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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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난아[1]
白蘭兒


파일:551796.jpg

본명
오금숙 (吳金淑)
본관
해주 오씨
출생
1925년 1월 16일[2][3]
제주특별자치도 북제주군 한림읍
사망
1992년 1월 21일 (향년 67세)
학력
양재고등여숙 (졸업)
데뷔
1940년 '오동동 극단'

1. 개요
2. 생애
3. 곡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가수.


2. 생애[편집]



파일:백난아 젊은 시절.jpg

젊은 시절.

1925년[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서 태어났다. 이후 양재고등여숙을 졸업하고, 14세때인 1940년 태평레코드와 조선일보가 주최한 콩쿠르대회에서 2등으로 입상했고, 그 해에 가수 백년설에게 백난아라는 예명을 받고 '오동동 극단'을 발표하면서 가수로 데뷔했다.

데뷔곡으로 발표했던 '오동동 극단'이 히트를 치면서 뒤이어 '땅버들 물버들', '아리랑 낭랑', '찔레꽃' 등의 노래들을 발표했고 이 노래들 또한 성공을 거두었다. 8.15 광복 후에는 인기가수로서 전국 순회공연을 다녔으며, 1949년에는 '금박댕기', '낭랑 18세' 등의 곡을 추가로 발표했고, 또 다시 히트를 쳤다.

그러나 광복이 얼마 지나지 않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그녀는 대구로 피난을 갔고, 여러 연예인들과 함께 군예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휴전 후에도 '멕시코 나이트', '고랑포 아낙네' 등의 곡을 발표했고, 1960년대에도 활발히 신곡을 발표했다.

1980년대에는 가요무대에 빈번하게 원로격으로 출연하다 1992년 1월 21일[5], 대장암고혈압이 겹쳐 별세했다. 향년 66세.



백난아 가요무대 스페셜


3. 곡[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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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배가수인 백년설이 지어준 예명이다.[2] 백난아 본인이 가요무대 인터뷰에서 스스로 데뷔년도인 1940년 당시에 열다섯 살 이었다고 밝히고 있어 논란은 끝났다.[3] 출생연도에 대한 설은 여럿이 있는데, 보편적으로 크게 알려졌던 1922년, 1923년 설부터, 호적상의 1925년, 연예협회에 등록된 1927년 출생설 등 다양한데, 확실한 것은 1929년 생인 금사향이 한 인터뷰에서 백난아를 선배님이라 칭했다는 거다. 이로 보아 1928년 이전 생임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4] 백난아의 가요무대 인터뷰. 43분 50초 부터 들어보자. 본인 스스로가 태평레코드 콩쿨대회 입상 당시 15세였다고 밝히고 있다.[5] 3월 23일 방송된 가요무대는 그를 추모하는 성격으로 방영되었다. 조선일보에서도 1월 25일 자, 신문으로 백난아가 1월 21일에 사망했음을 알렸다. 여지껏 9월 23일로 알려진 사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