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토 무솔리니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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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왕국 제27대 총리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초대 두체

베니토 무솔리니
Benito Mussolini


파일:Benito_Mussolini_colored.jpg

본명
베니토 안드레아 아밀카레 무솔리니
Benito Andrea Amilcare Mussolini
출생
1883년 7월 29일
이탈리아 왕국 포틀리체세나도
사망
1945년 4월 28일 (향년 61세)
이탈리아 왕국 귀리노
재임기간
제27대 총리
1922년 10월 31일 ~ 1943년 7월 25일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초대 두체
1943년 9월 23일 ~ 1945년 4월 25일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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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아버지 알레산드로 무솔리니
어머니 로사 무솔리니[1]
형제
남동생 아르날도 무솔리니
여동생 에드비제 무솔리니
배우자
이다 달세르[2](이혼)
라켈레 귀디
클라라 페타치(연인)
자녀
에다 무솔리니[3]
비토리오 무솔리니[4]
브루노 무솔리니[5]
로마노 무솔리니
애나 마리아 무솔리니
정당
이탈리아 사회당 (1901 ~ 1914)
파시스트 혁명 행동 (1914 ~ 1919)
이탈리아 전투 파쇼 (1919 ~ 1921)
국가 파시스트당 (1921 ~ 1943)
공화 파시스트당 (1943 ~ 1945)
시민권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왕국
파일: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국기.png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신체
169cm, 85kg[6]
종교
가톨릭무종교(무신론)

1. 개요
3. 업적
4. 어록
6. 개인사
7. 미디어에 등장하는 베니토 무솔리니
8. 여담
9.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이탈리아 왕국의 군인, 정치인. 아돌프 히틀러, 도조 히데키와 함께 파시스트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1922년부터 1943년까지 장장 21년을 이탈리아 왕국의 수상으로 재임했다.[1] 짧게나마 죽기 전까지 아돌프 히틀러에 의해 북이탈리아에 위치한 괴뢰정부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의 수장도 역임했다.

일명 Il Duce(두체, 지도자 또는 영도자). 동의어인 독일어 퓌러(Führer, 총통)도 지도하는 사람이라는 뜻. 직접으로는 "도제(doge)"에서 유래했다. 원의는 "가르치다"의 뜻인 라틴어 ducir에서 파생된 것이다. 같은 어원으로 파생된 언어로 영어의 duke(공작)와 불어의 duc(공작), 라틴어 dux(지휘관)로 모두 duce와 어원이 같다.



(NHK 다큐멘터리) 영상의 세기 PREMIUM 제09부 - 독재자 3인의 "광기中" [2][3][4]

2. 생애[편집]


베니토 무솔리니는 평생 ‘장엄함과 소극(笑劇)’(grandeur and farce) 사이를 불안하게 떠돌았다.

― 폴 존슨 #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베니토 무솔리니/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업적[편집]


베니토 무솔리니는 고대 로마 제국의 영광을 살리겠다는 명목으로 집권했다. 집권기간 동안 공을 많이 들여 로마 시내의 여러 유적을 대규모로 발굴했다. 현대 로마 시내에 남은 여러 유적은 대부분 무솔리니 정권 시절에 발굴된 것이다. 하지만 이 로마 유적을 발굴하려면 그 위에 자리잡았던 여러 건물을 일단 철거해야 했는데 무솔리니는 독재자답게 이 과정에서 생기는 모든 마찰을 무시하고 오로지 유적 발굴에만 집중해서 르네상스 시대 이후 건립된 다른 가치있는 여러 건물도 많이 철거됐다. 그러면서도 로마 유적(포룸 로마노 등) 사이에 길을 뚫어놓고는 "황제의 거리(Via dei Fori Imperiali)"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길 때문에 많은 유적들이 파괴되고 남은 유적들도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토건[5]으로 로마와 이탈리아의 모습을 완벽하게 뒤바꿔 놓은 사람이다. 바티칸 시국성 베드로 대성당 앞에 뚫어둔 "화해의 길"과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광장", 이탈리아 최초의 고속도로[6] 등 이 모든 걸 무솔리니가 만들었다. 로마 관광의 중심가에 가면 "베니토 무솔리니가 만든..."이란 말을 빼놓고 설명할 수 있는 게 없을 정도. 또한 도시계획에도 관심을 가졌는지 현대 로마에서 'EUR(에우르)'라는 신도시 구역을 계획해 만들고 이곳에 "로마문명박물관"과 함께 파시즘을 상징하는 "노동문명궁"을 만들었다.#

긍정적인 평가로는 무솔리니에 의해 이탈리아의 혼란이 해결되고 경제도 발전했다는 점도 있다. 라테라노 조약을 체결해 바티칸 시국(교황청)과의 오랜 문제를 해결한 것도 베니토 무솔리니였고 무솔리니가 집권한 기간 마피아 세력이 크게 약화되기도 했다. 특히 마피아의 본진인 시칠리아를 북부 정권에 반항하는 남부 사람들의 기질을 제압하고자 더욱 공들여 탄압했다. 전쟁 후에도 한동안 시칠리아에 파견되는 사법 공무원들은 무솔리니 시절의 후광을 입기 위해 당시 시칠리아에서 근무한 공무원들의 자손들 위주로 뽑았다고 한다. 또한 말라리아가 창궐하던 낙후된 남이탈리아에서 말라리아를 몰아낸 것 역시 무솔리니 치세의 일이다.

상술했듯이 무솔리니의 경제 정책은 강력한 보호무역과 국책사업 투자를 통한 자급자족 지향이었다. 때문에 침략전쟁을 하지 않으면 망하는 수준이었던 나치 독일이나 일본[7] 같은 다른 추축국과 비교하는 건 실례이긴 했지만, 역시 오래 유지되긴 힘든 경제이기도 했다. 전쟁 때 중립을 유지해 장기집권했다면 프랑코 정권처럼 자본주의로 선회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탈리아가 축구 강국이 된것도 베니토 무솔리니의 공헌이라고 볼 수 있다. 1898년에 시작한 세리에 A가 오늘날과 같은 현대적인 리그로 전환된 것은 무솔리니의 공로이며,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의 성공적 개최도 무솔리니의 공로가 크다. 그 후로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정상권의 축구 강국이 된다.

정리하자면 무솔리니 집권 전후의 이탈리아의 혼란 상황과 경제 업적, 탁월한 개인숭배화 능력과 우민화 정책을 생각하면 2차 대전에 참전하지만 않았어도 종신 독재를 했을 정도의 능력은 있었다. 실제로도 20년 넘게 장기 집권했고 전후에도 파시스트 잔당들은 꽤나 잔존했다.


4. 어록[편집]


타인을 믿는 것은 좋지만, 안 믿는 것은 더 좋다.

동시기 독재자인 아돌프 히틀러이오시프 스탈린도 주변에 대해 병적으로 의심했던 것을 감안하면 독재자들의 전형적인 의심을 잘 보여주는 발언.


철학적 그리고 교리적 관점에서 나는 영원한 평화 따위는 믿지 않는다.


내게는 오직 나를 승리자로서 평화 회담에 출석시킬 수 있는 수천 명의 희생이 필요하다.

그의 발언과는 정반대로 전투에서 연달아 패배해 무의미한 희생만 속출한 데다가 무솔리니 자신의 목숨까지 앗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발언이다.


다른 나라가 역사를 쓸 때 수수방관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누가 이길 지는 문제가 아니다.


인민을 계몽하려면 그들을 자극해 전투로 내몰아야 한다.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국가를 떠나서는 인간과 영혼의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단체도 국가를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국민이 국가를 발생시키는것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창조한다.



5. 평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베니토 무솔리니/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개인사[편집]


베니토 무솔리니에겐 애인이 많았는데 그중 베니토 무솔리니를 전폭 지원했던 첫 애인 이다 달세르가 꽤 유명하다. 이다 달세르는 무솔리니의 아이까지 낳았지만 버려졌고 무솔리니에 대항하다가 정신병자로 몰려 결국 죽는다. 2009년에 이탈리아에서 개봉한 마르코 벨로키오가 감독한 영화 '승리'는 바로 이 이다 달세르를 다룬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ussolini1.gif

흔히 인터넷상에서 "피자 도우를 돌리는 두체"라고 알려진 무솔리니 움짤. 참고로 원본은 1937년 팔레르모 항구에서 연설중인 무솔리니를 촬영한 AP 통신의 영상이다.[8] 원본 영상

히틀러 못지 않은, 아니 연설의 질적인 측면에선 히틀러는 따위로 만들어버리는 엄청난 연설가였다. 히틀러의 연설은 워낙 강렬한지라 깊은 인상을 심어 주긴 했지만, 퍼포먼스를 제외한 연설 내용 자체는 앞뒤가 안 맞고 견강부회로 가득차 있어서 정신병자의 히스테리라고 혹평받기도 했다.[9] 허나 무솔리니는 히틀러와는 달리 묵직한 바리톤 목소리로 "문장이 되는" 깔끔한 연설을 했다. 이는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지성 차이로 환원될 수 있다. 히틀러는 고교 중퇴, 무솔리니는 고졸[10]이라서 학력상으로는 별 차이 없었지만[11], 베니토 무솔리니의 독서량이나 문필력, 경력은 히틀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풍부했다. 생애에 나와있듯 초등학교 교사[12], 잡지 편집장, 신문사 사장 경력도 있었으니.[13] 그런데다 이탈리아어의 속도가 기관총처럼 빠르고 음악성이 있기에 무솔리니의 연설도 청중에게 강한 인상을 심고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일자 무식인 히틀러와는 달리, 외국어 실력도 월등해, 독일 방문때 나치 집회에서 독일어로 유창하게 연설하기도 했다. 이탈리아어 억양이 상당히 심하지만 영어도 꽤 잘했다. 스위스의 로잔 대학을 다니며 익힌 독일어, 프랑스어 등을 익혔다.

무솔리니 독일어 연설

무솔리니 영어 연설[14]
파일:external/www.antipodean.com/10654.jpg

목욕이나 옷 갈아입는 것을 귀찮아하던 지저분한 사내였지만, 누가 이탈리아 사람 아니랄까 봐 패션 감각은 제법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예컨대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같이 찍은 사진을 보면 정말 옷을 잘 입는다. 1934년 베니토 무솔리니를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를[15] 처음으로 방문한 히틀러는 노란색 비옷(레인코트)에[16] 줄무늬 바지를 입고 에나멜 가죽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무솔리니는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근엄해 보이는 제복에 허리에는 제례단검을 차고 은빛 박차가 달린 검은 부츠를 신고 나타났다. 이 모습을 본 히틀러는 굉장히 창피했는지 이후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파일:800px-HitlerMussolini1934Venice.jpg

집권하기 전에도 무솔리니는 화려한 모습을 보이고 다녔다고 하는데 초등학교 교사가 되려는 임용고시를 치르면서도 아나키즘을 상징하는 검은 옷을 입고 입에 담배를 문 채 등장했으며, Il popolo d'italia의 기자로 활동할 당시에는 수류탄서진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자신의 '두체'로서 이미지를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홍보하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했다. 사진을 찍을 때는 근엄한 이미지를 위해 무조건 밑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각도로 찍었고 키가 크게 보이게 키높이 구두를 신는 등 안간힘을 썼다.[17] 심지어 자신이 하루에 4시간만 자면서 이탈리아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로마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 불 20시간식 켜놓고 자신은 낮잠까지 다 잤다고 한다.
파일:external/bp2.blogger.com/Mussolini_biografia.jpg

집권 11년차인 1933년에 실행된 기동훈련에서는 상의는 흰색 나비넥타이를 매고서 흰색 셔츠를 입은 연미복이고 하의는 기병 바지와 기병 장화, 손에는 선원들이 즐겨 쓰는 모자가 들려 있었다. 그야말로 균형에 맞지 않는 코디인데 이것은 베니토 무솔리니가 당시 상류층과 중산층 이하 계층 모두에게 호감을 사려고 취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해를 기점으로 무솔리니의 공식 복장은 군복으로 통일되어 갔다.)

히틀러가 나치당을 대상으로 한 통제권과 국내 자본가들을 대상으로 한 통제권을 하나씩 절차를 거쳐가면서 확실히 장악했는데 무솔리니는 불안정한 권력 기반이 있었기에 일사불란한 전체주의다운 통치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가 히틀러 치하의 독일보다 그나마 사람 살만한 곳이라고 평가받는 데에는 무솔리니가 히틀러만큼의 똘끼가 있지 않았다는 점도 있지만, 권력의 불안정성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아나키즘도 상당히 세력이 있는 사상이었고 혁명을 지향한 사상으로 공산주의 못지 않은 파급력이 있던 사상이었던 데다가 당시에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보다 잘 조직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나키즘의 "개인의 단체를 대상으로 한 일사불란하게 자발하는 단결"이라는 부분이 파시즘의 협동주의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아직 혁명을 지향한 인민주의가 분화하지 않은 시절에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 얼마든지 아나키즘다운 코드를 차용하는 게 가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컨대 무솔리니는 딱 잘라서 아나키즘·사회주의·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으로 분류될 수 없는 "혁명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었다는 것. 베니토 무솔리니의 운동 자체가 혁명을 지향하는 보수주의이기도 하다.

나치의 군복 놀이는 이탈리아 파시스트를 따라한 것이다. 무솔리니는 나타나는 행사의 종류에 맞게 여러 종류의 군복과 모자를 공들여서 코디했다. 두세 종류 정도의 제복(군복형 제복+양복형 제복)에다가 정모 하나로만 나타나던 히틀러에 비해 훨씬 패셔너블.

그리고 의외로 공처가였고(그런데 수많은 애인을 거느리고 있었다.) 미신을 잘 믿어 누군가 사형하면 그 사람이 유령이 되어 자신을 보복한다고 굳게 믿는 겁쟁이였다.(그렇다고 안 죽이고 다닌 건 아니다.) 지금까지도 사회주의 혁명가, 좌파 사상가로 계속 회자되는 안토니오 그람시도 감방에 가둬놓기만 했을뿐 처형하지는 않았다. 물론 혹독한 감옥살이로 그람시는 거의 옥사할 때쯤 석방되었고 석방되자마자 사망한다.

그리고 피아트의 자동차보다 장인들이 만드는 알파 로메오의 자동차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알파 로메오 공장을 견학 중 신형 자동차를 애무하듯 어루만지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구입했다고 한다. 알파 로메오의 임원진이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자 무솔리니는 반드시 돈을 지불하겠다고 우겼고 임원진이 의논 끝이 5리라만 받기로 하였다. 무솔리니는 10리라를 건네주었는데, 임원진들이 잔돈으로 줄 5리라짜리가 없어서 한참을 당황해하자 '두 대 팔면 되잖소?'라고 소리치고는 두 대를 가져갔다고 한다.

을 무서워해서 탄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무솔리니가 말을 타고 있는 선전용 사진은 앞에서 말이 움직이지 않게 잡아놓고서 촬영한 뒤 잡아준 사람은 합성으로 지운 것이다. 실제로 보면 앞부분이 어색하다.

적국 영국수상 윈스턴 처칠이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한 적이 있다. 자기 사위도 총살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라는 게 그 이유였다. 다만 이는 진지하게 한 말은 아니고, 팔불출인지 사위를 매우 싫어한 처칠에게 존경하는 정치인이 누구냐고 그 사위가 물어봤을 때 한 말이다. 실제론 사위 치아노 백작이 처형될 때 무솔리니는 형을 취소할 수 없는지 독일에 문의했지만 아무 실권이 없는 꼭두각시였기 때문에 막을 수 없었다.

마오쩌둥에드거 스노우와의 인터뷰에서, 히틀러를 대상으로 해서는 경멸스럽게 반응했지만 무솔리니를 대상으로 해서는 꽤 높게 평가했다. (<중국의 붉은 별>에서) 그런데 2차대전 이전까지는 서구권에서도 이런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무솔리니는 파시즘을 개척한 새로운 사상가, 혼란에 허덕이던 이탈리아를 단결시킨 정치인, 전쟁위기 속에서 대타협(뮌헨 협정)을 이끌어낸 중재자 등으로 좌우익을 막론하고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가 많았고, 히틀러는 그런 무솔리니를 따라하는 짝퉁 정도로 폄하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18]

파일:4c9d3d25477a511d7b6a333a46aa9e8f.jpg
[19]

무솔리니의 막내 아들 로마노 무솔리니[20]의 딸, 즉 무솔리니의 손녀인 알렉산드라 무솔리니는 정치인이다. 1962년생으로 키가 174cm에 달해 지금 기준으로도 늘씬한 장신이며, 젊은 시절 뛰어난 미모로 각광받아 유럽판 플레이보이의 표지 모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 때문에 아직도 논란 중인 인물이다. 게다가 할아버지의 유훈을 이어받아 대놓고 극우 성향을 보여 예전에 쌓아 놓았던 이미지를 스스로 깎아먹고 있다. 유럽의회 의원을 지낸 적이 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전진 이탈리아(Forza Italia) 소속이다. 여담으로 알렉산드라 베니토 무솔리니의 이모가 바로 이탈리아 전설적인 여배우 소피아 로렌이다. 알렉산드라의 아들이자 베네토 무솔리니의 증손자인 로마노 플로리아니 무솔리니가 2021년 SS 라치오와 프로 계약을 맺었다.#

괴벨스와 프랑코, 도조 히데키와 히로히토 등 단신들이 많았던 추축국 지도자 중에서는 키가 제법 큰 편이였다. 169cm로...[21] 으로 가장 작은 사람은 이탈리아 왕국의 국왕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였다. 153cm.

베니토 무솔리니는 1928년, 자신의 정권이 공고화된 시점에서 자서전을 남겼다. 제목은 '나의 자서전'. 국내에 번역, 시판되어 있으니 관심있는 사람은 찾아보길.특유의 수사법과 박력있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일설에는 3년 전에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을 보고 그 정도는 나도 쓸 수 있다고 자서전을 썼다고 한다. 실제로 무솔리니 자서전은 히틀러보다는 간결하게 적혀 있다. 히틀러와 달리 학교 성적도 우수하고 언어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듯 하다.


7. 미디어에 등장하는 베니토 무솔리니[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베니토 무솔리니/창작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여담[편집]


  • 북아프리카 전선의 독일군에게 지급되던 전투식량 중 이탈리아군이 만든 쇠고기 통조림을 독일군들이 부르던 별명이 ‘멍청한 무솔리니(Arme Mussolini)’ 혹은 ‘무솔리니의 엉덩이(Arsch Mussolini)’였다고 한다. 통조림에 AM(Amministrazione Militare)이라고 적혀있었는데, 통조림이 하도 맛이 없어서 붙은 별명이었다. 이 외에도 ‘늙은이(Alte Mann)’라는 별명도 있었다.

  • 비록 무신론자였지만 아돌프 히틀러처럼 이슬람교무슬림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이슬람교를 존중했다. 이슬람공포증을 가진 현대의 이탈리아 극우와는 차이점을 보인다. 사실 무솔리니 시대인 1930년대에는 서유럽, 남유럽에 거주하는 무슬림이 거의 없었고 이로 인해 대부분 별 감정이 없었다. 서유럽, 남유럽에 이슬람이 본격적으로 정착한 것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아랍 지역의 정치적 불안이 커짐과 함께 인력난을 겪던 유럽 상황 때문. 파시스트 이론 정당화에 무슬림을 예시로 써먹을 정도. 물론 이슬람교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것과는 별개로 리비아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혹독한 탄압을 가했으며, 독립운동 진압과정에서 8만여 명 이상의 리비아인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서 혹독한 환경에서 죽어나가야 했다.



  • 의외로 노르웨이 출신의 위대한 극지 탐험가인 로알 아문센과 악연이 있는데, 무솔리니의 똥고집도 있었지만,[22] 결정적인 것은 로알 아문센과 동행한 이탈리아 출신 비행선 제조기술자인 움베르토 노빌레 때문이다. 이탈리아인의 애국심 고취를 위해 노빌레를 지원했으나 노빌레는 안하무인이라 아문센, 심지어 무솔리니조차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다가 그 때문에 자신의 북극 탐험대를 조난시켜버리고 그들을 내비둔 채로 먼저 구조됐는데 이 과정에서 그를 구하려 행동한 대인배 아문센은 정작 그를 구하려다 숨졌다.[23] 이에 무솔리니는 노빌레를 법정에 세워 노빌레 때문에 탐험대가 조난당하고 그들을 두고 구조됐다는 경위까지 밝혀 영혼까지 털었다. 거기에 자국 언론도 그를 '이탈리아의 수치'로 내세우며 육군에서 불명예 제대 및 그의 가정도 파탄됐다. 애초에 북극점 도달 실패는 둘째치고 자국의 이름을 딴 '이탈리아 호'를 그의 실책으로 추락시켰고 사상자도 발생한데다 순전히 선의로 그를 도운 전 대장인 아문센도 죽게 만들었으니 노빌레는 평생을 어느 누구도 그를 까도 정당한 자였다. 우습게도 욕을 실컷 먹었는지 노빌레는 93살로 장수했다. 물론, 가정적으로 무너지고 죽을 때도 극소수 지인들이나 참가한 장례식이 열릴 정도로 비참한 장수였지만 말이다. 심지어 이탈리아에서 못 살고 소련에서 살았다가 다시 미국으로 갔다가 2차대전이 끝나고서야 이탈리아로 돌아오는 등 풍파를 많이 겪었다.


9. 둘러보기[편집]







추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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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2~1943의 이탈리아 왕국과 1943~1945의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파일:whattheydo.png 파시즘 여부 논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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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7년(1922~1929), 중간 4년간(1932~1936)은 외무장관 겸직.[2] 2018년 6월 16일 방영[3] 영상 매체의 탄생 이후 20세기의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대표적인 3명의 "독재자"의 민낯을 그린 다큐멘터리이다.[4] 무솔리니의 최후도 다큐 후반부에 다루어지고 있다.[5] 토목과 건축을 아울러 이르는 말.[6]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는 독일의 아우토반이 아니라 이탈리아의 아우토스트라다이다.[7] 애초에 나치 독일의 독일 국방군 자체가 빚내서 키운 군대였다. 즉, 언젠가는 그 금액을 전부 상환해야 하는 판인데 당시 제3제국에는 그만큼의 여유 자본이 없었다. 결국 아돌프 히틀러는 침략을 통한 전시 경제 체제만이 해법이라고 결론지었고, 이 때문에 전시경제로의 재편에 반대한 햘마르 샤흐트는 실각하였다. 이러한 침략의 동기는 제3제국의 점령지에서 전쟁범죄가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일본 제국의 경우도 미국발 대공황으로 인해 경제가 아작난 상태였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식민지를 넓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결과가 만주 사변중일전쟁이다.[8] 연설을 하면서 손을 계속 돌리는 것 때문인지 해외 밈에서는 '무솔리니 헬리콥터'로 불린다.[9] "우리는 부자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독일인은 스스로 도와야 한다. 가난한 자든 부자든 모두 서로 도와야 한다!", "여기 있는 몇 명은 공산당을 박멸한 나를 용서 할 수 없겠지만, 난 다른 정당들도 없애버렸다!" 같이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상한 연설이 많았다. 무슨 박근혜 화법도 아니고[10] 다만 실제로는 로잔 대학에서 빌프레드 파레토 교수의 제자가 되어 사회과학을 전공하고 볼로냐 대학에서 교사 자격증을 딸 정도는 되었다. 적어도 당시 히틀러와 달리 이탈리아에서 지식인 행세를 할 정도의 공부는 했다고 볼 수 있다.[11] 다만 이 시대엔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의 열강국가들도 대학교육은 소수의 공부잘하거나 잘사는 집안에서나 받는것였고, 따지고보면 무솔리니나 히틀러나 평균적으로 볼때는 학력이 떨어지기는 커녕 상당한 고학력자였다. 당시 이탈리아 남부나 갈리치아 같은 낙후된 지역은 초등교육만 받고 일하러가거나 부모님 일 도와주는것이 일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20세기 초반 보병 1개 중대에 대졸자가 한명 있으면 다행인 정도다.[12]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제대로 된 체계가 잡힌 국가에서 교사를 지낸 적이 있다는 건 그 사람은 당대 기준으로 지식인에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는다는 뜻이다.[13] "파시스트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는 니콜로 마키아벨리군주론 연구로 볼로냐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마키아벨리로부터 배운 것은 ‘이기적인 인간 본성’과 ‘힘에 대한 찬양’이었다"(곽준혁 숭실대 가치와윤리연구소 공동소장). 집권 후의 명예박사 같은 일이었던 것 같아 보이지만, 명예박사 학위는 '논문심사 없이' 사회적 평판 등으로 수여된다. 그러나 무솔리니는 자기가 논문을 직접 쓴 뒤 심사를 받았다. 즉. 무솔리니는 명예박사 학위를 주겠다는 대학 측 제안을 거부하고 일부러 제대로 된 박사 학위 심사과정을 통과하여 정식 학위를 받아냈다. 물론 그 박사 학위 심사과정이라는 게 과연 정상적으로 이루어졌을까라는 의문을 갖다 붙일 수도 있겠지만. [14] 연설은 미국과 이탈리아가 친선관계를 가지자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탈리아 억양이 너무 강한데다가 피플을 피(pee)로 발음해서 영미권에서는 엄청난 코미디 영상이 되었다. '나는 위대한 미국 국민들에게 경의를 보낸다'가 '나는 위대한 미국인 오줌에 경의를 보낸다'로 들리기 때문이다.[15] 회담 장소는 베네치아였다.[16] 물론 당시의 레인코트는 현대 한국인이 익숙한 빤딱빤딱한 1회용 비닐옷이나 아웃도어 활동용 의류는 아니고, 방수성이 있는 천으로 만들어진 코트로써 정장의 일부로 취급될 수 있는 옷이었다. 트렌치 코트 등을 참고하자.[17] 이후 만들어진 히틀러의 선전 영상에서도 비슷한 수단들이 동원되었다.[18]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의 일기에 히틀러의 반유대정책을 두고 "무솔리니 흉내나 내는 조잡한 복제"라고 깐 부분이 있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러브크래프트 본인은 당대 기준으로도 심각한 인종차별주의자였지만 결혼은 또 유대인과 했고(나중에 이혼했지만 그뒤에도 서로 잘 지냈다고), 히틀러에 대해서도 무솔리니와 마찬가지로 호감을 표한 적이 있었다. 그런 사람조차도 히틀러식 인종주의가 얼마나 비과학적인지 세세하게 깠을 정도니 히틀러가 얼마나 답없는 인간이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또 왜 인종차별주의만큼은 끝내 버리지 못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 [19] 2016년 모습[20] 화가 겸 재즈 피아니스트. 1995년 내한공연 경험도 있다.[21] 베니토 무솔리니가 가장 컸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루마니아의 콘두거토르 이온 안토네스쿠는 170cm였고, 호르티 미클로시는 177cm, 흔히들 키가 작았다고 알고 있는 아돌프 히틀러도 175cm로 그나마 베니토 무솔리니보다는 장신이었다. 또한 고노에 후미마로는 무려 180cm가 넘는 엄청난 장신이었다.[22] 아문센이 북극 횡단 비행을 위한 비행선을 이탈리아에서 구하려고 했는데 처음엔 이탈리아에서 공짜로 제공하려다가 무솔리니가 이탈리아 국기 안 붙이면 제공 안 한다고 억지를 부려서 아문센은 그냥 노르웨이 왕실에 하소연하여 노르웨이에서 비행선 구입 비용을 제공받았다.[23] 이 부분과 관련해서 정확히 말하자면 1차 비행에서는 둘 다 무사히 살아왔는데 여기서 노빌레는 자기가 이탈리아군 장교이고 선장이라는걸 내세워 아문센과 충돌을 자주 벌이고 노르웨이인을 차별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1차 비행 후 아문센 쪽이 아무래도 더 잘 알려지다보니 노빌레가 이에 열폭해서 아문센 없이도 가보겠다고 무솔리니도 말리는데도 강행했다. 그래서 무솔리니는 그가 실종되자 관심을 꺼버렸고 정작 노빌레와 사이가 제대로 틀어진 아문센은 무리를 해서라도 노빌레를 구하려다가 실종되었다. 그렇게 관심을 껐다가 그가 귀환한 소식을 보고받았는데, 탐사대장이란 작자가 두체한테 고집부리는 걸 보니 보나마나 버럭버럭 고집부리다 탐사대원은 대부분 실종되었고, 거기에 아문센도 구조를 서두르려다 실종. 비록 아문센과 얼굴 붉힐 일은 있었어도 그는 남극을 정복한 노르웨이 출신의 세계적인 탐험가. 가지 말라고 막는데도 고집부려 출발하고, 팀원들 대다수와 타국의 탐험가까지 죽게 만들었으니 무솔리니의 감정이 멀쩡할 수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