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 에클레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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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nard Charles Ecclestone

파일:버니 에클레스톤.jpg

본명
Bernard Charles Ecclestone
버나드 찰스 에클레스톤
출생
1930년 10월 28일 (93세)
영국 서포크 세인트 피터 사우스 엘름햄
국적
영국
신체
159cm, 60kg
부모
시드니 에클레스톤, 베르타 에클레스톤
배우자
아이비 밤포드 (1952년 결혼 / 이혼 날짜 불명)
슬라비카 에클레스톤 (1985년 결혼 / 2009년 이혼)
파비아나 플로시 (2012년 결혼 ~)
자녀
티마라, 페트라, 에이스

1. 개요
2. 생애
3. 개인사 및 논란/사고



1. 개요[편집]


버니 에클레스톤은 영국기업인으로, F1 레이스 팀이었던 브라밤 팀 오너였으며, F1의 주관사인 FOM(Formula One Management)의 오너였다. 현재는 일선에서 물러나 이사회 고문을 맡고 있다. 모터스포츠, 특히 포뮬러 1을 비즈니스로서 크게 성공시키며 본인도 부를 거머쥐게 된 장본인.

2. 생애[편집]


풀네임은 '버나드 찰스 에클레스톤'이다. 영국 서포크 주의 어부의 아들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오토바이 부품 장사로 돈을 벌었다. 1949년 F3를 관전한 이후 모터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쿠퍼사의 F3 차량을 구입하고 출전하게 되었다. 사실 그는 스스로 드라이빙에는 소질이 없음을 깨닫고 한동안 부동산 투자를 통해 돈을 벌었다. 모은 자금으로 세운 코넛이라는 팀의 매니저가 되어 1958년에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데뷔하였으나 그해 영국 GP를 마지막으로 딱 두번의 GP 출전경력이 있을 뿐이며, 포인트조차 1점도 따지 못했다. 그러나 요헨 린트를 만나 그의 매니저가 되어 비록 죽고 나서지만 그를 챔피언으로 키워냈다. 그러던 중 1971년 브라밤 팀의 오너였던 론 토러넥을 만나 브라밤 팀을 팔라고 오퍼를 넣었고 그게 받아들여져 매각이 성사되었다. 그가 브라밤을 운영하던 1971년~1987년 동안 팀은 넬슨 피케라는 걸출한 드라이버를 만나 챔피언을 만들어줬고 한 때 명문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974년에 FISA(FIA에서 떨어져나와 F1을 운영하던 조직)의 F1 운영 전횡에 맞서 팀들의 이익을 지키겠다고 그를 비롯한 당시 F1 팀 오너들(콜린 채프먼[1], 프랭크 윌리엄스[2], 테디 메이어[3], 켄 티렐[4], 맥스 모슬리[5])이 모여 FOCA(Formula One Constructors Association)을 세우게 되고, 1978년부터 버니가 FOCA의 회장을 맡게 된다. FOCA는 운영수익을 팀들에게 배분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프로모터인 FOPA(FO Promotion and Administration)를 설립하는데 이 조직이 훗날 FOM이 된다. F1의 TV 중계권 및 상업적인 운영권을 쥐고 최고 입찰자에게 판매하는 식으로 흥행에 성공하면서 F1의 매출을 1조 7천억 원까지 끌어올렸고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

F1의 안전 규정 강화에도 힘을 써서 1978년에 이탈리아 GP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전문의를 상주시키는 등 여러가지 대책을 내놓으며 대회의 사망률을 줄여갔다.

2017년에 F1 운영권을 80억 달러의 가격으로 미국의 스포츠 컨텐츠 기업인 '리버티 미디어'[6]에 매각하면서 드디어 FOM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3. 개인사 및 논란/사고[편집]


여성편력이 극심하며, 세 번 결혼했다. 1952년에 결혼한 첫번째 부인 아이비 밤포드 사이에 55년생 데보라라는 딸이 있다. 두번째 부인은 1985년에 크로아티아 출신 모델인 슬라비카 에클레스톤(58년생 딸 뻘이다.)과 결혼해서 2009년에 이혼했다. 이혼할 때 위자료가 10억 달러에 달했다. 슬하에 두 딸(타마라, 페트라)이 있고 둘다 결혼하였으며, 손자만 5명이라고 한다. 문제는 세번째 부인인 브라질 출신 법조인 파비아나 플로시(76년생)인데 2012년에 결혼했고 나이차이가 무려 46살이다. 결혼당시 두 딸이 모두 반대했지만 강행했고 딸들은 결혼식에 안 왔다. 2020년 7월 90세에 세번째 부인 플로시 사이에서 아들 에이스가 태어났다.
사건사고가 많은데, 2010년에는 어느 레이싱 걸과 집에서 놀다가 강도가 들어 현물을 뺏기는 건 물론 폭행까지 당했다. 그런데 구타 당해서 눈과 턱에 멍이 시퍼렇게 든 채로 공식석상에 당당하게 돌아다녔다. 한술 더 떠 그때 위블로 시계를 강탈당했는데, 폭행 당한 모습 그대로 위블로 킹파워 모델의 광고에 출연했다.[7]

첫째 사위가 마약범 도주를 도왔다가 기소당하기도 했고, 2016년에는 브라질에서 그의 장모[8]가 납치당해 몸값을 400억 가까이 요구하던 걸 현지 경찰이 구출해냈다. 둘째 사위네는 2017년 말에 집에 강도가 들어 9000만 파운드(1343억원)의 현물을 털리기도 했다. 그 둘째 사위는 페트라와 이혼소송 중이기도 하다.

F1 회장 재임 시절 아일톤 세나에 대해 "결과적으로는 그의 죽음이 F1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발언하여 구설수에 올랐다. 물론 그의 죽음 이후로 F1의 안전규정이 강화되어 사망자가 현저히 줄어든 것은 맞지만 발언의 뉘앙스가 마치 잘 죽었다는 느낌이라 세나가 생전에 버니를 포함한 F1의 수뇌부와 다퉜던 것을 생각하면 노인네의 뒤끝 아니냐는 설이 있다.

2022년 6월 30일에 버니 에클레스톤 전 회장이 푸틴 대통령을 칭찬하며 그를 위해 총알이라도 맞겠다는 친러 발언을 하자 논란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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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터스 F1 팀 창립자[2] 윌리엄스 레이싱 창립자[3] 당시 맥라렌 레이싱 팀 오너[4] 티렐 레이싱 F1 팀 창립자이자 오너[5] 당시 마치 F1 팀 오너, 훗날 FIA의 회장이 된다[6]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구단주로 유명한 회사.[7] 광고 문구는 "위블로를 얻으려고 사람들이 하는 짓을 보라"[8] 30년생 노인의 장모가 49년생인데 그의 첫딸이 76년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