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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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1. 타인에 대한 범주화
2.2. 자기에 대한 범주화
3.1. 사례
4.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範疇化, Categorization

논리학 용어로서 범주화는 특정한 집단을 하나로 묶어 일반화해서 하나로 판단하는 경우를 말한다.


2. 심리학 용어[편집]


심리학 용어로서 범주화는 기존에 존재하는 범주에 자신이나 타인, 혹은 객관적 사물을 분류하고 소속시키는 인지적 과정을 말한다.

원래는 인지심리학 및 발달심리학의 연구주제로서, 인간이 외적 사물을 어떻게 이해하고 유사한 것끼리 분류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능력이 전생애적 발달에서 어떻게 변화하게 되는지에 관심이 모였다. 흔한 예로 어린아이가 "사람들이 많이 탔으니까 기차야" 라고 말하는 오류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 왜인지 연구하거나, 새와 비행기를 서로 다른 범주로 분리시켜 이해하는 연령대가 언제인지 연구하는 것 등이 있다. 장 피아제(J.Piaget)의 스키마의 조직화 연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다가 1980년대 후반 이후로 사회심리학계에서 자기범주화 이론(self-categorization theory)이 인기를 얻으면서 범주화라는 개념은 사회적 현상이나 집단 간의 갈등과 같은 거시적인 문제에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이래로 사회심리학은 인지혁명의 조명 하에서 사람들이 타인을 지각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한정되어 있고 이에 따라 구두쇠처럼 그 자원을 아끼면서 타인을 이해하려 한다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었는데, 자기범주화 이론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범주화를 통해 자기이해를 넓힌다고 말함으로써 기존의 설명을 한층 더 개선 및 확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1. 타인에 대한 범주화[편집]


먼저 기본적으로 전제할 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정신적 역량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인지적 자원(cognitive resource)이 제약되어 있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인간의 뇌는 모든 것을 다 완벽하게 처리할 수 없고, 제한된 여건 속에서 어떻게든 최대한으로 신속한 정보를 얻으려고 하며, 그 반대급부로 정확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만큼 희생하려 한다. 특히나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서 주의를 기울일 처지가 아니거나,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거나, 시간에 쫓기고 있거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지쳐 버린 상황에서는 평소에 인지적 자원이 많던 사람들도 정확성 높은 심적 처리(mental process)를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여기까지는 인지심리학자들도 관심을 갖는 내용인데, 사회심리학자들은 그 중에서 특히 '타인에 대한 정보' 를 받아들여 처리하는 상황에 관심을 가졌다. 타인에 대한 정보를 처리할 때, 만일 인지적 자원이 충분하지 않다면 우리의 뇌는 상대방에 대해 정확하지 않은 판단으로 이끌리게 되는 것이다. 평소에는 아무리 냉철하고 분석적으로 생활하던 김 씨일지라도, 야근 강행군을 끝낸 후 힘겹게 오른 지하철에서 만난 흑인 프랭클린 씨에게까지 그런 철두철미한 판단력을 활용할 수는 없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 처한 뇌는 눈에 확 띄는 단서들을 바탕으로 상대방이 속한 사회적 범주(social category)를 찾고, 그 사회적 범주가 갖는 특징들이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리라 기대한다. 프랭클린인지 프링글스인지는 모르겠고, 어쨌건 이 이름모를 흑인이 이어폰으로 듣고 있는 음악은 웬만하면 이겠거니 짐작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고정관념(stereotype)의 정의다.

그런데 이런 고정관념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결국 "그 범주에 속한 사람들은 대표적으로 어떤 특성들을 갖는가?" 에 대한 대답이 나와야 한다. 사회심리학은 이 대답을 범주 전형성(category prototypicality)이라고 하며, 여기에 잘 부합하는 범주 내 구성원을 전형(prototype)이라고 부른다. 김 씨의 머릿속에 떠다니는 전형성의 이미지는, 흑인들은 늘 흥이 많고, 랩을 잘 하며, 길거리에서 건들거리고, 공부는 못 하고, 스포츠는 잘 하고, 우람한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전형적 특성이 어느 정도는 현실을 반영할 수도 있으며 이를 진실의 핵(kernel of truth)이라고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이 진실이 아닐 때다. 특히나 흑인들을 살펴보면 볼수록 범주 전형성에 부합하지 못하는 흑인들은 수두룩하게 많이 나온다. 범주 전형성만 가지고 타인을 판단하는 것이 신속하고 자원을 덜 소비할지언정 부정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채용이나 승진과 같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범주 전형성을 써서는 안 되는 이유도, 그것이 '올바르지 못해서' 가 아니라 사실은 개인을 평가하기에 부정확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범주 전형성은 인지적 자원이 충분하지 못할 때에는 쉽게 깨지지 않는다. 완전히 정반대되는 반례를 가져와도 개인은 기존의 범주 전형성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범주 전형성을 추가로 형성한다. 범주 전형성을 폐기한다는 것은 곧 값비싼 심적 처리를 하겠다는 것인데, 없는 살림(?)에 그런 값비싼 비용을 치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프랭클린 씨는 어쩌면 지하철에서 클래식을 듣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김 씨가 깨닫는다 해도 김 씨의 머릿속 흑인의 이미지에 반영되는 일은 없다. 김 씨는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일하다 퇴근하는 흑인이라면 클래식을 들을 만도 하지" 하고는, 흑인 직장인에 대한 범주 전형성을 추가로 만들고 거기에다 '클래식을 좋아함' 을 입력시킬 뿐이다. 사회심리학은 이것을 가리켜 재범주화(recategorization) 또는 하위집단화(sub-grouping)라고 한다.

하지만 사회심리학자 셸리 차이켄(S.Chaiken)이나 수전 피스크(S.T.Fiske)가 강조했듯이, 인간은 물론 신속하고 간편한 판단을 하려는 동기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내린 판단에 자신감을 가질 만큼 정확하고자 하는 동기도 가지고 있다. 대개는 이 두 가지 동기 간의 절충과 타협을 통해서 타인이 어떤 사람인지가 이해된다. 아무리 고정관념에 쩔어 있는 사람일지라도 막상 친해지고 나면 그 고정관념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여건이 허락하는 한에서 인간이 고정관념과 같은 범주기반 정보(category-based information)보다는 개인화된 정보(individualized information)를 선호한다고 본다. 두 정보가 모두 가용하다면 전자보다는 후자를 고른다는 것이다. 여건만 된다면 상대방을 사회적 범주의 구성원인 '지나가던 흑인' 으로 보는 게 아니라, 세상에 둘도 없는 한 사람인 '프랭클린 씨' 로 본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탈범주화(decategorization)라고 부른다. 물론, 상황이 나빠지면 우리의 뇌는 언제 그랬냐는 듯 범주기반 정보에 의존하는 안이한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이것은 탈개인화(depersonalization)[1]라고 부른다.

타인에 대한 범주화가 흥미로운 현상들을 드러내 보이는 상황을 두 가지 언급할 수 있다. 첫째는 내집단 동료 구성원들에 대한 범주화이다. 프랭클린 씨가 어릴 때부터 슬럼에서 길거리 흑인들과 함께 지냈는데, 유독 프랭클린 씨는 학업에 대한 의욕이 컸다고 가정해 보자. 흑인들의 내집단 범주화 속에 '공부를 열심히 한다' 는 특성이 없다면, 프랭클린 씨는 어릴 때부터 주변 흑인 친구들에게 재수없다며 놀림과 따돌림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회적 범주화 과정에는 범주 전형성이 관여하는데, 여기에는 내집단 역시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내집단 구성원들 중에도 범주 전형성이 높은 사람이 있고 낮은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집단 동료 구성원 중에 범주 전형성이 낮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내집단에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탈자로 간주하여 처벌한다. 사회심리학자 호세 마르케스(J.Marques)는 이를 가리켜 검은 양 효과(black sheep effect)라고 명명하였다.

둘째는 두 사람 사이에 권력이 개입하는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완전히 평등한 관계 속에서 타인에 대한 정보를 처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갑을관계가 존재하거나, 상급자와 하급자처럼 수직적인 조직구조 속에 있을 수도 있고, 사회학적인 관점에서는 각자가 소속된 집단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거나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일단 사회심리학의 관점에서는 권력관계가 현저(salient)한 상황만을 주로 다루며, 가장 흔히 거론되는 사례가 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관계다. 이 주제를 연구하는 아나 귀노트(A.Guinote)와 같은 사회심리학자들이 발견한 것은, 권력이 강할수록 범주기반 정보에 크게 의존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제깟 녀석' 이 누구인지에는 인지적 자원을 쓰기도 아깝다는 얘기다(…). 그 결과 남게 되는 것은 "요즘 것들은..." 따위의 중얼거림뿐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연구자들은 일단 권력자들이 동기부여만 제대로 된다면 개인화된 정보를 매우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반대로 권력이 약한 사람들은 개인화된 정보를 필사적으로 수집해야 하며, 자기 윗사람을 '요즘 늙은 것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그 사람 개인으로서 취미가 뭔지, 입맛이 뭔지, 말투가 뭔지까지 다 외워버린다는 차이가 있다. 대학원생들이 지도교수의 성대모사부터 잘 하게 되는 이유


2.2. 자기에 대한 범주화[편집]


이상의 내용은 우리가 어떻게 타인을 이해하고 그들의 정보를 수집 및 처리하는지에 관련된 사회적 인지(social cognition)의 핵심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사회심리학에는 사회적 인지 이외에도 집단심리학(group psychology)도 있다. 1980년대 집단심리학은 사회적 정체성(social identity)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집단 간(between groups)의 갈등과 경쟁 관계를 심리적으로 설명해 내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제부터 설명할 자기범주화(self-categorization)라는 개념을 통해서 집단 내(within group)의 역동까지 설명해내며 사회적 인지 연구와 집단 연구를 통합해내는 성취도 이루었다.

자기범주화는 인간이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도 "내가 누구지?" 에 관련된 정보 속에다 "내가 어떤 범주에 소속되어 있지?" 에 대한 정보를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사람이 자기 스스로를 고정관념의 틀에 집어넣는다는 얘기다. 사회심리학은 이를 가리켜 자기 고정관념화(self-stereotyping)라고 한다. 사회심리학자 존 터너(J.C.Turner)는 이에 대해, 자신이 속한 범주 속의 다른 구성원들과 자기 자신의 유사성이 높다고 느끼고 차이점은 거의 없다고 느낌으로써, 범주 속에서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존재로서 스스로를 이해하게 된다고 설명하였다. 반대로 외집단 범주와 비교할 때에는 그들과의 유사점은 거의 없고 차이만 잔뜩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러한 인지의 과정을 메타대조(meta-contrast)라고 부른다.

앞서 언급했듯이 내집단 구성원들 사이에도 범주 전형성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으며, 자기 자신 역시 스스로가 속한 범주의 전형성과 비교한다면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김 씨도 자신이 남자일지언정 대중매체에서 흔히 나오는 그런 '상남자' 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심리학은 일단 그 범주가 자신을 이루는 정보들 속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한, 개인은 그 범주 전형성에 최대한 스스로를 가깝게 맞추려고 한다. 쉽게 말해, 김 씨가 자신이 남자라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믿는 만큼, 그는 '남자로 태어났으면 사나이답게 짧고 굵게 살아야지' 하는 신조대로 살게 된다. 이때 그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범주 속에서 모본(exemplar)을 찾아서 본받고 따라하려고 한다. 반대로 그 범주가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사람들은 별로 그런 모본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만의 삶을 살아간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범주에 자신을 맞추려는 노력은 여러 면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우선 자기 자신이 '긍정적으로 독특한' 존재라고 믿게 될 수 있고, 다른 동료 내집단 범주 구성원들과의 관계에서도 호감과 매력을 얻게 될 수 있다. 이런 구성원들이 많은 비율을 차지할 때 그 내집단 범주는 응집력(solidarity)을 얻을 수 있다. 대한민국 해병대가 외부인의 시선에서는 기이한 행동을 하면서까지 '해병대다움' 에 자신을 끼워맞추는 것, 그리고 그들이 어딜 가나 기수번호만 가지고도 똘똘 뭉치는 것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가장 큰 혜택은 내집단 범주에서 리더십을 획득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 집단다움을 가장 잘 체현한 구성원만이 지도자의 자격이 있고, 그런 사람이 말을 할 때에야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고 영(令)도 서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지도자 범주화(leader categorization)라고 한다.

자기범주화는 특히 "내가 누구지?" 에 대해 불확실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된다. 상기 서술한 사회심리적 과정, 즉 '자신이 속한 범주' 를 찾아서, '그 범주의 모본' 을 따라하고, 결과적으로 그 범주 내에서 영향력을 획득하는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풍족한 범주기반 정보를 획득하게 된다. 고정관념이 확고하다는 얘기는 범주기반 정보가 명확하다는 얘기이고, 그런 집단에 소속된다는 것은 내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매우 명확하게 규정된다는 뜻이다. 사회심리학자 마이클 호그(M.Hogg)는 어떤 집단 범주가 이런 속성을 갖는 것을 실체성(entitativity)[2]이 높다고 하였다. 줄여 말하면, 실체성 높은 집단에 몸담을수록 자기범주화가 쉽다.

이런 높은 실체성이라는 특성은 컬트나 소수종교 집단에서도 잘 나타나지만 무엇보다도 테러리즘이나 각종 극단주의를 추종하는 집단에게서 잘 발견된다. 이들 집단들이 폐쇄적이고 위계적이며 지켜야 할 규칙이 많고 불관용적인 성향이 있는 것은, 그렇게 해야만 실체성이 높아져서 구성원들의 자기 자신에 대한 불확실한 이해를 쉽게 해소해 주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여기서 가장 위험한 과격분자들은 이들 집단에서 주변부로 밀려나 있으면서 중심부로의 진출을 노리는 구성원이라고 한다. 반대로 온건한 집단일수록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고 수평적이며 구성원들의 자율과 재량이 보장되는데, 스스로를 불확실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는 큰 위안을 받기 어렵다. 그들은 결국 이런 곳을 떠나서 자기범주화가 주는 '확고한 고정관념의 편안함' 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사회 정의 용어[편집]


전세계의 정체성 정치지지자들 혹은 대중주의자들이 자주 범하는 오류로, 특정 집단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어 적대시하고 증오선동한다. 주위에 상대적으로 흔한 다수자들과 달리 소수자들은 머릿수가 적거나 말 그대로 약자라서 개인이 아닌 집단 그 자체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약자들은 개인으로 불릴 권리를 박탈당한다는 말이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3.1. 사례[편집]


  • 현대에도 가끔 일어나는 연좌제.
  • 극우파들이나 자유지상주의적 보수주의자들은 정치적 올바름을 부정하면서 소수 집단을 범주화하는 반자유주의, 반개인주의적 혐오발언조차도 자유주의라는 이름 하에 옹호하며 자신들을 개인주의자라고 변호한다.
  • 퇴행적 좌파들은 모든 백인, 남성, 기독교인들이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 잠재적 가해자 드립
  • 특정 집단의 평균을 일반화
  • 소수자 집단에 대한 타자화와 연관된 경우[4]
    • 몇몇 극단주의 무슬림이 테러 모의를 하거나 테러를 저지르는 경우 모든 무슬림을 테러리스트로 일반화하는 경우가 많다.
    • 사회적 맥락이나 개인적 차이를 무시하고 다른 인종 대비 미국 흑인이나 성소수자사회적 소수자 집단사이에서 범죄율이 높다고 해서 사회적 소수자 전체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생각하는 것.
    • 사회적 소수자의 정체성과 무관한 범죄와 관련된 기사에서 사회적 소수자의 정체성을 아웃팅하는 경우[3]
  • 극좌파들은 자본가들 및 기득권층 전체를 악마로 간주한다.
  • 혐한혐중 성향 일본인들과 서구권의 혐한혐중친일 성향 백인들은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 또는 악마로 간주하고 일본인들을 선량하고 완전무결한 존재로 포장한다.


4.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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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용어와 매우 유사한 다른 용어로서 몰개인화(deindividuation)라는 단어가 있다. 이것은 군중심리를 설명하기 위해 필립 짐바르도(P.Zimbardo)가 주창한 용어로, 군중 속에 섞여들면서 익명성이 부여되고 개인의 특수성이 사라져 버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하지만 현대 사회심리학계의 주류 이론에서 여전히 유효하게 활용되고 있는 단어는 아니므로 그 중요성은 크게 떨어진다.[2] 원래는 영어사전에 없는 단어로, 사회심리학자들이 만들어낸 조어다. 그 개념적 정의는 집단을 집단으로서 지각되게 하는 성질을 말한다. 집단의 경계가 명확하고, 구성원들의 동질성이 높으며, 내적 구조가 견고하고, 목표의식이 동일하며, 운명을 함께 공유하는 집단이 바로 실체성이 높은 집단이다.[3] 예를들면 아스퍼거 증후군과 연관 없는 범죄에서 범죄 가해자의 아스퍼거 증후군을 언급하거나, 조선족, 탈북자 중에서 '개인'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조선족, 탈북자라고 정체성을 밝히거나, 동성애자 중에 '개인'이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동성애자라고 밝히는 경우. 이런 인권 감수성에 대한 무감각한 보도는 대중으로 하여감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배로 확산시키는 악효과를 낳는다. 왜냐하면 아스퍼거 증후군이 아닌 NT이거나 조선족, 탈북자가 아니거나, 이성애자였으면 그것을 보도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서구국가들은 범죄 사건 기사를 낼 때 직접적 연관성이 없으면 사회적 소수자의 정체성을 아웃팅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막는 경우도 많다.[4] 그 집단의 주류 집단에 속한 '개인'이 흉악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주류 집단 전체로 잘못으로 일반화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적으며, 최소한 주류 사회에서 매도당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유색인종, 성소수자, 정신장애인 같은 소수자들은 스테레오타입으로 일반화되는 경우가 많으며 그것에 딱히 주류 집단 구성원들과 사회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행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