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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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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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07년 8월 15일
대한제국 충청남도 예산군
사망
1988년 7월 10일 (향년 80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본관
성주 배씨
국적
[[대한제국|

대한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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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1907~1910)
[[일본 제국|

일본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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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1910~1945)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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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1945~1948)
[[대한민국|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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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1948~1988)
묘소
충청남도 덕산면 시량리 충의사 경내
가족
윤봉길(남편)
윤종(장남), 윤경(차남),
윤안순(장녀), 윤담(삼남)
윤주경(손녀), 윤주웅(손자)
윤주빈(시종손)[1], 윤행복(증손)
종교
천주교세례명: 안나

1. 개요
2. 생애
3. 기타


1. 개요[편집]


독립유공자 윤봉길의 부인이며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 받았다. 1988년 자택에서 향년 80세로 세상을 떠났다.


2. 생애[편집]


1907년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동학 교도의 딸로 태어나 1922년, 15세에 자신보다 1살 어린 동향 청년 윤봉길과 결혼했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으나, 둘째 아들 윤경과 딸 윤안순은 홍역으로 어린 나이에 죽었다. 남편의 망명 당시 첫째 아들 윤종은 고작 세 살이었으며, 셋째 아들 윤담은 뱃속에 있었다. 안타깝게도 부친이 숨진후 태어나 살아 있던 아들 둘 중에 셋째 아들 윤담은 아홉 살 때 복막염으로 사망하였다.

남편 윤봉길이 일제에 의해 순국한 후에는 일본제국 경찰의 감시 속에서도 시부모님을 모시며 서로 의지해 광복의 날이 올때까지 묵묵히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광복 후인 1946년 일본에서 돌아온 윤봉길 의사의 유해를 확인하고서도 6·25 전쟁이 끝나고 귀향하는 군인들을 보면서 '혹시 저 무리에 남편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하염없이 거리를 바라볼 정도로 남편을 그리워 했다고 전해진다.

1963년 정부의 독립운동가 재조명 사업이 시작되자 그동안 지내던 윤봉길 의사의 생가를 정부에 양도하고 서울로 상경해 장남 윤종 내외와 함께 노년을 보냈다.

1977년에는 시댁인 파평 윤씨 대종회로부터 그간의 효행을 인정받아 효부상을 수여받았다.

1982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받았고 1984년 장남 윤종이 57세의 나이로 사망한 뒤 며느리, 손주들과 함께 노년을 보내던 중 1988년 7월 10일 서울 동작구 상도3동 자택에서 숙환으로 향년 80세로 세상을 떠났다.

효창공원에서 사회장으로 영결식후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충의사 후록에 안장되었다.


3. 기타[편집]



  •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는 배 여사를 기린 '배용순 효부상'을 매해 광복절마다 서초구 양재동 매헌기념관에서 시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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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9년 3.1절 100주년 기념식에서 편지를 낭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