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 골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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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 골디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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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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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베리 골디
BERRY GORDY

헌액 부문
아멧 어터건 상[1] (Ahmet Ertegun Award)
멤버
(개인 자격)
입성 연도
1988년










베리 골디
Berry Gordy


파일:Berry_Gordy.jpg

본명
베리 골디 3세
Berry Gordy III
이명
베리 골디 주니어
Berry Gordy Jr.
출생
1929년 11월 28일 (94세)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직업
음반&필름&텔레비전 프로듀서, 경영인, 송라이터
장르
R&B, 소울, , 로큰롤, 두왑
활동
1953년 ~ 2019년[1]
설립
모타운 (1959)
재산
4억 달러 (한화 약 5,200억 원)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베리 골디는 모타운의 창업주 및 사장으로서, 미국 흑인 사업가 중 제일 성공한 사람 중 하나이다.


2. 생애[편집]


디트로이트 출신의 베리 골디는 원래 재즈 음악을 좋아하여 동네에서 작은 재즈 레코드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빚 때문에 운영을 접고 디트로이트에 많던 자동차 공장 중 GM 공장에서 일하며, 노래 쓰는 데에도 재능이 있어 작곡가 활동을 병행하다가 대박을 터트리게 된다. 1958년 미국 유명 R&B 가수 재키 윌슨의 싱글 "Lonely Teardrops"를 공동 작곡했는데 그 곡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면서 베리 골디는 아주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베리 골디는 더 이상 레코드 상점을 운영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고, 음반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한다. 그는 당시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였던 디트로이트의 별명 "Motortown"을 줄여 "Motown"이라고 회사 이름을 지었다.

이 당시 베리 골디가 한 말이다.

나는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모타운 레코드를 세우는 꿈을 생각했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 부품들이 조립된 후 완성된 새 차로 공장 문을 나가듯이, 모타운 레코드의 문을 들어선 누군가가 비록 길 가던 꼬마 아이더라도 결국 문을 나갈 때는 스타가 되는 것이다.

- 베리 골디


1959년 당시 모타운 레코드의 창립 자금 중 800 달러를 자신의 친구 스모키 로빈슨에게서 빌리는데, 스모키 로빈슨과 그의 그룹 "The Miracles"는 모타운 최초의 스타가 되었다. 모타운 최초로 빌보드 핫 100 탑 10에 들었고,[2] 더 미라클스는 모타운을 대표하는 그룹 중 하나가 되었다. 스모키 로빈슨은 1980년대에 솔로 가수로도 성공했다.[3]

모타운 레코드의 최초 탑 40은 1960년 히트한 미국 흑인 가수 Barrett Strong의 "Money (That's What I Want)라는 곡인데, 빌보드 핫 100에서 23위를 기록했고 말 그대로 돈을 예찬하는 노래이며 베리 골디가 직접 썼다. 이 당시까지는 베리가 작곡가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그 당시 쓴 대표 노래가, 재키 윌슨의 "That's Why (I Love You So)" (1959),[4] 마브 존슨의 "You Got What It Takes" (1959),[5] "I Love the Way You Love" (1960),[6] 1960년 발매된 에타 제임스의 히트곡 "All I Could Do Was Cry".[7]

베리 골디는 이후 모타운을 미국 최고 레코드 레이블 중 하나의 반열에 올리고 흑인 음악을 훨씬 더 대중화하는데 기여함으로써 미국 흑인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자세한 내용은 모타운 문서 참조.


3. 여담[편집]


  • Party Rock Anthem으로 유명한 듀오 LMFAO가 바로 베리 골디의 아들과 손자로 구성된 듀오다.
  •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육촌 관계이다. 정확히는 그의 할아버지인 베리 골디 1세는 백인 농장주와 그가 가지고 있던 흑인 노예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그 백인 농장주가 원래 부인과 낳은 아들이 지미 카터의 외할아버지였기 때문에 베리 골디 1세와 지미 카터의 외할아버지는 이복 형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카터의 장수 유전자가 육촌인 자신에게도 닿은 것인지 현재 90이 넘도록 장수하는 중.
  • 재혼을 여러번 했고 자식도 여러명 있는데, 아들이 LMFAO의 DJ 레드푸다. 그리고 마이클 잭슨의 친구이기도 한 가수 락웰(Rockwell)도 바로 베리 골디의 아들로 본명은 케네디 윌리엄 골디이다. 그가 1984년 발표한 데뷔 앨범 에 수록된 곡에 수록된 '나이프(Knife)'가 한국에서 더 유명하다. 정작, 나이프는 미국에서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한 노래였다. 거꾸로 이 앨범 메인 노래인 Somebody's Watching Me는 세계적으로 꽤 대박이었는데 바로 마이클 잭슨이 코러스를 맡았었다. 이 노랜 미국에서 빌보드 핫 100 2위, 빌보드 R&B 차트 1위에 오르고 200만장이 넘게 팔렸다. 하지만, 락웰은 1985, 1986년에 내놓은 2집과 3집이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하여 가수 활동을 그만두고 모타운 레코드 사업에 전념했다.
  • 1960~1970년대 대중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당시엔 너무 바빠서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음악계에서 물러난 후에야 이해하게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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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질적으로는 1980년대 말 모타운을 매각하면서 음악계에서 한발짝 물러난 상태였다. 간간히 고문 활동이나 음악 행사에 참석하는 수준이었는데 그것도 그만둔다는 뜻으로 보인다. 출처[2] 1961년 그들의 소울 싱글 "Shop Around"가 빌보드 핫 100 2위까지 올라감. 1961년 빌보드 연말 차트 23위.[3] 1980년 "Cruisin'", 1981년 "Being with You", 1987년 "Just to See Her", "One Heartbeat" 등의 대히트곡을 기록했다.[4] 빌보드 R&B 차트 2위, 빌보드 핫 100 13위, 1959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 90위[5] 빌보드 R&B 차트 2위, 빌보드 핫 100 10위, 1960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 46위[6] 빌보드 R&B 차트 2위, 빌보드 핫 100 9위, 1960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 65위[7] 이 곡은 빌보드 핫 100 33위와 빌보드 R&B 차트 2위를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