛴 지라 저평가받아서 실제로 첫 턴 입성은 실패했다. 하지만 꾸준히 득표율이 오른 끝에 2012년 86%의 지지율로 3년 만에 HOF에 입성했다. 그리고 2012년 8월 25일에 그의 등번호인 11번이 레즈의 영구결번이 됐다. 이는 1970년대 '빅 레드 머신' 시대 이후 첫번째 영구결번이기도 하다.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브라질 야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16강 라운드까지 이끌며 신선한 충격을 줬다. 브라질이 세계 야구계에서는 변방이나 다름없는 팀인데 그 팀을 이끌고 대륙별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시켰다. 비록 16강 라운드 조별리그에서 쿠바, 일본 등 쟁쟁한 팀들에게 밀려 3전전패를 기록했지만, 단 2~3점 차로 석패했으니 팀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2013년 11월에 짐 릴랜드 감독의 은퇴로 공석이 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감독직 공개 모집에 응할 것으로 보였지만, 현재 맡고 있는 브라질 국가대표팀 감독직에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3.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편집]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배리 라킨
0
66
120
47
HOF 입성자 평균
27
144
100
50

  • JAWS - Shortstop (13th)

career WAR
7yr-peak WAR
JAWS
배리 라킨
70.2
43.1
56.6
유격수 HOF 입성자 평균
66.7
42.8
54.8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선수 시절을 요약하면 굉장히 다재다능한 타입이었다. 통산 0.295의 타율과 198홈런, 2,340안타, 960타점, 379도루라는 기록을 남겼는데, 현역 시절 유격수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유격수 30홈런-30도루를 기록한 적도 있었고[5], 전성기에는 늘 3할의 고타율을 유지했었으며, 도루 실력도 빼어난 편이었다.[6] 수비력도 준수해서 세 차례 골드글러브를 차지한 적도 있었다.[7] 물론 공격력도 좋아서 내셔널리그에서 9차례 실버슬러거를 차지했을 정도로 당대 유격수들에 비해 더 뛰어난 공격력을 과시했다.

특히 PO에 상당히 강했는데 통산 PO 타율이 0.338이었고, 애틀랜타의 전설적인 사이영 3인방 상대로도 0.389의 타율을 기록할 정도로 PO에서 강력했다. 한 가지 불운이라면 그가 활약하는 동안 팀 전력은 '빅 레드머신' 시절처럼 그리 강하지 않아서 플레이오프에 오른 시즌이 우승을 차지한 1990년과 본인이 NL MVP에 오른 1995년이 전부라는 점. 그래도 우승 반지를 하나 차지했다는 점에서 아주 불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8]


5. 기타[편집]


  • 모범적인 선수 생활로 1993년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수상했고,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이 있다. 미국 국무부 스포츠 특사 자격을 가지고 있으며 2011년 한국에도 방문했다.

  • 스포츠 가족이다. 동생인 스티븐은 1루수로 신시내티 레즈에서 딱 한 달 배리와 같이 뛴 적이 있다.[9] 나머지는 모두 마이너리그 생활. 큰형 마이크는 노터데임(Notre-Dame) 미식축구팀 주장 출신, 작은형 바이런은 자비어 대학 농구부의 스타이자 현재 자비어 대학 농구부의 캐스터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는데, 딸은 라크로스를 하고 있으며, 아들인 셰인은 마이애미 대학교(Univ. of Miami)의 주전 가드로 2013년 NBA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18순위로 댈러스 매버릭스에 지명됐다.[10] 그러나 아버지의 후광을 뛰어넘기는 힘든지 NBA에서 2~3옵션 포인트가드로 그럭저럭 활약했다. 2017년 스페인 리그 사스키 바스코니아에서 뛰고, 2018년 현재는 NBA에 다시 입성해서 보스턴 셀틱스에서 2~3옵션으로 좋은 활약을 하고있다. 점점 출전시간이 늘고 있다.

  • 대부분의 운동선수들이 은퇴하면 그렇듯 자연스럽게 운동과 멀어지게 돼 역변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라킨은 은퇴 뒤에 격투기(주로 킥복싱류)를 연마하면서 선수시절의 몸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 라킨의 영구결번식 날은 사실 신시내티에게 경사스럽지만은 않은 날이었다. 이 날 아폴로 11호의 레전드이자 신시내티의 자랑이었던 닐 암스트롱이 사망하여 라킨의 영구결번을 축하하던 팬들은 큰 슬픔에 빠졌고, 전미의 야구장에서는 이닝 중간마다 Fly Me to the Moon 등의 우주스러운 노래들이 흘러나오며 암스트롱을 애도했다.


6. 연도별 기록[편집]


파일:MLB 로고.svg 베리 라킨의 역대 MLB 기록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86
CIN
41
169
45
4
3
3
27
19
8
9
21
.283
.320
.403
.722
1.1
1.5
1987
125
488
107
16
2
12
64
43
21
36
52
.244
.306
.371
.678
1.0
1.2
1988
151
652
174
32
5
12
91
56
40
41
24
.296
.347
.429
.776
6.3
7.0
1989
97
357
111
14
4
4
47
36
10
20
23
.342
.375
.446
.821
3.3
3.8
1990
158
681
185
25
6
7
85
67
30
49
49
.301
.358
.396
.753
5.4
5.7
1991
123
527
140
27
4
20
88
69
24
55
64
.302
.378
.506
.884
6.0
6.1
1992
140
609
162
32
6
12
76
78
15
63
58
.304
.377
.454
.831
5.3
5.6
1993
100
440
121
20
3
8
57
51
14
51
33
.315
.394
.445
.839
3.5
3.8
1994
110
501
119
23
5
9
78
52
26
64
58
.279
.369
.419
.788
3.7
4.0
1995
131
567
158
29
6
15
98
66
51
61
49
.319
.394
.492
.886
5.3
5.9
1996
152
627
154
32
4
33
117
89
36
96
52
.298
.410
.567
.977
6.8
7.2
1997
73
276
71
17
3
4
34
20
14
47
24
.317
.440
.473
.913
3.5
3.5
1998
145
626
166
34
10
17
93
72
26
79
69
.309
.397
.504
.901
5.9
5.7
1999
161
687
171
30
4
12
108
75
30
93
57
.293
.390
.420
.810
5.1
5.1
2000
102
447
124
26
5
11
71
41
14
48
31
.313
.389
.487
.876
2.5
2.6
2001
45
185
40
12
0
2
29
17
3
27
25
.256
.373
.372
.745
0.3
0.5
2002
145
567
124
37
2
7
72
47
13
44
57
.245
.305
.367
.672
-0.1
-0.3
2003
70
265
68
16
1
2
39
18
2
22
32
.282
.345
.382
.726
0.8
0.9
2004
111
386
100
15
3
8
55
44
2
34
39
.289
.352
.419
.771
1.5
0.7
MLB 통산
(19시즌)
2180
9057
2340
441
76
198
1329
960
379
939
817
.295
.371
.444
.815
67.0
70.5

7. 관련 문서[편집]



8. 둘러보기[편집]




[1] 그럼에도 불구하고 2라운드라는 높은 순위에 지명되었다. 본인의 실력에 엄청난 자신감이 있었는 듯. 다만 라킨이 이후에 한 활약을 보면 자신감이 없는 게 이상하긴 하다.[2] 라킨: 0.319 15홈런 66타점 51도루, 피아자 : 0.346 32홈런 93타점, 매덕스 : 202.2이닝 19승 2패 1.63[3] 일단 MVP를 한 번 탄 데다 실버 슬러거와 골드 글러브는 각각 무려 9번, 3번 탔다.[4] 라킨은 누적 WAR 70 정도를 기록했고, 보통 누적 WAR 60을 넘기면 논란이 없다는 가정 하엔 거의 입성이 확정적이다.[5] 여담으로 1998년 A-Rod가 내야수(유격수) 최초의 40-40을 기록하게 된다. 그런데 그는 약을 빨았지.[6] 라킨의 통산 도루성공률은 무려 83%다.[7] 당시 라킨의 골드글러브 경쟁자로 1980년대에는 1980 시즌부터 13시즌 연속으로 골드글러브를 탄 '오즈의 마법사' 아지 스미스가, 90년대에는 원조 '쿠바 미사일' 레이 오도네즈가 있었다.[8] 멀리는 타이 콥, 어니 뱅크스, 루크 애플링,테드 윌리엄스, 칼 야스트렘스키 같은 레전드에서부터 가까이에는 약먹고 날라다니던 배리 본즈나 킬러 B의 일원이었던 크레이그 비지오, 현역 최고 누적 기록을 가진 3루수인 아드리안 벨트레같은 선수도 반지가 없다. 즉,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월드시리즈를 제패할 수 없다는 것. 팀원들과 적당한 운까지 합쳐져야 가능하므로 오히려 강하지 않은 전력이라고 평가받으면서도 반지를 가져간 건 큰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다.[9] 1998년이었는데, 그 한 달 중 시즌 최종전에서는 브렛 분애런 분 형제가 2, 3루, 배리와 스티븐 라킨이 유격, 1루를 보는 기이한 라인업이 나온 바 있다.[10] 원래 애틀랜타 호크스 픽이었으나 트레이드로 댈러스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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