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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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묘법연화경
법화경
한자


산스크리트어
데바나가리 문자
सद्धर्मपुण्डरीक सूत्र
음역
삿다르마 뿐다리까 수뜨라[1]
영어
Lotus Sūtra
티베트어
དམ་ཆོས་པད་མ་དཀར་པོའི་མདོ
음역
dam chos padma dkar po'i mdo[2]/Damchö Pema Karpo'i do[3]

1. 개요
2. 형성과 전래
3. 의의
3.1. 오직 일불승으로만 성불하여 부처가 될 수 있다.
3.2. 석가여래는 사실 무한한 시간 이전에 이미 성불했다 - [여래수량품]
3.3. 법신사상
4. 전래와 발전
5. 관련 전설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승 불교의 근본 경전이다. 화엄경, 금강경과 함께 대표적인 대승삼부경으로 여겨진다. 산스크리트어로 삿다르마 뿐다리까 수뜨라(saddharma-pundarika sutra)라 하는데, 번역하면 '올바른 법(을 가르치는) 흰 연꽃(과 같은)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3세기에 중국으로 건너와 역경승[4]으로 활약한 서역승 축법호(竺法護)가 286년에 이 경전을 <정법화경(正法華經)>이란 제목으로 한역했지만, 5세기 초에 구마라집이 한문으로 다시 번역할 적에 바르다()[5]를 오묘하다()[6]고 해석하여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라 이름 붙였다. 구마라집의 번역본이 동아시아 불교계에 널리 퍼져서 제목 또한 <묘법연화경>으로 알려졌고, 이를 흔히 약칭하여 '법화경(法華經)'이라 쓰고 읽는다.

[법화경]이 중요한 것은 대승 불교에서 부처의 모습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열반에 들기 얼마 전 영산회상에서 열린 법회에서, 석가여래는 반평생 동안 설파한 아함부의 가르침이 사실 임시방편이었다고 말하면서, 진실로 성불하기 위해서는 오직 대승으로만 가능하다고 밝혔다. 자력 수행으로는 성불이 사실 불가하고 타력으로 들어와야만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대승의 핵심은 모든 중생을 부처의 자녀로 여기는 일불승과 무분별법에 들어가는 제법적멸의 이치, 그리고 여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다. 그러나 다른 경전들과 가장 뚜렷하게 구별되는 법화경만의 사상은 바로 여래의 무량한 수명이다.

법화경 [여래수량품]에서 석가여래는 자신이 실제로는 젊어서 성불한 것이 아니라 무한한 시간 이전에 성불한 구원실성(久遠實成, 장구한 시간 이전에 이미 성불하였음)의 부처임을 밝힌다. 그런데 이는 석가여래가 인간과 같은 수행자 이기 이전에 이미 우주 전체의 지존임을 밝힌 충격적 선언이었다. [여래수량품]에 나오는 이 말씀으로 인해 동아시아 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를 삼계의 지존이자 남섬부주(지구)의 교주, 신들을 모두 다스리는 우주의 법왕으로 섬기게 된 것이다. 개인적인 수행에서 벗어나 우주의 지존인 석가모니불을 섬기는 대승 불교는 바로 이 때부터 탄생했다.

묘법연화경은 천태종의 근본경전[소의경전]으로서 화엄경과 함께 동아시아 불교 사상 확립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중국의 천태종, 고려의 법상종, 일본의 일련종 모두 이 법화경을 소의 경전으로 하여 교단이 전개되었다. 한반도에 유통된 불경 중 가장 많이 간행되었는데, 정확히 언제부터 유통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신라 고승들의 주석서가 전해지므로 삼국시대부터라고 추정한다. 원효대사의 법화경종요, 일본 쇼토쿠 태자가 주석한 법화의소가 대표적인 주석서로 존재한다.


2. 형성과 전래[편집]


대승불교 역사의 초기에 나온 경전으로, 대승불교에서는 높이 평가하는 교파가 많다.

법화경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서지학적으로 기원전 1세기~기원후 40년 무렵에 원형이 나왔고 이후 오랜 시간에 걸쳐 증보개정되었다고 추정한다. 문헌비평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천태지의의 교상판석 등을 통해 법화경이 최상승 근기를 위해 가장 나중에 설해졌다는 의견이 동아시아 대승불교계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일본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길장의 <삼론현의>[7]와 진제의 <부집이론소>에서 부파 불교대중부 불교에 반야경, 법화경 등이 있다는 기록을 남겼으므로, 오히려 기원이 대승불교 초기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되었고 대중부와 사상적으로 관련이 깊었음을 알 수 있다.[8]

원문은 네팔에서 산스크리트어로 쓰였다고 추측한다. 동아시아에는 오호십육국 시대에 쿠차 출신의 서역승 구마라집이 한자로 번역한 뒤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전체 경문은 28품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전반부와 후반부를 각각 적문(迹門)과 본문(本門)이라고 불러 구분한다.

관련된 경전으로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하기 직전 설했다는 <무량의경>, 관음보살 신앙이 유행하면서 분리된 <관음경>(관세음보살보문품), 법화경의 결론이라는 <관보현보살행법경>이 있다. 국내에서 시중에 유통되는 법화경 대부분은 사제(사성제)와 십이인연(십이연기), 공 사상과 보살도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하는[9] 무량의경과 보살행에 대해 설하는 관보현보살행법경이 없고, 관음경 부분도 아미타불극락을 언급한 범본과 달리, 해당부분이 누락된 한역본을 그대로 번역해 실었다.[10]


3. 의의[편집]



3.1. 오직 일불승으로만 성불하여 부처가 될 수 있다.[편집]


석가여래는 35살 성도하여 40여년 동안 아함부, 방등부, 반야부의 가르침을 설하였다. 그런데 이 영산 회상에서 처음으로, 그 예전 40여년에 걸친 가르침이 임시 방편이었다고 선언한다. 깨달음을 이룬 이후에 성문, 연각, 보살의 삼승을 계속 가르쳐 왔는데, 성문승과 연각승의 가르침으로는 사실 성불할 수 없다고 갑자기 충격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이런 갑작스런 선언에 반발하는 제자들 5천여명이 자리를 떠나가는데 그 이후 석가여래는 본격적으로 일불승, 대승의 설법을 시작한다. 일불승을 말하면서 이 일대사 인연을 밝혔다. 모든 부처는 중생들에게 부처의 지견을 열어 보여 그 지견을 깨달아 들어오도록 하게 만들기 위하여 이 세간에 출현한다고 선언했다. 곧 중생들을 가르쳐 깨닫게 하기 위하여 그 중생들이 있는 사바세계에 특별히 나타난다는 뜻이다. 이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석가모니 부처의 대자비심을 말해주며, 그 대자비심의 보살승만이 사실 또 성불할 수 있는 길이 됨을 알려준다. 여래는 끝없는 보살행으로 불과를 이뤘고, 그 보살승이 진정한 일불승임을 알린다. 성문승, 연각승의 소승법으로는 사실 부처가 될 수 없음을 밝혀주기에 소승과 대승을 가르는 경계선이 되는 중요한 경전이 이 법화경이 된다.

혹자는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명제가 법화경의 주제라고 하는데, 이는 소승만으로는 부처가 될 수 없다는 법화경의 사상과는 조금 다른 주제다. 또 [방편품]에서 석존이 여래의 방편을 은근찬탄할 때, 사부대중이 의심을 품으면서 다음처럼 생각하는 장면이 나온다.

爾時大衆中有諸聲聞漏盡阿羅漢阿若?陳如等千二百人及發聲聞?支佛心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各作是念

今者世尊何故慇懃稱歎方便而作是言佛所得法甚深難解有所言說意趣難知一切聲聞?支佛所不能及佛說一解脫義我等亦得此法到於涅槃而今不知是義所趣

그때 대중 가운데 여러 성문들과 번뇌가 다한 아라한인 아야교진여 등 1천 2백 인과 성문과 벽지불의 마음을 낸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들이 제각기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금 세존께서는 왜 은근하게 방편을 찬탄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부처가 얻은 법은 매우 깊어 이해하기 어렵고 말하는 뜻도 또한 알기 어려워서 성문이나

벽지불로는 미칠 수가 없다"고 하시는가?그리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한 해탈[一解脫]이란 뜻은, 우리들도 그 법을 얻어 열반에 이르렀는데,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전연 알 수가 없구나.’

묘법연화경 방편품 29절 (wordofbuddha.co.kr 기준)

(https://www.wordofbuddha.co.kr/sutras/3/sutrachapters/2?page=3#0_29)


이는 곧 사성제와 12연기의 수행으로 열반에 이르렀다고 도달한 제자들의 착각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는 남방원시불교의 가르침으로는 사실 성불할 수 없다는 대승의 명제이다. 성불이 사실상 인간의 자력 수행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법화경이기에 모든 중생의 성불이 어렵다는 것이 오히려 법화경의 전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부처의 가피와 부처에 대한 신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 소승불교에 없다고도 말하기 힘들다. 따라서 일체 중생의 성불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 법화경의 독특한 사상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소승불교에서는 재가신자나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각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대승불교에서는 재가신자이든 여성이든 다 대승의 일불승으로 성불할 수 있다고 말하기에 (여래의 무량수에 대한 절대적 신심이 있다면) 모든 중생이 성불할 수 있다는 명제까지 도달하지만 이는 법화경 여래수량품에 대한 믿음을 필수로 한다.

일불승으로 반드시 들어와야 한다는 법화경의 가르침은 곧 소승이란 마술성에서 멈추지 말고 대승이란 진짜 불도로 들어오라는 의미이다.
이 대승은 곧 석존이 손수 보인 일대사인연의 보살행으로 연결되는데, 이는 금강경의 [아응멸도 일체중생]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보살승이 구체적으로 가장 잘 드러난 곳이 화엄경의 [보현행원]의 보현십대원이다.

대승불교에서 사실상 부처로 인정하는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 또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이나 동방의 약사여래불 모두 보살일 때에 중생 구제를 위해서 굳건히 맹세하고 서원을 세운 이들로, 이 법화경의 보살승을 순수 실천함으로써 부처가 되었다. 이는 곧 법화경의 일대사인연, 보살승 사상이 우주적으로 구현된 예시라 할 수 있다. 모든 부처들이 이렇게 대승법을 실천했듯 불자들에게도 대승의 문을 권고하는 경전이 바로 법화경이다.


3.2. 석가여래는 사실 무한한 시간 이전에 이미 성불했다 - [여래수량품][편집]


법화경에서 묘사되는 석가모니 부처의 모습은 사실 인간으로 이 땅에 살았던 화신부처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온 우주의 법왕, 곧 삼계를 다스리는 보신부처의 모습에 가깝다. [견보탑품]이나 [종지용출품], 그리고 [여래수량품]에서 묘사되는 석가모니 부처의 모습은 진실로 초인적이면서 불가사의한 삼계지존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석가모니 본불의 묘사는 견보탑품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묘사된다.

  • [견보탑품]

爾時佛前 有七寶塔 이시불전 유칠보탑

高五百由旬 縱廣二百五十由旬 고오백유순 종광이백오십유순

從地涌出 住在空中 종지용출 주재공중

種種寶物 而莊校之 종종보물 이장교지

五千欄楯 龕室千萬 오천난순 감실천만

無數幢幡 以爲嚴飾 무수당번 이위엄식

爾時寶塔中 出大音聲歎言 이시보탑중 출대음성탄언

善哉善哉 釋迦牟尼世尊 선재선재 석가모니세존

能以平等大慧 능이평등대혜

敎菩薩法 佛所護念 교보살법 불소호념

妙法華經 爲大衆說 묘법화경 위대중설

如是如是 釋迦牟尼世尊 여시여시 석가모니세존

如所說者 皆是眞實 여소설자 개시진실

그 때에 부처님 앞에 칠보탑이 있어

높이 오백 유순이며 가로와 세로가 이백 오십 유순이 되었는데

땅에서부터 솟아나와 공중에 머물렀다.

갖가지 보물로 장엄하게 꾸며졌고

오천 개의 난간에 감실이 천만 군데인데

무수한 깃대로써 장엄하게 꾸며져 있었다.

그 때에 보탑 가운데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석가모니 세존이시여

능히 평등한 큰 지혜로써

보살들을 가르치고 부처님께서 지키고 생각하시는

묘법연화경을 대중을 위하여 설하시나니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석가모니 세존께서

설하시는 것들은 모두가 다 진실입니다.”

[간추린 법화경]의 206page, [제11/견보탑품] 중에서


법화경 제11장 견보탑품을 보면, 땅에서 다보탑이 솟아오르고 다보여래가 이 법화경의 말씀이 진실이라고 증명하는 말이 울려퍼진다. 그 때 석가모니 부처는 시방의 모든 분신 부처를 모으고, 사바세계가 석존의 분신 부처로 가득찬다. 모든 분신불이 모이자 석가모니 부처는 공중으로 올라가 다보탑의 문을 열고, 다보여래 부처와 함께 탑 안에 나란히 좌정한다.(이불병좌二佛竝坐)

석가모니 부처는 과거 오래 전에 성불하신 다보부처도 이렇게 법화경을 듣기 위해 왔는데, 우리들이 법화경을 위해 정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면서 불제자들에게 법화경을 부촉하려 한다. 그러나 이 법화경을 설하는 것은 다른 모든 경전을 설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임을 명시한다.

  • [종지용출품]

爾時 彌勒菩薩 이시 미륵보살

及八千恒河沙 급팔천항하사

諸菩薩衆 皆作是念 제보살중 개작시념

我等 從昔已來 不見不聞 아등 종석이래 불견불문

如是 大菩薩摩訶薩衆 여시 대보살마하살중

從地湧出 住世尊前 종지용출 주세존전

合掌供養 問訊如來 합장공양 문신여래

그 때에 미륵보살과

팔천 항하강 모래 수만큼의

모든 보살 무리들이 다 이처럼 생각하였다.

‘우리들은 일찍이 이와 같은 일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였도다.

이처럼 많은 대보살마하살의 무리들이

땅에서 솟아나 세존 앞에 머물러

합장하고 공양하고 여래께 여쭙는 일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였다.’

[간추린 법화경]의 277page, [제15/종지용출품] 중에서


  • 땅 아래에서 법화경을 수호하는 수많은 보살들이 올라오다
타방에서 영산회상으로 온 보살들이 법화경 수호하기를 청하는데, 석존께서는 이미 당신께는 육만 항하강의 모래수만한 보살들이 있어 법화경을 수호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다. 이 때 사바세계의 땅이 흔들리면서 무량한 천만억의 보살들이 솟아올라오다. 이 모든 보살들이 석가세존과 다보불께 예배드리는데 부처님을 찬탄하는데 오십 소겁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이를 보고 원래 영산회상에 있던 보살무리들이 놀라고, 필두로 미륵보살이 세존께 이 보살마하살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여쭌다.

  • 미륵보살이 질문하다
"누가 이 많은 대보살들을 제도하여 성취시켰나이까?" 미륵이 질문하자 세존께서는 이 많은 대보살들은 전부 석존 당신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이후에 교화한 이들이라고 말씀하신다. 미륵과 대중들은 이에 의문을 품는다.
"세존께서 성도하신지 40여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언제 이들을 다 교화하셨단 말인가?"


  • [여래수량품]

爾時世尊 이시세존

知諸菩薩 三請不止 지제보살 삼청부지

而告之言 汝等諦聽 이고지언 여등체청

如來祕密 神通之力 여래비밀 신통지력

一切世間天人 及阿修羅 일체세간천인 급아수라

皆謂今 釋迦牟尼佛 개위금 석가모니불

出釋氏宮 去伽耶城不遠 출석씨궁 거가야성불원

坐於道場 得阿耬多羅三藐三菩提 좌어도량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然 善男子 연 선남자

我實成佛已來 無量無邊 아실성불이래 무량무변

百千萬億 那由他劫 백천만억 나유타겁

그 때에 세존께서

모든 보살이 세 번이나 청하고도 그치지 않음을 아시고

고하여 말씀하시었다. “너희들은 주의하여 들으라.

여래의 비밀과 신통의 힘을 들으라.

일체 세간과 하늘 사람 및 아수라들은

전부 다 지금 석가모니불이

석가족의 궁궐에서 나와서 가야성에서 멀지 않은

도량에 앉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으로 알고 있느니라.

그렇지만 선남자들이여

내가 실제 성불한 지는 벌써 무한하고 끝없는

백 천 만억 나유타 겁 이전이니라.”

[간추린 법화경]의 290page, [제16/여래수량품] 중에서


  • 석가모니 부처님은 백천만겁 나유타 겁 이전에 이미 성불하시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미륵의 질문에 답하시다. 석존께서는 일체 세간의 사람들과 하늘 사람, 아수라들이 모두 석가보니부처님이 젊어서 성도하여 40여년 밖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백천만겁 나유타 겁 이전에 이미 성불하셨음을 밝히시다. 그러면서 오백진점겁의 비유를 통하여 인간이 상상할 수도 없는 무한한 시간 이전에 이미 불과를 증하시어 삼계지존으로 계셨음을 말씀하신다.

  • 오백진점겁의 비유
오백 천 만억 나유타 아승기의 삼천대천세계를 전부 갈아서 티끌로 만들었는데, 어떤 사람이 동방으로 오백 천 만억 나유타 아승기의 나라들을 지나가며 티끌을 하나씩 떨어뜨리는데 그런 식으로 티끌을 다 써 버린다면 그 티끌이 떨어진 세계와 떨어지지 않은 세계의 수가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데 그 모든 세계를 다시 또 갈아서 티끌로 만든다면 그 티끌의 수는 얼마가 되는가? 그런데 그 티끌 하나를 1겁으로 친다고 하여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성불하신 지는 그보다 더 오래 전이라고 말씀하신다.

곧 여래께서 과거에 수기를 받았다는 이야기나 장차 열반한다는 이야기, 젊은 나이에 출가하여 성불했다는 것도 사실 방편으로 하신 말씀이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래께서는 상주불멸하시지만 중생들을 위하여 방편으로 열반을 보인다는 것을 의자醫子(의사 아들)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신다.

[의사의 아들 비유]
온갖 병에 달통하여 잘 치료하는 의사가 있었다. 그에게는 자녀가 여럿 있었는데 의사가 타국에 다녀온 사이 자녀들이 다 독약을 마시고 중독되었다.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좋은 약초를 처방해주었는데 일부는 약을 먹고 바로 나았으나 본심을 잃은 아이들은 약을 먹지 않았다. 이에 아버지는 타국으로 떠난 후에 자녀들의 맘을 바꾸려고 일부러 거짓으로 아버지가 죽었다는 전갈을 집에 보내게 한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아이들은 충격을 받고 정신을 차려서 약을 먹고 병에서 벗어나게 된다.

여래께서는 멸도치 않으시지만 사바세계에 계속 있으면 중생들이 방일하는 까닭에 오히려 열반을 보이신 후에 중생들로 하여금 갈앙하는 마음을 내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여래께서 열반을 보이시는 이유이다. 허나 여래께선 항상 영산궁에 계시면서 법을 설하시고, 여래의 정토는 영원불멸하여 겁화도 태우지 못한다.

  • 여래의 수명은 무한하다

불국사 앞에 있는 다보탑, 현지사 앞에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은 모두 영산회상 당시 법화경을 설하실 때에 땅에서 솟아나온 그 다보탑의 모형이다. 그러나 인간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탑이라기보다는 불안(佛眼)으로 볼 수 있는 탑이다. 이는 묘사되는 장면이 사바세계의 광경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온 우주에서 모인 석가모니 부처의 분신인 부처들이 온 세계에 가득차서 사방이 다 하나의 불국토가 되었다는 것은 영적인 불안으로 볼 수 있는 광경에 가깝다. 이러한 묘사들이 너무나 신비로워서 창가학회나 선불교 측에서는 이런 다보탑을 상징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영산불교 현지사 교단의 경우는 이 다보탑이나 다보여래 부처, 땅에서 솟아나온 보살들이 모두 실제하는 것으로 보지만 인간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높은 차원의 세계에서 일어난다고 해석한다. 즉 육체를 가지신 화신 석가모니 부처의 설법이 이어지다가 다보탑이 솟아나온 후부터는 빛의 몸을 갖춘 보신부처의 설법으로 넘어가는 구조로 본다.

해석이 쉽지 않지만 [여래수량품]에서 석가모니가 이야기하는 이 장엄한 광경의 결론은 간명하다. 석가모니 부처는 2600여년전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처음 무상정등각을 이룬 것이 아니라, 상상할 수도 없는 훨씬 이전의 과거에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고 삼계의 지존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석가모니 부처가 백천만겁 이전에 이미 삼계를 초월하여 삼계를 다스리는 법왕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사바세계로 들어와서 인간으로 태어나고, 이 땅에 불교를 세웠다.

이 법화경의 여래수량품의 선언을 통해 석가모니 부처를 가장 상위의 법왕으로 추대하고 서방극락세계의 아미타 불, 동방약사정토의 약사여래불, 그리고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 지옥의 중생들을 구제하는 지장보살이 현세 긍정의 보살로 본격적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현세 긍정의 보살 신앙이 법화경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유는 이 법화경에서 석가모니 부처가 본불로써 법왕의 위상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는 다른 불보살들이 중생 구제를 위한 일대사 인연으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고, 또 관세음보살과 같은 대자비심의 보살을 실제 또 칭찬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불자들이 역사적으로 깊이 섬겨온 관세음보살은 법화경 중 [관세음보살보문품]에 등장한다. 회삼귀일에서 최종 귀일하는 보살승이 바로 중생 구제를 위해 힘쓰는 불보살들로 연결된다. 그런만큼 법화경은 보살 신앙을 강조하는 경전이기도 하다.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염불하라는 [제25 관세음보살보문품]이 있고, 마지막에는 보현보살이 나타나 법화경을 수호하는 이들은 보현행원을 행하는 것이니 이들을 직접 수호하겠다고 알리는 [제28 보현보살권발품]이 나온다. 이 외에도 석가모니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11]을 던졌던 미륵보살이 수기를 받았다는 내용도 나오며, 무수한 보살과 수호신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보살신앙들은 대중부 불교와 관련이 있다.*


3.3. 법신사상[편집]


법화경에서 부처는 이미 오래전에 성불하였고, 인간으로서 태어난 석가모니 부처는 일시적으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중생구제를 위해 나타났을 뿐, 그 본체는 완성된 구원실성의 법신이라고 말한다. 이 부분 역시 대중부 불교에서 강조한 사상이다.*


4. 전래와 발전[편집]


수나라의 천태대사가 법화경을 본격으로 집대성하여 천태종이라는 종파가 생겼다. 그 후 이 천태종고려일본에 정착한다. 역시 대승불교 종파 중 가장 마지막으로 전래되었다.

당시 천태종의 주된 신앙이 관세음보살 신앙이었다.

일본에서는 법화경을 중시하는 승려 니치렌 이후 그 제자들에 의해 일련종일련정종이 성립되었다.


5. 관련 전설[편집]


삼국유사에 관련 이야기가 있다. 7세기 초반 백제승려 혜현(惠現)은 승려가 된 이래 법화경 외우기를 과업을 삼아 기도하면서 복을 빌었다.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너무 많이 찾아오자 시끄럽다고 원래 있던 수덕사에서 달라산(達拏山)[12]으로 들어가 석굴에 숨어 살았다. 당나라 정관(貞觀: 627∼649) 초년에 58세로 죽자 사람들은 혜현이 살던 석굴에 시신을 안치했는데, 호랑이가 유해를 모조리 먹어 버리고 혀만 남겨 두었다. 그런데 이 혀가 추위와 더위가 3번을 지나가도(3년이 지나도) 썩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붉어지고 부드러워지더니 차츰 검붉어져 돌처럼 단단해졌다. 사람들은 혜현을 기려 그 혀를 석탑 속에 모셨다고 한다.

일본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9세기 일본 헤이안 시대에 쓰인 『일본국현보선악령이기』[13]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헤이안 시대, 구마노에 법명을 에이코(永興)라고 하는 선사가 있어 법화경을 낭송하면서 마을 사람들을 계도했다. 서기 760년대 후반 쇼토쿠 덴노 때 어떤 수행자가 에이코 선사를 찾아와 1년 넘게 법화경을 독송하면서 수행하였다. 어느 날 수행자는 에이코 선사에게 따로 수행하겠다고 하면서 입산했다. 에이코 선사가 수행자에게 시자(시중 드는 사람)를 딸려보내 사발과 밥을 챙겨주었으나, 수행자는 시자와 물건들을 하루 만에 돌려보냈다. 2년이 지나 구마노 산중 어느 절벽에서 수행자의 시신이 발견됐다. 수행자는 발에 줄을 묶고 절벽으로 몸을 던져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죽었는데, 그때까지도 혀만은 멀쩡해서 법화경을 낭송하고 있었다고 한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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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마자 표기는 Saddharma Puṇḍarīka Sūtra[2] 와일리식 로마자 전사이다. 티베트어 한글표기안.[3] 표준 티베트어 THL 단순 음성 표기법(THL Simplified Phonetic Transcription)에 따른 표기이다.[4] 불경을 번역하는 승려. 초기 중국불교에서는 중앙아시아 쪽 승려들이 중국으로 건너와 역경승이 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5] 엄밀히 말하자면 이는 산스크리트 형태소 sadhu의 번역으로, 목표(여기서는 열반)로 가는 길에 부합한다는 의미에서의 올바름을 뜻한다.[6] 심오하고 섬세하며 미묘하기에 뛰어나다는 뜻이다. 이 한자는 제자백가 시대부터 도가에서 도(道)를 묘사하는 데 사용해 온 형용사다.[7] 길장이 저술했다고 알려졌지만 반론도 있다.#[8] 참조서적: 이운허, <묘법연화경>, 동국역경원/시즈타니 마사오.스구료 신조 저, <대승불교> 2권 대승불교의 탄생/이자랑.이필원 저,<도표로 읽는 불교입문>, 민족사[9] 법화경 자체에도 '사제'라는 이름으로 사성제를 설명하고 12연기 등 근본교리를 분명히 언급한다. 다만 무량의경만큼 해당 부분들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설하자는 않는다.[10] 네팔본에 있는 3구 7수 남짓한 누락된 분량이 동아시아에서 보완된 때는 중화민국 시절이라(참조), 그 이전 한역본, 한역본을 중역한 역본에 의지하는 시중의 묘법연화경 대부분 판본들에는 다. 이 부분이 보완된 판본은 비움과 소통 출판사의 관음경 강기와 네팔본을 저본으로 한 불사리탑출판사의 한글 법화경과 민족사 법화경이 대표적이다.[11] "종지용출품의 이 불보살들을 언제 석존께서 다 교화하셨습니까?"[12] 지금의 월출산으로 비정.[13] 『日本国現報善悪霊異記』는 헤이안 시대 초기에 작성되어 전승된 가장 오래된 설화집으로 『日本霊異記』라고 약칭되기도 한다. 저자는 헤이안 시대 薬師寺의 승려 景戒다. 상 · 중 · 하 세 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용은 변칙스러운 한문으로 작성되었다.[14] 묘법연화경을 한글로 번역한 불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