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 드와이어 (r20210301판)

 



Robert Budd Dwyer
로버트 버드 드와이어
[1]
파일:external/26.media.tumblr.com/tumblr_lu25dtTJDg1qgi5aqo1_400.jpg
출생
1939년 11월 21일
사망
1987년 1월 22일 (47세)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배우자
조안 드와이어 (1939~2009)
자녀
슬하 1남1녀
정당


약력
펜실베이니아 상원의원 (1971~1981)
펜실베이니아 주 재무장관 (1981~1987)

1. 개요
2. 생애와 죽음
3. 진실
4. 영향
5. 대중매체에서



1. 개요


미국정치인


2. 생애와 죽음


본디 고교 교사였으나 1965년 공화당 소속으로 펜실베이니아 주 하원의원[2]에 출마해 당선되어 1970년까지 하원의원을 지낸 후 1971년부터 1981년까지 펜실베이니아 주 상원의원, 1981년부터 1987년까지 펜실베이니아 주의 재무장관을 역임한 정치가이자 아내와 두 아이를 둔 평범한 가장이었다. 즉, 이력만으로는 전세계적인 유명세를 탈 만한 정치인은 아닌데, 그럼에도 버드 드와이어가 전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게 된 이유는 그의 비참한 최후 때문이다.

사건의 전말은 그가 1986년에 계약 관련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는데, 간략히 설명하자면 당시 펜실베이니아 주의 연방 공무원들은 연방보험료법(Federal Insurance Contributions Act 약칭 FICA)에 의해 세금을 내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수백만 달러의 세금을 더 낸 사실이 밝혀졌고, 펜실베이니아 주 정부는 그 세금을 모두 환급하기로 결정한 후, 이를 주관할 회계 법인을 선정하였다. 그리고 Computer Technology Associate(약칭 CTA)라는 회계법인이 이 업무를 주관하기로 결정되었는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CTA가 계약을 따오기 위해 버드 드와이어에게 30만 달러의 뇌물을 건넸다는 것. 당시 주지사에게 해당 내용이 익명의 메모로 제보가 들어왔고, 혐의까지 입증된 상황이었다. 만약 판결을 받았다면 징역 55년[3]에 추징금 30만 달러(당시 기준으로라면 10억원에 가까운 금액)가 부과될 상황이었다.

버드 드와이어는 혐의를 줄기차게 부인했으며,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에게 서한으로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결국 법원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받고, 최종심 판결 확정 전날인 1987년 1월 22일 아침에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곳에는 뉴스 방송과 사진 촬영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버드 드와이어는 준비된 회견문을 발표해나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발표를 중단하고[4] 측근들을 불러 편지를 하나하나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 편지는 세 가지였는데, 하나는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보내는 유서였고, 하나는 장기기증 관련 문서 및[5] 기타 자료, 나머지 하나는 당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 실제 자살 장면이 포함된 유튜브 영상 링크
동영상 링크
(※ 자살한 후 시신의 상태까지 여과없이 나오므로 주의할 것.)



자살 직전의 기자회견 영상(자살 장면 미포함)

편지를 나눠준 버드 드와이어는 노란색의 마닐라지 봉투를 집어 안에서 무엇을 꺼냈는데, 그것은 바로 권총이었다.[6] 평온하던 회견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주위 사람들이 놀라서 웅성거리고, 만류하자 버드 드와이어는 "불쾌하시다면 방을 나가주시기 바랍니다(Please leave the room if this will offend you.)"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을 진정시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다가오며 총을 버리라고 설득하자, 버드 드와이어는 손을 내저으며 다급하게 자신을 말리지 말라고 한다. 이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그만 둬요, 그만 둬요, 그만 둬요! 이건 누군가를 다치게 할 거에요! (Don't, don't, don't, this will hurt someone.)"였다. 이 마지막 말을 남기고 버드 드와이어는 곧장 총구를 입천장에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겨 자살한다. 총격으로 버드 드와이어는 즉사하였고, 주위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 채 패닉 상태에 빠져 현장은 아수라장이 된다.[7][8] 자살 당시 그의 나이는 향년 47세였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R._Budd_Dwyer%2C_moments_before_the_end.jpg
이 사진이 찍힌 이후 5초도 채 지나지 않아 버드 드와이어는 자살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기자회견이 생중계되어 전국을 넘어 전세계로 방송을 탔다는 것이다. 매우 충격적인 장면에 미국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9] 게다가 이 날은 미국의 일부 지역에 폭설이 내려서 휴교한 학교가 많았다. 학교 안 가고 집에서 뭐 볼 거 없나 하고 채널을 돌리던 아이들은 이 장면을 보고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한다. 너무 충격적인 탓에 대한민국에서도 다음 날 신문으로 대서특필되었다.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자신의 실질적 고향이자[10] 지역구였으며, 양친이 묻힌 곳이기도 한 펜실베이니아 주 크로포드 카운티에 묻혔다.

3. 진실


버드 드와이어의 사망 이후 버드 드와이어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모함을 받은 것이 아니냐라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었다. 특히 2010년에 방영된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인 '어니스트 맨(Honest Man)'에서는, 버드 드와이어의 재판에서 중요한 증언을 했던 윌리엄 스미스가 버드 드와이어의 재판 이전에 있었던 다른 재판에서 위증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버드 드와이어가 무고하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게 되었다.[11]

또한 그와 같이 지냈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버드는 절대로 돈에 양심을 파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주 적은 돈이라도 낼 돈은 다 내야 직성이 풀렸다'고 하며, 오히려 그런 강직함 때문에 같은 공화당 내에서도 그를 미워하고 따돌리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12]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기 이전에는 궁지에 몰려 자살한 부패 정치인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다큐멘터리의 영향으로 동정론도 많이 생겼다. 다만 그의 자살에 대해서 '떳떳했다면 법적 분쟁을 진행할 수 있을텐데 굳이 자살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며 의구심을 가지는 이들도 적잖아 있으나, 이미 위에서 설명되었듯이 버드 드와이어는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고, 유죄가 거의 확정된 상황에서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법적 분쟁을 계속 진행했어도 지금까지 감옥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고, 위에서 언급된 증언같은 것도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진짜 범죄사실이 있는 경우가 테드 번디 같은 식으로 끝까지 자신의 무고함을 논하다 처벌받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런 범죄자들은 실제로 자신이 한 일을 그런식의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경우를 선택하는 경우는 부당하게 자신의 존엄성이 회복할 수 없이 무너졌다는 분개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 많다.

그와 동갑내기였던 부인 '조안'은 재혼하지 않고 살다가 2009년에 향년 70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의 아들과 딸은 2018년 현재도 생존해 있으며 위에 언급된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다. 부인과의 인터뷰 역시 실려있다.


4. 영향


록가수 커트 코베인은 자살하기 직전 버드 드와이어의 자살 비디오를 몇 번이나 되돌려가며 감상했다고 한다.

가끔 유튜브 등지에서 버드 드와이어의 자살 영상을 보고 반응하는 동영상을 찍어 올리는 사람이 종종 발견되는데, 물론 반응은 비난 일색이며 비추천이 추천의 10배를 넘어간다. 언사이클로피디아에서도 그의 자살 도중의 사진을 합성한 짤이 걸려있는데 한국의 별세한 일부 정치인들처럼 서구권에서 굉장히 민감한 요소이므로 멋대로 다루었다간 욕 먹게 된다.

절대로 검색해서는 안 될 검색어에서는 Budd Dwyer라는 이름으로 위험도 4로 등재되었다. 위험도 4면 불쾌감을 넘어 장기간 트라우마로 남을 만한 내용이 있다는 뜻으로, 원래는 위험도 3이었으나 2020년부터 4로 올라갔다.


5. 대중매체에서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만큼 대중매체에서도 소재로 다루어졌다.

1995년인더스트리얼 락 밴드인 필터가 이 사건을 주제로 한 "Hey Man, Nice Shot"(어이 친구, 잘 쐈어)라는 곡을 냈다. 제목만 보면 자살한걸 비꼬는 거 아닌가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버드 드와이어를 추모하는 곡이다. 중간에 나오는 가사 "You'd fight and you were right. But they were just too strong."(당신은 맞서 싸웠고, 당신이 옳았어. 하지만 그들은 너무 강했지)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2010년에는 버드 드와이어를 소재로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인 Honest Man이 나왔다.

[1] 풀네임은 로버트 버드 드와이어이나 보통 로버트는 생략하고 버드 드와이어 내지 R.버드 드와이어라고 부른다. [2] 대한민국광역의원과 같은 개념... 이라고 하지만 연방제 특성상 조례나 규칙 따위가 아닌 주법(州法)을 제정할 수 있다.[3] 버드 드와이어가 당시 47세였으므로 사실상 무기징역이라 봐야 한다. 살아있다면 2031년에 103세로 석방[4] 발표하지 않은 부분에는 자신이 재무장관에서 사퇴하지 않을 것임을 밝히는 내용과 자살을 할 것을 의미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5] 병원에 너무 늦게 도착해 각막 이외에는 모두 기증이 불가능했다고 한다.[6] 스미스 & 웨슨 사의 모델 27로 357 매그넘 탄을 사용하는 모델이었다.[7] 당시의 영상을 보면, 그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부터, 예기치 못한 상황에 패닉에 빠져 욕설을 내뱉는 사람도 있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진정하라고 소리치는 목소리도 들린다.[8] 자살 직후, 그의 머리에 총알이 뚫고 나간 구멍이 나있으며, 코피를 쏟으며 사망한다. 비록 시체는 처참하지만, 총알이 뇌간부터 지나갔을 것이기에 고통만큼은 없이 즉사했을 것이다.[9] 1974년에도 크리스틴 처벅이라는 아나운서가 이런 생방송 자살을 일으켜 미국 전역을 뒤집어지게 한 적이 있었다. 유가족이 당시 자살 영상을 삭제할 것을 요청했다.[10] 버드 드와이어는 미주리 주 출생이다. 성장한 곳이 펜실베이니아 주.[11] 단 다큐멘터리에서 스미스는 드와이어한테 뇌물을 제안했고 드와이어가 이를 승낙했다는 증언 자체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또 뇌물을 제안한 것에 대해서 평생에 걸쳐 심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으며 드와이어에게 죽을 때까지 미안할 것 같다는 고백을 했다.[12] 전술한 익명의 메모도 공화당원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