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 동화매국문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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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국보 제168호
백자 동화매국문 병
白磁 銅畵梅菊文 甁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분류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백자
수량/면적
1개
지정연도
1974년 7월 9일
제작시기
조선시대(15세기)
14세기 원나라대 추정
지정해제일
2020년 6월 23일
국보 지정 해제
파일:백자 동화매국문 병.jpg

1. 개요
2. 내용
3. 외부 링크
4. 국보 제168호



1. 개요[편집]


白磁 銅畵梅菊文 甁. 14세기 중국 원나라에서 만들어진 백자 1점.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었다. 과거 한국에서 만든 것으로 잘못 판단해 국보 제168호로 지정됐으나 2020년 6월에 지정이 해제됐다.


2. 내용[편집]


높이 21.4 ㎝, 입지름 4.9 ㎝, 밑지름 7.2 ㎝.

14세기경 중국에서 만들어진 백자 병으로, 원래는 15세기경 한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여겼으나 자세한 연구를 진행한 결과 원나라 시기에 중국에서 제작된 진사백자로 확인되었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말부터 백자를 조금씩 만들기 시작하였지만, 본격적인 기술 개발과 대량 생산은 1467년에 조선 세조의 명으로 경기도 광주 일대에 백자 전용 관요가 설치되면서부터이다. 이 백자는 왕실관요가 만들어져 본격적으로 백자의 전성기가 열리기 이전, 초창기 한국의 백자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자료 중 하나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2020년 4월 29일 문화재청은 본 유물의 국보 지정을 해제하기로 예고하였다. 국적·가치 재평가 도자기, 46년 만에 국보 박탈 국보 지정 해제 사유는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백자 동화매국문 병이 중국 원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었고 본 작품과 비슷한 도자기도 중국 본토에 흔하여 희소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중국에서 만든 도자기라서 퇴출되는 것은 아니다. 현행 문화재보호법 기준으로 외국에서 만든 문화재라 해도 우리나라 문화사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라면 국보나 보물로 지정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국보 제193호인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서역에서 제작되어 실크로드를 타고 들어온 문화재이다.[1] 그러나 백자 동화매국문 병은 출토지나 유래 등이 한반도와 연관성이 불분명함이 문제였다. 조선 전기 백자에 이렇게 산화동을 안료로 사용한 사례가 확인되지 않아, 본 유물이 한반도에 영향을 준 흔적도 없다.[2]

문화재청 예고대로 백화 동화매국문 병의 국보 지정이 해제된다면, 국보 제274호였지만 발굴이 조작된 것으로 드러난 귀함별황자총통과 국보 제278호였지만 더 높게 평가받는 문화재가 나타나 보물로 격하된 태종11년이형원종공신록권부함에 이은 세 번째 국보 지정 해제건이 된다. 그리고 2020년 6월 23일 국보 지정 해제가 되었으며, 보물로 재지정되지도 않았다. 뉴스링크


3. 외부 링크[편집]




4. 국보 제168호[편집]


중국 원나라 제작품으로 우리나라 도자사에 끼친 영향 미흡


아래는 국보 지정이 해제되기 전의 문화재청 설명이다.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백자병으로 높이 21.4 ㎝, 입지름 4.9 ㎝, 밑지름 7.2 ㎝이다.

아가리 가장자리가 밖으로 벌어져 있으며 목이 긴 백자병이다. 목과 어깨 그리고 몸체에 각각 2줄의 선을 두르고 목과 어깨 사이에는 파초잎을 그렸으며, 어깨와 몸통 앞뒤로는 매화와 국화 무늬를 옆으로 길게 그렸다. 파초 무늬는 형식적이나 매화와 국화 무늬는 사실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도자기에 이미 진사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나, 조선 시대 전기에는 도자기에 붉은색을 냈다는 사실만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며 후기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작품은 조선 전기에 진사로 무늬를 그린 병으로 그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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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크로드를 타고 들어와 경주에 묻힌 이 유물은 그 자체로 동지중해와 교역했다는 상징이다. 또한 해당 유물 외 여러 유리공예품들이 고위 귀족의 무덤에서 출토되어 신라에서는 유리가 귀하여 고위층의 사치품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2] 비슷하게 우리나라와 연관이 없던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의 경우도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의 부상으로 수여되어 작게나마 인연이 닿았고 투구 그 자체로도 '초기 코린토스 양식의 투구'라는 상상 이상으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 때문에 보물로 지정되어 엄중히 관리된다. 처음에는 일단 개인에게 수여된 부상이기에 손기정의 집에서 보관했지만 가치가 너무 높아 부담을 느낀 손기정의 가족이 상의 끝에 박물관에 모셔놓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