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 청화매죽문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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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국보 제219호
백자 청화매죽문 항아리
白磁 靑畵梅竹文 立壺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55길 60-16, 삼성미술관 리움 (한남동)
분류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백자
수량/면적
1개
지정연도
1984년 8월 6일
제작시기
조선시대(15세기)

파일:백자 청화매죽문 항아리.jpg
파일:백자 청화매죽문 항아리 2.jpg

1. 개요
2. 내용
3. 기타
4. 외부 링크
5. 국보 제219호


1. 개요[편집]


白磁 靑畵梅竹文 立壺. 백자 청화매죽문 항아리는 조선 세조 재위 시기에 왕의 명으로 광주 분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청화백자다.

현재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219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편집]


높이 41cm, 입지름 15.7cm, 밑지름 18.2cm. 백자 청화매죽문 항아리는 현존하는 조선백자 가운데 크기도 제일 큰 편에 속하고 외형에 손상이 없이 아주 깨끗하며 아름다운데, 보존 상태가 보통 좋은 편이 아니라 최상급인지라 가짜 논란이 있기도 했다.

굽 아래에 가는 모래를 받친 후 고운 담청색 백자 태토를 구운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 청화백자가 처음 생산되기 시작하던 경기도 광주 지역의 도마리·무갑리 등의 가마에서 사용하던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윤곽선을 먼저 그리고, 그 안에 색을 칠하는 구륵진채법을 사용하였으며, 이런 제작 방식과 백자 양식을 보았을 때 청화백자 개발 초기인 조선 세조 시기(15세기 중엽 초기)에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세조 9년(1463)부터 1460년대 말까지 『세조실록』에 보이는 회회청 개발과 시험구이에 관한 내용은 당시 조선 왕실에서 사용할 청화 백자를 기존과는 달리 더 이상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제작하겠다는 노력을 기록한 것이었다. 특히 세조 연간에는 중궁전 주방에서도 청화 백자를 사용하게 될 정도로 궁중에서 청화 백자의 수요가 크게 증가하였고, 이에 광주 분원에서도 다수의 청화백자를 번조하였는데, 그 때 만들어진 초창기 작품 중 하나이다.

문양의 표현 기법과 색, 형태 면에서 매우 아름다운 항아리로 유명하다. 이렇게 매화와 대나무, 매화와 소나무, 소나무와 대나무가 '×'자로 교차되어 등장하며, 회화성이 강한 이들 문양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은 15세기 한국의 청화백자에서 보이는 대표적인 양식이다. 세조 당대에는 많은 양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3. 기타[편집]


백자 청화매죽문 항아리와 똑같은 청화 백자 항아리 동체 파편이 서울 관철동에서 공사중에 출토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4. 외부 링크[편집]




5. 국보 제219호[편집]



조선 전기에 제작된 높이 41㎝, 아가리 지름 15.7㎝, 밑 지름 18.2㎝인 청화백자 항아리이다.

아가리는 안으로 약간 오므라들었으며, 몸통 윗 부분이 불룩하고 아랫 부분이 잘록하게 좁아졌다가 살짝 벌어진 형태이다. 아가리 맨 윗쪽에 두 줄의 가로선이 있고, 그 아래에 꽃무늬와 이중의 원무늬를 번갈아 그렸고 아랫쪽으로 다시 한 줄의 가로선을 둘렀다.

어깨 부위에는 장식적이면서 화려한 연꽃무늬가 있고, 굽 바로 위쪽에도 같은 문양을 배치하였다. 중심 문양으로는 매화와 대나무가 몸통 전체에 그려졌는데, 가지가 교차하는 매화와 그 사이사이의 대나무 표현이 세밀하며 뛰어나다. 특히 윤곽선을 먼저 그리고, 그 안에 색을 칠하는 구륵진채법이 돋보인다.

이 백자는 문양의 표현 기법과 색, 형태 면에서 아름다운 항아리이며, 구도와 소재면에서 중국 명나라 청화백자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15세기 중엽 초기에 경기도 광주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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