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문제점 및 비판/시즌 3/4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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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쿠치마 정권 문제를 친서방 vs 친러 갈등으로 강의한 왜곡
2. 유셴코 vs 야누코비치를 친서방 vs 친러로 강의한 왜곡


레오니트 쿠치마 대통령은 동남부지역을 기반으로 당선된 친러시아 성향의 대통령이었거든요. 쿠치마 대통령의 재선이 성공한 이후에 2000년에 들어서는 러시아에서는 푸틴 대통령의 첫 등장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강한 러시아를 건설하겠다는 푸틴의 목표에 우크라이나의 쿠치마 대통령도 러시아에 손을 잡으면서 두 사람이 밀접한 관계를 이루어나갑니다. 푸틴의 집권이 시작되면서 마침 우크라이나 안에서도 친서방 세력과 친러시아 세력이 맞부딪히면서 끊임없는 갈등의 장이 시작됐어요.

그 가운데 대통령 선거출마를 위한 두 명의 대통령 선거 후보가 등장을 하는데 바로 친서방 성향의 후보 유셴코와 친러시아 성향의 후보 야누코비치였습니다. 결국 친서방 세력인 유셴코가 당선이 됐죠.

친서방 세력이었던 유셴코는 당선 이후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그 다음에 유럽연합 가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는데 우크라이나의 정치가 급격하게 친서방 경향으로 기우니깐 대대적인 경제적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어요. 바로 가스관으로부터 시작을 합니다. 러시아는 지난날 소련에 속했던 나라에 한해서는 상대적으로 싼 값에 가스를 공급하면서 안정적인 가스관 사용을 지속하고 있었는데 우크라이나가 친서방성향으로 기울어지니깐 러시아가 가스공급을 중단해버린거예요. 결국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극적인 합의가 이루어져서 가스공급이 다시 이루어지긴 했지만 이렇게해서 결국 이 싸움의 승자는 러시아였습니다. 물론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있었지만 러시아의 경제압박에 우크라이나의 경제가 휘청이기 시작하면서 다음 대선에 승자는 친러시아 세력인 야누코비치에게 돌아갑니다.

(그러면 친서방 세력은 많이 약해졌나요?)

약해질 거라 생각은 했는데 친서방 세력이 결정적으로 어떤 사건을 맞이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주류로 떠오르게 됩니다. 2013년에 EU 가입을 연기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거예요. 야누코비치가 밝힌 이유로는 경제부흥을 위해서는 EU에게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그 받는 조건으로 강력한 구조조정 그래서 우크라이나의 경제대책에 제동을 거는 대신에 러시아에서는 150억달러를 조건없이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통 크게 하죠. 우크라이나의 이익에 따라서 야누코비치는 EU 가입을 포기하게 됩니다. 하지만 유럽연합 가입을 기대했던 이 우크라이나의 국민들과 그동안 움츠러들었던 친서방 성향의 국민들이 이 일로 대규모 시위를 하게 된 거예요. 이게 바로 '유로마이단'이라는 사건이죠.

# 9:50-13:37

# 19:42-23:30

벌거벗은 세계사 44회


무장 시위대가 키이우하고 그 의회를 점거하면서 야누코비치 퇴진을 외쳤죠. 결국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 14:28-14:40

# 24:22-23:34

벌거벗은 세계사 44회

벌거벗은 세계사 방송 중 최악의 역사왜곡을 보여준 에피소드로 우크라이나에서 존재했던 다양한 갈등을 일방적으로 친서방, 친유럽연합 vs 친러로 왜곡하는 강의로 구성되었다.


1. 쿠치마 정권 문제를 친서방 vs 친러 갈등으로 강의한 왜곡[편집]


쿠치마가 논란이 된 이유는 곤가제 기자를 목을 잘라 죽인 사건에 연루됐기 때문이었으나 이걸 친서방vs친러로 왜곡한다.

2006년 가을 집권 세력의 비리를 파헤치던 곤가제 기자가 실종된 후 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된 사건으로, 후에 쿠치마 대통령 비서실장 멜니첸코가 유출한 녹음테이프에는 쿠치마로 추정되는 인물이 곤가제를 처리할 것을 지시하는 음성이 나와 서방에서 큰 파장이 일어났다. 이 사건 이후 쿠치마는 미국의 지지를 잃고 급격히 러시아로 기울었다.

허승철. (2021). 러시아의 근외정책과 정치 지도자 선택 : 조지아와 우크라이나 비교 연구. 러시아어문학연구논집, 72, 331

쿠치마가 논란이 된 이유는 곤가제 기자를 목을 잘라 죽인 사건에 연루됐기 때문이었으나 이걸 친서방vs친러로 왜곡한다.

이게 야누코비치를 대선후보로 내세우는 데까지 영향을 주었다.

2004년 2선 제한에 걸린 쿠치마는 3선 개헌과 내각제로의 개헌 등 집권 연장을 꿈꿨으나 5% 정도에 머물던 지지율로 인해 집권 연장을 포기하고, 대신 후계자 물색에 나섰다. 이때 후계자 물망에 오른 친러-중도 정치인은 세르히 티힙코(Serhii Tihipko)와 빅토르 야누코비치(Victor Yanukovich)였다. 티힙코가 중도에 가까운 정치인이었다면, 야누코비치는 친러 성향이 강한 동부 지역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친러 정치인이었다, 국립은행장과 경제장관을 지낸 경제 전문가인 세르히 티힙코는 야당 대표주자인 빅토르 유셴코와 비슷한 경력을 소유하고 대중적 인기도 높은 경쟁력 있는 후보였다. 그러나 집권 2기 동안 동부 지역 올리가르히에 의존하며 국정을 이끌어 온 쿠치마는 결국 동부 지역 클랜(clan)이 지지하는 후보인 야누코비치 도네츠크 주지사를 후계자로 정하고, 2002년 11월 그를 총리로 임명했다. 동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중적 지지가 별로 없고, 중앙 무대 정치 경험도 없는 야누코비치를 후계자로 정한 것은 쿠치마 후계 구도의 패착으로, 결과적으로 2년 뒤 대통령 선거에서 오렌지 혁명이 일어나고 정권을 친서방 노선을 내세우는 소위 “오렌지 혁명 세력”에 내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허승철 2021, 331-332


D’Anieri는 “야누코비치가 쿠치마와 지역당의 횃불을 들도록 결정한 것은 ‘중대한 실수’였다. 야누코비치는 범죄 전과가 있었고 카리스마도 없었으며, 돈바스 지역 외에서는 인기가 거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결선 투표가 부정선거였다는 것이 드러난 후 실시된 재선거에서 그는 44퍼센트를 득표했다. 이것은 좀 더 경쟁력이 있는 제도권 후보(establishment candidate)가 나섰다면 충분한 승리를 거두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라고 지적

허승철 2021, 332



2. 유셴코 vs 야누코비치를 친서방 vs 친러로 강의한 왜곡[편집]


이 부분은 곤가제 살인사건을 강의내용에서 제외한 것만큼이나 심각하다. 이 때 유셴코 독극물 사건과 부정투표 사건이 벌어져서 유명한 '오렌지 혁명'이 발생한다.

대통령 선거를 반년도 채 남기지 않은 2004년 여름 야누코비치의 지지율은 15-20퍼센트에 머문 반면, 유셴코의 지지율은 계속 상승하고 있었다. 쿠치마 진영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후보를 교체하는 것을 고려하는 대신에 좀 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였다. 9월 5일 정보부장 일행과 저녁식사를 한 유셴코 후보는 독극물에 중독되는 사건이 일어났으나 목숨을 구했다.

허승철 2021,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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