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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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번역
3. 상세
3.1. 중국
3.2. 유럽
4. 목록
4.1. 실존했던 백국
4.2. 가상의 백국


1. 개요[편집]


한국어
백국(伯國)
백작령(伯爵領)
라틴어
Comitatus
영어
County,[1] Earldom[2]
독일
Grafschaft
프랑스어
Comté[3]

군주의 호칭으로 백작을 사용하는 나라이다.


2. 번역[편집]


유럽사에 관하여, 백국, 후국, 공국이라는 표현 모두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독립국임을 표현하기 위해 "~國"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실제 당사자들은 백작령과 백국을 별도의 호칭으로 구분하지 않았다.

애초에 중세 유럽에서는 손바닥만한 백작령부터 거대한 신성로마제국까지 전부 '독립된 국가로써 정치체'가 아니라 '영역'의 성격이 강했다. '국민들이 구성하는 정부 조직'이 존재하지 않고 나라만한 부동산이 상속으로 거래되던 시대였다고 이해하는 게 사실에 더 가깝다. 심지어 백작령 수준의 영지는 재판권이나 조세권이나 부역동원권 등이 분할되어서 여기저기 팔려나가거나 상속되는 등 실제로 부동산으로 간주되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영지(역사) 문서를 참조할 것.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나폴리를 상속받았는데도 나폴리가 공식적으로는 신성로마제국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 등 법적으로는 국외에 사유지를 소유하는 형태의 동군연합 사례가 무수히 나온 것이 이런 이유이며, 중세 유럽엔 근대적인 국가나 민족국가, 민족주의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표현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3. 상세[편집]


동서양 불문 백국이 실제로 건국된 사례는 많지 않다.


3.1. 중국[편집]


중국의 경우 춘추시대의 오등작에 따라서 임의로 작위를 주다보니 정나라진나라 같이 독립 백국이 있기도 했지만, 전국시대와 통일 진나라를 거치며 백국들은 죄다 대국에 흡수되었으며, 호칭이 왕칭 인플레이션 되는 바람에 후대에 쓰일 일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주나라 시대 예법으로는 제후국의 경우 국가 군주 칭호를 작위와 무관하게 국군(國君)으로 불렀다. 군주의 칭호에 따라 제국, 왕국 같이 분류해서 부르는 방식 자체가 서구에서 유래된 것이며 동아시아의 예법은 아니다. 서구와의 접촉 이전에는 조선, 일본, 유구, 월남 등으로 불렀지 조선 왕국, 일본 제국, 유구 왕국, 월남 제국 같은 방식은 안 쓰였다.


3.2. 유럽[편집]


반면 유럽의 백작은 그 기원이 행정관이다. 왕이 행정구역을 할당하여 다스리라고 임명한 직위를 독립국가 칭호로 쓸 이유가 별로 없는데다가, 보통은 간지군주의 위상을 위해서라도 보통은 공작을 자칭하여 공국(duchy)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하다못해 최소한 프린스 정도는 자칭하여 대공국(principality)이 되었다. 처음부터 백국으로 독립한 경우는, 백작의 주군이 모종의 이유로 패망해서 자의든 타의든 독립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프랑크 왕국에서 카롤링거 왕조가 증발하자, 은근슬쩍 카페 왕조가 통치하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바르셀로나 백작령이 대표적이며, 그밖에 시칠리아 백국이나 포르투갈 백작령도 있다. 이들은 사실상 정식 왕국으로 인정받기 전에 존재했던 과도기 상태로서, 이들 나라 군주들은 마냥 백국으로 남은 게 아니라 독립 직후부터 왕국으로 인정받고자 교황과 주변국들에게 열심히 어필하였다. 그 결과, 바로셀로나 백작령은 아라곤 왕국동군연합을 결성하면서 아라곤 왕국에 편입되었고, 시칠리아 백국은 시칠리아 왕국으로 국명을 바꾸었으며, 포르투갈 백작령은 포르투갈 왕국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800~1000년 까지 암흑기 봉건사회 유럽에서는 이러한 호족, 귀족 영주들을 위한 칭호가 특별히 통일되어 있지 않았고, 왕권이 추락한 사이를 틈타 지방 일대를 장악한 영주들은 보통 공식 직위인 백작을 계속 자칭했다. 좀 더 세력이 센 호족은 공작, 프린스, 대백작 등 제멋대로 호칭을 정하기도 했다. 저 시기 왕권이 심하게 개판이었던 프랑스는 앞서 말한 개성있는 자칭이 많이 생겼고(...), 비교적 왕권이 살아있던 독일의 경우는 공식 직위인 공작이나 백작, 변경백을 많이 사용했다. 프랑스나 독일이나, 기본적으로 왕의 신하라는 지위 내에서 지방에서 할거하던 호족들이 자칭하던 칭호가 백작이었던 만큼 독립 백국은 드물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서양에서 처음부터 사실상 독립국으로서 백국이 건국된 사례는 십자군 전쟁 당시에만 나타났다. 십자군 전쟁 이후에 세워진 백국은 없다. 이것은 우선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던 귀족이 십자군 국가를 세울 때 스스로 왕이나 공작, 후작을 칭할 수 없어서 유럽 본국에서 자신의 가문이 가지고 있던 작위인 백작 작위를 칭해서였고, 둘째로는 십자군 국가들이 형식적으로는 동로마 제국이나 예루살렘 왕국의 봉신으로 행세했기 때문이다. 에데사 백국의 경우 명목 상으로 동로마 제국의 봉신을 자처하는 동시에 튀르크에서도 책봉 받았으나, 두 세력 중 어디로부터 실질적인 영향도 받지 않은 상태가 유지되어 사실상 독립국이 되었다. 그나마도 이것을 백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백국 통치자의 모국어였던 프랑스어 기준이고, 당시 동로마의 그리스어 기준으로 군주의 칭호는 둑스, 즉 직역하면 공작이었다.

30년 전쟁 이후의 신성 로마 제국 산하의 몇몇 변경백령들 같은 경우, 중앙정부가 아예 의미가 없다시피 해진 상황이므로 독립국으로 간주해서 백국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관점도 있다. 사실 이것도 변경백은 후작으로 번역되기도 해서 후국으로 번역할 수도 있지만...

이렇듯 백작령은 봉건제 하에서 기초적인 행정구역이었기에, 영미권에서 흔히 사용되는 행정구역 등급인 '카운티'가 바로 이 백작령에서 유래했다. 한국으로 치면 시, 군이랑 비슷한 크기. 백작 문서에서도 설명하지만, 백작은 원래 왕이나 황제가 임명한 행정관에 해당한다.


4. 목록[편집]



4.1. 실존했던 백국[편집]



고중세 동안 프랑스 왕국의 남북을 중계하는 정기시(Fair)가 열렸던 것으로 유명하다.
시칠리아 왕국의 전신으로, 원래는 왕국으로 인정받기 전의 과도기 시절의 국가다.
후일 노르만 왕조를 이어 영국을 통치하게 된 플랜태저넷 왕조의 조상으로서 잘 알려진 (구)앙주 가문의 연고지이다. 원래는 부백작의 관할구역이었으나, 중세 성기 즈음 백작에게서 권위를 탈취하여 독립적인 백작령으로 발전하였다. 앙주존 왕/필리프 2세 시대에 프랑스 왕령지가 된 이후 카페 왕조의 방계로서 (신)앙주가문의 연고지가 되기도 하였다.
최초의 십자군 국가.
남프랑스의 대표적인 독립적 영역제후 중 하나였다. 알비 십자군을 겪으면서 통치가문이 파문·단절되고 왕실 직할령이 되면서 프랑스 왕국에 완전히 흡수되었다.
오늘날 포르투갈의 전신. 포르투갈 백국이 성장해서 현재의 포르투갈이 된 것이다. 영토도 현재의 포르투갈의 정확히 절반이며 현재의 포르투갈은 포르투갈 백국의 영토에서 남쪽 해안선까지 확장한 영토를 가지고 있다.


4.2. 가상의 백국[편집]


12권에서 공국으로 승격한 후 엔딩 시점(21권 끝)에서 제국으로 승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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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크 왕국에서 성립한 대륙식 봉건제에서의 백국을 가리킨다.[2] 노르드인 이교도 대군세영향을 받은, 영국 고유 봉건제 하 백국을 가리킨다.[3] 영지가 아니라 작위인 백작은 Comte로 구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