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복스/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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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문서 ]



1. 개요
2. 역대급 안티
3. 이하늘의 비난
4. 문희준 극성 팬의 간미연 살해 협박


1. 개요[편집]


베이비복스의 사건 사고를 정리한 문서.


2. 역대급 안티[편집]


베이비복스는 사실상 당시 활동했던 모든 남자 아이돌[1] 팬들의 공공의 적이나 다름없었다. 인기를 분산시켰기 때문이다. 어느 아이돌 가수가 안티에게서 자유롭겠냐만 베이비복스는 그 당시의 극성팬들이 많았던 문화를 감안해도 정도가 지나쳤고, 그야말로 '팬을 제외한 나머지가 다 안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극심한 안티에 시달렸다. 오죽하면 활동하고도 10년도 훨씬 지난 지금에도 안티 하면 여전히 이들이 회자될 정도다.

안티들은 대부분 여중생, 여고생들이었다. 남자 아이돌의 팬들이 대부분 여학생이기도 하고, 그 또래 어린 학생들은 미숙한 정신상태를 갖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2017년 2월, 베이비복스 활동 당시 팬이었던 사람이 당시 팬 생활을 하면서 털어놓은 고충글을 올렸는데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 글쓴이는 베이비복스의 데뷔 초창기부터 공방을 다니는 등 꽤 열렬한 팬이었다고 하며, 데뷔 연차가 차면서 여성 팬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데뷔 초창기에는 현장에 거의 없던 어린 여성 팬이라 베이비복스 멤버들이 알아보고 챙겨주기까지 했던 골수팬이었다고 한다.

이 당시의 충격이 너무 커서 아직까지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 글쓴이뿐만 아니라 약 20년 가량이 지난 지금도 당시 팬들 중에서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글쓴이의 탈덕 이유가 '언니들이 한국 팬들 보면 테러 당하던 시절이 생각나는 게 보여서'라고 하니까 말 다 한 상황이다.

어느 정도 과장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반박보다 공감하는 내용의 댓글이 훨씬 많은 상황인 데다[2] 링크된 글의 내용 중 대부분이 기사나 영상 자료 등으로 남아있기에 증거를 함께 첨부하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공개 방송마다 수백 명의 남자 아이돌 극성팬들이 다 같이 베이비복스를 향해 "꺼져라", 혹은 입에 담기도 힘든 인신공격성 멘트를 외쳤다.

-대표적인 예시로 2000년 7월 같은 방송에 출연한 신화 팬들이 이러한 욕설 테러를 저질렀고, 결국 이 사건으로 신화는 다음 회차 출연 정지 및 차트 제외라는 중징계를 받았다.[3]


2. 베이비복스 출근길에는 본인이 좋아하는 남자 아이돌의 스케줄이 없어도 찾아와서 음란 사진, 면도칼 등으로 협박. 이 중에는 죽으라는 협박 문서와 혈서는 일상다반사였다. 특히 베이비복스 멤버들한테 악수를 청하다가 면도칼을 집어넣어서 손을 다치게 하는 일도 있었다.

- 당시 신문 보도로도 나왔던 면도칼 테러


3. 베이비복스 숙소에 죽은 시체, 고양이 시체를 보내 매니저나 팬들이 치우는 건 자주 있던 일. 대문에는 각종 인신공격 등의 문구가 써있었다. 칼은 종류별로 배송되었다.

- 심은진이 인증하는 고양이 시체 테러, 커터칼 인증


4. 베이비복스 공연에 모두 몰려와서 "꺼져라"를 외치는 테러. 최소 300여 명 최대 수천 명의 극렬한 안티들 앞에서 공연해야 했음. 베이비복스가 무대 나오면 풍선을 밑으로 숨긴다든지, 고개를 단체로 숙인다든지, 소위 '텐미닛'[4]

을 한다든지, 공개 방송이든, 콘서트든 꾸준히 계속되던 엽기적인 행각을 벌였다.

- 당시 뉴스 보도 자료에서 베이비복스의 언급


5. 어느 날, 출근길에서 또 안티들이 떼거지로 몰려와서 이들을 조롱하고 위협하자 당시 16살이었던 윤은혜는 차에서 한동안 내려오지 않다가, 결국 매니저한테 거의 질질 끌려나오면서 울움을 터뜨리며 오늘은 무대를 서지 않으면 안 되냐고 애걸복걸. 그날도 결국 안티들이 무대 위에서 중지 손가락을 올리고 호응 없이 침묵했음.

- 윤은혜 "베이비복스 시절, 아픈 기억이다... 추억이 없다" 솔직 고백[5]


6. H.O.T. 팬들의 황산 테러 위협에 결국 베이비복스 멤버들은 팬들한테도 걱정되니까 공개방송 오지 말라고 당부.


7. 자신의 신상까지 올리며 찾아가서 베이비복스를 죽이겠다는 글을 지속적으로 올렸던 안티 팬.

- 당시 베이비복스 측의 협박범 소재 확인 보도 자료

-베이비복스 측이 자신들의 협박범으로 지목한 사람은 울산시에 거주하는 C모양. 그는 최근 베이비복스 측에 간미연 등을 비방하는 글과 테러 위협 메시지를 담은 디스켓에다 자신의 이름과 주소 등이 적힌 편지까지 전달하는 등 대범하게 이들을 협박하기 시작했다는 것.

- 베이비 복스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수 차례 테러 위협이 있어도 철 없는 학생의 소행이겠거니 하며 그냥 넘겼는데 최근엔 자신의 소재까지 밝히며 '한 번 해보자'는 식으로 나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며 "이들은 베이비복스가 다시 활동을 시작하자 '간미연 사건'은 자작극이란 소문을 퍼뜨리며 조직적으로 활동을 방해해와 진실을 밝히는 차원에서 경찰에 알렸다"고 말했다.


8. 결국 베이비복스 멤버들은 이런 격동을 함께 겪은 팬에게, "앞으로는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 기억 못 줘서 미안하다. 우리보다 더 유명한 사람 좋아해"라고 언급.

- 링크 전문 中.


9. 한 괴한이 윤은혜에게 간장, 식초, 고춧가루, 후추, 모래 등 자극적인 식재료를 넣은 물총을 쏘아 눈을 크게 다치게 한 사건도 있었다. 눈에 이물질을 직접적으로 맞은 윤은혜는 부상이 심각하여 실명 위기까지 겪었다.


이 외에도 링크 안의 내용이 너무 많아서 모두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가히 충격적인 내용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거기다 이 글에 대해 반론은커녕 당시를 기억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더욱 충격적이다.

이 폭로가 화제가 되고 여기저기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한 문희준의 팬이 베이비복스와 그들의 팬을 일본군 위안부에 빗대어서 표현한 댓글이 큰 논란이 되었다. 해당 팬은 안티성 어그로가 아니라 해당 사이트의 고정닉 사용자라는 게 더 충격적이다. 해당 팬덤은 아직도 추억팔이만 할 뿐 진정한 사과도 하지 않는 것에 혀가 차진다.

유독 보이그룹 팬들의 견제가 심했던 1세대 걸그룹들 중 유달리 베이비복스가 타겟이 된 배경에는 걸그룹 중 섹시 컨셉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도 한 몫 했다. 비슷하게 센 컨셉을 내세웠던 디바는 섹시 컨셉을 지향하지는 않았던 반면, 베이비복스는 노출이나 퍼포먼스에서 섹시를 강하게 강조했다. 때문에 '노는 언니(일진)들' 이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이는 소위 머글이라 일컬어지는 일반 대중들의 지지를 얻는 데 장애가 될 소지가 다분했다. 핑클이나 S.E.S.는 상대적으로 부담 없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들을 공격하는 보이그룹 팬들을 '빠순이'라고 지칭해 비난할 여지를 만들 수 있었지만, 베복은 당시 기준으로는 앞서 언급된 이미지 때문에 대중의 호응을 얻는 게 힘든 상황이었다. 오히려 안티들의 공격에 덩달아서 동조하는 지경까지 몰렸으니 안타까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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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하늘의 비난[편집]


2007년 2월 24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어느 여자 스타의 일생' 편 캡쳐 요약.[6]

7집 타이틀곡인 'Xcstasy'는 힙합계에선 신적으로 추앙 받던 2Pac의 죽기 전 감옥에서 힘든 심경을 담은 미공개 곡을 합법적으로 돈 주고 사서 샘플링했으며, 그 중 한 멤버와 대화를 주고받는 식으로 가사를 붙인 곡이다.

그런데 DJ DOC이하늘이 샘플링 곡을 두고 당시 자신이 출연하던 엠넷의 힙합 프로그램 '힙합 더 바이브'에서 '2PAC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 베이비복스는 빠따 좀 맞자'[7]라 언급했고, 이 발언이 스포츠 신문을 통해 기사화되어 당시 7집 타이틀곡 엑스터시의 작업 및 랩 피처링을 맡았던 플로스 피(Floss P)의 귀에 들어가면서 사태가 커지게 된다. 플로스 피는 'DJ DOC도 미국 랩을 따라하는데 남의 것을 아니라 할 자격이 없다'고 반박했고, 이하늘이 이에 대한 반박글을 쓰면서 문제의 '미아리[8] 복스', 'SEX 가수', '썅년' 등의 폭언을 쓰게 된다.

여기까지는 단순히 이하늘의 잘못이겠지만, 이하늘이 문제의 발언 후 잠수를 타고 있는 동안 해당 단어를 계속 되새김질하는가 하면, 몇몇 연예 언론들은 진작 7집 활동 초반에 마무리된 표절 해프닝[9]을 확대 해석하여 베이비복스에게 표절 가수라는 오명을 씌우기도 했다. 심지어 소속사인 DR 뮤직마저 이하늘과 싸우는 데 모든 신경을 기울인 나머지 저런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대처하지 않았고, 저작권에 대한 문제는 심은진이 직접 해명해야 하기까지 했다. 이와 같이 분명 자신들을 둘러싼 싸움인데 아무도 자신들을 배려해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 멤버들의 멘탈은 너덜너덜해지고 있었다.

이하늘은 일식집에서 공개 회견을 가져 베이비복스에게 사과를 했지만,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건 나와 DR뮤직의 싸움이다'라는 뜻을 분명히 한 데다 기자회견 이후 돌연 입장을 바꿔 베이비복스에게 사과할 뜻이 없다며, 그런 표현 사실 니들한테 잘 어울린다며 끝까지 적대감을 보인다. 결국 DR뮤직 측은 이하늘을 고소하여 승소했지만, 베이비복스 멤버들 스스로가 원하지 않아 기사화되지 않았다. 만약 기사화됐다면 '미아리복스 파문, 이하늘 패소' 같은 타이틀을 뽑아서 같은 단어로 또 되새김질을 했을 것이 뻔하니.

1세대 아이돌의 황혼기였던 이 시기 더블 타이틀곡이었던 'Xcstasy'와 'Play Remix' 부진에 이런 사태까지 겹쳐지면서 베이비복스의 7집 활동은 끝이 좋지 않게 막을 내렸고, 소속사와의 계약 기간 만료 후 재계약 논의도 없이 그냥 각자 갈 길을 갔다. 솔직히 저런 상황에서 누가 재계약을 하겠는가. 대놓고 공식 해체는 아니었지만, 활동 내내 시달렸던 안티 공격부터 시작해 뜬금포 간미연문희준과 열애설이 나는 바람에 무개념한 문희준의 팬들로부터 살해 협박 및 각종 테러를 당하는 등 많은 고초를 겪은 데다가[10] 2016년 기준으로는 그저 그렇겠지만 섹시 컨셉 푸쉬와 이하늘 사건, 소속사 문제 등을 겪으면서 회의감을 느낀 멤버들이 심은진의 탈퇴를 시작으로 뒤를 이어 계약 기간이 끝난 사람부터 나간 것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해체 후 윤은혜가 잘 나갔고 나머지 멤버들도 미약하게나마 연예 활동을 계속하니까 망정이지, 베이비복스 자체만 놓고 보면 이하늘의 폭언 한 마디가 5명 인생에 많은 악영향을 끼친 셈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이하늘은 미아리복스 발언은 지나쳤다고 사과했지만, '투팍의 노래를 상업적으로 이용해 그를 2번 죽였다'라는 발언은 사과할 의향이 없음을 밝혔다. 사건 몇 개월 후 발매된 본인들의 새 앨범에 '베이비복스 디스곡'을 넣으려고 했다고 홍보하거나, 본인들 콘서트에 '미복 데려와서 빨간 조명이라도 틀 걸 그랬다'며 뒤끝을 보였다.

2Pac이 힙합 음악계어서 전설적인 인물인 것을 감안해도 절대 이하늘의 발언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왜냐면 이하늘 자신은 힙합에 대한 자부심은 그렇게 높으면서 한 예능에서 그룹 백두산유현상과 부활의 김태원이 있는 앞에서 '락 음악의 최고봉은 문희준이다'라며 다른 장르는 폄하하는 발언을 했다. 이건 당시 락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문희준을 비난하는 것에 대한 불만에서 나온 얘기였지만, 문제는 자기 자신은 힙합 자부심에 후배 가수에게 단순 악플과는 비교가 안 될 더한 짓을 해놓고 이중적 행태의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해당 발언은 아무리 힙합계의 전설인 투팍의 음원을 샘플링했어도 지나친 발언이었다. 당시 멤버들의 나이대나 아이돌 가수로 살아왔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하늘이 신중하게 발언을 했어야 한다. 또한 당시 DR 뮤직의 대처와 스포츠 신문으로 대표되는 막장 기레기들의 행각도 베이비복스의 해체에 큰 지분을 가져갔다고 볼 수 있다. 이하늘은 베이비복스 멤버들에게 가수로서의 명예훼손 이전에 여자로서 씻을 수 없는 모욕과 상처를 줬다. 그리고 이하늘은 결혼 발표하면서도 계속 까이지만, 베이비복스에게 욕설한 것은 잘못 없다는 뉘양스를 풍기기도 했다.

이 사건 당시 인터넷에서 이하늘을 지지하는 여론도 많았다. 여성 아이돌 가수에 대해서 각종 성적 비하[11], 모욕, 무시를 일삼는 일들이 지금보다도 많았던 시절이며, 또한 지금보다 아이돌의 이미지가 더 나빠서 각 음악 장르의 매니아들의 허세 섞인 부심, 스노비즘이 더 컸던 시절이기도 하다.[12] 그리고 이제는 이미지가 많이 실추된 편이지만, 당시까지는 철 없는 마초적 동경심에 빠져 이하늘을 멋진 형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기도 했다.

다만 이하늘 혼자 힘으로 베이비복스 5명의 인생을 말아먹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데, 여자 아이돌 팀이 정규 7집에 스페셜까지 8개 앨범을 냈으면 꽤 오래 존속했고, 2003년을 기점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물론 많은 베이비복스 팬들은 그때까지 괜찮았으며, 7집도 잘 했을 수 있다고 하지만 핑클, S.E.S. 역시 비슷한 시기 사라질 때는 정말 조용히 사라졌다. 이하늘에게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맞지만 냉정하게 보면 당시 핑클, S.E.S., 베이비복스 세 팀 다 이미지 소진이 거의 다 된 상황이었으며, 특히 앨범도 가장 많이 내고 2006년 가장 마지막까지 활동했던 베이비복스는 이하늘 사건이 없었어도 이미지 소진이 가장 심했다. 그리고 당시 기준으로 할 만한 컨셉은 다 했던 상황이며, 별로 어울리지도 않는 힙합으로 컴백한 것도 이미지 소진이 심했기 때문일 확률이 높기도 하다. 또한 더 인기가 좋았고 각기 2002년, 2005년 일찍 해체했던 S.E.S.나 핑클의 멤버들 역시 홀로 서기는 다들 힘겨웠기 때문에, 베복 팬들에게 이하늘이 가장 분노를 일으킬 만한 대상은 맞지만 해체나 힘겨운 홀로 서기가 마냥 이하늘만의 탓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문단 서두에 있듯이 당시가 1세대 아이돌의 황혼기였기 때문인 게 가장 큰 이유다. 베복의 7집이 발매된 2004년은 아이돌이 저물고 휘성, 박효신으로부터 본격적인 소몰이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하늘의 행위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지만...

한편, 사건의 당사자였던 이하늘은 이 사건 이후로도 자잘한 사고를 일으키다가 자신이 소속된 그룹의 전 멤버였던 박정환을 비하한 사건과 김창열과의 갈등으로 또 다시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


4. 문희준 극성 팬의 간미연 살해 협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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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여름, 사회적 파문으로 일었던 간미연 살해 협박 사건

1999년 9월 11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자료

1999년,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H.O.T.문희준과 간미연 사이의 스캔들로 인해 다량의 협박 편지가 배달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며,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이들의 존재가 각인됐었다. 1세대 사생팬이 일으킨 사건들 중 가장 유명한 사건 중 하나로 다량의 커터칼날+피로 쓰여진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문구+간미연의 눈을 모조리 파낸 사진 등.

결국 뉴스 등에서 자작극 사건이 사회적인 문제로 두각되자, 해당 극성팬들은 간미연 측이 꾸민 자작극이라며 헛소문을 퍼뜨려서 실제로 간미연이 자작극을 했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2000년 당시 베이비복스의 안티팬이 "간미연 사건은 자작극이다!"라며 조직적으로 이들의 활동에 지장을 주자, 베이비복스 측이 해당 학생을 고소할 뻔한 사건이 있었다. 물론 베이비복스가 이들의 처벌을 원하지 않아 선처했다. 아직도 간미연 사건이 자작극이라는 터무니 없는 루머를 재생산하는 안티들도 있으니까 조심하자. 상식적으로 방송 3사 메인 뉴스에 보도된 사건이 자작극이었다면 왜 어느 언론에서도 반론을 보도하지 않았을까? '간미연 자작극 루머'는 무식함과 과도한 팬심이 불러온 희대의 촌극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십몇 년 후인 2014년까지도 이들이 간미연 자작극 물타기를 하였음이 밝혀졌다. 이쯤 되면 정신병이 우려되는 수준이다.

SNS도 활발하고 연예인들이 악플을 읽어보는 이야기도 쉽게 하는 요즘과 달리, 당시는 아이돌의 경우 자신들의 팬클럽 외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분위기가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아이돌들은 인터넷으로 팬사이트만 확인한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다 보니 안티들의 공격이 단순히 악플이나 루머 양산, 안티카페 개설 등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고 직접적인 신체적 위협(폭행, 의상 훼손)이나 협박(살해 협박)처럼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기도 했다.[13]

사실 문희준이 안티가 급속도로 늘어난 이유는 간미연을 악의적으로 괴롭힌 H.O.T. 극성 빠순이들의 악행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이 들어있었다는 역풍도 포함되어있었기 때문에 과도한 비방이 더더욱 커졌다는 의견도 있다. 게다가, 간미연 뿐만 아니라 H.O.T.는 당시 국내에서 압도적인 최대 규모의 10대 팬덤을 지녔기에 그 횡포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거대 팬덤 특유의 횡포뿐 아니라 절대 다수가 10대란 점 때문에 청소년기 특유의 감정적인 면모까지 더해 극단적인 행태를 보였다. 이렇게 문희준이 안티들에게 괴롭힘에 시달린 것은 H.O.T 빠순이들에게 크게 한 방 먹이려는 목적도 있었다. 결국 문희준의 극성 빠순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던 문희준이 역풍으로 크게 당하는 꼴을 보면서 속앓이를 해야만 했다.[14]

이런 분위기가 점점 사라지는 끝물에 일어난 것이 유노윤호 본드 음료수 테러 사건이다. 아이돌에 대한 관심이 코어 팬덤 이외에 일반인들에게까지 번진 요즘은, 팬덤들 사이에서만 도는 "그랬다더라" 수준의 소문 외에 아이돌이 실제로 직접적인 공격을 받은 경우는 공식적으로 없다. 요즘 같으면 당연히 감방으로 보낼 일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세계적으로도 테러 같은 것과 관련된 범죄도 엄청나게 민감한 시대라서 처벌도 어린애들 장난 수준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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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O.T., 젝스키스, 신화 등.[2] 심지어 조금의 반박성 댓글이라도 보이면 당장 실드로 몰리고 있다.[3] 파일:18BCDC74-DF88-48C4-AB46-4EA97FF05AB2.jpg 파일:0AA4420B-7371-44F5-8B47-80D311A80E0E.jpg 파일:C16D8332-4262-45FC-8D50-18BBC6E8FD19.jpg[4] 공연장에 싫어하는 연예인이 나올 때 단체로 약 1분간 아무 응원 없이 침묵하는 것.[5] 가운데 손가락을 올린 안티 짓은 핑클도 당한 적이 있었다고 옥주현이 직접 방송에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6] 이 방송은 2007년 1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유니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관련되어 나왔다. 베이비복스와 유니 둘 다 지독한 안티와 악플에 시달렸다는 점이 같다.[7] 빠따 좀 맞자는 표현은 해당 프로그램에서 이하늘이 즐겨 사용하던 표현이었다. 반대로 뭔가 칭찬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는 '국밥 한 그릇 드시고'라는 표현을 썼다.[8] 미아리는 원래 마을 이름인데, 아시다시피 미아리에 한때 전국 최대 규모의 집창촌이 존재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30대 이상 장년층들은 미아리라고 하면 성매매 업소의 대명사로 떠오르기도 한다.[9] 2PAC의 어머니가 주체가 된 아마루 레코드에서 우리의 허락 없이 곡을 갖다 썼다며 법적 대응을 운운했지만 2PAC의 곡들은 저작권이 여기저기 갈라져 있는 상태였고, 엑스터시는 정당하게 저작권을 행사하여 만든 곡이었다.[10] 당시에는 문희준도 무뇌충이라고 비아냥거림을 당하던 시기였으니 이 머저리 같은 빠순이들이 확실한 자충수를 뒀고 문희준도 테러를 당했다.[11] 가해자는 남성, 여성 가리지 않았다.[12] 아이돌 음악 때문에 한국 음악계가 망한다는 둥, TV에서 들을 음악이 안 나온다는 둥 하는 레퍼토리가 흔하던 시절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지금도 나오긴 하지만 말이다.[13] 문희준 갤러리에 올라온 당시 베이비복스 팬의 회상글. #[14] 특히 눈을 파낸 사진이 임팩트가 컸는지 이후 문희준도 눈을 파내겠다는 식의 욕설을 안티들에게 듣게 되며, 구봉숙도 문희준에게 눈을 파겠다는 욕설을 했다.