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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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군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달성(達城).# 호는 정암(廷岩)이다. 친형은 배명인이다.
2. 생애[편집]
1934년 경상남도 창원군 웅동면 대장리(현 진해구 대장동)#에서 태어났다. 웅동초등학교, 진해중학교, 진해고등학교, 육군사관학교 14기,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육군사관학교 동기인 이종구, 이춘구, 안무혁 등과 하나회에 가입하였다. 육군사관학교 교수,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관 등으로 복무하였다. 1973년 육군보안사령부 인사과장으로 근무하다가 윤필용 사건에 연루되어 중령으로 예편하였다.
1980년 민주정의당 창당발기인이 되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남도 창원시-진해시-의창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국국민당 김종하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건설위원장이 되었다. 1983년부터는 대한민국 국회 상공위원장이 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황낙주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7년 민주정의당 경상남도지부장에 임명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남도 진해시-의창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이 때 당선된 통일민주당 박재규 국회의원과는 몇 년에 걸친 악연이 있었다. 당시 박재규 의원에게 밀려 낙선하자 본인이 직접 박재규의 비리를 수집하고 박재규의 전직 비서관을 시켜 고발케 하는가 하면 청와대 관계자를 끌어들어 박재규를 뇌물죄로 구속시켜 국회의원직을 상실시켰다.
그러나 훗날 박재규의 전직 비서관이 배명국에게 수천만원의 돈을 받으면서 거짓된 진술을 하였음을 폭로하였고, 이 과정에서 청와대까지 연루된걸로 드러나 정치공작 논란이 일어났다. 결국 계속되는 논란 속에 민주자유당 경남도지부 위원장직과 당무위원 직을 사퇴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 후보로 경상남도 진해시-창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6년 초 민주자유당의 후신 신한국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앞서 일어난 박재규 사건의 영향으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의 자유민주연합 전국구 국회의원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자유민주연합 소속으로 진해에서 출마하려 했으나#, 최종적으로는 공천을 반납했다.# 이후 자민련을 탈당했다.#
2005년 4월 4일 대한민국헌정회 제7대 사무총장으로 임명되었다.#
2009년에는 재경진해향우회 초대 회장이 되었다.#
3. 소속 정당[편집]
4. 선거 이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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