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기 청소년 축구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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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응원전
2.1. 비판
2.2. 반론
3. 지역 사회적 원인
4. 부활
5. 기타
6. 백호기 출신 축구 선수[1]



1. 개요[편집]


역대 응원 역사를 담은 영상

제주도의 아마추어 축구 최강전이자 강릉 정기전의 상위 호환 축구전이다. 제주특별자치도 내 최고 권위의 각급 학원 축구 대회로 3월~4월 중 수 일간 제주시 오라동에 위치한 제주종합경기장의 주경기장 및 보조경기장격인 애향운동장에서 개최한다.

제주일보가 제주도의 축구 활성화를 위해 1971년 10월 30일 창설했다. 최초 참가 구단은 초등부 5개부뿐이었지만 2012년 41회 백호기에는 초등부 10개부, 중등부 6개부, 고등부 5개부가 출전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사실상 제주특별자치도 내 최대의 체육 행사이며 현재는 그런 분위기가 약해졌지만 2000년대 전까지만 해도 경기에서 진 학교 학생들은 교복 입고 제주시 시내를 돌아다니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정도로 제주 도민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행사이다.

제주일보가 부도상태라 2013년에는 원래 열리던 시기가 아닌 11월에 개최했다. 2014년부터 원상복귀되었다. 이후 2016년에는 제주일보의 노사 대립[2]으로 열리던 시기가 늦어져 각 학교의 공식 응원단이 참여하지 못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취소했다. 2022년에는 무관중으로 대회가 개최했다.

2023년에는 다시 유관중으로 대회를 개최했으며 제주문화방송에서 무려 KIA 타이거즈의 프로야구 개막전을 밀어내고 중계해 줬다. 다만 응원전은 계승이 끊기며 자연스레 소멸했다.


2. 응원전[편집]


이러한 사실보다는 다른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제주제일고등학교 응원


제주중앙고등학교 응원


오현고등학교 응원


대기고등학교 응원


서귀포고등학교 응원



이 응원장면을 보려고 일부러 제주도까지 내려오는 본토 사람이 있을 정도다. 예전에는 도민체전, 교육감기 축구대회 등에도 응원전이 벌어졌지만 현재는 백호기에만 응원전한다. 사관학교 응원을 본따서 만들어졌다고 하며 처음 시작은 지역사회를 잡고 있던 오현고등학교와 제주일고라고 알려져 있고, 이에 자극을 받아 대규모 매스게임을 보여준 것은 신흥 남고인 대기고등학교였다. 대기고등학교의 응원이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 널리 알려졌고, 이후 한동안 폐지 혹은 축소된 상태였던 오현고, 제일고를 비롯한 다른 제주시내 남고, 나아가 구 북제주군과 남제주군, 그리고 서귀포시의 남고까지 매스게임이 부활해 버렸다.[3] [4] [5] [6] 그리고 학교홍보 동영상에도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위의 영상에서 보는 것과 달리 최근에는 많이 완화되어서 교복 마이가 검은색, 와이셔츠가 하얀색인것을 이용해 단순하게 글자를 파고 한자 파기정도만 하는것이 일반적이다. 응원전이 한창일 때는 종합운동장에서 가까운 거리, 심지어 공항 근처에서도 응원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2015년 백호기 오현고의 모나리자와 대기고의 카운트다운. 위 영상과 비교해 보자. 3년 사이에 상당히 온건해졌다. 오현고의 학생회장의 말에 따르면 2016년부터 호랑이 그릴거라 했지만 2016년 백호기가 연기되면서 불확실해졌었다.

2017년 백호기는 학교측끼리 의논해 한 단어만 하게 되었다.[7]


2.1. 비판[편집]


사실상 축구경기 자체를 본다기보다는 이 응원하는 모습을 보러오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응원매스게임 자체로만 본다면 신기하고 재밌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매년 제주도 내의 고등학생 수천여명의 학생들이 갈려나간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1, 2학년들은 강제적으로 응원에 참가해야하며, 3학년에 경우 수능을 준비해야하기 때문에 희망자에 한해 일부만 참여하는 학교도 있다[8]. 연습 과정은 대개 1주일에서 그 이상 단축수업을 감행하여 이루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신체적, 언어적 폭력이 수반된다. 이러한 악폐습이 계속되는 이유는 폭력의 주체가 학생들 본인이기 때문이다. 백호기 행사는 교사진들 뿐만이 아닌 학생회와 고학년들이 주도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연습 도중 벌어지는 비윤리적 처사 또한 고학년들이 주도하게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교사, 학부모, 심지어 도민들까지도 이러한 상황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물론 앞장서서 비판한 이들도 있었다. 90년대 후반, 모 학교의 3학년들이 매스게임의 폐지를 주장하면서 일반적인 응원으로 바꾼 적이 있었는데, 바로 다음해의 3학년이 된 후배들에 의해 원상복구 된 적도 있다. 제주 일고의 경우에도 학생들의 수 년 간에 노력 끝에 99년도부터 매스게임식 응원을 폐지하였다. 악습과 똥군기의 철폐를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9]

하지만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교사 등, 백호기를 자랑스러운 문화로 생각하는 이들 또한 많았기에 의견이 합치되지 않아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내려 올 수 있었다.

2.2. 반론[편집]


응원은 자발적일 때 아름다운 것이라고는 하지만 교사들은 대부분의 학생들, 그리고 졸업한 동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연습할때는 괴롭기는 해도 막상 경기장에 들어서 타학교와 응원열전을 벌이게 되면 그 순간만큼은 속에서 무엇인가 끓어오름을 느끼고 애교심이 폭발해 너도 나도 목청이 나가도록 응원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졸업하고나서는 잊지못할 추억이 되고 동기들간의 좋은 안주거리로 남는다고 한다. 2002년쯤에는 딴지일보에서 5공시절 전두환 시절스럽다고 대기고 응원을 깠다가 대기고 출신 변호사가 고소해서 잠잠해진 적이 있다고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자랑을 했던 적도 있다.

3. 지역 사회적 원인[편집]


농일전이라고도 불리우는 강릉 정기전과 흡사하다. 한반도와 동떨어져있는 이라는 지역의 특성상 좁은 지역사회와 낙후한 교육문화, 지역 정치인이라고 쓰고 토호라고 읽는들을 대거 배출하는 몇몇 제주시[10] 내 고등학교들의 강한 연고의식[11], 그리고 이러한 연고의식을 백호기라는 스포츠 더비를 통해 재생산하는 학교, 교사, 그리고 선후배문화가 그렇다. 참고로 제주도는 충청남도와 마찬가지로 투표율이 꼴찌에서 1~2위를 왔다갔다거린다.. 즉 뭔가 정권 교체나 개혁으로 바꿔보겠다는 도민들의 의지가 매우 부족하다.

백호기 기간에는 응원문화에 대한 비난비판을 입 밖에 내놓을 수 없으며[12]최근에는 선배들이 카톡이나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sns 상태메시지를 감시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으며그냥 싹 다 차단시키면 되지않나.. 응원전에대한 비판목적이 아닌데도 "힘들다" "짜증난다" "그만하고싶다" 등의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기 주관적인 생각을 상태메시지로 썼다가는 지옥을 맛보게 될지 모른다. 사실 이러한 응원연습 이전에도 몇몇 남고들의 경우 교사들도 인정하는 준공식적인 절차로서 신입생들에게 학생회가 '전통교육'을 한다. 제주특별자치도/교육 문서 참조.


4. 부활[편집]



2020년부터 코로나 시국에 접어들면서 대회 취소를 한번겪고 이후 21, 22 두 대회는 무관중 경기로 진행했다. 문제는 이 기간이 정확히 3년이라 그사이 응원 경험자들이 전부 졸업을 하고 지금 재학생들은 선배들에게 응원법을 전수받은적이 없다.
더욱이 갑작스런 시대의 변화로 재학생들, 학부모들, 교사들 전부 응원준비에 거부반응을 보여서 사실상 명맥이 끊긴 상태라 바디섹션 대신 자율적인 응원으로 진행한다고 했지만 기어이 부활시켰다.

대회 2~3주전에 출전학교 교장회의로 "그래도 우리 아름다운 전통을 없애긴 좀..."이라는 쪽으로 흘러갔고 얼마후 바디섹션 유지를 결정했는데 이게 대회 1주전이라 예전같이 하는건 무리였고 난이도 낮은거 위주로 연습했다고 한다.

SBS, JIBS[13]도 백호기 전통이 끊긴다는 식으로 백호기에 긍정적인 뉘앙스의 보도를 했으나, 백호기 축구대회의 악명을 익히 체험하여 알고 있는 제주도민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5. 기타[편집]


축구부끼리의 본경기가 끝나면 응원 마친 학생들끼리 종합경기장 밖에서 2라운드를 했다는 전설구전되어 내려온다. 교련복을 입고 다닐 시절에는, 교련복에 있는 쇠버클이 달린 벨트로 사람을 때리다 맞아죽는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14] 90년대 초반까진 학생들끼리 각목 들고 2라운드 붙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가끔씩은 원래대로라면 학생들을 말려야할 선생님들마저도 각목들고 학생들 싸움에 가세했다고 한다. 바로 옆 터미널에서 버스 타고 도망치는 놈 발견하면 강제로 버스 세우고 끌어내려 다구리하기도 하고, 가끔은 버스에 불도 지르고 심지어 다같이 밀어 뒤집기도 했다고. 훌리건은 언제 어디에나 있다. 시대 불문, 연령 불문, 성별 불문.

현재는 패싸움과 접촉으로 인한 마찰을 막기위해 경기에서 승리한 학교가 경기장을 먼저 나간다.

백호기 경기가 있던 다음날 (가칭)A고등학교 학생들이 통학하는 시내버스가 상대편 학교 앞을 통과하는데 B고등학교 학생들이 버스를 빙 둘러싸고 A고등학교 학생들을 구타한다든지 그런일이 흔히 있었다. 지금 같으면 전국 뉴스감인데 90년대 중반 이전에는 그런 일이 뉴스 거리도 안됐었다. 그런 분위기였기 때문에 백호기 시합에서 진쪽 학교에 재직중인 이긴 쪽 학교 출신 선생님들은 시합 다음 날 하루 결근한다든지 하는 모습도 흔히 벌어졌다.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70-80년대의 폭력적인 분위기에서는 흔했던 일이다. 요새 애들이 거칠고 무개념하다고 인권이나 그런거 필요없고 무조건 패야 한다는 어른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백호기 응원 짤이 레딧의 r/interestingasfuck 서브레딧에 올라와서 r/all에 올라올 정도로 인기를 끈 적도 있다. 링크

원희룡 현 국토교통부 장관이 과거 제일고 재학생시절 불뿜는 청룡 퍼포먼스를 고안해서 이걸 일고 전통으로 만든바 있다. 현재는 화재위험으로 금지.

6. 백호기 출신 축구 선수[15][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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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무위키 등재 선수만 기재한다. 볼드체는 성인 A매치 출전 선수다.[2] 제주신보와 뉴제주일보로 나뉘어진 것과는 아마도 별개로 보인다[3] 대기고의 영향으로 다른 고교들이 따라한 것처럼 이야기하나 90년대 이전부터 내려오는 유서깊은 응원문화다. 다만 중간에 폐지되었다가 부활한 경우가 많을 뿐이다. 하단의 비판항목 참조. 다만, 전광판 스타일의 응원을 처음 시작한 곳은 대기고등학교가 맞다. 실제로 1990년대 이전 백호기 응원은 그냥 글자 좀 파고 그게 살짝살짝 변하는 수준이었는데 대기고가 처음 전광판식 응원을 선보였다. 대포알이 나간다든지, 전광판식으로 문장이 연이어 지나간다든지, 지금은 모든 학교가 암묵적으로 응원의 시작으로 삼는 카운트 다운을 처음 만든 것도 대기고였다. 처음에는 체육복 색상차이를 이용한 응원이 아닌 골판지에 색칠해서(!) 매우 해상도 높은 응원을 했었다가 간소화된 것이다. 물론 대기고가 그렇게 한 것은 제주도내 다른 유서깊은 고등학교들에 비해서 1980년대 개교로 역사가 짧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학교를 부각시키고 싶어했기 때문이다.[4] 물론 옛날에도 단체응원이긴 해도 매스게임을 하지 않는 학교도 있었다. 다들 죽어라 악쓰는데 유일하게 남녀공학이라 율동도 아기자기하고, 비교적 즐겁게 응원했다는 남녕고 졸업생의 증언이 있다. 남녕고에 축구부가 없다고? 1~3회 졸업생(대학 91~94학번)에게 물어보라. 그땐 있었다.[5] 2000년대의 오현고등학교는 단순하게 색깔만 바꾸는 카드섹션 뿐 아니라 아예 학생들이 뭉쳐 한자로 '오현인' 글자 등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후 2010년대부터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해당 경기장이 오래되어 붕괴 우려가 있어서라고(...).[6] 제주외고, 제주과고, NLCS Jeju, 한국국제학교 제주캠퍼스, 세인트존스베리아카데미 제주, 브랭섬 홀 아시아는 당연히 제외. 이들 학교는 학원축구부가 아예 없으며 특수목적고, 국제학교라 제주도 내 타 학교와도 따로 논다. 백호기 차출시켰다가는 수도권에 사는 학부모들이 단체로 고소한다[7] 대기고등학교는 "大起", 제주중앙고등학교는 "중앙고" , 오현고등학교는 '오髙현' , 제주제일고등학교는 '一脈' 서귀포고등학교는 '天池'라는 글자만 팠다. 근데 2019년 일고는 도안이 10장이 넘어다카더라[8] 참여하는 학생들은 생기부에 대외활동 명목으로 기재해 준다던가, 봉사점수를 많이 채워준다던가 하는 어드밴티지를 부여하는 편이다. 생기부를 빌미로 고3 학생들도 거의 반강제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셈이다[9] 일부 3학년 학생들의 음주와 폭행이 문제가 되었다. 예를 들어 응원도중 골이 들어갈 경우 거대한 현수막을 펼치는데 그 밑에서 술병을 던지고 후배들을 때리는 등.[10] 과거에는 자치시였으나 이제는 행정시이다.[11] 혹은 패거리주의[12] 당연히 교사선배의 탄압 때문. 학교 홈페이지에 비판글이 올라왔다가 전교가 난리가 나서 범인(?)을 색출하려고 했다. 2000년대의 일이다.[13] 보도는 JIBS가 했으나 영상 편집은 SBS가 했다.[14] 벨트를 풀어서 띠 부분을 손에 감고 철퇴처럼 휘두르면서 패싸움을 했었다.[15] 나무위키 등재 선수만 기재한다. 볼드체는 성인 A매치 출전 선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