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사라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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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사라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Бессарабская Советская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파일:적기.svg
국기
1919년 5월 5일 ~ 1920년 9월
수도
오데사 (명목상)
키시너우
언어
우크라이나어
정치체제
사회주의
역사
• 1919년 5월 5일: 정부 수립
• 1920년 9월: 멸망

지도
파일:ss1ss.png
파일:낫과 망치.svg

1. 개요
2. 건국과 멸망


1. 개요[편집]


베사라비아 지역 내에 소비에트 공화국을 세우려는 목적으로 소비에트 러시아의 후원을 받아 만들어진 공화국 이였다. 이 정부가 관할하는 유일한 영토는 1919년 5월 27일 부터 5월 28일까지 일어난 봉기 동안의 반란군의 수도였다. 1919년 정부가 해체되는 동안, 1924년 9월 다른 반란군이 남부 베사라비아의 일부 마을을 며칠 동안 통제하면서 봉기기간 동안에 되살아났다.

2. 건국과 멸망[편집]


베사라비아 공화국은 1919년 5월 5일, 오데사에서 열린 제2차 지역 볼셰비키 회의에서 망명 임시 노동자 농민 정부로 선포되었고, 이듬 해, 5월 11일, 티라스폴에서 소련의 공화국으로 설립 되었다. 하지만 오데사티라스폴 모두 역사적인 베사라비아 영토토의 일부분이 아니였으며, 자칭 베사라비아 정부는 루마니아와 연합한 베사라비아의 어떠한 지역도 통제하지 못했다. 사실상의 정부는 프랑스 군 당국과 군사 및 정치적 정착을 놓고 협의를 하였으나, 1919년 9월, 데니킨의 군대가 오데사 지역을 장악하면서 해체되었다. 서유럽 열강들은 1920년 파리 조약에 의해, 베사라비아와 루마니아의 연합을 인정했다. 그러나 미국은 러시아가 회담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약 체결을 거부했다. 이는 소련이 베사라비아를 재탈환하려는 지속적인 욕구에 도움을 주었고, 소련은 20년 후에 베사라비아를 재탈환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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